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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학 칼럼: 죽음을 향한 존재

516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4-11-05

[인간학 칼럼] 죽음을 향한 존재

 

 

태어난 모든 생명에게 죽음은 필연적인 사건입니다. 죽음을 삶의 끝이라 생각하기에 인간은 끊임없이 죽음을 회피하려 합니다. 이런 태도는 죽음을 저주로 받아들이게 합니다. 그에 비해 고대 로마에서는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는 말이 일상적으로 쓰였습니다. 죽은 이들은 죽음이 “오늘 나에게 있지만, 내일은 너에게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인간은 삶 안에서 죽음을 생각합니다. 문화인류학에 따르면 인간만이 죽음을 기억하고 추념합니다. 무덤과 장례는 그 표징이며, 이를 통해 인간은 생물학적 존재를 넘어 문화적 인간, 인간다운 인간으로 태어납니다. 인간으로서의 나의 삶과 존재의 진정한 의미는 죽음을 맞이할 때 새롭게 드러난다는 말이지요. 그러니 죽음을 마주하는 우리의 마음, 죽을 때의 그 얼굴이 곧 우리 삶이며 존재라는 말이 지나친 표현은 아닙니다. 철학자들은 인간을 ‘죽음을 향한 존재’라고 말합니다. 심지어 플라톤은 인간의 지성적 작업인 철학을 ‘죽음의 연습’이라 부르면서 철학은 죽음 앞에서 자신의 영혼을 수련하는 과정이라고 강조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역사만큼이나 오래 죽음 문제를 고뇌했습니다. 사람들은 삶을 원하는 만큼이나 깊이 있게 죽음의 의미를 찾으려 합니다. 영적 존재인 인간이 죽음과 씨름하면서 역사와 문화를 만들어냈습니다. 죽음이 있기에 인간은 학문과 예술을, 철학과 종교를 추구하는 것이지요.

 

다른 생명체들은 숨이 끊기면 다만 사라져갈 뿐이지만 인간은 자신의 죽음을 미리 알고 대비합니다. 때로는 두려움에 외면하기도 하지만, 담담히 죽음의 의미를 되새깁니다. 우리는 자신의 죽음을 앞당겨 생각함으로써 지금의 삶을 바꾸어 놓습니다. “인간만이 죽는다.”라는 말은 이런 태도를 일컫는 말이지요. 죽음을 부정하거나 회피할 수도 있지만, 죽음이 있기에 진리와 정의를 찾고, 자신이 추구하는 의미를 성취하려 노력하기도 합니다. 인간은 생존의 차원을 넘어 죽음의 의미를 생각하고, 그 이후의 삶에 대해 깊이 명상합니다. 인간은 단순히 연명하는 삶이 아니라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을 원합니다. 이를 위해 기꺼이 자기를 비우거나 절제하기도 하고, 심지어 죽음을 향해 나아가기도 합니다. 죽음은 생명체에게는 불가피한 사실이지만, 그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삶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드러납니다. 생명의 끝이 죽음이 아니라, 죽음을 받아들이는 마음이 삶을 결정합니다. 그러니 인간만이 죽는다는 말은 비유적 표현 이상이지요.

 

인간은 시간적 존재입니다. 시간은 세계의 변화를 의식하는 마음 안에 있습니다. 그 시간의 끝이 죽음일지 모르지만 죽음을 현재화할 때 우리는 과거를 새롭게 해석하고, 미래의 방향을 미리 결정합니다. 죽음을 생각하면서 인간은 시간의 한계를 넘어서게 됩니다. 죽음을 잘 맞이하는 것은 삶을 마무리 짓고, 이 삶을 넘어 이후의 삶이 어떠할지 생각하는 데 있습니다. 죽음은 이러한 넘어감이며, 삶은 이승에서 저승으로 나아가는 과정일 테지요. “죽음은 마지막 말이 아니다.”라는 표현은 이런 의미입니다. 죽음을 피하려는 수많은 헛된 노력들이 오히려 지금 이 삶을 황폐하게 만듭니다. 매 순간 존재하는 인간의 시간 안에서 죽음을 성찰할 때 죽음은 삶의 방향을 결정하고 그 의미를 드러내게 됩니다. 그때 죽음은 삶의 첫 말이 될 것입니다.

 

[2024년 11월 3일(나해) 연중 제31주일 서울주보 7면, 신승환 스테파노(가톨릭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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