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려지지 않은 하느님, 성령: 성령에 대한 성경의 진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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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01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5-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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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지지 않은 하느님, 성령] 성령에 대한 성경의 진술들
저번 원고에서는 얼굴도 목소리도 드러내시지 않기에 성령의 ‘위격성’을 파악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음을 알아보았습니다. 오늘은 성경의 진술에 근거하여 성령의 위격성에 대해 알아보려합니다. 신약에서 ‘영’을 가리키는 ‘프네우마’는 그리스어로 ‘중성’인 단어로 ‘숨’, ‘숨결’, ‘공기’, ‘바람’, ‘영혼’ 등을 가리키며, 구약에서 ‘영’을 가리킬 때 쓰이는 ‘루아흐’는 대부분 신약에서 ‘프네우마’로 번역됩니다. 구약에서 378번 쓰이는 루아흐는 이브 콩가르 추기경에 따르면 첫째로 ‘바람’, ‘숨결’의 의미로, 둘째로 인간에게 있어 ‘생명의 힘’이자 ‘근원’으로, 셋째로 ‘하느님의 힘’이며 ‘생명’의 의미를 지닙니다. 성경에서 성령을 가리키는 여러 상징들에 대해 살펴보면 저번 호에서 말했던 대로 ‘비인격적인 특성’이 많이 드러납니다. 그 상징들은 ‘물’, ‘불’, ‘하느님의 손가락’, ‘바람’, ‘불혀’, ‘빛나는 구름’, ‘비둘기’, ‘기름부음’ 등인데 모두가 인격적인 특성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성령의 위격성에 대해 긍정할 수 있는 진술들은 무엇일까요? 가장 먼저는 예수님의 마태복음의 세례에 대한 명령에서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이 나란히 기술되는 것과 코린토1서 12장 4-6절에 ‘성령’, ‘주님(그리스도)’, ‘하느님(성부)’에 대한 언급, 에페소서 4장 4-6절에서 ‘한분 성령, 한분 주님, 한분 하느님’처럼 성령께서 성부와 성자와 동등하게 언급되는 것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성령이 성부나 성자께서 세상에서 활동하시는 힘과 권능에 불과하다면 이렇게 성부와 성자와 나란히 불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나란히 세 위격의 이름이 등장하는 것은 그분들의 동등성을 보여주며 베르나르 세스부에에 따르면 성령을 다른 두 위격과 같은 주체로 파악하게 합니다.
또한 이브 콩가르는 요한복음에서 성령께서 행동의 주체로 등장하는 구절을 다음과 같이 소개합니다. 성령은 제자들 주위에 머무르시며(14,17), 그들 안에 계시고(14,17), 예수님에게서 받으십니다(16,14). 그분은 들으시고, 가르치시기도 하고(16,13; 14,26),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끄시며(16,13), 죄를 이기십니다(16,8). 가장 분명하게는 성령은 예수님에 이은 ‘다른 보호자’(14,16)이십니다. ‘프네우마’라는 단어가 본래 ‘중성’인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다른 보호자이신 성령을 언급할 때 그분을 ‘남성명사’로 지칭함은 보다 명확하게 성령의 위격(인격)성에 대해 알게 합니다.
이렇듯 성령은 ‘행위’의 주체로서 소개됩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고(로마 8,16), 우리는 그분을 “슬프게 해 드릴”수 있습니다(에페 4,30). “행위는 존재를 따른다”라는 유명한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말씀이 있습니다. 식물이 할 수 있는 일과, 동물이 할 수 있는 일, 그중에서도 인간이 할 수 있는 일들은 모두 다릅니다. 더 넓게는 ‘피조물’이 할 수 있는 일과 ‘하느님’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와 함께 동등하게 언급되며 세상에서 성자께서 이루신 구원 업적을 이어가고 ‘완성’해 나가십니다. 성령께서 하느님만이 이루시는 ‘구원 업적’을 완성하신다면 그 ‘신적인 행위’ 자체가 그분께서 ‘하느님’이심을 계시하는 것입니다.
[2025년 3월 23일(다해) 사순 제3주일 전주주보 숲정이 3면, 하성훈 요셉 신부(광주가톨릭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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