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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부] 교부들의 삶과 신앙: 그리스도교 원공동체들의 충돌 사건

926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5-04-22

[교부들의 삶과 신앙] 그리스도교 원공동체들의 충돌 사건 (1) 그리스도교 직무의 탄생과 시노달리타스

 

 

지난 달에 다루었던 그리스도교 원공동체의 탄생은 성령강림사건 이후 선교의 사명을 수행했던 “주님 부활의 증거자들”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박해의 상황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선교의 사명을 수행했던 사도들의 모습은 사도행전에 잘 기술되어 있습니다(사도 5,17-42). 하지만 그리스도교 원공동체의 탄생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했고, 곧바로 그들 사이에 적지 않은 분란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처음으로 보도하는 장면이 사도행전 6장에 등장합니다.

 

“그 무렵 제자들이 점점 늘어나자, 그리스계 유다인들이 히브리계 유다인들에게 불평을 터뜨리게 되었다. 그들의 과부들이 매일 배급을 받을 때에 홀대를 받았기 때문이다”(사도 6,1).

 

로마 제국아래 놓이게 된 유대계 그리스도인들 사이에도 서로 다른 언어 사용으로 인해 소통의 문제가 생기자 자연스럽게 분란이 생겼습니다. 사도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들 사이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봉사자를 뽑게 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식탁 봉사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형제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에서 평판이 좋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을 찾아 내십시오. 그들에게 이 직무를 맡기고, 우리는 기도와 말씀 봉사에만 전념하겠습니다”(사도 6,2-4).

 

사도행전 6장을 통해 그리스도교 첫 직무에 해당되는 “사도직”은 “기도와 말씀 봉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 생겨나게 된 “식탁봉사”의 직무는 공동체 내부의 갈등을 중재하여 공동체가 서로 갈라지지 않고 일치를 이루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봉사자의 선출은 공동체의 사람들의 의견이 적극 반영되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교 원공동체가 하느님 나라로 가는 지상 여정에 필요했던 봉사자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이미 교회의 의사결정 방식(Synodalitas, 함께 걸어가는 길)이 존재했다는 것을 잘 알려줍니다. [2025년 4월 20일(다해) 주님 부활 대축일(장애인의 날) 가톨릭마산 8면, 이승언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교부들의 삶과 신앙] 그리스도교 원공동체들의 충돌 사건 (2) 예루살렘 사도회의와 시노달리타스

 

 

지난 달에 다루었던 그리스도교 원공동체들의 첫번째 갈등은 흩어져 살았기에 다양한 언어와 문화 관습에 익숙했던 유대계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발생했습니다. 사도들은 다른 언어를 쓰는 유대인 과부들의 배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들의 직무인 말씀 봉사와 기도를 분명히 하고, 공동체로 하여금 식탁봉사를 할 수 있는 일곱 사람을 선출하도록 돕습니다(사도 6,2-4). 함께 걸어가는 교회의 여정 속에서 교회의 직무가 탄생했던 역사는 공동체를 다시금 일치의 여정으로 초대합니다. 하지만 사도들의 선교 활동은 유대인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방인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탄생은 또 다른 갈등을 유발했습니다.

 

“유다에서 어떤 사람들이 내려와, “모세의 관습에 따라 할례를 받지 않으면 여러분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고 형제들을 가르쳤다. 그리하여 바오로와 바르나바 두 사람과 그들 사이에 적지 않은 분쟁과 논란이 일어나, 그 문제 때문에 바오로와 바르나바와 신자들 가운데 다른 몇 사람이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원로들에게 올라가기로 하였다”(사도 15,1-2).

 

유대인이 아닌 이들에게 성령이 내려와 세례가 베풀어진다는 것은 유대계 그리스도교 공동체 신자들에게 받아 들일 수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들과 원로들은 이 문제를 검토하기 위해 모이게 됩니다(사도 15,6). 오랜 논란 끝에 베드로가 일어나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하신 것처럼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시어 그들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정화하시어, 우리와 그들 사이에 아무런 차별도 두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여러분은 왜 우리 조상들도 우리도 다 감당할 수 없던 멍에를 형제들의 목에 씌워 하느님을 시험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주 예수님의 은총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믿습니다”(사도 15,8-11).

 

예루살렘 사도회의는 이렇게 끝나지 않았습니다. 야고보의 입을 통해 최종 결론이 공표 됩니다.

 

“그러므로 내 판단으로는,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서 하느님께 돌아선 이들에게 어려움을 주지 말고, 다만 그들에게 편지를 보내어, 우상에게 바쳐 더러워진 음식과 불륜과 목 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와 피를 멀리하라고 해야 합니다. 사실 예로부터 각 고을에는,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모세의 율법을 봉독하며 선포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사도 15,8-11).

 

첫 교회 회의인 예루살렘 사도회의는 일방적으로 이방인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위한 결론으로 마무리되지 않았습니다.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의 관습과 문화를 충분히 경청하고 존중하는 가운데, 그들이 지켜온 가르침 가운데 합당하다고 여기는 것을 이방인들도 함께 지킬 수 있도록 배려합니다. 그리하여 많은 이들이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따라서 예루살렘 사도회의는 교회가 살아왔던 방식인 “함께 걸어가는 길 - 시노달리타스”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보여주는 원형이 되는 사건입니다. [2025년 5월 18일(다해) 부활 제5주일 가톨릭마산 8면, 이승언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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