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서칼럼: 유난에 희망을 두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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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5-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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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칼럼] ‘유난’에 희망을 두는 사회
다큐멘터리 영화 〈고양이들의 아파트〉는 재건축을 앞둔 대형 아파트 단지를 터전으로 삼은 길고양이들의 모습과 함께, 재건축이 시행되기 전에 길고양이들을 안전한 곳으로 이주시키려는 봉사자들과 활동가들의 모습을 담습니다. 영화는 수많은 사람들이 떠나간 거대한 공간을 비춤으로써 재건축을 맹목적으로 조장하도록 이끄는 한국 사회를 향한 날카로운 시선을 보여줌과 동시에 도시 안에서 살아가는 야생 동물들을 향한 인간들의 무관심과 무지함을 꼬집습니다. 그리고 무지함과 무관심을 뛰어넘는 봉사자들과 활동가들의 모습에 영화는 희망을 겁니다.
특별히 영화 속 봉사자들과 활동가들의 모습은 ‘유난’이라는 표현을 떠오르게 합니다. 보통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기 쉬운 유난이, 이제는 무언가 정체되어 있어 보이는 곳에 생기를 돋우는 활력소와 같은 의미로 활용될 수 있어 보입니다. 누군가는 길고양이들을 이주시키는 일을 ‘유난 떤다’는 식으로 폄훼할 수 있습니다. 길고양이들을 이주시키기 위해 사용되는 비용으로 차라리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이 더 낫지 않느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작은 것들을 위한 관심과 노력이 전제되지 않은 사회는, 그 누구도 존중해주지 못하는 사회일 공산이 큽니다. 그렇게 아파트 대단지의 재건축과 맞물린 길고양이들의 이주 프로젝트는 ‘유난’을 존중하고 ‘유난’에서 힘을 얻는 사회를 희망하도록 이끕니다.
최재천 교수와 ‘최재천의 아마존’ 유튜브 채널을 기획 · 제작하는 ‘팀 아마존’이 함께 쓴 《양심》을 읽으며 ‘유난’의 의미를 되새기게 됩니다. 《양심》이 담고 있는, 과학자이자 동시에 환경운동가이며 양심에 귀 기울이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최재천 교수가 보인 모습들은 모두 ‘유난’으로 귀결됩니다.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입장을 내며 환경단체에 힘을 실어주던 최재천 교수에게 당시 정부는 정치적 메시지를 내는 유난스러운 과학자라는 프레임을 씌우듯 그의 연구 예산을 삭감했습니다. 남방큰돌고래를 제주 바다로 돌려보내는 데 앞장선 최재천 교수를 향해 초기 여론은 왜 그런 프로젝트에 막대한 돈과 시간을 들이는 유난을 떠냐는 식으로 판단했습니다. 호주제 폐지에 힘을 실었던 최재천 교수에게 호주제 폐지를 반대하던 남성들은, 남자가 왜 여성의 편에 서서 유난을 떠느냐고 손가락질했습니다.
이처럼 《양심》에 담긴 최재천 교수의 지난 행보는, 우리 역시도 불편함을 감수하며 세상을 더 나은 방식으로 바꾸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수 있다는 용기를 북돋웁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복음 속 예수님이 ‘유난’과 밀접한 삶의 모습을 보이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회적 약자들의 서서 하느님 나라가 도래하였음을 선포하셨고, 모두가 손가락질하는 죄인들에게 먼저 손을 내미셨던 예수님의 모습은 세상의 모든 유난을 대변합니다. 무릇 그리스도인이라면 유난을 대변하고 유난으로 상징되는 복음 속 예수님의 삶, 곧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삶을 살아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2025년 6월 8일(다해) 성령 강림 대축일 서울주보 7면, 구본석 사도요한 신부(국내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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