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지] 희년에 떠나는 로마: 로마 7대 성당, 라테라노의 성 요한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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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5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5-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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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년에 떠나는 로마 VII] 로마 7대 성당, 라테라노의 성 요한 대성당
콜로세움을 등지고 직선으로 뻗어 있는 라테라노의 성 요한 거리(via di S.Giovanni in Laterano)를 따라 약 20분 정도 걷다 보면, 로마교구의 주교좌 성당으로 자리하고 있는 라테라노의 성 요한 대성당을 마주하게 됩니다. 네로 황제부터 시작되어 250년 동안 이어진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를 떠올리게 하는 콜로세움, 그리고 신앙의 자유와 그리스도교의 승리를 상징하는 최초의 성전이 하나의 거리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어서 이 길을 걷는 순례자들은 오래전 역사를 조금은 가깝게 느낄 수 있습니다.
312년 10월 28일, 4분할 통치 체제로 유지되던 로마 제국에서 콘스탄티누스 황제와 막센시우스 황제 사이의 운명적인 전투가 로마의 밀비오 다리에서 벌어졌습니다. 결전을 앞둔 밤, 콘스탄티누스의 꿈에 천사가 나타나 하늘을 가리키는데, “이 표징 안에서 너는 승리하리라(In Hoc Signo Vinces).”는 황금 글씨 위로 십자가가 나타났습니다. 그는 휘하에 있는 병사들의 깃발에 십자가를 걸게 한 후, 전투에 임하여 큰 승리를 거두었고, 이듬해에 밀라노에서 모든 종교에 대한 박해를 금지하는 칙령을 선포하였으며, 막센티우스의 친위대 병영이 있던 자리에 ‘구세주이신 그리스도께’ 봉헌하는 성전을 건축하였습니다. 324년 실베스트로 교황에 의해 축성된 대성당은 이전에 라테라니(Laterani) 가문이 소유했던 부지 위에 세워졌기 때문에, ‘라테라노’라는 명칭이 여전히 사용되고 있습니다.
대성당에서 동쪽을 향해 있는 정면부는 교황 클레멘스 12세의 의뢰로 알레산드로 갈릴레이가 1735년에 완성하였습니다. 꼭대기 정중앙에 자리한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오른쪽에 요한 세례자가, 왼쪽에 요한 사도가, 그 옆으로는 서방과 동방의 4대 교부들이, 마지막으로 교회사가 성 에우세비오가, 교회 학자 성 베르나르도가, 성 토마스 데 아퀴노와 성 보나벤투라가 배치되어 있습니다. 삼각형 장식 아래에는 “클레멘스 12세 교황 5년째 그리스도 구세주와 성 요한 세례자와 복음사가를 기리며(CLEMENS XII PONT MAX ANNO V CHRISTO SALVATORI HON SS IOAN BAPT ET EVANG)”라는 정보가 적혀 있고, 그 아래의 다섯 개의 아치로 이루어진 발코니와 입구는 성전의 현관과 연결됩니다. 중앙의 양쪽 기단으로, 교차된 열쇠와 삼중관으로 장식된 교황의 문장(紋章) 안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지극히 거룩한 라테라노 교회는 로마와 세계의 모든 교회들의 어머니이자 으뜸입니다.”
(SACROS LATERAN ECCLES OMNIUM URBIS ET ORBIS ECCLESIARUM MATER ET CAPUT)
보편 교회 안에서 이 성당이 차지하는 지위를 되새기며, 가장 오른편에 있는 성문을 통과하여 성전에 들어갑니다. 길이 130미터, 4열 5랑 바실리카 양식으로 된,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세운 최초의 성당은 프란치스코 보로미니(1599-1667)의 설계대로 바로크 양식으로 크게 개축되었습니다. 열 두 사도들의 조각상이 중랑의 벽감을 따라 배치되어 있고, 각 사도의 손에 든 도구는 그들의 순교와 업적을 도상적으로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벽감 위를 마주 보며 자리한 석고 부조들은 구약과 신약의 내용들을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어서 “구약 성경은 복음 선포에 온전히 수용되고 신약 안에서 그 완전한 의미를 얻고 드러내며 다른 한편으로 신약을 밝히고 설명해 준다.”(계시헌장, 16)라는 교회의 가르침을 금세 수긍하게 해 줍니다. 중랑과 익랑이 교차하는 곳에 세워진 천개 안에는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의 두개골 유해가, 교황 제대 아래로는 마르티노 5세 교황의 무덤이, 좌익랑에는 최후의 만찬 때 사용된 식탁이 보존되어 있으며, 우익랑에는 1599년에 제작된 파이프 오르간이 보존되어 있는데, 헨델을 비롯한 여러 음악가들이 연주한 바 있습니다.
서쪽을 향해 있는 후진부는 19세기 말 가대석(Coro) 공간의 확장을 원했던 레오 13세 교황에 의해 원래의 것보다 서쪽으로 길게 증축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크게 훼손되어 복원되었지만 원래의 모자이크 작품은 니콜로 4세 교황의 의뢰로 야코포 토리티가 완성한 것입니다. 상단부터 재림 때의 그리스도의 얼굴이, 그 아래에 성령을 상징하는 비둘기가 표현되어 있고, 중앙에는 보석으로 장식된 십자가 아래로 에덴동산이 묘사되어 있는데, 그곳에서 네 줄기 강물로 나뉘어 흐르고 있고, 십자가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생명의 풍요’(창세 2,10–14, 에제 47,1-12)와 ‘천상 예루살렘’(묵시 22,1)을 상징합니다. 한편, 하느님을 그리워하는 두 마리의 사슴(시편 42,2)과 수많은 피조물이 그 물을 마시고 있는데, 이는 교회 전체가 십자가에서 생명을 얻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며, 이 물들이 다시 모여 요르단강을 이룹니다. 십자가 옆에는 성모님과 함께 성 베드로와 바오로, 성 요한 세례자와 요한 사도 등이 서 있습니다. 후진부의 서쪽 끝자리에는 로마 교구의 주교좌(Cattedra)가 자리하고 있는데, 새 교황의 선출 예식은 바로 이 자리에 착좌하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로마의 주교이자 베드로의 후계자인 교황은 이 특별한 자리에 앉음으로써 가르치는 권한인 교도권과 목자로서의 사명을 시작하게 됩니다. 또한 이곳에서 매년 11월 9일에 라테라노 대성전의 봉헌 축일을 지내면서, 모든 지역 교회가 로마의 모(母) 교회와 일치되어 있음을 성대히 드러냅니다.
“강이 있어 그 줄기들이 하느님의 도성을, 지극히 높으신 분의 거룩한 거처를 즐겁게 하네.”(시편 46,5)
[2025년 8월 17일(다해) 연중 제20주일 인천주보 3-4면, 김세웅 디오니시오(이탈리아 공인 가이드, 『쥬빌레오 로마』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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