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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리
가톨릭 신학: 나는 길이다(요한 14,6)

6623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14:46

[가톨릭 신학] “나는 길이다”(요한 14,6)

 

 

‘특기’가 남보다 잘하는 것을 의미하고, ‘취미’가 즐겨 행하는 것이라면 제겐 딱히 특기나 취미가 없습니다. 대신 빠짐없이 매일하는 것은 걷기입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철학자 칸트처럼 매일 동일한 시간을 걷지도 않고, 특별한 코스를 걷거나 준비도 거창하지 않습니다. 그냥 매일 걷습니다. 평소 책상에 앉는 시간이 많고, 좋지 않은 머리를 자꾸 쓰다 보니 늘 머리가 무거운데, 밖에 나가 걸으면 생각이 정리되고,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꾀가 날 때도 있고, 쉬고 싶은 날도 있지만, 그래도 나갑니다. 누군가 등산에서 가장 어려운 코스는 ‘안방에서 현관까지 나가는 것’이라 했는데, 저도 이 말에 공감하며 무조건 나가 길을 걷습니다.

 

성경에서 ‘길을 걷다.’라는 것은 ‘삶의 방식’을 의미합니다. “아브람이 아흔아홉 살이 되었을 때 야훼께서 그에게 나타나 말씀하셨다. ‘나는 전능한 하느님이다. 너는 내 앞에서 바르게 살아라.’”(창세 17,1 공동번역) 여기서 ‘바르게 살다.’는 ‘걷다.’입니다. 즉 하느님 뜻을 따르는 삶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예수님의 삶과 말씀에 ‘순종’(Fiat)하는 것이 올바르게 사는 것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예수께서 당신을 ‘길’이라 알려주셨기에, 그분은 하느님을 향한 여정을 시작하는 이들에게 길이 되셨고, 그 길을 따르면 진리와 영원한 생명에 도달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복음은 완덕의 길에 이르기 위해 좁은 길로 가라 합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에게는 ‘편리함’이라는 거대한 우상(偶像 Idol)이 있습니다. 삶에서 편리함이 너무 중요한 기준이 되어버렸습니다. 편리함을 마냥 거부할 수는 없지만, 편리하게 살기 위해서 혹시 잃어버리고 사는 것은 없는지, 놓치며 사는 것은 없는지 경계해야 합니다. 편리함을 완전히 포기할 수는 없지만, 평소 살아가면서 하느님 때문에 생기는 불편함을 감내합시다! 그리고 구원에 이르는 길은 남들이 편하게 가고 있는 길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좁은 문으로 가라 하십니다.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길도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마태 7,13) 좁은 문, 좁은 길이란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의 말처럼 인간은 하느님을 향하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 완덕에 이르는 길 자체이십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요한 8,32) 하느님 말씀은 진리이고 생명입니다. 하느님 말씀이 사람이 되신 분은 진리와 생명에 이르는 길이고, 그분은 우리를 영원히 살게 해 주시는 빵입니다. 따라서 성체를 정성스럽게 모시는 것이 그분이 마련하신 길을 걷는 첫 걸음이자 올바른 방향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성체는 ‘주님의 기도’에 나오는 ‘일용할 양식’입니다.

 

[2025년 12월 28일(가해)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가정 성화 주간) 서울주보 5면, 조한규 베네딕토 신부(가톨릭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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