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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26년 5월 28일 (목)연중 제8주간 목요일스승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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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리
가톨릭 교리: 희망의 또 다른 이름, 인내

7197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6-05-27

[가톨릭 교리] 희망의 또 다른 이름, 인내

 

 

인터넷과 핸드폰이 없는 삶을 상상해 보신 적이 있나요? 아마도 많은 분들이 불편하고 따분한 삶일 것이라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러한 유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아직 인터넷이 완전히 보급되지 않았고 핸드폰도 생기기 전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결코 지루하지도 따분하지도 않았습니다. 예고 없이 친구 집에 찾아가 벨을 눌렀고 많은 시간을 밖에서 뛰놀았습니다. 복사단 형들과 축구를 하다가 조금 다치기도 했지만 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집 열쇠가 없어 서성이다가 이웃집에 머물렀고, 어머니가 주신 음식을 나누고자 옆집의 벨을 서슴없이 누르기도 했습니다. 누군가를 의심하지 않았고 차단하지 않았습니다. 각자 같은 시간 동일한 TV 프로그램을 보고 유행어를 따라 하며 활짝 웃었습니다. 책을 읽으며 한껏 상상력을 펼쳤습니다. 알고리즘 추천이 없었지만 즐거운 일이 끊이지 않았고, 셀카를 찍을 수 없었지만 그 시간은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지금은 완전히 다른 세상입니다. 스마트폰을 켜면 끝없이 영상이 흘러나오고, 짧은 숏폼 영상은 몇 초마다 새로운 장면과 자극을 제공합니다. 음악이 끊임없이 재생되고, 게임은 즉각적인 보상을 줍니다. 인간은 그 어느 시대보다도 많은 이미지와 정보, 감각적 자극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현대인들을 바라보면 오히려 점점 무감각해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누군가의 고통 앞에서 오래 마음 아파하지 않으며 끊임없이 타인과 나를 비교하고, 오래 사랑하거나 기다리는 일에도 점점 서툴어지는 듯합니다.

 

사실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은 대부분 느리고 조용한 가운데 찾아옵니다. 예를 들어 사랑은 기다림 속에서 자라고, 우정은 긴 시간의 신뢰 안에서 깊어집니다. 신앙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소음과 흥분이 아닌 침묵 가운데 인간에게 다가오십니다. 그러나 끊임없는 자극에 익숙해진 우리는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조용한 시간을 무료함으로 여기며, 혼자 있는 시간을 불안해합니다. 결국 자기 자신과도, 타인과도, 하느님과도 멀어집니다. 그러한 점에서 우리 삶의 여러 가지 어려움도 다시금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씨앗이 어두운 흙 속의 시간을 견뎌야 싹을 틔우듯, 인간 역시 견디고 기다리는 시간을 통해 더 성숙해집니다. 누군가를 끝까지 사랑하기 위해 참아낸 시간, 실패와 상실 속에서도 다시 일어서기 위해 흘린 눈물, 묵묵히 하루를 살아낸 인내는 결국 인간의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고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합니다. 그리스도교 신앙 역시 십자가 없이 부활이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물론 고통 그 자체를 아름답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사랑 안에서 견디어 낸 고통은 인간을 더욱 성숙하게 하고, 마침내 희망으로 이끕니다. 그렇기에 인내는 단순히 괴로움을 버티는 일이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기쁨을 끝까지 믿으며 걸어가는 희망의 또 다른 이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2026년 5월 24일(가해) 성령 강림 대축일 서울주보 5면, 방종우 야고보 신부(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윤리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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