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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세계의 성모 성지: 스페인 몬세라트(성모상 성지)

2563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6-07-05

[세계의 성모 성지] 스페인 몬세라트(성모상 성지)


몬세라트 검은 성모

 

 

 

- 미카엘 언덕에서 바라본 성지 전경

 

 

1) 성모상의 역사

 

- 몬세라트 왕좌실에 모셔져 있는 성모상

 

 

전승에 따르면 사도 베드로는 로마로 건너가 복음을 선포하였고, 그 과정에서 잠시 스페인으로 선교여행을 떠났다고 전해진다. 사도는 예루살렘에서 가져온 성 루카가 조각한 성모상을 스페인 신자들에게 주었으며, 성모상은 공경의 대상이 되었다. 

 

711년 이슬람을 믿는 북아프리카의 무어족이 이베리아반도로 침입하였고, 718년 반도의 대부분을 점령하고 이슬람 국가를 세웠다. 신자들은 성모상이 파괴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카탈루냐 지방의 ‘톱니 모양의 산’이라는 뜻을 지닌 몬세라트산의 동굴에 성모상을 숨겨 놓았다. 이후 카탈루냐는 801년 프랑크왕국의 도움으로 영토를 회복할 수 있었다. 

 

880년 몬세라트산 기슭에서 어린 목동들은 하늘로부터 아름다운 선율과 함께 강렬한 빛이 내려오는 광경을 목격하였다. 그 뒤 목동들은 사제와 함께 같은 장소를 찾아갔고, 역시 동일한 현상을 볼 수 있었다. 이 사실을 보고 받은 주교는 즉시 조사단을 몬세라트산으로 보냈고, 그들은 한 동굴에서 성모상을 발견하였다. 주교는 성모상을 만레사로 옮기라고 지시했으나 성모상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주교는 이를 성모님께서 그곳에 머무르기를 원하신다는 표징으로 받아들이고 동굴에 성모상을 모실 경당을 건립하였다. 신자들은 성모상 발견을 이슬람의 박해로 감추어졌던 신앙이 성모님의 인도로 다시 세상에 드러난 상징으로 받아들였다. 1025년 주교는 성모상을 잘 모시기 위해 몬세라트산에 베네딕토 수도원을 건립하였다. 성모상은 수도원 성당으로 모셔졌고, 몬세라트는 수많은 순례자가 찾아오는 성모 성지가 되었다. 

 

현재 성지에 모셔져 있는 성모상은 앉아 있는 자세로 무릎 위에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모습이다. 성모님은 왼손을 예수의 어깨에 얹어 전능하신 메시아가 자신의 아들임을 보여주고 있으며, 오른손에는 지름 약 10cm의 구체를 들고 있다. 이 구체는 온 세상, 곧 지구 또는 우주를 상징한다. 아기 예수는 오른손으로 축복을 내리고, 왼손에는 다산과 영원한 생명을 상징하는 파인애플을 들고 있다. 좌상의 형태를 지닌 몬세라트 성모상은 높이 95cm, 폭 35cm로 다른 오래된 성모상들과 비교할 때 매우 큰 편에 속한다. 이런 규모로 인해 베드로 사도가 실제로 이처럼 큰 목조 좌상을 예루살렘에서 가져와 스페인에 전달했는지 의문이 제기되었다. 

 

 

- 신성한 동굴 경당, 최초의 성모상이 발견되었다고 여겨지는 동굴에 세워진 경당(좌), 동굴 경당의 중앙제단(우)

 

 

19세기 중반 이후 성모상 옷의 주름, 얼굴 표현 등 조형적 특징을 분석한 연구에서, 성모상이 12세기 로마네스크 양식과 유사하다는 견해가 나왔다. 20세기에 들어서는 보다 정밀한 비교 연구가 이루어졌으며, 그 결과 목재의 종류, 얼굴과 손, 의복의 조각 양식, 좌정한 형태, 왕좌의 구조 등 모든 요소가 12세기 말의 카탈루냐 로마네스크 조각 양식과 일치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또한 2001년에는 X선 조사, 표면층 및 채색층 분석, 목재 상태 조사를 통해 성모상은 1세기 작품이 아니라 12세기 후반에 조각된 작품이라는 점이 학계에서 거의 이견 없이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성모상의 보존을 위하여 베네딕토 수도원까지 건립되었던 사실을 고려할 때, 전승으로 내려오는 초기 성모상이 실제로 존재했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다만 그 성모상은 현재의 성모상처럼 크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며, 목조 조각이라는 특성상 오랜 세월 동안 심하게 손상되었거나 전쟁과 약탈의 과정에서 훼손되거나 소실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2세기 말에 새로 조각된 성모상은 시간이 흐르면서 촛불과 등잔의 그을음이 쌓이고, 목조 표면에 칠해진 투명 바니시(Varnish)가 산화되어 점차 흑갈색으로 변하였다. 이로 인해 오늘날의 검은 성모상이 되었으며, 사람들은 ‘까무잡잡한 분’이라는 뜻의 애칭으로 라 모레네타(La Moreneta)라고 부르게 되었다. 1492년 스페인이 그라나다를 함락하고 이베리아반도에서 이슬람 통치를 종식시키자, 몬세라트는 저항과 독립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 스페인의 왕과 왕비, 귀족, 장군들이 성모님께 감사를 드리기 위해 몬세라트를 순례하였고, 몬세라트는 스페인을 대표하는 최고의 성모 성지로 확고히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 대성당의 정면(좌), 대성당의 내부, 제단 뒤쪽에 성모상이 보인다(밝은 곳)

 

 

2) 몬세라트 성모 성지

 

성지는 대성당, 성모 마리아 경당, 회랑, 박물관, 순례자들을 위한 숙소와 식당, 그리고 베네딕토 수도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성당은 16세기에 건립되었으며 중앙제단 뒤쪽 상단에 성모상을 모시기 위해 ‘성모 마리아 왕좌실(Throne Room of Virgin Mary)’이라 불리는 별도의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순례자들은 계단을 통해 이 왕좌실로 들어갈 수 있으며, 성모님께서 들고 계신 구체만을 직접 만질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대성당은 반도전쟁(1808~1814년) 당시 파괴되었으나, 19세기 말에 재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왕좌실에서 내려오면 대성당의 후진에 해당하는 공간에 성모 마리아 경당이 있으며 이곳에서는 성모상의 뒷모습을 볼 수 있다. 1812년 나폴레옹의 스페인 침공으로 몬세라토 수도원은 약탈과 화재를 겪었으며 이 과정에서 많은 성물과 보물을 잃었다. 이후 1835년 수도원은 전면 폐쇄되었다가 1844년에 다시 복원되었다. 

 

1880년 몬세라트 성모상 발견 10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거행되었으며, 이듬해인 1881년 9월 11일 교황 레오 13세는 카탈루냐 지방의 고유한 가톨릭 신앙을 존중하여 몬세라트의 성모님을 카탈루냐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고, 4월 27일을 몬세라트 성모의 축일로 정하였다. 이후 산타 마리아 데 몬세라트 수도원은 카탈루냐 민족주의의 상징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스페인 내전과 프랑코 독재 체제하에서 카탈루냐 정체성과 언어가 억압되면서 공식적으로 거행하지 못했던 몬세라트 수호 성모 선포 60주년 미사가 1947년 4월 27일, 약 10만 명의 신자가 모인 가운데 봉헌되었다. 이 미사는 스페인 정부의 언어 정책에 대한 거부 의사를 담아 공개적으로 카탈루냐어로 진행되었다. 2025년에는 몬세라트 수도원 건립 1000주년을 기념하는 대규모 행사가 거행되었다.

 

 

- 성모 마리아 경당(좌), 매일 1시에 열리는 ‘몬세라트 소년 합창단 에스콜라니아’의 연주

 

 

3) 산타 마리아 데 몬세라트 수도원을 방문한 교황과 유명 인사

 

아비뇽 유수 시기의 교황이었던 베네딕토 13세를 비롯하여,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돈키호테’의 작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 독일의 과학자이자 탐험가인 알렉산더 폰 흄볼트, 스페인의 페르디난도 왕과 이사벨 여왕,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1세(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카를 5세), 스페인 국왕 펠리프 2세, 그리고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 14세 역시 몬세라트를 방문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콜럼버스는 1493년 제2차 항해 도중 카리브해에서 발견한 한 섬에 몬세라트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전해지는데, 이는 몬세라트 성모님에 대한 그의 깊은 신심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성모님의 군단, 2026년 5월호, 최하경 대건안드레아(서울대교구 도곡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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