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1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부활 제3주간 토요일

스크랩 인쇄

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25-05-09 ㅣ No.182073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성유 축성 미사에 다녀왔습니다. 작년에는 공지가 되지 않아 교우들이 참석하지 못했지만, 올해는 주보에 미리 공지가 되었고, 많은 교우가 함께해 주셨습니다. 병자 성유, 예비자 성유, 축성 성유를 축성하며, 교구장 주교님은 사제단과 신학생, 교우들과 성가대에 따뜻한 감사 인사를 전하였습니다. 성가대의 찬양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그냥 음악이 아니라, 그 속에 머무름의 헌신과 기름 부음의 울림이 느껴졌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이 자리에 남아 있는 사람들, 교회를 지키는 사람들은 단지 기능적인 역할이 아니라, 하느님의 향기를 품은 사람들이다.”

 

오늘 복음에서 사람들이 예수님의 곁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 겉에 모인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물을 포도주로 만들고, 병자들을 고쳐주고, 배고픈 사람들이 풍족하게 먹을 수 있도록 표징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서 새로운 권위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에게서 희망을 보았습니다. 건강과 물질적인 풍요로움에 대한 희망입니다. 로마의 식민 통치를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다른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희생과 봉사 그리고 겸손과 나눔을 이야기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은 사람들 손에 넘겨져 죽어야 한다고 이야기하셨습니다. 복음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하셨습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어야만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실망한 사람들은 예수님의 곁을 떠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대답하였습니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충실히 따랐던 베드로는, 비록 주님을 배반하고 무서워 떨었지만, 다시금 주님의 사랑을 받았던 베드로 사도는 오늘 제1독서에서 예수님께서 하셨던 일을 훌륭하게 하고 있습니다. ‘환자들을 치유하고, 죽은 사람까지 살려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 사도는 그 모든 영광을 예수님께 돌립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보고 무너졌던 그가, 이제는 생명을 일으키는 사도가 되어 있습니다. 그 변화의 비밀은 하나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과의 만남, 그리고 그 만남을 떠나지 않은 선택입니다. 프랑스 철학자 기욤 마르셀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머무름이란 도피하지 않는 선택이며, 관계를 끝까지 감당하겠다는 인간의 존엄한 태도다.” 떠날 수 있지만 떠나지 않는 것, 그 안에는 사랑이 있고, 신념이 있고, 사명이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쉽게 관계를 끊고, 장소를 바꾸고, 마음을 닫습니다. 하지만 부활의 신앙은, 끝까지 머무는 신앙입니다. 기적을 일으키는 힘도, 바로 그 머무름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실패한 제자였지만, 떠나지 않았습니다. 죄를 지었지만,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기름 부음을 받아, 다른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스 철학자들은 탁월함이란 외부 환경이 아니라, 자기 자리를 지키는 사람 안에서 태어난다라고 말했습니다. 성유 축성 미사에서 그 진리를 다시 느낄 수 있습니다. 성유는 단순한 기름이 아니라,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에게 부어지는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교회에서 조용히 봉사하는 분들, 병자를 위해 기도하는 분들, 이민자의 삶 속에서도 신앙을 잃지 않는 교우들이 있습니다. 이 모든 이들이 기름 부음을 받은 주님의 제자들입니다.

 

몸은 교계제도에 있지만 마음은 세상의 것들을 따르려 한다면 이미 주님을 떠나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두운 곳에서 양분을 찾는 뿌리의 삶을 외면하고,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한 꽃의 삶을 추구한다면 역시 주님을 떠나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는 어디에 머물겠느냐?” 신앙은 선택의 문제입니다. 눈앞에 기적이 없어도, 당장 열매가 보이지 않아도 우리는 부활의 주님께 머무는 사람들, 떠나지 않는 증인들입니다. 성유의 향기처럼, 우리의 삶에도 주님의 사랑이 오래도록 스며들기를, 그리고 베드로처럼 살리는 말, 일으키는 손, 머무는 마음으로 세상을 복음화하는 부활의 증인이 되면 좋겠습니다. 험난함이 내 삶의 거름이 되어, 알찬 열매를 맺을 수 있다면, 지금 당장 꽃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에게,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하고 물으셨다.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58 3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