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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집
오늘이 마지막이다

92 정탁 [daegun011] 2002-02-06

 

                     오늘이 마지막이다.

 

집과 직장의 책상 앞에 "오늘이 마지막이다" 라고 써 놓았다.

이것이 내 삶과 영혼을 얼마나 새롭게 하는지 알 수 없으나, 이것을 볼 때마다 긴장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때의 긴장이 나를 조금이나마 바로잡아 주는 구실을 한다면, 이런 글귀를 써 두는 일이 전혀 부질없는 짓은 아닐 것이다.

 

오늘이 마지막이라!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할까.

이 땅에서의 삶이 몇 시간 안에 끝난다면 나는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에 자신을 바쳐야 하는가.

 

내가 지금까지 삶을 설명하려는 일, 즉 삶을 깊이 맛보려 하지 않고 말로써 삶의 겉모양을 꾸미는 일에만 빠져 있었다면, 그것은 정말로 잘못된 모습이었음에 틀림없다.

 

감동 없는 설명으로, 마치 내가 삶을 가로지르고 있는 것처럼 모양을 내는 일은 자신과 이웃, 그리고 하느님을 속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삶을 깊이 맛보는 일에서만 후회 없고 깨끗한 생애, 기쁨에 넘치는 행복한 생애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정의와 침묵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사랑을 간절히 그리워하며 거기에 나머지 몇 시간의 삶을 바친다면, 잠시나마 정직한 인간으로서 순수한 만족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내일은 결코 보장된 나의 삶이 될 수 없다.

오늘만이 내 삶의 확실한 터전이다.

 

내일은 자고 일어나 보아야만 알 수 있는 불확실한 세계다.

이제는 사랑이 무엇일까 묻는 일은 그만두어야 한다.

 

다만 나와 이웃, 그리고 하느님을 몸으로 사랑하는 일을 구체적으로 해야 한다. 잘못된 나를 진정으로 용서하고, 나를 미워하는 이웃을 혼쾌히 축복해 주며, 새로운 생명의 세계를 펼쳐 주시는 하느님께 뜨겁게 감사드려야 한다.

 

 지극히 평온하고도 활기 넘치는 하루가 되도록 "오늘이 마지막이다" 를 자주 되뇌면서 내 전부를 바칠 수 있기를 기도한다.

 

                              김영수/안동대 국문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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