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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돌들

103 정탁 [daegun011] 2002-02-23

              

           살아 있는 돌들

 

 

평신도의 영성은 사제의 영성을 추하게 또는 아름답게 복사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그 자체로서 진실되고 순수하며 하느님과 다른 사람들 앞에서 참된 것이어야 합니다.

 

사제의 활동이 다르고 정치인의 활동이 다르며 노동자나 가장의 활동이 다릅니다.

 

만일 영성이라는 것이 우리가 이해하는 대로 삶의 행동들을 생각하고 살고 고양시키고 성화시키는 방법이라면 사제의 행동들을 생각하고 살고 고양시키고 성화시키는 일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평신도는 사제의 삶을 흉내내기보다는 자신의 입장을 살려 자신의 노동과 결혼생활, 다양하고도 복잡하면서도 중요한 사회적 관계들을 성화시켜야 합니다.

 

성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도 신령한 집을 짓는 데 쓰일 산 돌(그리스도 위에)이 되십시오.

그리고 거룩한 사제가 되어 하느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만한 신령한 제사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드리십시오."(1베드 2,5)

 

여기서는 세례를 받은 사람에게는 참되고 진실된 사제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사제직은 성품성사에 의해 부여되는 사제직과 다릅니다.

하지만 평신도로 하여금 피조물을 직접 대하는 가운데 그들의 의미를 해석하고 생기를 불어넣으며 속박에서 해방된 모습을 드러나게 하는 현실적인 사제직입니다.

 

내 생각으로는 성 베드로가 그의 편지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왕다운 사제직의 개념이 근래에는 너무나도 발전하지 못했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 결과 우리가 평신도 사도직에 관한 주제와 더 나아가 교회 안에서 평신도의 위치에 대한 주제를 다루면서 근본적으로 삭막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평신도가 이런 사실들에 귀기울이지 않고 그저  ’착한’ 평신도가 되기만을 원하는 때에는 그가 대하고 있는 그리고 그보다 ’영적으로 앞서 있다’고 생각되는 본당 신부를 흉내 내는 것으로 그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 착한 본당 신자들을 선도하는 반 평신도 반 사제는 되겠지만, 분명, 그의 도움을 더 필요로 하는 사람들, 곧 ’냉담자’들의 선도자는 되지 못할 것입니다.

 

                                                                         C.Carret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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