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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24년 11월 23일 (토)연중 제33주간 토요일하느님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미사
미사에 대한 해설3-4

9 신림동청년협의회 [youngjesus] 2001-01-21

제 4편. 말씀의 전례

 

1. 말씀의 전례에 관하여

말씀의 전례

말씀의 전례란 무엇인가. 가장 쉽게 말한다면 "잘 듣고, 잘 읽고, 잘 응답하는 예절이다". 신앙은 들음에서 온다(로마 10,17). "들어라"하고 예언자 아모스와 예

레미야가 외쳤고, 예수님도 친히 말씀하셨다(마르 4,3). 마리아는 하느님의 말씀을 마음 속에 간직하였다(루가 2,19). 예수님은 "하느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지키는 사람은 행복하다(루가 1,28)"고 하셨다.

말씀의 전례중의 우리의 모습

독서는 단순히 성서를 읽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의 말씀의 전달이며, 강론은 현실생활에 적응하도록 호소하는 하느님 말씀의 설명이다. 그래서 이 말씀 속에 하

느님께서 현존하시며,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들려주심으로써 신자들 가운데 현존하신다. 우리 가운데 현존하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에 하느

님의 말씀과 상관없이 다른 행동을 하는 신자들이 많은 것은 무엇인가. 또 무엇 때문인가. 예수님의 기적이란 귀먹은 백성이 하느님의 말씀을 깨닫고 복종하게

되는 것을 뜻한다(마태 17,5). 바오로 사도는 분명하게 가르쳐 준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더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의 마음을 꿰뚫어 영혼과 정신을 갈라놓고 관절과 골수를 쪼개어 그 마음속에 품은 생각과 속마음을 드러냅니다(히브 4,12)". 하느님 앞에 우리의 어떤 생각과

마음가짐을 드러내고 싶은지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말씀의 전례의 유래

말씀의 전례는 유다인들이 안식일날 시나고가(회당)에서 율법과 예언서를 듣는 데서 유래하였다. 안식일 집회에서는 기도와 성서낭독을 하였는데 율법서(창

세기∼마카베오 후서까지의 역사서를 말하는데 특히 모세 오경은 언제나 낭독하였다)와 예언서(시편∼지혜서, 이사야∼말라기 예언서 : 예언서 구절의 선택·

낭독 여부는 낭독자의 소관이었다)를 읽었으며 이스라엘 남자들은 누구나 낭독하고 해설·훈계할 권리가 있었다(그 권리 행사방법은 일어섬으로써 표시했다 :

루가 4,17).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전례헌장을 통하여 전례력을 3년으로 나누고(서기력을 3으로 나누어, 1이 남으면 가해, 2가 남으면 나해, 0이 남으면 다해가 된다), `

가’해에는 마태오, `나’해에는 마르코(마르코는 짧기 때문에 연중 제 17주일∼21주일 사이에는 `루가’복음을 읽는다), 다해에는 루가 복음을 읽는다, 요한 복음

은 필요할 때에 전례력에 관계없이 읽는다. 1독서는 구약성서이지만 복음성서와 서로 주제의 조화를 갖도록 하고, 2독서(서간)와 복음은 준연속(지난 주일의

말씀 그 다음 부분을 읽는다)으로 읽는다. 독서의 공식적인 장소는 강단이다(시작예식의 표 참조).

말씀의 전례의 구조는 "제 1독서에서 하느님 말씀을 듣고 신자들은 화답송으로 찬미드린다. 제 2독서 다음에는 알렐루야 즉 복음 환호송으로 찬양하며 복음과

강론이 끝난 다음에는 신앙고백과 보편 지향 기도로 응답한다". 이렇게 말씀의 전례는 하느님을 흠숭하는 동시에 인간의 성화(聖化)를 위하여 하느님과 인간의

대화 형식으로 되어 있다. 【편집자주 : 전례봉사를 오랬동안 해 본 경험에 의하면 천주교 신자들의 세 가지 악습인 첫째, 알려고 노력하지 않는 자세, 들째 창

피해서 하지 않으려는 자세, 셋째, 끼리끼리 노는 자세 중에서 `안 해봤어요, 할 줄 몰라요, 하기 싫어요’라는 말로 대변되는 첫째와 둘째 악습이 전례봉사자들

을 많이 괴롭히는데, 다음 성서 구절이 여러분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나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을 힘입어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필립 4,13)"】

 

하느님 말씀 : 제 1독서 제 2독서 복음과 강론

↓ ↗ ↓ ↗ ↓

인간의 응답 : 화답송 복음 환호송 신앙고백·보편지향기도

 

2. 1독서와 회답송

1독서와 화답송

제 1독서(오늘 미사의 독서)

(봉독이 끝나면 독서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독서로써 말씀의 전례가 시작된다(원래 말씀의 전례는 원칙적으로 사제와 부제의 고유권한이었는데,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는 적극적인 미사 참여를 권장

하는 뜻에서 신자들에게 위임된 권한이다. 그러므로 독서자들이 강단(독서대)에 가기 전에 감실에 계신 예수님께 절하는 것이 아니라 독서직을 위임해 준 사제

에게 절(목례) 하는 것이다).

1독서의 하느님 말씀(1독서와 복음은 그날 미사의 주제를 잘 나타내 준다)을 듣고 신자들은 화답송으로 찬미드린다. 유다인들의 회당에서는 독서나 강론 후에

노래가 있었고 교회 초기에도 시편이나 창작 노래를 불렀다. 이것을 응송, 층계송, 응답이라 표현하는데, 현재는 `화답송’이라고 칭한다. 화답송은 말씀 전례를

보완하는 것이다. 신자들이 방금 들은 하느님 말씀을 묵상하며 그에 순종하도록 하는 데 뜻이 있다. 이것은 대부분 시편으로 되어 있는데, 이 시편에는 인간의

희노애락, 행복과 불행, 역경과 근심, 신뢰와 의혹이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화답송은 오랜 세월과 교회 전통 속에 남아 있는 삶의 표현이고, 하느님께 드리는

인간의 찬미요 원의이다.

3. 복음환호송과 복음·강론

복음환호송

2독서까지 읽고 나면 앞으로 오실 야훼를 찬양하는 뜻의 환호의 노래를 하는데, 이것이 바로 `알렐루야’이다. "큰 군중이 우렁차게 외치는 듯한 음성이 하늘에

서 들려왔습니다. 알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권세가 우리 하느님의 것이다…. 높고 낮은 모든 사람들, 우리 하느님을 찬양하여라(묵시 19,1∼5)". 알렐루야는 묵

시록의 말씀처럼 "야훼 하느님을 찬양하라!"는 뜻이다. 즉, 히브리어로 알렐루(allelu)는 `찬양하라’이고 야(jah)는 야훼(Jahwe)의 약칭이다. 이 노래는 유다인들

이 회당에서 말씀 전례 중에 행한 시편(106 : 111∼117 : 135 : 146∼150) 낭독에 대한 환호의 답변이었다. 그리고 사도시대에는 하느님의 어린양이 승리자로

오심을 기뻐하고 외치는 노래가 되었다. 화답송은 독서의 낭독으로 들은 하느님 말씀에 대한 응답이지만, 복음 환호송은 앞으로 올 것에 대한 대비요 준비이

다. 사순시기와 대림시기만 빼고 언제나 노래한다. 말씀 전례의 중심 부분은 바로 복음이다. 복음은 바로 예수님 자신이시다. 이 복음 말씀에 예수님께서 현존

하신다. 그래서 앉아서 듣던 신자들이 다가오는 복음, 즉 예수님을 맞으려고 일어선다. 오실 주님 앞에 흠숭의 표시로 환호한다. 복음 환호송은 말씀을 잘 듣기

위한 표현이요 준비이며 인사요 신앙고백이다.

복음낭독

복음

(부제나 사제는 독서대로 가서 말한다)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또한 사제(부제)와 함께.

†( )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이때 사제(부제)는 복음서와 이마, 입술, 가슴에 십자가를 긋는다)

⊙주님, 영광받으소서.

(봉독이 끝나면 부제나 사제는 말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이어서 독서자는 복음서에 절하면서 속으로 말한다)

†이 복음의 말씀으로 저희 죄를 씻어주소서.

복음은 부제나 사제가 봉독하고 강복을 주며, 준비 기도와 십자표시, 봉독 후의 입맞춤(우리나라는 목례) 그리고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로써 복음 선포가 끝

났음을 표현한다. 복음 봉독 전 이마에 작은 십자표를 한 것은 9세기부터이다. 그 후 점차 가슴과 입술, 그리고 복음서에도 십자표시를 하게 되었다. 이마는 머

리의 중심으로 복음 말씀을 잘 깨닫고, 입으로는 깨달은 바를 전파 또는 고백하며, 가슴 속 깊이 간직하여 생활 속에 실현하려는 의지의 표시이다. 교부(敎父)

들은 그리스도께서 말씀 전례 중에 특히 복음 말씀 안에 현존하시고 구원 활동을 계속하신다고 보았기 때문에 성체 안에 계심과 마찬가지로 여겼다. 초대 교회

성서학자인 오리게네스는 "하느님 말씀의 살을 먹는 신자들은 날마다 어린양의 살을 먹는다"고 하였다. 그래서 교회는 주일마다 아니 날마다 성당에서 식탁을

차려놓고 말씀을 전하며, 가르치고, 하느님의 양식으로 받아들이도록 도와주고 있다. 말씀의 빵을 받을 적에 `말씀의 영성체’를 행한 것이 된다. 2차 바티칸 공

의회 이후에 과거에 소홀하였던 말씀의 식탁을 풍부하게 채웠다. 전례헌장(51항)은 이렇게 권고하고 있다. "하느님 말씀의 풍성한 식탁을 마련하도록 신자들에

게 성경의 보고(寶庫)를 널리 개방하여, 성경의 중요한 부분을 일정한 연수(年數)내에 회중 들에게 낭독해 주어야 한다". 복음은 바로 예수님이시다(마르 1,1).

복음에 대한 응답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고 그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 복음을 통한 믿음은 또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어준다(로마 1,17). 올바른 관계를

맺어주시는 하느님과의 대화 시간에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강론

강론

주일과 의무축일에는 강론을 한다. 그 밖의 날에도 강론하는 것이 좋다. 강론은 그날 전례와 독서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성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삶과 죽음을 다루고 있다. 그러므로 어느 주일 독서나 복음을 읽어보아도 인간의 생과 사, 행과 불행을 다루지 않는 것이 없다. 또한

하느님은 인간을 죽음에 붙이기(죽이기) 위해 창조한 것이 아니고, 인간을 살리기 위해 창조하셨다. 아담의 창조와 낙원은 `영원한 생명’의 보증이었다(창세

3,22). 그러나 아담의 불순명은 세상에 죽음을 가져왔다. 카인이 아벨을 죽였다. 이스라엘은 에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였고 바빌론에 유배당했다. 인류는 마

치 길 잃은 양떼와 같았다(루가 15,4∼7). 반면 예수님은 이 양들을 구하기 위하여, 멸망할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다.

예수님 편에서 본다면 필생의 목표가 구원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을 구세주라고 한다. 그리고 사도들이 복음을 선포하는 것은 이방인이든 유다인이든 모

든 사람을 구원한다는 한 가지 목적 때문이었다. `강론(Homilia)’은 바로 이 구원의 선포이며 `구원의 말씀(사도 13,26)’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님이시며 구

세주라는 것을 공적으로 선포하는 것이다. `나도 살고 남도 살리자’는 뜻이고 더 나아가 예수님처럼 `나는 죽더라도 남을 살리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즉 남에

게 그리스도를 소개하여 친교를 맺어주는 것이다. 강론은 사람의 입으로 전달되는 하느님의 말씀이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설명하였다. "우리가 늘 하느님께

감사하는 것은 우리가 여러분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했을 때에 여러분이 그것을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실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1데살 2,13)". 강론을 잘 들었다면 그것은 사제의 말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들은 것이다. 그러므로 "하느님, 강론 참 잘하십니다"하고 인사하는

것이 더 옳다. 강론은 사제나 부제만 할 수 있고 내용은 성서 본문에 대한 해설이 중심이다. 옛 교회법은 평신도의 강론을 금지하였으나, 1983년의 새 교회법은

평신도가 설교(Praedicatio)의 허락을 받을 수 있도록 하였다. 이것은 공소 예절이나 미사 전후에 할 수 있고, 일정한 주제를 가지고 신자들 앞에서 연설하거나

체험담을 얘기하는 것이다. 즉 강론은 바로 성직자 고유의 직무이며, 전례헌장(52항)은 "강론은 전례 자체의 한 부분으로 적극 권장"하고 있다. 주일이나 축일,

신자가 많은 미사에서 강론은 중대한 이유 없이 생략될 수 없다(미사 전례서 총지침 41∼42항).

4. 신앙고백과 보편지향기도

신앙고백

신앙고백

(규정된 날에는 신앙고백을 한다)

†한 분이신 하느님을

⊙저는 믿나이다.

전능하신 아버지, 하늘과 땅에 유형무형한 만물의 창조주를 믿나이다. 또한 한 분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의 외아들 영원으로부터 성부에게서 나신 분을

믿나이다. 하 느님에게서 나신 하느님, 빛에서 나신 빛, 참 하느님에게서 나신 참 하느님으로서, 창 조되지 않고 나시어 성부와 한 본체로서 만물을 창조하셨음

을 믿나이다. 성자께서 저 희 인간을 위하여, 저희 구원을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오셨음을 믿나이다.

(밑줄 부분에서 모두 고개를 깊이 숙인다)

또한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에게서 육신을 취하시어 사람이 되셨음을 믿나이 다.

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 저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수난하고 묻히셨으며, 성서 말씀대로 사흗날에 부활하시어 하늘에 올라 성부 오른편에 앉아계심을

믿나이다. 그 분께서는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영광 속에 다시 오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으리이다. 또한 주님이시며 생명을 주시는 성령을 믿나이

다.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 자에게서 발하시고,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영광과 흠숭을 받으시며 예언자들을 통하 여 말씀하셨나이다.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

며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를 믿나이 다. 죄를 씻는 유일한 세례를 믿으며 죽은 이들의 부활과 내세의 삶을 기다리나이다. 아멘.

(때에 따라서는 사도신경을 외울 수도 있다)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 그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님

(밑줄 부분에서 모두 고개를 깊이 숙인다)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 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저승에 가시어 사흗

날에 죽은 이 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하늘에 올라 전능하신 천주 성부 오른편에 앉으시며, 그리로 부터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믿나이다. 성령

을 믿으며 거룩하고 보편 된 교회와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 죄의 용서와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영원한 삶 을 믿나이다. 아멘.

성서봉독과 강론이 끝나면 신자들은 들은 것에 대한 답변으로 신경을 함께 외운다. 이것은 독서와 강론에 대한 응답일 뿐 아니라 말씀 전례 전체에 대한 응답

으로써 큰 `아멘’이다. 미사 전례서 총지침(43∼44항)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는데, "신경은 미사 중의 성경 독서와 강론으로 들은 하느님의 말씀에 응답하

는 것이며, 성찬 전례 시작 전에 신앙 개조를 상기하는 행위이다. 신경은 미사 집전자와 교우들이 주일과 대축일에 외워야 한다. 노래로 할 경우에는 모든 이가

함께 하든지, 교대로 한다".

신경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신경’과 `사도신경’이 있다. 3세기경 예수님은 신이 아니라 덕을 갖춘 반신(反神)이라고 주장한 사람이 있었

는데, 에집트 알렉산드리아 출신 사제인 아리우스(Arius 250?∼336년)였다. 또 이처럼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부정하는 사상을 아리우스주의(Arianism)라 했

다. 이 사상을 따르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교회는 니케아 공의회(325년)를 소집하였다. 당시 동방교회는 백여 년 전부터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세례를 베풀 때

신앙고백을 하였고, 서방교회는 사도신경을 사용하였다. 이 신앙고백문을 모체로 하여 아리우스주의를 배척하는 신경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니케아 신경이라

고 한다. 이어서 1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381년)가 열렸는데 그 결정은 니케아 공의회를 발전시킨 것으로써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신경’ 또는 `니케아 신

경’이라고도 한다. 이 신경은 5세기에 시리아에서 성찬 전례 때 사용되기 시작하여 동방교회에서 쓰이다가 11세기에 로마교회에 보급되었고, 1970년 교황 바

오로 6세는 신경을 주일과 대축일에 외우게 하였다.

미사 중에 신경을 외우는 이유는 첫째는 세례의 갱신이다. 세례의 바탕은 믿음이다. 믿음을 재확인할 적에 성령이 임하시고 세례받은 신자이며 하느님의 자녀

임을 깨우친다. 이렇게 믿음에서 세례의 효과가 나오고 영성체로써 그리스도와 일치할 수 있다. 둘째는 신앙의 선포이다. 신자 공동체가 함께 신경을 외울 적

에 그것은 우리 모두의 공적인 견해요 신앙인의 건전한 상식이며 생활의 척도임을 밝힌다. 셋째는 구원의 주님을 찬미하는 것이다. 신경은 시(詩)의 한 토막처

럼 구와 절로 다듬어져 있다. 그래서 시편을 노래하듯 하느님을 찬미한다. 세례로 말씀의 진리를 깨우치고 하느님 나라와 영생과 영복을 거져 주신 주님을 거

듭 찬양하는 것이다.【사도신경에는 우리가 믿는 12가지 신앙이 담겨 있습니다. 어떤 것들이 있는지 한 번 찾아보십시오】신경에는 중간에 줄그어져 있는 부

분이 있는데, 특별히 예수 성탄과 주님의 탄생 예고 대축일(3월 25일)에는 몸을 굽혀 깊은 절을 한다. 이는 주님께 대한 흠숭과 감동의 표현이다.

보편지향기도

보편지향기도

보편지향기도는 ⑴ 교회, ⑵ 위정자와 세계 구원, ⑶ 도움이 필요한 이들, ⑷ 지역 공동체를 위하도록 한다. 지향에 대한 응답은 아래와 같은 환호나 적절한 구

절 또는 침묵으로 할 수 있다.

㉮주님,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주님, 사랑을 베풀어주소서.

㉰주님, 이 백성을 기억하소서.

(위령미사의 경우)

㉱생명이요 부활이신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신경을 합송하고 난 후에 무엇을 하나요’라고 질문한다면 거의 대다수의 신자들이 "신자들의 기도"요 라고 대답하는데, 이것은 초대교회 때는 맞는 말이었지

만 현재의 전례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초대교회는 말씀의 전례가 끝난 후 예비신자들을 돌려보내고 세례받은 신자들만 남아 기도하였기 때문에 신자들

의 기도라고 하였다. 그러나 현재는 신자들이 기도에 직접 관여한다는 뜻이며, 신자들이 공동으로 바치며, 개인의 이해 관계를 떠나 전 인류와 교회를 위한 책

임감을 부각시킨다는 의미에서 `보편지향기도(공동기도)’라고 부른다.

우리 공동기도의 대상은 누구인가. 미사 전례서 총지침(45항)에 보면 기도의 순서가 나와 있다. ① 교회에 필요한 일-그리스도의 몸인 공동체, 모든 성직자와

수도자, 평신도, 성소를 포함한다. ② 위정자와 세계구원-모든 민족, 국가, 종교와 위정자, 미신자, 배반자의 회개, 위기와 평화를 위한 것, ③ 온갖 고통에 신음

하는 이들-계층별로 가난한 이, 소외된 이, 노인, 병자, 실업자, 감옥의 수인, 인권 등을 위한 기도. ④ 지역 공동체의 소망-지역 공동체 즉 교구, 본당, 각종 단

체, 가정, 냉담자, 연령을 위한 내용. 기타로써는 견진, 혼인, 장례 때에는 특수한 목적의 기도지향을 포함할 수 있다. 이렇게 보편지향기도로 말씀의 전례가 끝

나고 이어서 성찬의 전례로 넘어가며 기도 지향을 봉헌으로 연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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