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왕기상]16장 1절 - 3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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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6 김정화 [rhffhaqk] 2003-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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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아사왕을 심판하시는 야훼의 말씀이 하나니의 아들 예후에게 내렸다. 2) "나는 잿더미에서 딩굴던 너를 뽑아 높이 세우고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영도자로 삼았다. 그런데 너는 여로보암과 같은 길을 걸어 같은 죄를 짓고 내 백성을 죄의 길로 이끌어 나의 분노를 사는구나. 3) 보아라, 내가 바아사와 그의 가문을 모조리 쓸어 버리리니, 네 가문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가문과 같은 운명에 떨어지리라. 4) 바아사 가문의 사람이 성 안에서 죽으면 그 시체를 개가 뜯어 먹겠고 들에서 죽으면 새가 쪼아 먹으리라."
바아사의 나머지 행적, 치적 및 공적은 이스라엘 왕조실록에 모두 기록되어 있다. 6) 바아사는 열조와 함께 잠들어 디르사에 묻혔다. 그의 아들 엘라가 왕위를 이었다. 7) 야훼께서 하나니의 아들 예언자 예후를 시켜 바아사와 그의 가문에 심판을 내리신 것은 그가 여로보암의 가문처럼 되려고 야훼께서 보시기에 온갖 악한 일을 저질러 야훼의 분노를 돋구었기 때문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여로보암 가문을 몰살시켰기 때문이었다.
엘라의 이스라엘 통치
유다 왕 아사 제이십 육 년에 바아사의 아들 엘라가 디르사에서 이스라엘의 왕위에 올라 이 년간 다스렸다. 9) 왕의 신하 가운데 병거대의 절반을 지휘하는 지므리라는 장군이 있었는데 그가 왕에게 반기를 들었다. 마침 왕이 디르사에 있는 궁내대신 아르사의 집에서 술에 취하여 있을 때, 10) 지므리가 들어 와 왕을 죽이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때는 유다 왕 아사 제이십 칠 년이었다. 11) 스스로 왕위에 오르자마자 그는 바아사 가문을 몰살시켰다. 바아사의 일가친척이나 친구 가운데 남자는 단 하나도 살아 남지 못하였다. 12) 이렇게 지므리는 바아사의 집안을 몰살 시켰는데, 이는 야훼께서 예언자 예후를 시켜 바아사를 두고 하신 말씀 그대로였다. 13) 이 일은 바아사와 그의 아들 엘라가 함께 죄를 짓고 나아가서 이스라엘을 죄의 길로 인도하였을 뿐 아니라 우상을 만들어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훼의 분노를 샀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14) 엘리의 나머지 행적과 치적은 이스라엘 왕조실록에 모두 기록되어 있다.
지므리의 이스라엘 통치
유다 왕 아사 제이십 칠 년에 지므리는 디르사에서 이스라엘의 왕위에 올랐는데 그의 통치는 칠 일만에 끝났다. 그 무렵 이스라엘 군대는 불레셋 도읍인 깁돈을 치려고 포진중이었다. 16) 전장에서 싸우던 이스라엘군은 지므리가 반란을 일으켜 왕을 죽였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그 날로 이스라엘군 총사령관인 오므리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받들어 세웠다. 17) 오므리는 전 병역을 이끌고 깁돈을 떠나 디르사를 포위하였다. 18) 지므리는 수도가 함락되게 된 것을 보고 궁전에 들어 가서 불을 지르고 그 자신도 불에 타 죽었다. 19) 그가 이러한 최후를 마친 것은 그가 야훼의 눈에 거슬리는 일을 하고 여로보암이 걸었던 길을 따라 같은 죄를 지었을 뿐 아니라 나아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죄에 빠뜨렸기 때문이었다. 20) 지므리의 나머지 행적과 음모를 꾸민 일은 이스라엘 왕조실록에 모두 기록되어 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 파로 분열되었다. 하나는 기낫의 아들 티브니을 왕으로 받들어 그를 따랐고 다른 하나는 오므리를 따랐다. 22) 그러나 오므리 일파가 기낫의 아들 티브니 일파보다 우세하였다. 그리하여 티브니는 살해되고 오므리가 왕이 되었다.
오므리의 이스라엘 통치
유다 왕 아사 제삼십 일 년에 오므리가 이스라엘의 왕위에 올라 심이 년간 다스렸는데 육 년은 디르사에서 다스렸다. 24) 그는 사마리아산을 세멜에게서 은 두 달란트로 샀다. 왕은 그 곳에 요새를 건설하고 본래 소유자인 세멜의 이름을 따서 성의 이름을 사마리아라고 불렀다. 25) 오므리는 어떤 선왕들보다 훨씬 더 야훼의 눈에 거슬리는 일을 하였다. 26) 그는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걸었던 길을 그대로 밟아 같은 죄를 지었고,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까지 죄에 빠뜨려 우상을 섬기게 하였으므로 야훼를 크게 노하시게 하였다. 27) 오므리왕의 나머지 행적과 치적은 이스라엘 왕조실록에 모두 기록되어 있다. 28) 오므리는 열조와 함께 잠들어 사마리아에 묻혔다. 그의 아들 아합이 왕위를 계승하였다.
아합의 통치가 시작되다
유다왕 아사 제삼십 팔 년에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이스라엘의 왕위에 올라 사마리아에서 이십 이 년간 다스렸다. 30) 그런데 오므리의 아들 아합은 이스라엘의 어느 선왕들보다도 더 야훼의 눈에 거슬리는 일을 하였다. 31) 그는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걸었던 죄의 길을 따라 가는 정도가 아니었다. 그는 시돈 왕 에드바알의 딸 이세벨과 결혼하였을 뿐만 아니라 바알에게 가서 그를 숭배하기까지 하였다. 32) 그는 사마리아에 바알 산당을 짓고 그 안에 바알 제단을 세웠다. 33) 또 아합은 아세라 목상도 만들었다. 그는 선대의 어느 이스라엘 왕들보다도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훼의 속을 더욱 썩여 드렸다. 34) 아합이 다스리는 동안 베델 사람 히엘이 예리고성을 재건하였다. 히엘은 성의 기초을 놓다가 큰아들 아비람을 잃었고 성문을 닫다가 막내아들 세굽을 잃었다. 눈의 아들 여호수아를 시켜 하신 야훼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