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편지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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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이재경 [clausura] 2003-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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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편지부터는 잘써야지 하고 생각을 했는데 여름 편지를 달랑 하나만 쓰게 되었다. 가을 아침 저녁으로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니까 가을 첫 편지를 쓰게 된다. 가을편지도 주욱 이어서 쓰면 좋겠구만....(나이 먹을수록 늘어나는 것이 게으름이고 요령이라....)
성전 입주가 코앞에 다가오니까 마음이 더 바빠졌다. 요즘은 밤 열두시에 잠을 자면 새벽 세시반에는 어김없이 일어난다(노화의 시작인듯....). 그때 자리에서 일어나지 말고 침대에 껌처럼 붙어서 이불과 씨름을 하면 새벽까지 푹 자는데 꼭 일어나서 거실로 나온다. 그리고 불을 켜고 거실 바닥에 펼쳐있는 설계도와 여러가지 카탈로그를 슬쩍 본다. 그러다가 자를 가져오고 실제로 계산을 해보고 재보고 ... 인터넷에 들어가서 자료를 검색하고 비교하고 하다보면 아침이다. 부리나케 새 성전 현장에 가서 밤새 고민했던(?) 것을 확인하고 실측해보면 대개 안도의 숨이 나온다. 그리고 잠이 쏟아진다....
무슨 몽유병 환자도 아닌데....불면증이 있는것도 아닌데 요즘 밤마다 이 모양이다. 말그대로 '밤이 무서버~~'
성전 공사가 끝이 나고 입주를 하고 첫미사를 봉헌하고 나면
1. 밤에 일어나는 몽유병이 사라지면 좋겠다.
2. 맛있는 것 먹으면 이거 팔아서 건립 기금 마련해볼까 하는 생각이 없어지면 좋겠다.
3. 이마트에 가면 바닥에는 어떤 자재를 썼는지, 조명은 어디것을 했는지, 페인트 색은 어떤 것을 했는지 생각하지 말고 내가 살 물건만 달랑 사가지고 나왔으면 좋겠다.
4. 운전하면서 신호나 차선보다도 옆에 서있는 건물 외벽과 유리를 보는 습관이 없어지면 좋겠다.
5. 기도중에, 묵상중에 설계도가 안떠올랐으면 좋겠다.
6. 비오는 날은 인부들이 출근을 했는지, 포크레인이며 장비들이 일을 할 수 있는지, 성전에 비가 새는 곳은 없는지 하는 걱정없이 쐬주 한잔 마실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어느새 눈이 덮힌 머리카락이 새까맣게 바뀌면 좋겠다.
신부가 성전을 하나 지으면 중학생 영성으로 떨어진다는데
이제 내 나이 스물 아홉에 맞는 영성으로 올라 갔으면 좋겠다.
이거 잘 되겠습니까 하느님
' 하느님이요~~ 내 아~를 낳아 도 ! '
외치는 이의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