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디서 와서 어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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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이지연 [annasee] 2001-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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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길이냐?"(창세 16,8)
어제 밤 바람이 좋아서 TV앞에 붙어서 축구중계에 넋이 빠져있는 요아킴을 부추켜(아이스크림 사주겠다고) 산청동 삼성아파트 밑쪽으로 산책을 갔다. 가든 호텔 쪽보다는 덜 복잡하리라는 단순한 계산으로..
우리의 계산은 적중해서 내려가는 언덕길은 한적했고 게다가 내려다 보이는 한강쪽의 풍경이 우리를 즐겁게했다. 바람이 불고 있었고 우리는 상가에서 내놓은 의자에 앉아 빵집에서 덤으로 준 원두커피를 마시며 (그쪽 빠리바빵집은 그러더군요)
오랬만의 수다를 떨었다.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지금 어디에 와 있는지.
한 번쯤 돌이켜 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마음 속에 다시금 떠올랐다. 요아킴에게 "우리 이런 시간을 자주 갖자"는 말로 그 생각을 대신 표현하고...
어찌 보면 우리가 성서를 읽는 시간도 그런 시간의 연장선 이리라. 자신을 한 번 돌아보고, 또 그래야 주위의 사람들도 돌아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익히 알고있다!
오늘 아침 신문을 보니 어떤 화가가
" 몇날 며칠을 겨드랑이가 가렵다가, 날개가 돋아도 시원찮을 판에 이마의 양 옆부분에 흰머리가 돋았다."
며 자기는 염색 같은 것은 않하겠다고 맹세하고있다. 기자는 그런 그녀를 만만치 않은 내공이있는 사람이라 평하는 글이 나의 시선을 붙든다.
어떤 시인은 40 불혹의 나이를 인생의 목차가 다 결정 되버린 부록처럼 덤으로 사는 것이라며 불혹과 부록의 절묘한 표현을 쓰기도 했던데,
그런 시에도 고개를 끄덕여 보기도 하고, 또한 갸우뚱 해보기도 하며 염색도 하면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