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신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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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손기숙 [nik] 1999-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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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마태 5.3)
과연 마음의 가난함이란 무슨 뜻 일까요?
물직적인 소유욕을 버리고 찢어 지도록 가난한 삶을 사는 사람들은 쉽게 눈에 들어오지만, 도대체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눈으로 분간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 인간은 재물이 없이는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가난함도 좋겠지만 생계에 위협을 받을만큼 찌든 삶을 살다보면 천박한 존재로 비춰지기 쉽습니다.
주님께서 뜻하시는 가난의 의미는 욕심과 탐욕과 아집의 갑옷을 벗어 버리는데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재물은 소유하되 그것에 집착하지 않고 어려운 이들과 함께 나누며 살때 그야말로 가난을 실천하는 것이겠지요.
저는 사형수라는 멍애가 씌어지던 그날 부터 버리는 연습을 시작하였습니다. 제 마음 가득히 채우고 있는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하는 현실을 절감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버리지 못할 때 제가 얼마나 큰 아픔을 겪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삼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그 각오를 다 실천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옛 생각과 사고로 여전히 내 영혼과 육신을 욕망의 늪으로 인도하려 합니다. 헌것 보다도 새것을 좋아하고 남보다 적게 갖는 것은 수치라 여겨집니다. 또 남에게 못나게 보이고 싶지 않으니 제 안에는 겸손과 이해도 부족한가 봅니다.
무엇보다 제 마음을 아리게 하는 것은 하느님께 대한 제 사랑이지요.
마음은 그분과 한시도 떨어지고 싶지 않지만 현실은 저를 방황하게 합니다.
자기변명과 자의식과 이기심에 가득한 저의 내면 세계를 참된 진복의 의미로 채우기 위해 오늘도 그분 안에서 가난을 실천하려 합니다.
98.11.1 보냅니다.
*윗글은 십오척 담장밖으로 사형수 아저씨가 보내온 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