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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자) 2024년 12월 12일 (목)대림 제2주간 목요일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전진상복지관 자유게시판
전진상복지관을 다녀온 후...

37 전 형 석 [luke1018] 2000-07-08

  기말 고사라는 피로를 다 풀기도 전에 우리는 서울 대교구 신학생 학년 프로그램에 참석해야 했다. 현장체험, 지난 3학년 때에도 했었지만 경험은 많을수록 좋은 것이라고.... 내가 가야 할 곳은 처음으로 들어보는 시흥에 있는 전·진·상 복지관이었다. 이제는 낯설음에 많이 익숙해졌는지 처음 가는 발걸음임에도 긴장감이나 흥분 같은 것은 없었다. 단지 내 마음속에서는 그저 주어진 시간이 나에게 좋은 시간들, 의미있는 체험의 시간이 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조명준(로마로) 신학생과 함께 약도를 보고 찾아간 곳은 일반 가정집 사이에 가정집과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그곳에서 우리를 맞아주신 분은 사회사업가로 계신 유송자 선생님이었다. 유선생님께서는 차근차근 이곳의 전반적인 일들에 대한 이야기들과 시설들을 소개시켜주셨다. 유선생님의 이야기 중에서 처음 듣는 말이 있었다. "A·F·I", Association·Fraternelle·Internationale(국제 가톨릭 형제회)의 약자로 평신도로서 일생을 봉헌하려는 이들의 공동체이라고 하셨다. 여기에서 상주하시고 계신 분들은 모두 A·F·I의 회원이라고 하셨는데, 평신도로써 독신으로 평생을 공동생활하고 계신다는 것이 나의 현위치를 돌아보게 해주는 큰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았고 아름답다라는 느낌을 받았다.

 

  9일 동안 있었던 일들을 모두 나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중에서 그래도 보고 느낀 것 중에 커다랗게 나에게 남은 것을 이야기 하려한다.

 

가정이 갖는 의미

  여기에는 두 분의 의사 선생님이 계신다. 배현정(마리헬렌) 선생님과 정미경(엘리사벳) 선생님. 두분 모두 가정 치료 전문의라고 하였다. 가정 의학은 내과면 내과, 외과면 외과, 또 그 안에서 병에 따른 부분적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인간의 전인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의학이다. 그러기에 한 사람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그 사람만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관계성, 가정 등 모든 것을 복합적으로 바라보아 병의 원인을 찾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 복지관에 지내면서 인간의 관계성, 특히 가정이라는 것에 대한 생각을 많이 갖게 되었었다. 더욱이 상담 자료를 보면서 그 안에 나타난 Family tree(가계도), 가정 방문은 가정의 소중함을 절실히 체험하게 하였다. 결혼과 이혼, 재혼, 낙태, 외도, 근친 강간, 부모와의 불화, 형제 자매와의 불화 등, 이러한 가정의 문제는 또 다른 악을 낳고 또 낳고 낳는, 이해하기 힘든 쳇바퀴 속으로 빠져드는 모습을 보여준다. 가정 방문을 하면서 뻔지르하게 지어놓은 건물들 뒤편에 있는 집은 내가 누우면 다리조차 편히 펴고 누울 수 없는 단칸방으로 어떤 할머니께서 홀로 사시고 계시었다. ’할머니께서 마지막 황혼을 맞이하는 가정은 저곳인가?’ 물질적인 여건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할머니께서 안고 사셔야할 사랑의 모습은 그 곳에서 난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찹찹한 마음뿐이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우리들 안에 정립되지 못한 가정의 마지막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학문과 현실

  지난 학기 우리는 대인 윤리시간에 가정에 대해서 토론을 하였었다. 그리고 낙태, 안락사 등. 우리가 열띤 토론을 했던 주제들이 지금 내 앞에서 현실로 보여지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학문과 지금의 현실과의 괴리감에 아무것도 판단할 수 없었으며 혼돈만이 자리잡고 있었다.

  도망간 남편은 다른 여자와 새로운 살림을 차려 살고 있고, 이 아내는 언젠가 새로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이 사람과 함께 살기를 원하고 있는데 거기에서 이루어지는 조언은 도망간 남편과 빨리 이혼을 하라는 이야기였다. 이유는 도망간 남편이 다시 돌아와 아내가 다른 남자와 살고 있는 것을 보고 소송을 걸지도 모르니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거기에서 내가 배운 그리스도교 윤리는 휴지조각이 된 것만 같은 느낌뿐, 혼란스러움만 남았다.

  간혹 신부님들의 말씀 안에 학교에서 배운 것은 신부로 생활할 때, 그다지 커다란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말이 이 말이었나? 학문과 현실은 원래가 기름과 물처럼 합쳐질 수가 없는 것인가? 아니면 내가 본 현실이 특수한 현실이기에 그런 것인가? 분명 특수한 현실은 아닐 것이 확실한데….

 

그리스도의 사목

  예수님은 그 말씀과 삶에 괴리란 없었다. 그분의 말씀은 삶과 동떨어지지 않았고 그분의 삶은 그 말씀에 합당한 표현이었다. 그리고 그의 원동력은 아버지와의 친교였다. 나는 감히 그리스도의 사목은 이것이었다라고 정의 내려본다. 설교가로서도 아니요, 운동가로서도 아니요, 영성가로서도 아닌 그리스도와의 친교 안에서 힘을 얻어 세상의 삶 안에 뛰어들어 기쁜 소식을 전하고 함께 기뻐하는 것. 말이 너무 추상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삶의 자리가 모두 다르기에 구체적인 삶의 모습은 제각기 다를 것이다.

  이젠 시야를 넓혀야할 때이다. 본당 안에서 찾아오는 손님 접대하는 사목이 아니라 시야를 넓혀 찾아 헤메는 사목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나의 시야를 조금 더 넓혀준 전·진·상 복지관 가족들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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