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께 삶의 기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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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정중규 [mugeoul] 2000-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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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삶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대희년을
이른바 ’제2의 국치’라는 IMF 관리체제로 들어선지 3년이 지나가면서 여기저기에선 경제위기에서 벗어났다는 말이 들린다. 외환보유고가 3년전보다 20배나 늘고, 경상수지는 완연한 흑자기조, 시장 역시 활기를 띠고, 실업률도 곤두박질치고 있으니 이른바 ’IMF 터널’은 분명히 벗어났다고 호들갑이다. 심지어 벌써 장미빛 경제전망들이 난무하는 지경이다.
그러나 그것은 외형적 경제지표로만 그러할 뿐, 현실은 아직 그렇게 낙관할 수만은 없는 처지이다. 기껏 기나긴 터널 저 끝에서 한 줄기 빛이 눈에 들어옴을 이제 가까스로 느끼는 정도라 할 수 있을까.
거기에다 오히려 사회의 분배구조는 악화되고만 있다. IMF 충격을 가장 격심하게 받은 계층이 아무래도 저소득층이었으니 그렇겠지만, 빈익빈부익부 현상은 더욱 심화되어 90년대 들어 그마나 좁혀졌던 빈부격차가 다시 벌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가정붕괴와 가족해체로 인해 생겨난 부모 있는 고아들과 노숙자들은 줄어들지 않고, 재가장애인들의 현실과 복지시설은 겨울도 채 오기도 전에 찬바람에 휘몰리고 있다고 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점이 IMF 경제위기를 우리 사회에다 공동체적 삶의 연대망을 구축하는 구조조정의 기회로 삼지 못하고 끝내 그 좋은 기회를 상실하고만 것이다. 과연 우리 사회는 20대 80의 빈익빈부익부의 사회로 가고 있는 것일까. UNDP의 발표에 따르면 IMF 사태에 따른 중산층의 붕괴로 인해 우리 나라의 빈민층이 무려 1천만 명을 넘고 있다고 한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빈곤 구조가 이미 고착화되고 있음을 나타내 준다.
여기에서 신자유주의체제의 하부구조로 전락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그 추세에 급제동을 거는 교회의 발빠른 대응책이 요구된다. 사회안정망의 구축을 비롯한 사회복지체제의 정립 작업에서 교회는 선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 특히 현 정권이 내세우는 이른바 ’생산적 복지체제’로도 거둘 수 없는 취약계층을 향한 사회의 관심을 교회는 촉구하고 그들에게 삶의 존엄성을 안겨다 줄 수 있는 대안책을 제시해야 한다. 과연 인간은 구원되어야 하겠고, 인간 사회는 쇄신되어야 하겠다(사목헌장 3). 교회는 복음정신에 입각한 경제신학을 정립하고서, 그 원칙 아래 현 상황을 예언자적 자세로 비판해야 한다.
물론 교회 자체가 갈수록 중산층화 되고 신자들 역시 그러하니 그들의 고통이 피부에 실감나게 와닿지 않을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결코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사회에다 공동선 실현을 마냥 외치기 전에 우리 그리스도인 스스로가 그것을 솔선해 실천토록 해야 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선교와 사목 차원에서도 교회 밖의 소외된 이들에 대한 관심을 더욱 기울여야 하고, 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가도록 활짝 두 손을 펼쳐야 한다.
사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교회가 2000년 대희년을 과연 기쁨으로 보낼 수나 있을 것인가. 어디까지나 교회의 참된 기쁨은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되찾고서 솟는 기쁨’이다. 희년의 정신은 그렇게 ’함께 삶의 기쁨’이다. 따라서 가난한 이들도 함께 웃을 수 있는 건강하고 따뜻한 사회공동체를 만드는 데 앞장서는 것이야말로 새 천년에 처음 맞는 이 겨울에 우리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내려진 소명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