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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한국영화 ‘명장면 베스트 5+1’

45 김윤성 [kdae64] 2005-12-23

 

 

말이나 글을 뛰어넘는 장면들이 있다. 활자의 감옥을 탈주, 이미지의 환기력으로 승부하는 영화의 세계. 100여 편의 한국영화가 개봉한 2005년, 올해 최고의 명장면은 어떤 것이었을까.

 

조선일보는 영화평론가 김영진, 심영섭씨와 함께 ‘2005년 한국영화 명장면 5+1’을 선택했다. ‘+1’의 경위는 이렇다. 이틀간의 토론 끝에 ‘베스트 5’ 선정을 마친 21일 윤종찬 감독의 ‘청연’(29일 개봉)이 첫 시사를 가졌고, 숙고 끝에 “한국형 블록버스터에서 보기 드문 드라마와 스펙터클의 성공적 만남”이라는 평가와 함께 박경원의 비행 장면을 추가하기로 결정했다.

 


◆ # 웰컴 투 동막골

옥수수 창고가 터져 ‘팝콘 눈’은 내리고

이 장면을 통해 영화는 리얼리즘과 판타지의 경계를 사뿐히 돌파한다. 현실을 넘어서는 순간 영화는 감당 못할 꿈이 된다. ‘팝콘 눈’에 일단 폭소를 터트린 관객은, 이 장면이 전해주는 경쾌한 초월성 덕분에 굳어있던 의식을 무장해제한다. 단순히 800만 관객으로 올해 1위를 기록했다는 수치적 성과와는 별도로, 이렇게 현실과 판타지를 가로지르는 영화적 태도가 ‘웰컴투 동막골’의 가장 큰 미덕 중 하나다.


◆ # 말아톤

달리는 초원

‘말아톤’은 장애인 영화도 아니고, 스포츠 영화도 아니다. 인간 승리 드라마로 보기에도 둔탁한 부분이 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달린다는 것이 주는 충만함에 대한 묘사는 압도적이다. 초원이는 달릴 때 살아있다는 것을 느낀다. 언어로는 표현 불가능한 환희의 감정이 스크린에 충만하다. 마치 풀잎 하나까지 만져질 듯 연출된 이 장면은, 스크린의 평면을 사뿐 뛰어넘고 입체적으로 관객의 오감을 자극한다.


◆ # 친절한 금자씨

케이크 들고 눈길 걷는 금자씨

소복소복 눈은 내리고, 금자는 직접 만든 케이크를 들고 위태롭게 걷는다. 그녀를 연모하는 청년이 뒤따르며 남일해의 ‘빨간구두 아가씨’를 부른다. 서정적인 듯 불길한 이 장면은 자기 구원의 문제를 제시한 이 영화의 정서를 압축하고 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위태로운 인생, 그 속에 윤리적으로 옳은 선택을 하며 사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박찬욱 감독은 언어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이 복합적인 감정을 화면에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


◆ # 너는 내 운명

석중은 교도소 앞에서 울부짖고

‘너는 내 운명’은 너무나 뻔뻔스럽고 노골적으로 관객의 누선(淚腺)을 자극한다. 이미 충분히 울고 있는 관객에게 “그 정도로는 안 돼”라며 한 번 더 펑펑 눈물을 쏟아낼 것을 강요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관객에게 이 장면은 스스로의 불우(不遇)를 떠올리게 한다. 지독하게 운이 없는 영화 속의 남녀 주인공은 바로 그렇게 불우한 상당수 대중의 마음에 전해 준 선의의 위로가 아니었을까. 이 ‘묵직한 최루탄’은 ‘신파’의 위력을 다시 한 번 웅변했다.


◆ # 형사

남순과 슬픈 눈의 골목 대결

관객에게는 외면당했지만, 올해 영화적 이미지의 한 정점을 보여준 ‘저주받은 명장면’. 스타일리스트 이명세 감독에게 전통적인 드라마는 관심 밖이었고, 심지어 드라마조차도 비주얼과 이미지로 발언하고 싶어했다. 특히 그림자가 뚝뚝 떨어지는 달밤, 돌담 길에서 벌어지는 남순과 슬픈 눈의 대결은 압권. 여자와 남자, 외향과 내향, 정의와 불의 등 모든 내면적·사회적 요소들이 충돌하면서 일거에 절정으로 치닫는다. 물론 관능의 절정마저도 포함해서.


◆ # 청연

새처럼 하늘을 날 수 있을까

대타로 출전한 전 일본 비행대회에서 박경원은 360도 대회전을 두 번이나 이뤄내며 4500미터 상공으로 수직 상승한다. 어두운 시대를 살던 주인공의 희망과 꿈은 그 상승 속에서 폭발적으로 시각화된다. 그것은 “너는 누구 편이냐”를 넘어, 보편적 인간이 가지는 욕망의 분출이기도 하다. 사실 드라마와 스펙터클이 따로 놀던 대부분의 한국형 블록버스터에서, ‘청연’의 이 수직 비행은 대단한 울림과 설득력을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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