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말씀 나누기 -마르코 복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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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황윤환 [yhhwang-7] 2006-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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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복음서(45) 나약한 인간상 보여준 베드로 통해
당당하게 정체성 고백할 것 가르쳐
6. 최고 의회의 신문과 베드로의 부인 (14, 53~72)
예수님께서 대제관 가야파에게 압송되어 신문(訊問)을 받으시는 장면(14, 53. 55~65)이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否認)하는 장면(14, 54. 66~72)과 함께 보도된다.
마르코가 선호하는 샌드위치식 문학 기법으로, 두 이야기를 별개의 것으로 다루지 않고 하나의 전체적인 구도 안에서 서로 대조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초대한다.
대제관의 집 안뜰과 바깥뜰을 사이에 두고, 담대하고 용기 있게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는 예수님의 모습과, 신변의 위협을 느끼는 위기 상황 안에서 자신을 감추는 베드로의 나약한 태도가 선명하게 대조를 이룬다.
대제관 가야파에게 압송되어 신문을 받으심 (53. 55~65절)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이 보낸 무리들이 겟세마니 동산에서 예수를 붙잡아(43~50절) 현직 대제관 가야파의 저택으로 압송해 온다. 헤로데 궁전 남쪽 시온산 부근에 위치한 대제관 저택에 최고 의회 의원들이 모두 모여와 재판을 연 것처럼 마르코는 보도한다.(53. 55절)
유다교 최고 의회(히브리어로는 산헤드린, 그리스어로 시네드리온)는 당연직 의장인 현직 대제관을 포함해서 정원이 71명이었는데, 예수 사건 하나를 심리하려고 과연 그 밤에 최고 의회 의원 전체가 소집되었을까 역사적 신빙성이 의심스럽지만, 대제관 측근 최고 의회 의원 몇몇이 예수를 심문했음 직하다.
그들은 이미 예수를 사형에 처하려고 작정하고 불리한 증언들을 찾아 나섰다.(55절) 신문의 첫 주제는 예수께서 성전 파괴와 재건에 대한 발설을 하였는가 하는 것이었다.
구약의 예언자들이 성전 파괴를 예고한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성전과 예루살렘 파괴를 예고하셨던 것 같은데(마르 13, 2) 예수 친히 성전을 허물고 손으로 짓지 않는 다른 성전을 사흘 안에 세우겠다며 성전을 모독했다는 것이다.(14, 58절) 그러나 그 증언도 서로 들어맞지 않아 성전 모독죄는 성립될 수 없었다. (59절)
다음에는 “당신이 찬양 받으실 분의 아들 메시아요?”(61절)라는 예수님의 정체성과 관련된 질문이었다.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인가 하는 것이다.
대사제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그렇다. ‘너희는 사람의 아들이 전능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이다’”(62절)라고 이제까지와는 달리 처음으로 당신의 정체를 분명하게 드러내신다.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메시아), 사람의 아들은 십자가의 예수 앞에 바쳤던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의 신앙 고백적인 칭호였다.
이에 대제관은 예수께 신성모독죄를 적용시켜 사형에 처할 빌미를 잡고, 함께 있던 자들은 예수를 조롱하기 시작한다.(65절)
베드로의 부인 (54. 66~72절)
제자들은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달아났고(50절) 베드로만이 ‘멀찍이 떨어져서’ 예수님을 뒤따르며 대사제의 저택 안뜰까지 들어온다.(54절) 한밤중이라 날이 추웠던지 시종들과 함께 앉아 불을 쬐고 있다.
대사제의 하녀 하나가 베드로를 찬찬히 살피면서, “당신도 저 나자렛 사람 예수와 함께 있던 사람이지요?” 하며 추궁한다.(67절) 베드로는 이를 부인하며 바깥뜰로 나가는데 이 때 첫 번째 닭이 운다.
그 하녀가 다시 베드로를 보면서 곁에 서 있는 이들에게 “이 사람은 그들과 한패예요”라고 고발하고, 그들이 다시 베드로를 추궁하자 그는 두 번, 세 번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하는데, 거짓이면 천벌을 받겠노라고 맹세까지 한다. 그러자 곧 닭이 두 번째 울고, 베드로는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울기 시작한다.(72절)
증인으로서 아무 자격이 없었던 일개 하녀 앞에서 자신을 완강히 부인하였던 베드로에게서 우리의 의지와는 달리 나약하기 그지없는 비참한 인간성을 대면하지 않을 수 없다.
마르코 복음이 저술되던 시기는 그리스도인들이 로마 군인으로부터 끊임없이 박해를 받던 시기였다. 마르코는 베드로와 비슷한 상황에 처하게 될 독자들을 향해서, 박해의 시기에 베드로처럼 비겁하게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하지 말고 예수님처럼 당당하고 용기 있게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고백하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최혜영 수녀 (성심수녀회 가톨릭대 종교학과 교수)- 가톨릭신문 11월26일, 성경말씀 나누기 4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