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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사랑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합니다”

76 성일용 [iyseong] 2007-07-14

계명과 율법의 완성인 사랑

이런 재미있는 글을 읽었습니다.

낱말을 설명해 맞추는 TV 노인 프로그램에서 ‘천생연분’을 설명해야 하는 할아버지,

“여보, 우리 같은 사이를 뭐라고 하지?” 할머니 답,

“웬수!” 당황한 할아버지 손가락 넷을 펴 보이며

“아니, 네 글자로!” 할머니 대답,

“평생 웬수!”???

우리가 안고 있는 슬픔은 저 멀리 외계의 것도 아니오, 타지방 사람들에게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가까이 있는 이웃이나 집안 식구들에 의해 만들어 지는 아픔이요, 상처인 것입니다. 너무 자주 부딪치며 살아야 하기에 그 상처에 대한 치유가 그토록 어렵고 슬픈 것입니다. 특별히 집안 식구들을 사랑하고 용서하기가 어려운 법입니다.

오죽하면 예수님께서 “집안 식구가 바로 원수가 된다”(마태 10, 36)고 하셨을까요.

성 요한 베르크만은 세상을 떠나기 전 이같이 고백하였다고 합니다.

“수도 생활에서 가장 큰 극기는 형제들과 공동생활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위대한 성인조차도, 그것도 일생 하느님을 사랑하며 살겠다고 약속한 수도자들이 수도원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이 그토록 어려웠다는 고백이 됩니다. 때문에 사랑의 사도인 성 요한은 이렇게 가르칩니다.

“누가 ‘나는 하느님을 사랑한다’ 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눈에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그분에게서 받은 계명은 이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1요한 4, 20~21)

유다인의 오랜 경전인 탈무드에는 사랑에 대한 이 같은 아름다운 말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열두 가지 강한 것이 있다. 그 첫째는 돌이다. 그러나 돌은 쇠에 의해 잘려지고, 쇠는 불에 녹아 버린다. 불은 물을 이기지 못하고 구름 속으로 흡수되어 버린다. 구름은 바람에 의해 이리저리 끌려 다닌다. 그러나 바람은 인간을 불어 날리지 못한다. 하지만 인간은 공포에 의해 비참하게 위축된다. 그 공포는 술에 의해 사라진다. 술은 잠을 자면 깨어 버린다. 잠은 죽음만큼 강하지 않다. 그런데 그 죽음조차도 ‘사랑’ 앞에서는 무기력하다.”

모든 율법과 계명의 완성인 위대한 사랑에 대하여 사도 성 바오로는 이렇게 찬양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사랑은 언제까지나 스러지지 않습니다.”(1코린 13, 7~8)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사랑

7살 짜리 장애아가 이모 집에 놀러 갔습니다. 이모가 뜨거운 차를 타오려다 그만 컵을 깨뜨렸습니다. 그 바람에 이모는 손을 데어 아파하며 어쩔 줄 몰라 하는데, 이모부는 깨진 잔을 쓸어모으고 걸레로 닦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장애인 조카가 이모부에게 “이모부, 이제는 이모 손을 만져 주세요. 이모가 손을 데었잖아요”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 순간 무엇이 중요하고 급한지 장애를 가진 아이들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상인이고 어른인 우리들이 모르고 있습니다. 이모부는 무엇보다 먼저 달려가 아내의 손을 붙잡고 “여보, 어디 다치지 않았어?”라고 말했어야 합니다.

가족이, 이웃이 무엇을 원하는지 살피는 것, 그들의 마음을 조금은 읽을 수 있는 것, 그렇게 큰일은 아니어도 작은 배려의 마음에서부터 사랑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의 계명을 너무 크고 부담스럽게만 생각하기 때문에 실천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사실 그 말씀은 너희에게 아주 가까이 있다. 너희의 입과 너희의 마음에 있기 때문에, 너희가 그 말씀을 실천할 수 있는 것이다.”(신명 30, 14)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돌아갈 곳이 있는 복된 사람들입니다. 그것은 분명 은총이며 희망입니다. 우리가 돌아갈 본 고향, 영원한 아버지의 나라는 거저 주어지지 않습니다. 이 지상에서 끊임없는 사랑을 나누었던 사람들만이 꿈꿀 수 있는 곳입니다. 때문에 예수님께서도 ‘최후의 심판’ 가르침에서 이렇게 단호히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 40)

한정된 시간에 육신을 가지고 세상에 왔다가 떠나는 이들은 반드시 살아남은 이들에게 무언가 메시지를 남기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살아보니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 부족합니다. 그러니 살아있는 동안 후회 없이 사랑하십시오”일 것입니다.
춘천교구 배광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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