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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동토에서 굳건히 지켜온 신앙(송천오)

74 신천동성당 [shinchon] 2012-02-22

세계 교회 신앙유산 순례 - 러시아 모스크바
 
러시아 동토에서 굳건히 지켜온 신앙
 
송천오
 
 
1991년 소련 연방이 붕괴되기까지 러시아는 흔히 동토(凍土)라 불렸다. 러시아의 지리적 위치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상과 자유를 억압하고 통제하는 사회라는 인식이 동토라는 개념의 탄생을 가능하게 했을 것이다. 자유 민주주의 진영과 대립한 상대적 이데올로기의 반영인 것이다.
 
그런데 개혁과 개방을 기치로 ‘강한 러시아’를 표방하고 있는 현재의 러시아는 아직도 동토라고 하는 말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아시아와 유럽에 길게 누워있는 러시아의 지리적 특성이 두 대륙을 포용하기보다 슬라브인들의 정체성 위기를 가져왔다고 볼 때, 상대적으로 ‘강한 러시아’를 표방하는 러시아는 그 태생적 한계에 빠져있는 것이다.
 
다른 많은 이유는 접어두더라도 현재 러시아의 행보는 그리 낙관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아직 세련되지 못한 거친 숨결이 자본주의화로 치닫는 무한 경쟁을 부채질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종교의 자유?
 
종교적인 면에서도 러시아는 아직 동토이다. 다민족 사회인 탓에 러시아 전통종교라 인정받는 러시아 정교회와 이슬람교, 유다교와 불교 외에 러시아 연방 영토 내 모든 종교는 종교 단체 등록을 해야 한다. 이 외에도 출판과 행사 등에 제한과 제재가 많으며, 3개월에 한 번은 회계 보고를 해야 한다. 그리고 일 년에 한 번씩은 그동안 행한 일들에 대한 보고서를 외부성에 제출해야 한다.
 
특별히 가톨릭교회에 대한 경계가 심한 탓에 그에 따른 제재와 사제의 추방 등이 일방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러시아 국적자의 선교가 국가법상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심리적인 불편함도 만만치 않다. 종교의 자유는 있으나 그 실체가 불확실하다.
 
개방 이후 과거 소련 연방에 속했던 주변의 국가들이 독립국가연합(CIS)을 창설하면서 러시아 정교회에 속했던 교회들 역시 독립을 하였다. 그러나 러시아 정교회는 그 관할권의 축소에 따라 일종의 위기의식에 빠지게 되었고, 개방보다는 폐쇄적인 면모를 강화하기에 이른다. 사도들의 정통을 잇는다는 정교회(正敎會)의 특성상 전통과 보수적인 측면을 강조해 온 맥락에서의 폐쇄성은 타종교에 대해 자물쇠를 더 잠그는 기능으로 작용하였다. 그동안 가톨릭교회가 부단히 경주해 온 일련의 교회일치를 위한 노력이 퇴색해 버리는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되찾은 러시아의 가톨릭 성당
 
소련의 해체 이후 공산주의 시절 몰수당했던 가톨릭교회의 성전을 모스크바에서는 두 곳, 상트 페테르부르그에서는 다섯 곳을 되돌려 받았다. 또한 로마 바티칸 시국과 외교 관계가 성립되어 모스크바에는 교황대사가 상주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 정교회의 견제로 가톨릭과의 일종의 악연이 연속해서 나타나고 있을 뿐이다. 그만큼 종교적으로는 행동의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모스크바만 해도 인구가 1,200만이 넘는 대도시인데도 가톨릭 성당은 두 곳밖에 없다. 그만큼 타종교 시설의 허가와 건축이 제한되어 있다.
 
모스크바의 한인공동체도 주교좌 성당의 비좁은 지하성당을 빌려 주일미사만 봉헌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가톨릭교회 명의로 건물을 마련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우회적인 명의를 사용하여 겨우 허가는 받을 수 있으나 그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따라서 교회와 관련된 기존의 모든 건물은 사제 개인이나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등록되어 있다. 아직 갈 길이 멀다.
 
 
모스크바 대교구의 두 성당
 
가톨릭교회의 위치가 불안정한 러시아지만 1996년 겪은 복잡한 소유권 분쟁을 뒤로하고 완전히 돌려받은 모스크바 대교구 주교좌 성당은 수많은 정교회 성당 속에서도 굳건히 서있다. 약 150년 된, 붉은 벽돌의 고딕 양식의 성당은 종교활동의 자유가 제한받는 나라의 성당이라고 보기에는 그 위용이 대단하다.
 
높게 솟은 정면의 첨탑은 믿는 이들의 지향을 모아 하느님께 봉헌하는 듯한 모습이다. 첨탑에서 내려온 건물의 선은 몸통을 돌아 부드러운 벽돌의 질감을 통해 어머니의 포근함을 그대로 전해준다. 뒤편의 자태는 마치 성모 마리아의 모성을 표현하는 듯 안정적이다.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 주듯 기도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치유를 선사해 주는 듯하다.
 
성당을 몰수당했을 때는 성당 내부를 4개의 층으로 개조 보수하여 책방과 두부공장 등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성가는 사라지고 기계 돌아가는 소리로 시끄럽던 성당을 돌려받아 다시 미사성제를 올리는 거룩한 장소가 되었으니 그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목재로 된 육중한 성당 문을 열고 들어가면 러시아 대리석으로 바닥과 기둥을 꾸민 내부가 꽤 길어 보이는데, 저 멀리 제단 중앙의 십자가가 한눈에 들어온다. 성가를 부르면 울림이 참 좋다.
 
주교좌 성당은 주로 폴란드 출신의 사제와 신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과거 소련 연방 시절 모스크바로 이주해 온 사람들이다. 험한 러시아 땅에서도 굳건하게 신앙을 지켜나가는 모습은 참으로 깊은 감동을 느끼게 한다. 모스크바에 가면 꼭 들러야할 장소 중의 하나이다.
 
모스크바에 있는 또 하나의 가톨릭 성당은 루비앙카 성당인데, 옛 KGB(국가보안위원회) 본부 건물 뒤편에 있다. KGB 건물 지하는 과거 감옥으로도 유명했는데 “러시아에서 그분과 함께”라는 책의 저자인 취제크 신부님이 4년 동안 수용생활을 했던 곳이다. 새하얀 색깔의 아담한 이 성당은 러시아 정교회 성당의 모습을 닮았다. 프랑스 출신의 예수 승천 수도회 사제들이 관리하는데 주로 타향살이에 고단한 신자들의 안식처가 되어주고 있다. 러시아 정교회가 심어준 좁은 종교관 때문에 가톨릭교회는 이단 취급을 받고 있는데도 굳건하게 신앙을 지켜나가는 이들의 모습이 참으로 거룩하다.
 
러시아 사회는 아직까지 많은 손길이 필요하다. 가톨릭교회는 아직 숨을 고르고 있는 실정이다. 여력이나마 발휘하여 고아원과 무료급식소 운영 등 사회복지 차원의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교황청과 다른 나라의 원조를 받아 어렵게나마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있으며, 많은 수도회가 진출하여 교회일치를 위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또한 버려진 인권을 위해 유엔기구와 러시아 국제 적십자와도 협력을 아끼지 않으며, 불법체류자를 위한 쉼터를 마련하여 운영하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일이 순탄하지 않으며 때로는 목숨을 담보로 해야 하는 일이기도하다. 로마 가톨릭교회라고 하는 큰 테두리를 벗어난 사각지대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복음을 살고자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이들의 관심과 기도가 무엇보다도 필요한 현장이 러시아의 가톨릭교회이다. 무엇보다도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마음으로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한 성경의 자녀로서 일치하고 서로 다른 차이를 인정하며 함께 공존하는 그날을 기대해본다.
 
 
송천오 안드레아 - 서울대교구 신부. 2004년부터 4년간 러시아 모스크바 한인공동체에서 사목하였으며, 현재 서울 신천동성당 주임으로 있다.
 
[경향잡지, 2009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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