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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햄릿> 햄릿처럼 고뇌(苦惱)하라.

1252 지성득 [jaugustino] 2017-03-13

 

셰익스피어 <햄릿>

햄릿처럼 고뇌(苦惱)하라.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한 번더 읽어보지 못한 사람도 <햄릿>의 이 대사는 암송(暗誦)할 수 있을 터다.

그 만큼 <햄릿>은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작품 가운데 하나이자 세대(世代)를 거듭해 새롭게 해석될 여지가 충분할 정도로 주인공 햄릿이 부왕(父王)의 망령(妄靈)에 의해 겪는 갈등(葛藤)과 복수(復讐) 속에서 존재(存在)에 대한 탐구(探究)를 시종일관(始終一貫) 제기(提起)하고 있다.                               -박숙자 경기대 교양학부 조교수-

 

 

덴마크 왕이 타계하자 클로디어스는 왕위에 올라 형수를 아내로 맞이했다. 선왕은 정원에서 누워있다가 독사에 물려 죽었다고 공포됐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왕이 죽자마자 왕의 동생 클로디어스는 그 자리를 재빠르게 차지했고, 왕비 거투르드는 시동생의 아내가 됐다. 왕의 죽음은 사고일 수 있지만, 속전속결(速戰速決)로 벌어진 일련의 일들은 왕권 찬탈의 사고일지도 몰랐다. 햄릿의 우울증(憂鬱症)은 이 사건(事件)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 벌어진 치욕(恥辱)적인 사건(事件)들 속에서 시름시름 앓았다.

 

어째서 어머니는 남편을 여윈 지 두 달도 인돼서 새 남편을 맞이했단 말인가. 아버지를 잃은 슬픔은 분노(忿怒)와 의심(疑心)으로 뒤범벅이 됐다.

 

햄릿은 불의(不義)한 사건(事件)이라고 느꼈지만 증명(證明)할 방법(方法)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햄릿은 성곽(城廓) 주위를 떠도는 유령(有靈)으로부터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關聯)한 비밀(秘密)을 듣게 됐다. 선왕이 죽은 이유가 귀에 독즙이 들어가 독살(毒殺)된 것이라는 것과 이를 모의(冒擬)하고 시행(施行)한 자가 바로 삼촌 클로디어스로, 그렇게 클로디어스는 ‘사악한 기지’로 ‘왕비의 욕망’까지 얻어냈다고 했었다.

 

 

“햄릿은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를 언급하자마자 “어느 게 더 고귀(高貴)한가”를 연이어 물었다. 삶과 죽음 가운데에서 갈팡질팡했던 게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인간답게 살 수 있는지 묻고 잇었던 것이다.”

 

 

유령(幽靈)의 말이 사실(事實)이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햄릿은 마치 짐작(斟酌)했었던 일을 확인(確認)한 것처럼 마음 속 가득히 쌓여 있던 울분(鬱憤)과 분노(忿怒)가 터졌다. 분명(分明)하지는 않지만 햄릿은 자신만의 의심(疑心)과 고민(苦悶)이 아니었다는 확신(確信)이 생겼다.   비록 유령이지만 햄릿만 본 게 아니라 호레이쇼도 같이 봤기 때문이다.

 

 

물론 유령의 해괴(駭怪)한 농단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소문이든 의심(疑心)이든 확증이 필요했다. 방법(方法)은 단 한 가지뿐이다. 오직 합리적(合理的) 추론(推論)이 가능한 증거(證據)를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햄릿은 우선 자신(自身)의 의도(意圖)를 철저히 감추기 위해 미친 척 가장(假裝)했다. ‘의도(意圖) 없음을 만방(萬邦)에 알리기 위해서다. 햄릿은 철두철미(徹頭徹尾)하게 본심(本心)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래서 모르는 척하면서 크로디어스의 반응(反應)을 확인(確認)해보기로 했다. 연극(演劇) 제목(題目)<쥐덫>으로, 이 극() 속에서 선왕(先王) 독살(毒殺) 사건(事件)을 그대로 재연(再演)했었다.

 

독초 삶은 물을 그대로 잠자는 사람 귀에 붓는 장면(場面)을 연출(演出)했다. 이 장면을 본 클로디어스는 불에 덴 사람처럼 방 밖으로 뛰쳐나가는 것으로 불편(不便)한 심경(心鏡)을 드러냈다.

 

햄릿은 연극(演劇)이라는 장치를 통해 반신반의(半信半疑) 하던 의심(疑心)을 사실로 확증(確證)하며 클로디어스를 응징(膺懲)할 수 있는 복수의 명분(名分)을 마련했다. 햄릿은 연극 연출이 앞서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問題)로다.”를 얘기 했다. 삶과 죽음 사이에서 고민한 게 아니다.

 

햄릿은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問題)로다.”를 언급(言及)하자마자 어느 게 더 고귀(高貴)한가를 연이어 물었다. 삶과 죽음 가운데에서 갈팡지팡했던 게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인간(人間)답게 살 수 있는지 묻고 있었던 것이다.

 

햄릿에게 산다는 것은 난폭한 운명(運命)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다시 말해, 삼촌 크로디어스 아래서 (적의 없음)적의 없음을 연기(演技)하며 분노(忿怒)와 슬픔을 외면(外面)한 채 사는 것이고, 죽는 다는 것은 적의(敵意)를 가지고 있지만 증명(證明)하지 못한 채 싸우다가 그대로 사멸(死滅)하는 것을 말한다. 개인적(個人的) 분노(忿怒)가 중요한 게 아니다.

 

선왕(先王)의 억울한 죽음을 제대로 해명(解明)하고, 크로디어스의 불의(不義)를 심판(審判)해야 하는 것, 다시 말해 인간의 삶이 지속(持續)돼야 하는 이유(理由)를 밝히는 것이 필요(必要)하다.

이대로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고, 이대로 죽는 것도 죽는 것이 아니다.

 

     권력(勸力)에 약한 자(), 그대 이름은 인간(人間)


따라서 햄릿을 두고 복수극이라고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표면적 사건만 본다면 불법적 왕권 찬탈을 심판하는 복수극처럼 보이나 <햄릿>의 미학은 복수 너머의 세계를 엿본 햄릿의 인간적 고뇌에 있다.“왜 그는 복수 앞에서 우유부단(優柔不斷)한가를 묻는다. <햄릿>의 사건 전개에 집중(集中)한 독자(讀者)라면 프로이트의 질문(質問)이 다소 낯설 수 있다.

 

햄릿은 클로디어스의 불의한 행동을 눈치 챈 뒤 그 누구보다 주도면밀(周到綿密)하게 행동(行動)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복수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로 고민하지 않았다.

혹여 누군가 햄릿이 우유부단(優柔不斷) 하다면 이는 시간(時間)’의 문제(問題)가 아니다. 사실 프로이트의 질문(質問)은 물음이 아니라 대답(對答)이다.

 

햄릿이 복수 앞에서 우유부단(優柔不斷)하다고 느꼈다면 그것은 <햄릿>복수이면에 놓인 보편적(普遍的) 인간의 삶에 초점(焦點)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 ‘복수극이 아니라 비극(悲劇)’인 셈이다. 그는 클로디아스를 법적, 정치적(政治的)으로 응징(膺懲)하지만 이것과 별개(別個)로 왕권(王權)을 둘러싼 한 인간의 누추한 야망(野望) 속에서 불완전(不完全)한 인간을 엿보았고 그 속에서 절망(切望)했었다.

 

클로디어스의 불법적(不法的) 왕위 찬탈(簒奪)이 처벌(處罰)돼도, 클로디어스의 사악(邪惡)한 야망(野望)은 그대로 남을지도 모른다. 욕망이 교환(交換)되고 거래(去來)되는 방식(方式)은 개별적(個別的)이지 않다. 햄릿의 고뇌(苦惱)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정치적 처벌과 별개로 불법적(不法的)인 욕망과 이를 묵인()하는 관행(慣行), 불의한 관례(慣例)와 이에 동조(同調)하는 공모(共謀)는 그 누구도 예외(例外)가 없다.

 

어찌할 수 없는 선택(選擇)이었다고 온몸으로 말하는 어머니 거투르드, 부화(附和) 내동(來同)하는

폴로니어스 재상(宰相)과 그의 아들 모두, 희생(犧牲)양인 양하지만 그 누구보다 더 적극적으로 가담(加擔)했었다. 권력(勸力)에 약한 자 그대 이름은 인간(人間)’이라고 할 만하다.

햄릿의 고뇌(苦惱)는 불완전한 인간에 대한 절망(切望)과 그럼에도 현재적(現在的) 삶을 긍정(肯定)할 수 있는 용기(勇氣) 앞에서의 망설임이다.

 

햄릿은 원한이 아니라 절망(切望)’성찰(省察)’을 통해 움직였다. 적어도 그의 칼끝은 한 인간의 목숨을 노리지 않았다. 햄릿은 크로디어스를 죽였지만 동시(同時)에 인간의 삶과 죽음을 벼랑에 내던진 불의(不意)한 욕망(慾望)을 겨누고 있다.

햄릿은 결국 독이 묻은 칼에 찔려 죽었지만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채로 살아남았다.

 

그는 클로디어스 일파(一派)를 처단(處斷)했으며, 이 사실(事實)을 후대(後代)에 알리라고 명()했다. 정치적(政治的)으로 심판(審判)하고 역사적(歷史的)으로 기억(記憶)하고자 했었다.

바로 이점 때문에 죽지 않았다고 볼 수 있겠다. 햄릿은 살 것인지 말 것인지 고민(苦悶)했지만 그 결과(結果)는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채로 고귀(高貴)하게살고/죽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극의 유일(唯一)한 주인공(主人公)은 햄릿일 수 있다. 햄릿의 고뇌(苦惱)는 복수의 이야기를 인간(人間)의 이야기로 바꿔놓았다.

          - 한국 경제신문 Money 2월호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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