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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5 성 마르코 복음사가 영명축일

8050 김윤홍 [clemenskim] 2018-04-25


   마르코 복음서의 저자인 성 마르코(Marcus)는 “마르코라고 하는 요한”(사도 12,12. 25)과 동일 인물이며, 사도들이 예루살렘에서 회합 장소로 사용한 집주인 마리아가 그의 어머니인 듯하다. 또 그는 성 바르나바(Barnabas, 6월 11일)의 사촌이며(콜로 4,10), 키프로스(Cyprus) 태생의 레위 사람이다. 그는 예수께서 체포되실 때 몸에 고운 삼베만을 두른 젊은이가 예수를 따라가다가 붙들리게 되자, 삼베를 버리고 알몸으로 달아났던 인물로 여겨지나(마르 14,51-52) 확실하지는 않다.

   그는 사도 바오로(Paulus, 6월 29일)와 바르나바를 수행하여 안티오키아(Antiochia)로 갔고(사도 12,25), 그 다음에는 키프로스로 바르나바와 함께 갔으며, 바르나바와 함께 바오로의 제1차 선교여행을 수행하였다(사도 13,5). 그러나 팜필리아에서 바오로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온다(사도 13,13).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나 어쨌든 바오로와의 의견 대립 때문에 바오로의 제2차 선교여행에는 동행하지 않았다(사도 15,36-40). 마르코는 바르나바와 함께 키프로스로 갔으며(사도 15,39), 바오로가 투옥되었을 때에는 로마(Roma)에 함께 있었다(콜로 4,10).

   그는 분명 사도 베드로(Petrus, 6월 29일)의 제자였는데, 베드로는 그를 애정 깊게 “나의 아들 마르코”라고 언급한다(1베드 5,13). 또한 그는 신약성경에 여러 번 언급된 바와 같이 예루살렘 출신의 요한 마르코임이 분명하다(사도 12,25). 동방에서는 이 요한 마르코를 마르코와는 다른 사람으로 여기는데, 그가 비블로스(Byblos)의 주교였다고 하며 9월 27일에 축일을 지낸다. 어쨌든 성 마르코는 60-70년 사이에 최초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서를 기술했는데 주로 사도 베드로의 가르침을 기초로 했다. 소아시아 지방 히에라폴리스의 주교 파피아스(Papias)는 그가 베드로의 통역자였다고 하며, 이방인 출신 그리스도인을 위해 로마에서 복음을 기술했다고 전한다.

   전승에 의하면 그는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의 초대 주교였으며, 부활절 미사를 드리던 중 이교도들의 습격을 받아 붙잡혀 목에 밧줄을 걸고 거리를 끌려다니다가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이교도들이 성인의 시신을 불태우려 하자 천둥과 번개가 쳤고, 그 틈에 신자들이 성인의 시신을 수습해 인근 성당에 모셨다고 한다. 그 후 성 마르코의 유해는 9세기에 베네치아 상인들에 의해 알렉산드리아에서 베네치아(Venezia)로 옮겨졌다. 이를 기념해 베네치아 사람들은 성인의 이름을 딴 산마르코(San Marco) 대성당을 짓고 그곳에 성인의 유해를 모셨다. 성 마르코 복음사가는 베네치아의 수호성인이며, 그의 문장은 날개 달린 사자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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