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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효익 바오로 신부 - 연중 제4주일 21 01 31

11523 이상익 [sangik0330] 2021-01-31

 

연중 제4주일

제1독서(신명 18,15-20)는 예언자의 자격과 사명에 대한 모세의 선언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정착하게 될 가나안의 토착신앙을 따라서 어린아이를 번제물로 바치거나 미래에 대한 불안함을 자극하여 돈을 버는 이들을 찾아다닌다면 하느님께서 역겨워하실 것이라고 훈계했습니다(신명 18,9-14). 그런 다음 이스라엘의 첫 번째 예언자인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므로(신명 32,48-52) 자기가 하던 일을 이어받을 예언자를 하느님께서 세워주실 것이라고 합니다. 주님께서 세우신 예언자는 반드시 하느님의 말씀만 전해야 하고, 백성은 그가 전하는 말씀을 듣고 실천해야 합니다. 모세의 후계자인 예언자는 백성의 요청으로 호렙 산 집회에서 세워진 유일한 직무이기 때문에 자기가 전하는 말에 목숨을 담보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가나안의 점쟁이와 요술사들에게 묻지 말고 오직 예언자가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만 듣고 따라야 합니다. 그런데 이 선언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가 호렙(시나이) 산에서 십계명을 받아가지고 왔을 때, 마음이 완고하여 하느님을 시험했을 때(시편 95,8-9) 하느님께서 직접 나타나셨던 사건을 떠올립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은 “우렛소리와 불길과 뿔 나팔 소리와 연기에 싸인 산을 보고” 벌벌 떨면서 제발 “하느님께서 직접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그랬다가는 우리가 죽습니다.”(탈출 20,18-19) 하면서 애원했습니다. 하느님을 직접 뵙는 것은 죽는다는 것입니다. 예언자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을 하느님께서 직접 추궁하실 것이라는 말은 이스라엘 백성의 완고함을 질책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참된 예언이라면 하느님께서 들려주신 것이기에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라면서 참된 예언자와 거짓 예언자를 분별하는 잣대로 말합니다. 하느님만 섬기겠다고 그토록 다짐을 했건만 즉시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역겨운 짓을 할 이스라엘 백성의 완고함을 모세는 잘 알았기에 준엄한 경고를 하는 것입니다.

복음(마르 1,21ㄴ-28)은 더러운 영이 예수님을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으로 선포합니다.
구약성경에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고, 세관이 있었던(마르 2,14) 카파르나움(하느님의 은총의 산)으로 예수님께서 가신 것은, 마치 모세가 자기를 대신할 예언자를 하느님께서 세워주시겠다고 말한 것처럼, 전혀 다른 형태의 일을 시작하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지만(마르 3,1; 6,2) 율법학자들과는 달리 권위가 있었기에 사람들이 몹시 놀랐다고 합니다. 유다인들이 율법을 잘 지키는지 확인하고, 여러 가지 송사에 재판을 하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설명하던 율법학자들의 가르침과 전혀 달랐기 때문에 충격적이었던 것입니다. 회당에 있던 사람들은 예수님을 단지 율법학자들 가운데 하나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가르치신 내용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으나, 예수님의 가르침은 직업적인 율법학자들의 권위를 훨씬 뛰어넘은 것은 물론 사람들을 자유롭게 해주시는 천부적인 권위와 신비스러운 힘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또한 회당에 모였던 사람들은 예수님과 더러운 영이 주고받는 대화 때문에 또다시 놀랍니다. 성령으로 무장된 그리스도이시고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된 아드님이신(마르 1,9-11) 예수님의 말씀에는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을 훨씬 뛰어넘어 더러운 영들을 복종시키는 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은 예수님께서 많은 이들이 모이는 회당에서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러 오실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이미 회당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율법학자들은 그 사람이 더러운 영이 들렸는지 몰랐던 것 같습니다. 만일 알았다면 회당에 들어올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아니면 율법학자 가운데 하나가 더러운 영이 들렸던 것 같습니다. 율법학자들은 기회주의적이고 비굴했기에 더러운 영이나 악의 세력과 타협했으나 예수님께서는 당당하게 맞서십니다.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은 예수님을 뵙자 즉시 예수님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라고 외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잘 안다면서 “나자렛 사람”이시며,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마르 3,1; 5,7; 여호 11,12; 2사무 16,10; 1열왕 17,18; 2열왕 9,18)이라고 합니다. 더러운 영이 “살려 달라.”는 일종의 자기방어이고, 예수님께 대한 비방이며(요한 1,46-47), 동시에 신앙고백이었습니다. 더러운 영은 예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분이심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믿음은 고백하지만 자신들의 세계와 활동에 대해 간섭하지 말아달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자기가 세상을 살아가는 것과는 별개이니 더 이상 참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하고 소리친 것이며, 이것은 또 다시 예수님을 구원자로 알고, 고백은 하지만 자기가 사는 것에는 상관하지 말라는 저항의 소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직 당신의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더러운 영에게 그 사람에게서 조용히 나가라 하시자, 더러운 영은 자기가 머물던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켜 놓고 큰소리를 지르며 나갔습니다. 예수님과 악이 함께할 수 없으며, 악이 끼어드는 곳에는 큰소리가 날 수밖에 없음을 말해줍니다. 하느님의 말씀(진리)만 제멋대로 떠드는 악령의 큰소리(거짓)를 제압할 수 있습니다. 결국 더러운 영에 의해 회당에 있던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누구신지가 명백하게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하느님 나라는 악의 세력이 파괴되면서 확장되기 시작합니다. 율법학자들은 감히 하지도 못했던 일인데 예수님의 명령에 더러운 영이 추방되는 것을 본 사람들은 당연히 예수님께서 율법학자들보다 훨씬 더 권위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대한 소문과 더불어 하느님 나라에 대한 복음이 널리 퍼져나갔다고 합니다.

제2독서(1코린 7,32-35)는 하느님을 잘 섬기려면 갈라지지 않은 마음을 지니라고 합니다.
바오로는 주님의 가르침에서는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은 복음 선포자의 혼인 문제에 대해 대답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 같습니다. 바오로의 개인적인 생각이라면서(1코린 7,25) 걱정 없이 자유롭게 복음을 선포하기 위한 방법을 말하는데, 사도로서 자신의 사명과 체험에 바탕을 둔 이야기입니다. 혼인을 한 사람들이 자기 배우자에게만 충실한 것은 당연한 일이듯이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면 갈라지지 않은 마음으로 오직 하느님 한 분만을 믿고 섬겨야 합니다. 그래서 혼자서 지낼 수 없으면 차라리 혼인을 하고(1코린 7,2), 굴레를 씌우려는 것이 아니므로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서 품위 있고, 순수하고 갈라지지 않은 마음으로 하느님을 잘 섬기면서 복음을 선포하려면 독신을 지키라고 합니다. 이런 배경에서 바오로 사도는 참된 영이신 하느님만을 섬기겠다고 약속했던 코린토 공동체 신자들의 문란한 생활과 육체를 멸시하고 나쁜 생각에 젖어 살아가는 것을 질책하면서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은 그리스도께 바쳐진 순결한 사랑의 짝임(2코린 11,2)을 강조합니다.

노예생활에서 자유로워진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정착했을 때 또 다시 우상에게 마음을 빼앗겨서 이방인들의 신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돕는 것이 바로 예언자의 소명이었습니다. 코린토 신자들 역시 그리스도의 사랑의 짝으로서 품위 있고 충실하겠다고 다짐했으나 나쁜 생각에 젖어 문란한 생활을 했기에 바오로의 질책을 들었던 것입니다.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도 바로 이와 똑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참된 영이신 하느님을 섬기지 않고 자기 멋대로 살았기에 더러운 영이 찾아들었던 것입니다. 악에 젖어 제멋대로 살면서도 안식일이면 회당에 버젓이 앉아있었기에 예수님께서는 더러운 영에게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더러운 영은 하느님께 대한 믿음만 있지 희망도 사랑도 없었습니다.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도 지금은 비록 더러운 영이 들어왔기 때문에 믿음만 고백하지만, 권위 있는 그분의 말씀이 그의 마음을 건드린다면 예수님께 대한 희망도 가질 것이고, 사랑을 실천할 것임을 예수님께서는 잘 아셨기 때문에 그에게서 더러운 영을 쫓아내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을 무디게 하지 않는다면 그분을 알아보고, 새롭고 권위 있는 그분의 가르침에 놀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비록 이 놀라움이 크지는 않았을지라도 예수님의 말씀에서 거룩한 힘을 느꼈기 때문에 우리도 이 자리에 와 있습니다. 회당에서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성당에서 예수님의 권위 있는 말씀을 듣고, 성체 안에 계신 그분께 굳건한 믿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품위 있고 갈라지지 않은 마음을 지닌 신앙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더러운 영이 나갈 때 경련을 일으켜놓았다고 하듯이 바뀌기가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우리에게 오시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나쁜 생각과 나쁜 행실을 없애주시도록 우리도 그분의 뜻에 자신을 맡겨야 합니다. 회당에 있던 사람들은 더러운 영을 내쫓으신 예수님의 업적을 갈릴래아 주변의 모든 지방에 두루 퍼뜨렸다고 합니다. 우리도 내 안에서 나쁜 생각을 몰아내면서 말씀과 성체를 모셨으니 그리스도를 자랑하는 하루가 되도록 합시다.



- 방효익 바오로 신부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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