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대교구장 사순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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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7 창5동성당 [chang4] 2023-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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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한때 어둠이었지만
지금은 주님 안에 있는 빛입니다.
빛의 자녀답게 살아가십시오.” (에페 5,8)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하느님의 축복이 여러분 한 분 한 분께 충만하시길 기원합니다.
우리는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 이제 조심스럽게 빛을 향해 걸어가고 있습니다. 우리 교구 공동체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요청에 따라 시노드를 개최함으로써, 움츠러들었던 신앙생활의 ‘어두운 터널’에서 ‘친교, 참여, 사명(선교)’이라는 빛을 향해 걸어가고 있습니다. 사회적으로나 신앙적으로나 어둠 속에 머물던 지난날에서 벗어나 빛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성부·성자·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자녀이며 빛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맞이한 사순 시기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된 구원의 기쁨을 우리 삶 안에서 다시 체험하고 참여하는 가운데 파스카 부활의 신비를 잘 맞이하도록 우리의 몸과 마음, 곧 온 존재를 통해 준비하는 시기입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면서, 죄인인 우리의 죄를 씻어주시기 위해 하느님의 아들이 우리를 대신해서 피 흘리시고 돌아가신 하느님의 그 사랑과 자비와 용서를 묵상하고 그 사랑, 자비, 용서를 체험하고 만나면서 사랑이신 하느님께 다시금 돌아가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하느님 앞에서 ‘지금의 나’를 차분하게 직시하고, ‘지금까지의 나’를 돌아보면서 하느님 아닌 다른 가치들을 하느님 자리에 두고 살아온 우리의 어리석음을 용서받고 하느님을 향해 새롭게 정향(定向)하는 시간입니다. 그리하여 하느님과 함께 희망찬 미래를 내다보는 은총의 시기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이 그냥 죽음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부활을 통해 죽음을 이기시고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얻어주신 것처럼, 우리 삶 안에 있는 여러 형태의 부정적인 체험들이 그저 암울한 끝이 아님을 믿음 안에서 묵상하고 다시금 신앙 안에서 힘을 길어내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순 시기는 역설적으로 희망의 시간입니다. 고통과 절망으로 보이는 현실, 우리 스스로는 답을 찾을 수 없는 상황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도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언제나 함께 계심을 우리는 믿습니다. 우리의 눈에는 그저 ‘어둠’으로만 보이는 사건이나 상황에서도 절망과 좌절로 끝맺지 않고, 하느님께 대한 믿음 안에서 자비의 하느님께 의탁해야 합니다. ‘고통의 신비’입니다. 우리네 삶에서 느닷없이 찾아오는 원치 않는 여러 모습의 실패, 좌절, 이별, 병고, 단절, 죽음 등의 힘든 시간들이 그저 의미 없는 형벌이 아니라, 하느님만이 주시는 다른 답이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어둠이 짙어가는 것은 새벽이 다가오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둠 속에서도 희망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죽음이 부활로 귀결되었음을 믿기에 우리는 이 사순 시기가 희망의 시간임을 압니다. 어둠을 뚫고 빛으로 나아가기 위해, 어려운 사람끼리 손을 맞잡아야 합니다. 아픔 중에 있는 가족을 따뜻이 손잡아 주고, 혼자 있는 이웃을 찾아주고,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분들에게 열린 눈과 따뜻한 마음으로 손을 맞잡을 때, 빛을 향해 함께 걸어갈 수 있습니다.
이번 사순 시기에는 특히 미사성제를 통해 믿음의 힘을 길어냅시다. 하느님과 우리가 만나는 장(場)이요 시간인 미사 전례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이 그저 이천여 년 전의 역사적 사건으로 그치지 않고, ‘지금, 여기에서’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를 위해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힘을 길어내는 은총의 자리입니다. 또한 코로나 팬데믹으로 움츠러들었던 마음을 떨치고, 교회의 전통 안에 있는 다양한 신심 활동을 통해 믿음에 활기를 불어넣는 시간으로 만들어 갑시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당신 자신을 내어주신 그리스도 예수님의 수난과 고통을 기억하며 우리도 이번 사순 시기 동안 일상 속의 참회와 속죄로 그분 십자가에 동참합시다. 위기와 절망의 순간에 오히려 적극적인 미사 참례와 다양한 신심 활동으로 꺼져가는 신앙생활의 불씨를 새로이 지핍시다.
“여러분은 한때 어둠이었지만 지금은 주님 안에 있는 빛입니다. 빛의 자녀답게 살아가십시오.”(에페 5,8)
천주교 서울대교구장•평양교구장 서리
정순택 베드로 대주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