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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 후기 나눔터
[순례후기]팔레스티나 성지 순례(2006. 6. 24.)-08일차

22 가톨릭교리신학원 [cci] 2006-10-24

여드레 : 6월 24일
카나(첫 기적성당)→나자렛(성모영보성당, 성가정성당, 예수님 시대의 시나고그)→타보르산→카르멜산→카이사리아→텔아비브 요파→예루살렘

 

 


카나

카나의 첫 기적 성당 제대에는 포도주 항아리가 봉헌되어 있다. 처치 스트리트에 있는 또 하나의 성당인 ‘카나 출신 사도 바르톨로메오’의 성당 묘지 너머로 카나의 집들이 보인다.

 

막달라를 지나 카나에 간다. 예수님의 첫 기적 성당. 아름답다, 작고 소박한 성당. 포도 덩굴이 조각된 제단에 항아리 여섯 개가 봉헌되어 있다. 처치 스트리트, 각 교파들의 여러 교회가 있는 카나의 골목을 지나온다. 흰구름이 종종 태양을 가리기도 한다. 카나 출신 사도 바르톨로메오 성당 옆문으로 들어가니 키 큰 로즈메리 향기 속에 묘지가 있다. 그곳에 묻힌 영혼들의 영원한 안식을 구하며 다시 골목으로 나온다. 카나. 그 골목들, 무사할까?


나자렛으로 간다. 많은 것이 뒤엉켜 있는 듯한 마을. 분주한 그들의 오전 속으로 우리는 순례중이다. 동방정교회의 성모영보 성당인 마리아의 우물 교회 앞에 선다. 성모님 당시 이 동네의 유일한 우물이었기 때문에 성모님도 이 우물로 물을 길러 다니셨을 것이고, 이곳에서 가브리엘 천사의 방문을 받았다고 동방정교회 전승은 전한다. 동방교회에는 전승 이외의 전설들도 많아서 그림에 나타나는 전설들을 보면 성모 신심이 무척 강하다. 수많은 이콘들. 동방의 모든 성인들이여, 우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섬세하고 소박한 문양이 고요하게 새겨진 테라코타 입구를 들어서 일곱 개의 계단을 내려가니 아직도 물이 콸콸 흐르는 샘이 있다. 어머니 마리아, 처녀 마리아의 우물.


이제 가톨릭의 성모영보 성당이다. 성당 밖 벽에는 세계 각국의 성모님이 모셔져 있다. 살베 레지나가 끊이지 않는 나자렛. 종소리가 꽃향기처럼 흩날리는 땅, 순례자는 주님을 마음에 담고, 아브라함의 다른 자손들은 낯선 일상을 살고 있다.


성가정성당에서 미사를 드린다. 요한 세례자 탄생일. 소리인 요한, 그 실체를 좇아 우리는 왔다. 소리이며 영상인 나자렛, 그 뿌리를 좇아 우리는 왔다. 세례자 요한의 ‘겸손’과 투철한 자기인식. 성모님의 겸손과 투철한 책임. 주님의 은총 아니고서야 인간이 그렇게 단단할 수 있을까. 그토록 깊이, 그토록 겸손하게, 그토록 영웅적인 삶. 그리스도와 동일시하지 않은 요한.


성가정성당, 혹은 성요셉성당 지하에는 감춰진 듯 세 개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있다. 요셉의 정혼과 꿈과 임종을 형상화한 스테인드글라스. 그의 삶만큼 소박하고 드러나지 않게.

 

 

 

 

나자렛

성모영보성당의 외관과 본당. 성모영보성당 바로 옆에 성가정성당 혹은 성요셉성당이 있다.

 

저자거리를 지나 예수님 시대의 시나고그에 간다. 그날, 고향에 오신 예수님은 안식일을 맞아 회당에 들어가서 두루마리를 건네 받아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한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 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 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카 4,18-19).


시나고그를 나와 바로 옆에 있는 동방 가톨릭교회에 들어간다. 휘장이 드리워진 지성소. 아직도 우리는 갈 길이 멀다. 비좁은 길에 순례객들이 계속 들고난다. 저자로 나가는 입구에 고즈넉이 앉아계신 비오 신부님이 분주한 우리를 배웅한다.


나자렛을 떠난다. 예수를 환영하지 않았던 고향. 그래서 “예수님은 카파르나움으로 가셨다.”

 


나자렛에서

예수님 시대의 시나고그와 그 곁에 있는 동방 가톨릭교회에 들러 다시 나오는 골목 어귀에서 비오 신부님의 배웅을 받는다.


타보르 산으로 간다. 이제 꾀가 나는 것일까. 점심을 먹고 폭염 아래 나서니 택시를 탄다는 얘기가 반갑다. 몇 대의 택시에 나눠 타고 해발 588미터인 타보르 산에 오른다. 경사가 아주 심해서 차가 구불구불 곡예하듯 오른다.


시에스타 중이어서 문이 닫힌 거룩한 변모 성당 밖에 앉아 잠시 타보르 산으로 불어오는 바람 속에 귀를 기울인다. 요르단 강 계곡과 골란 고원, 이즈르엘 평야와 사마리아 산악 지대, 나자렛과 카르멜 산, 그리고 헤르몬 산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다.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는 당신의 죽음에 대한 대비였다. 또한 그 변화는 제자들의 것이기도 하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을 뵙게 될 것이다”(마태 5,8). 그들은 보았다. 그들이 ‘보게' 된 것이다. 시에스타가 끝났다. 종이 울린다.

 

 

 

타보르 산 정상에 있는 주님의 거룩한 변모 성당과 내부

 

타보르 산을 내려온다. 팔레스타인 지역이라 모스크가 있다. 올리브 나무 그득한 드보라의 고향 마을을 지난다. 카르멜 산으로 가고 있다. 노랗고 작은 꽃들이 흐드러진 길 가에 1세기 경의 돌무덤이 열려 있다. 문을 닫았던 둥근 돌도 그 곁에 있다. 카르멜 산, ‘하느님의 포도밭, 카렘 엘’이라는 유래가 아름답다. 지금은 카르멜 수도원이 자리하고 있지만 기원전에는 무수한 신들에게 바치는 예배가 끊임없었던 곳. 엘리야 예언자는 당시 만연한 혼합종교에 빠져 주님을 배신한 동족들에게 죽음을 무릅쓰고 주님을 증거한다.


그들은 자신들을 종살이에서 구해낸 야훼 하느님을 믿으면서도, 풍요는 바알과 아세라가 주는 것이라고 믿었다. 당시 팽배한 혼합종교와 농경사회의 특수성 안에서 주 하느님만을 고백한 이들은 얼마나 명료한 정신으로 살았던 것일까. 예로보암의 금송아지가 일상이었던 삶의 자리에서. 십자군 성채였던 수도원 옥상에 올라 사방으로 펼쳐진 땅을 내려다본다. 정원에 세워진 엘리야 예언자의 사자후가 들리는 듯하다. “참 하느님이 누구신가?”


 

카르멜 산 수도원 마당에는 엘리야가 열두 개의 돌로 제단을 쌓았다는 자리에 칼을 높이 쳐들어 바알 예언자를 막 내리치고 있는 엘리야 예언자의 석상이 있다.


다시 산을 내려와 지중해의 한 켠, 로마 시대의 수로가 남아 있는 카이사리아에 내린다. 해변에는 많은 사람이 해수욕을 즐기고 있다. 기원전 헤로데가 건설했다가 로마 총독이 주재한 행정도시로서 팔레스티나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주목 받는 항구의 하나였던 곳. 원형극장과 십자군 시대 성벽, 시장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이곳에서 베드로 사도는 이방인에게는 처음으로 코르넬리우스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텔아비브에 들어서 우리는 요파로 간다. 가이드가 헤르츨에 대해 언급한다. 드레퓌스 사건으로 인해 시오니즘을 태동시킨 사람. 결국 그의 뒤를 이은 바이츠만이 2차 세계대전 후 밸푸어 선언을 이끌어냄으로써 이스라엘의 건국을 실현시켰다. 이스라엘로서는 민족적 비원의 성취였으나 그로 인해 야기된 현실이 너무도 답답하다.


텔아비브의 지중해변, 많은 이들이 오후의 망중한을 즐기고 있다. 정비된 도시와 중심가와 해변을 지나 요파에 닿는다. 오래된 도시 요파, 베드로가 코르넬리우스와 관련된 환시를 본 집이 그 골목에 있다. “하느님께서 깨끗하게 만드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마라.” 그러나 그 집은 닫혀 있고, 우리는 골목을 나와 저물어가는 도시를 걷는다. 거기 베드로 성당이 있었다. 저녁 미사가 봉헌되고 있는 성당에 잠시 들어갔다가 지중해변에 선다. 노악사가 바이올린으로 아베마리아를 연주하는 해변에 아이들이 해맑게 뛰놀고 있다. 저물어 가는 지중해 푸른 물결에 모스크의 초승달이 선명하게 비친다. 거대한 벤자민들이 늘어선 요파 거리를 벗어나 텔아비브 외곽을 지난다.

 

 

 

시몬의 집이라고 쓰인 집의 문은 닫혀 있고, 해지고 있는 지중해변 모스크의 초승달이 선명하다.

 

이제 마침내 예루살렘으로 들어간다. 해가 진다, 비옥한 땅 위로. 높이 솟은 빌딩들 틈으로. 그리고 넓은 옥토가 이어진다. 또 귀가 먹먹해진다. 맥도날드 불빛이 어스름 황혼에 노랗게 빛나고 있다. 불빛이 밝혀진 예루살렘에 들어선다. 아름다운 언덕, 안식일의 조용한 도시. 유다교 복장을 한 다섯 소년이 지나간다. 영원한 ⋯⋯ 도성. 영원⋯⋯의 의미가 가슴을 울린다. 어두워지고 있다. 예루살렘에 축복을! 정신이 명료하다. 정말 맑다. 감사한다, 이 순간.


“저는 당신께서 계시는 집과 당신 영광이 깃드는 곳을 사랑합니다”(시편 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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