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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 후기 나눔터
[순례후기]팔레스티나 성지 순례(2006. 6. 26.)-10일차

24 가톨릭교리신학원 [cci] 2006-10-24

열흘 : 6월 26일

예루살렘(최후의 만찬 성당에서 미사, 성모영면성당, 베드로회개성당) →베들레헴→예루살렘(벳자타 연못, 안나성당, 기혼샘과 실로암, 서쪽벽)


예루살렘의 아침. 하얗고 꽃이 피고 깨끗한 시간이다. 출근하는 사람들. 분주하지 않다. 검은 정장 차림의 유다인들이 핸드폰으로 통화하며 걷는다.


힌놈 골짜기를 지난다. 몰록에게 제 아들딸을 바치느라 불 속을 지나가게 한 ‘살육의 골짜기’, 결국 죽음의 구렁텅이로 영원한 징벌을 뜻하는 게헨나 골짜기.


최후의 만찬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한다. 성체와 성혈 대축일 미사. 강론을 듣는 대신 금쪽 같은 10분 동안 묵상을 한다.


바닷물로 젖어드는 소금인형처럼 예루살렘, 시온 산의 거대한 기운 속에 어린 내가, 어리석은 내가, 주님 앞에서 송두리째 무너진다.

 

 

미사가 끝나고 마르코의 다락방으로 알려진 모스크에 올라간다. 세 개의 기둥이 아치로 버티고 선 그곳에는 이미 많은 순례객이 있다. 하기아 시온, 거룩한 땅의 골목들. 십자군 시대에 만들어 놓은 다윗의 무덤을 찾는다. 커다란 석관을 덮은 천 위에는 ‘이스라엘 왕 다윗이 살아서 여기 계시다’고 쓰여 있다는데 너무 좁아 오히려 답답해졌다.


성모님이 제자들과 여생을 보냈다는 곳에 세워진 성모영면 성당에 들어간다. 지하성당에는 구약의 여섯 여인, 즉 하와와 미리암, 유딧과 룻과 에스테르와 라헬이 모자이크된 천장 아래 영원한 잠에 든 성모님의 상이 안치되어 있었다. 잠시 촛불 밝혀진 성모님 발치에 머물다가 1층으로 올라간다. 성당 바닥에는 열두 명의 예언자와 열두 제자, 그리고 별자리 12궁도가 모자이크 되어 있다. 하기오스 하기오스 하기오스. 지극히 거룩하신 하느님께 바치는 삼중 찬미와 한 분이신, 거룩한, 민족들의 빛이신, 이새의 뿌리에서 돋아나신 예수님. 그리고 보라, 하느님의 어린 양을 외치는 요한이 성당을 채우고 있었다.


초세기부터 기념 성전이 있었던 이 땅은 무수한 부침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비잔틴 양식의 성전이 있었고, 대성전이 건립되었다가 페르시아군과 이슬람에 의해 산산조각이 났으며, 십자군이 다시 기념성전을 지어 성모님께 봉헌했지만 그 또한 이슬람교도에 의해 파괴되었다. 지금의 성당은 20세기 초에 지어진 것이다.

 

 


성모영면 성당에 안치된 성모님 상. 그 위 천장에는 예수님을 중심으로  구약의 여섯 여인이 모자이크 되어 있다.

 

뜨거운 성당 밖으로 나와 성벽을 끼고 걷는다. 베드로 회개 성당에서 예루살렘을 내려다본다. 성당 정면에는 예수님의 심문 장면이 그려져 있다. 예수님과 베드로의 ‘눈’이 마주친다. 종소리가 가까이서 굵게 울린다. 닭이 울었다. 그 순간 비로소 깨었다.


카야파의 집이었던 이곳에는 지하에 감옥들이 있다. 사상범, 정치범을 수감했던 곳에 내려가 본다. 지금은 계단이 만들어져 있으나 당시에는 죄인의 어깨에 줄을 매달아서 구멍으로 내려 보냈다. 그 순간 예수님의 고독. 깊은 구렁 속에, 어둡고 깊숙한 곳에 내던져진 그 밤.


성당 마당에는 성수대의 원형으로, 정결례를 위해 사용되던 5세기 경의 성수대 가 보존되어 있었다. 비잔틴 시대 교회의 유물로 발견된 것이다.

 

 


베드로 회개 성당

베드로가 “밖으로 나가 슬피 울었다”(루카 22,62).


다시 힌놈 골짜기를 지난다. 이제는 극장이 들어서기도 하고 보랏빛, 붉은 빛, 화려한 꽃들이 피어 있다. 1967년까지 요르단과의 국경선이었던 정통 유다교인들의 마을을 지난다. 안식일이면 그들은 동네 안의 회당에서 기도한다. 길 가 꽃밭에 스프링클러가 물을 뿌리고 있다. 가는 물방울이 풀밭을 적신다.


베들레헴으로 간다. 차가 막힌다. 헤브론 길을 지나 팔레스타인으로 들어간다. 베들레헴, 작은 도성이여.


커다란 모스크가 선 예수님 탄생 성당 앞 광장에는 노인들이 악세사리를 들고 원달라를 외치고 있다. 성당 바로 곁으로 프란치스칸이 운영하는 순례자 숙소 까사노바가 보인다. 화재로 소실되었던 곳에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다시 만든 이 성당은 외침에 대비해 입구를 줄여서 지금은 고개를 숙여야만 들어설 수 있다. 무수한 등불이 천장에 매달린 본당 안은 어둡고 기괴하기까지 하다. 예수님이 태어난 동굴로 내려가 커다란 별이 새겨진 제단에 엎드려 경배한다. 동방박사를 인도한 별이다. 또한 우리를 인도하신 주님.

 

 

 

예수님이 태어났다는 동굴 위에 세워진 성당은 무수한 등잔이 드리워지고 무척 어두워서 기괴하기까지 했다. 정면의 오른쪽 제단은 그리스 정교회에서 관리하고 있다.

 

바로 옆에 있는 카타리나 성당의 지하에는 예로니모 성인이 성서를 번역하던 동굴이 있다. 그는 이런저런 모든 것을 피해 베들레헴으로 떠나와 자리를 잡고 수도 생활을 하며 성서를 번역했다. 신구약성서를 히브리어와 그리스어에서 라틴어로 번역한 이 성서는 트렌토 공의회에서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아 대중적이라는 뜻의 불가타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곳곳에 작은 십자가가 있는 동굴 한 쪽에 그의 묘비명이랄 수 있는 문구가 쓰여 있다. “나의 안식이 영원히 여기에 있다. 내가 하느님을 갈망하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칸과 살레시안들의 교육 기관이 있는 마을을 지나 베들레헴을 떠난다. 어린 아이들이 노골적으로 구걸을 하고, 까만 피부가 햇빛에 더 새까매진 노인들이 목걸이와 가방 등을 들고 흥정하려는 어둡고 낡은 동네. 길가 벽에는 정치 지도자인 듯한 이들의 사진이 영화 포스터처럼 붙어 있다.


예수, 하느님이 이곳에서 나셨다!


이스라엘 국기가 달린 가정집들을 지나고 미국식 카페들을 지난다. 폭탄 테러의 염려 때문에 카페나 식당의 입구에는 어김없이 건장한 남자가 앉아 가방을 조사한다. 통곡의 벽으로 알려진 서쪽 벽에서도 가방을 검사할 것이다. 다윗왕의 길을 통과해 무슬림의 묘지를 지나 사자문으로 들어간다. 다시 양의 문을 통해 벳자타 연못 앞에 선다. 다섯 개의 행각이 있었다는 기록처럼 제법 큰 못이다. 등덜미로 시원한 바람이 인다. 아름다운 바람, 고마운 바람. 여기서 예수님은 서른여덟 해를 앓던 이를 치유해 주셨다. “건강해지고 싶으냐?”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라.” “더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


38년, 모세의 광야도 38년이었다. 인간의 한 세대를 의미하는 날수.


지금은 물이 말라 못이었다는 흔적만 남아 있는 벳자타를 한바퀴 돌고, 안나와 요아킴이 살던 곳으로 성모님이 태어났다는 안나성당에 들어간다. 천장이 아주 높고 단순한 본당. 장식이 없어서 더 그렇겠지만 이곳은 소리의 공명이 무척 아름다워서 우리도 성모님께 찬가를 불러드린다.


다시 양의 문을 나와 버스에 오른다. 순례자의 무수한 발길에 닳은 길은 미끄러울 만큼 반질거린다. 겟세마니 성전과 즈카르야의 묘와 예수님 유혹 성전을 지나 지저분한 쓰레기 하치장을 돌아서 무화과나무들 무성한 실로암 발굴터를 지난다. 좁은 길을 조금 더 올라가 기혼 샘이 있는 곳에 내린다. 젊은 여인들은 삼엄한 눈빛이지만, 하얀 옷에 까만 치마를 입은 비둘기 같은 아이들은 이방인에 아랑곳없이 맨발로 놀고 있다. “도성의 광장마다 뛰노는 소년 소녀들로 가득 차리라”(즈카 8,5). 한 남자가 흥겨운 듯 서글픈 듯 재즈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다. 유다 임금 히즈키야는 아시리아의 침공에 대비해 이곳 기혼 샘의 위쪽 물줄기를 막고 땅 속으로 수로를 만들어 성 안으로 물을 끌어들였다. 그 히즈키야 수로를 통해 물이 공급되었던 실로암 연못에도 들른다.


통곡의 벽으로 알려진 성벽의 서쪽 벽 부근은 사람들로 붐빈다. 솔로몬이 지어 봉헌했던 성전은 기원전 587년 바빌론에 의해 파괴되었고, 유배에서 돌아온 후 재건한 제2성전 또한 유다 전쟁 시에 파괴되었는데, 이때 남은 부분이 바로 이 벽이다. 더욱이 지성소와 가까운 곳에 있었기에 이 벽에 대한 유다인들의 애정과 경외가 특별한데, 나라를 잃고 흩어져 있던 유다인들이 성전을 찾아 성서를 읽으며 통곡하며 탄원했기 때문에 통곡의 벽이라고 불렸다. 


유다인만이 아니라 많은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간단한 가방 검사를 하고 서쪽 벽에 들어선다. 유다인들의 비탄을 상징하는 곳. 예사롭지 않은 심정으로 다가선다. 성벽은 양쪽으로 분리되어 여성과 남성의 구역이 다르다. 여전히 많은 사람이 기도하고 있는 성벽으로 들어간다. 그들 틈에서, 뜨거웠던 한낮의 열기가 남아 있는 벽에 두 손을 대고 함께 기도한다. 마치 사랑을 잃은 저녁처럼, 생의 절망에 맞닥뜨린 밤처럼 그들이 운다. 알 수 없는 그들의 탄원에 내 마음도 들썩이며 마음을 보탠다. 주님, 기도를 들어 주소서. 그러나 주님의 뜻대로 하소서.


성전을 봉헌하던 날 솔로몬의 기도는 자못 인간적이다. 하느님은 모든 것을 인간에게 다 내어주셔야 한다. 또한 그는 기도한다. “이스라엘에 속하지 않은 이방인이라도 당신의 위대한 이름과 당신의 강한 손과 당신의 뻗은 팔 때문에 먼 땅에서 찾아와 이 집을 향하여 기도하면, 그의 호소를 다 들어주십시오.” 

 

소녀들도 성서를 읽으며 어깨를 들썩이며 운다. 왜 우는 것일까? 개인적인 것인지 종교심에 의한 것인지 문득 궁금해지기도 한다. 노인이나 어린아이나 할 것 없이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기도한다.

사람이 만들어 놓은 것에 대한 감흥은 그다지 크지 않다. 예루살렘의 저녁, 오늘은 덜 힘들었다.

 

 

 

통곡의 벽으로 알려진 서쪽 벽. 여성과 남성의 구역이 나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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