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레나이우스, 이레네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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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장위동 [jangwi] 2007-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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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이레네우스(또는 이레네오)는 소아시아의 스미르나(Smyrna, 오늘날 터키의 이즈미르, Izmir)
출신으로 스승인 폴리카르푸스(Polycarpus, 2월 23일) 주교를 통해 사도적 정통성을 이어받았다.
그의 출생 연도에 대해 논란이 많지만 130-140년 사이로 추정된다.
그는 로마(Rome)에 와서 오랫동안 머물렀으며, 이때 성 유스티누스(Justinus, 6월 1일)가
세운 교리 학교에서 공부한 것으로 보인다.
그 후 언제 무슨 이유로 프랑스의 리옹으로 가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투르(Tours)의 성 그레고리우스(Gregorius, 11월 17일)에 의하면 성 폴리카르푸스가
그를 프랑스 지방의 선교사로 파견하였다고 한다.
그는 177년 리옹 교회의 특사로 교황 성 엘레우테루스(Eleutherus, 5월 26일)를 방문하여
몬타누스주의 문제에 대해 상의하고 리옹 지방의 순교자들에 대해 보고하였다.
그가 로마에 체류하는 동안 리옹의 주교 포티누스(Photinus, 6월 2일)가 순교하였으며,
리옹에 돌아온 즉시 그는 주교로 선출되었다.
그는 리옹 지역의 복음 선포에 열정적이었고, 프랑스 지방의 영지주의자와 피나는 싸움을 전개하였다.이때 그가 쓴 저서가 “이단 논박”(Adversus Haereses)이다.
그는 이단 사상의 정체를 적나라하게 폭로하면서 동시에 초기 교회의 정통 신앙을 확립하였다.
성 이레네우스는 ‘가톨릭 교회의 수호자’라고 불릴 정도로 2세기 신학자들 중에서 가장 뛰어났으며,
특히 영지주의 계통의 이단들에 대항하여 정통 교리를 수호한 대표적인 교부이다.
그의 저서에는 사도들의 전승이 그대로 담겨 있으며 또 교황 수위권의 중요한 근거가 되고 있다.
투르의 성 그레고리우스(Gregorius)에 의하면 그는 202년경에 순교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