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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강론
연중 21 주일(가해)

193 양권식 [ysimeon] 2008-08-23

연중 21 주일(가해)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연중 21주일입니다. 지난 주 우리는 이방인 여인의 믿음에 관한 복음을 들었습니다. 이에 이어서 오늘 복음은 사도 베드로의 입을 통하여 구체적인 믿음의 내용을 듣게 됩니다. 즉 예수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우리 신앙의 가장 기본 된 신앙고백을 오늘 복음은 전해 줍니다.
오늘 제 1독서인 이사야 22장은 유다 왕국 말기 히즈키야 왕 때인 기원전 700년경을 배경으로 하는 내용입니다. 당시 아시리아의 왕 산헤립은 유다 왕국의 수도 예루살렘을 맹공격하여 유다 왕국은 패망의 위기에 놓이게 됩니다. 이때 다윗 왕가의 시종장인 셉나는 주변 강대국과 정치적 종교적 타협을 통하여 이 위기를 극복하려는 주장을 펴게 됩니다. 이에 당시 예언자 이사이야 는 신앙의 문제에 관한 한 일체의 양보나 타협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여 시종장 셉나의 주장을 반대하고 엘리아킴을 다윗 왕가를 지키는 시종장으로 교체합니다. 그리하여 새로이 발탁한 시종장 엘리아킴에게 다윗 왕가의 열쇠를, 전권을 위임하는 의미로 부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의 열쇠를 베드로에게 주십니다. 예수님은 가이사리아 지방에 이르렀을 때에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고 묻습니다. 이에 제자들이 어떤 이는 세례자 요한, 혹은 엘리야나 예레미아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답하자 예수님은 이제 제자들에게 직접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묻습니다. 이에 제자들 중 맏 자리를 차지하는 베드로가 나서며 선생님께서는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라며 그의 신앙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란 말은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바위라는 뜻이며 든든한 것, 견고한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우리가 기도 후에 ‘아멘’이란 말을 하는데 이도 역시 희랍어에서 나온 견고함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라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은 교회 즉 하느님을 믿는 모든 이들의 견고한 삶의 토대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고백을 근거로 하여 이 고백 위에 교회를 세울 것이며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이 고백을 한 베드로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고 하십니다. 즉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려 있을 맺고 푸는 열쇠를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엘리아킴과 베드로에게 열쇠를 맡긴 가장 근본 요인은 공통적인 신앙고백에 따른 것입니다. 열쇠는 심각한 위기 앞에서도 야훼 하느님께 충실한 엘리아킴의 신앙과, 예수님을 삶의 절대적 가치로 고백하는 베드로의 신앙에 주어진 은혜인 것입니다. 국가의 위기와 민족의 수난을 목전에 두고도 야훼 하느님께 대한 절대적 충실을 선택한 엘리아킴과, 수난을 예고하시는 스승을 자신뿐 아니라 이스라엘 나아가 전 인류의 구세주로 고백하는 베드로의 신앙은 우리의 모범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제자들에게 묻는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하시는 질문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물음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인인 우리 역시 베드로의 모범을 따라 예수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라고 고백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신앙고백은 일회적으로 되거나 입술로서만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어쩌면 우리의 전 생애를 통하여 매 순간 생활 안에서 삶으로써 이룩되어야 할 신앙고백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영세를 받았다고 해서, 또 주일 날 미사에 참석한다고 해서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온전히 따른다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생활 전반에서 그리스도를 따르고 그분의 뜻을 실천할 때만이 예수님을 구세주로 고백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결국 우리 신앙인의 삶의 근저에는 예수님을 살아 계신 분으로, 하느님의 아들로,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구세주로 확신하고 믿는 신앙이 자리하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선택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에 있습니다.
하늘나라의 열쇠란 오늘 복음에서처럼 맺고 푸는 기능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것들에 매여 있는 우리의 마음을 세상 것들로부터 풀어서 다시 그리스도의 말씀에 우리 마음을 매는 것이 곧 신앙고백의 열쇠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 때문에, 예수님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하고 싶은바 수없이 많은 것들을 포기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안락이나 편리함을 가져다 주는 욕심을 버려야 하고 끊임없이 찾아 드는 미움과 복수심을 포기하여야 하고, 쉽고 빠른 편법을 멀리해야만이 우리는 하느님께 충실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선택은 곧 포기입니다. 수많은 가능성들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것 그것은 곧 그 하나의 선택을 위해 수없이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포기는 곧 하나의 선택을 위해서일 때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하느님 때문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지는 곧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하는 질문과 동일한 의미를 지닙니다. 또한 이 땅과 하늘나라의 맺고 푸는 열쇠란 이 세상에서 우리가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선택하여야 하는지를 분명히 하라는 요구이기도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양다리를 걸쳐 하는 야합이나 결탁을 절대로 용납 치 않으십니다. 적당히 세상의 불의를 맞아들이고, 적당히 하느님께 머리 숙이는 이중적 신앙을 수용치 않으십니다. 오로지 하느님만을 보장으로 삼아 오로지 하느님께만 우리의 선택을 둘 때 우리의 삶은 온전한 신앙의 고백이 가능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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