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GOOD NEWS

하계동성당 검색
메뉴

검색

검색 닫기

검색

오늘의미사 (홍) 2024년 11월 22일 (금)성녀 체칠리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너희는 하느님의 집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하계동 메아리
"광야에서 세레자 요한과 안드레야로"_하계동 메아리 -제 693호

16 고창록 [peterkauh] 2006-01-16

 

연중 제2주일

 

“광야에서 세례자 요한과 안드레아로”

 

그대 지금 황량한 사막에 서 있나요?

남들은 옥토 위에서 풍족한 태양과 비를 즐긴다는데, 그대 서 있는 곳만은 목이 타고 대지는 메마르고 은총의 단비는 요원해 보이고 주위 사람들마저 등을 돌리고…. “아 미치겠다. 하느님은 나를 완전히 버리시는가?!”

그러나 바로 지금 이 순간 하느님은 곁에 계십니다. 한 때 풍요 속에서 누리던 오만과 무절제와 허세와 낭비의 심리적 기준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당신에게서 보다 완전한 회개를 기다리시며 하느님은 당신 곁에 계십니다. 지금이 당신에게 끝이 안 보이는 ‘어둠’으로 느껴진다면, 황량한 사막, ‘광야’의 연속으로 느껴진다면 광명과 은총의 대지는 가까이 도래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불가피했던 40년 광야 생활의 어느 좌표에 자신이 서 있는지는 스스로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이 시기야말로 보다 철저한 회개를 통해 자신의 영적인 그릇을 키워 하느님을 만날 시기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처음 자신을 보여준 사람은 막달라 여자 마리아였습니다(요한 20,11-18). 울고 있던 마리아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이 때 흘렸던 막달라 마리아의 눈물은 아가서에서 사랑하는 임을 애타게 찾는 이의 눈물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을 목말라하는 이에게 당신을 보여 주시고 깨달음에로 이끌어 주십니다. 많은 교우들이 이 ‘밤’의 시기, ‘광야’의 시기에 이르러서는

자칫 하느님을 떠나려 합니다.


“와서 보시오”(요한 1.39) 하고 이르신 예수님의 부름에 응한  제자들과 ‘하느님께서 들어주신’

이란 뜻의 이름을 가진 사무엘은  ‘주님의 예언자’(1사무 3,20), ‘이스라엘의 판관’(1사무 7,6.15)으로서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죽을 때까지(1사무 25,1) 한결같이 그분께 충실했습니다. 사무엘의 신실한 삶의 모습은 오늘 우리가 본받아야 할 전형입니다.

한 편으로 주님을 깨달은 안드레아가 형 베드로에게 가서 “우리가 찾던 메시아를 만났소”라고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듯이, 깨달은 자는 자신 안에서 머무를 수 없습니다. 세례자 요한 또한 손으로 예수님을 가리키며 “하느님의 어린양이 저기 가신다”고 말하여 자신의 제자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따르도록 인도한 것을 상기하며, 오늘날 우리 자신이 세례자 요한과 안드레아가 되어야 합니다.

 요한 복음은 이렇게 말합니다 :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요한1서 4,8). 사랑이신 하느님을 깨달은 자는 자연히 그 사랑을 실천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전례와 교리                  

    

                             연중시기: “말씀”을 경청하고 결단을 내리자

‘탕자의 비유’(루가 15,11-32)를 보면 역설의 비유가 두드러지게 드러납니다. 도대체 아버지의 명을 한 번도 거스른 일이 없이 머슴처럼 일만 죽으라고 했던 큰아들은 아버지가 들어오라고 해도 아버지 집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사정을 해도 안 들어갑니다.

그런데 집안의 돈을 몽땅 가지고 가서 술과 노름과 여자로 다 탕진한 작은아들은 대환영을 받으면서 아버지의 집에 들어갑니다. 묘합니다. 자기는 아들이라 불릴 자격도 없다고 하는데도 그는 착한 큰아들보다 더 풍성한 대접을 받는 듯이 보입니다. 이게 도대체 어찌된 일입니까?

인간은 누구나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모두가 다 깊이 떨어질 수 있고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하느님의 반대 세력으로 세상을 바보처럼 살 때도 있습니다. 그런 때는 누가 뭐라고 해도 귀에 들리지 않으며 아무리 좋은 것을 앞에 놔 줘도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인생이 그런 식으로 끝까지 일관한다면 그것은 불행입니다. 비극입니다. 인생은 결코 그런 것이 아닌데 그것을 뒤집어서 거꾸로 산다면 참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사람은 아무리 큰 성공을 했다 해도 자신을 진실하게 바라볼 줄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더구나 죄인 아닌 인생이 없습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자기 죄를 모르고 제 고집대로 걸어간다면 그것은 대단히 어리석은 일입니다. 인생이 무엇에 묶여진 줄을 모르고 또 어디로 끌려가고 있는지를 모른다면 그가 아무리 열심히 믿었다 해도 그가 걸어가야 할 길이 얼마나 멀고 아득한지를 깨닫게 해줍니다. 베드로와 안드레아는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그물을 버리고 따라갔고 야고보와 요한은 아버지를 떠나서 주님을 따라갔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대단한 결단의 용기이면서 동시에 묶여진 삶을 단절하는 위대한 변화, 은총이었습니다. 회개는 바로 그런 것입니다. 아무리 좋아도 그것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면 그냥 내버리고 툭툭 털고 주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아무리 인정에 얽매였다 해도 그것이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아니라면 단호하게 끊고 빈손으로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본당의 주보 성인 : ‘반느의 성모’ 발현 역사

 


1933년 1월 15일과 3월 2일 사이에 성모 발현이 일어났으며, 목격한 이는 12세의 마리에트 베코라는 소녀였다. 그리고 발현은 8차례 일어났으며, 모두 저녁 7시경에 이루어졌다.

1월 15일 교실에서 창 밖을 보다가 매우 아름답고 빛나는 부인이 그녀에게 미소를 지으며 손짓으로 부르는 장면을 목격하였다. 마리에트는 성모님이라고 생각했지만 어머니나, 신부는 믿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환시는 계속되었고, 세 번째 발현 때는 “나는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할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받았으며, 3월 2일 마지막으로 발현할 때 “나는 구세주의 어머니, 하느님의 어머니이다. 기도를 많이 하여라.”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그 후 1937년 리에즈의 주교 케르코프스는 마리에트 베코에게 마리아의 발현을 실제라고 선언하였다. 그리고 교황청의 공식적인 언급이 없는 가운데, 소속 주교는 1949년 8월 22일 이를 재승인하였다.

 

 

 

영적 먹거리


오늘의 묵상



눈물을 흘리며 씨 뿌리는 자,

  기뻐하며 거두어들이리라.

  씨를 담아 들고 울며 나가는 자,

  곡식단을 안고서

  노랫소리 흥겹게 들어오리라.

- 시편 126,5-6



이 골짜기가 끝나는

  거기에 밝은 새벽이 기다리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부활을 통해서 우리 유한성을 당신 무한성에로 접목시키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통 가운데서도 꿈을 키울 수 있고 눈물을 흘리는 중에도 웃음을 간직할 수 있게 되었다.

 

 

❍ 65세의 청년 ❍


한 노인이 오랫동안 해오던 요식업에서 완전히 실패하여 빈털터리가 되었다. 그동안 수고하여 가

꿔놓은 사업이 사라지고 65년의 생업이 물거품이 된 것이다. 그에게는 낡은 자동차와 은퇴 보장금 105불이  전부였다. 그러나 그는 지금까지 그랬듯이 죽는 순간까지 열정적인 삶을 살기로 다짐했다. “녹슬어

바스러지기보다 있는 힘을 다해 일하여 탈진하여 죽으리라.”  그는 전에 경험이 있었던 닭튀김 장사를 65세에 다시 시작했다. 주위 사람들의 비아냥 속에 당시 인기도 없던 치킨제조의 노하우를 키워 특허로 내고 희망을 키워갔다. 그의 체인점이 켄터키에서 인디애나 주로 그리고 다시 캔자스로…. 끊임없는 그의 노력은 결국 미국 전역에 수백 개의 체인점으로 확대되고 드디어는 전 세계로 확장되었다.

이것이 세계적인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이고 그 노인이 바로 ‘커넬 샌더스’이다. 체인점마다 앞에 서 있는 할아버지 모형은 65세의 청년이 이루는 희망의 상징이다.

 

 

계절의 유머

 

• 어른들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 아이들에게 묻는다.

“너 자라서 뭐가 되고 싶으니?”

- 폴라 파운스톤


- - - - - - - -


• 한 외과의사가 그의 환자에게 물었다.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는데 어느 것을 먼저 듣고 싶으세요?” 환자가 “나쁜 소식 먼저 말해주시오.”라고 대답했다.

의사는 “부득이 당신의 두 발을 절단해야 할 것 같습니다.” 심히 낙담한 환자가 다시 “그럼 좋은 소식은 뭐죠?”라고 물었다. 의사는 대답했다.


“이웃 침대에 있는 환자가 당신의 슬리퍼를 사고 싶어 합니다.”

 


1 111 2

추천  1 반대  0

TAG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로그인후 등록 가능합니다.

0 / 500

이미지첨부 등록

더보기
리스트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