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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24년 11월 23일 (토)연중 제33주간 토요일하느님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하계동 메아리
[위대한 신앙, 그리고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제 701호

27 고창록 [peterkauh] 2006-03-12

 

[사순 제2주일 ]

 

     “위대한 믿음, 고통 뒤의 영광”

    마르 9,2-10 / 창세 22,1-2.10-13.15-18

 

오늘 복음 말씀에서는 예수께서 당신이 사랑하시던 3명의 제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셔서 당신이 빛처럼 하얗게 변모되는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이것은 당신의 권위와 기적의 과시가 아니라 자신이 수난의 길을 걷기 전에 장차 다가올 주님의 수난과 능욕 그리고 죽음이라는 엄청난 사건을 통해 겪게 될 좌절과 혼란에서 제자들이 자포자기하지 않도록 하고, 그 이후에 도래할 예수 부활이라는 하느님으로서의 영광을 예고하심으로써 제자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시려는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런 계시적 의도를 쉽게 간파하지 못하는 순진한 베드로 사도는 너무나도 놀라운 광경을 보고 문득 말합니다.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꿈속에서나 상상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선언한 베드로의 출중한 신앙고백에도 불구하고(마르 8,29) 필연적으로 수난을 겪을 수밖에 없는 당신의 운명을 밝히신 것입니다(마르 8,31).

이 사건에는 바로 예수님의 메시아적 왕권(시편 2,7)과 야훼의 종의 운명(이사 42,1)이 동시에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메시아의 영광이 고통을 통해서 구현된다는 사실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그 때 구름 속에서 들려오는 하느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잘 들어라.”


이 내용은 오늘 제1독서에서 아브라함이 늘그막해서 얻은 하나뿐인 자식 이사악을 서슴지 않고 하느님께 번제물로 바친 내용과도 연관됩니다. 여기서 번제물로 바친다는 것은 이사악의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내고  각을 떠서 제단 위에 태워서 바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하느님의  명령은 너무도 잔인하고 끔찍한 것이었습니다. 눈에서 피눈물이 나는 참혹한 일이었지만 그는 하느님께 모든 것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이 위대한 신앙에 대한 보상으로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후손이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처럼 불어나게 되리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또한 하느님께서도 당신의 사랑하시는 아들을 바로 우리 인간들을 위해서 아끼지 않으시고 바치시는 그분의 사랑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 부활의 영광도, 아브라함이 믿음의 표상이 된 것도 고통과 희생이 따르지 않고는 얻어질 수 없는 사건이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동시에 우리는 이 진리가 오늘 우리의 삶 속에 살아 있음을 직시해야 하겠습니다. 비록 우리의 일상이 고통과 한 맺힘으로 점철된다 할지라도 이 사순 시기를 통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잘못된 것을 바꾸도록 요청하시는 주님의 가르침을 따를 때 고통 다음의 영광과 은총이 바로 우리의 것이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이 회개가 자신의 힘만으로 이루어진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우리를 위해 당신의 아들까지도 내 놓으신 하느님의 사랑과 도우심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죽음 직전의 그 처절한 고통 속에서도 "주님 저 죄 많은 인간들을 용서 하소서"라고 기도하신 예수님의 마음에 귀 기울입시다. 그래서 사순과 부활은 우리의 희망이요 용기의 원천입니다. 아멘

 

 

 

[전례와 교리 ]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예수께서 기도하시는 동안 그 모습이 변하고 옷이 눈부시게 빛났습니다. 그 때 난 데 없이 두 사람이 나타나 예수님과 얘기하고 있었습니다.

서기 29년 8월, 예수님이 돌아가시기 1년 전의 일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서해 항구도시 치사레아에서 당신은 자신의 수난과 죽음을 예고하기 시작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신을 버려야 한다.”


부유하고 권력있는 로마인들이 살고있는 그 곳의 정취와는 거리가 먼 얘기였습니다. 이곳에서 전교를 마치신 다음 6일 후 바로 타볼산에서 이 거룩한 변모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산에서 기도하고 계실 때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오고 빛나는 구름이 몰려오고 예수님의 얼굴과 옷이 빛났다는 것은  성부께서 영 안에 그의 아들  성자 안에 현존하심을 뜻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세례와 소명에 대한 영광스런 증거이며, 아버지와 아들이 일치하는 사랑의 계시였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천상적인 계시의 순간에도 예수님은 지상에서의 인류 구원이라는 대 과업을 계획하고 계셨습니다. 그 순간 예수 이전의 하느님의 두 일꾼인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났고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장차 이루실 일(자신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십니다(루카 9.31). 바로 예수님의 기도 생활은 도피가 아니라 근본적인 과업의 수행과정이었던 것입니다.

 

 

  

                           [ 가정헌장 ]


 1. 가정은 사랑 속에서 몸과 마음이 편히 쉬고

    더불어 사는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2. 가정은 평등한 관계에서 서로 이해하고 도우며

    모든 일이 민주적으로 이루어지는 곳이어야 한다.

 3. 가정은 함께 사는 이들이 믿음으로 맺어져 서로 존중하고

    말과 말이 진실로 통하도록 되어야 한다.

 4. 가정은 물려받은 좋은 풍속을 잘 지키고

    새로운 시대에 맞는 가족 문화를 일구어 나가야 한다.

 5. 가정은 교육의 바탕이 되어야 하고

    어린이 보호와 노인 섬기기를 으뜸으로 삼아야 한다.

 6. 가정은 크고 작은 일을 능력에 따라

    고루 나누어 맡고 책임을 함께 지는 곳이어야 한다.

 7. 가정은 자원을 아끼고 환경을 보호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8. 가정은 어려움에 놓여 있을 때 마땅히 도움을 받아야 한다.

 9. 가정은 이웃을 생각하며 사회와 나라에 이바지해야 한다.

10. 가정은 우리의 영원한 보금자리며

    미래와 세계로 향한 새 힘의 근원이 되어야 한다.

 

 

 

❍ 사순절의 기도 ❍

 

이젠 다시 사랑으로

 

아직은 빈손을 쳐들고 있는

3월의 나무들을 보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경건한 기도를 바치며

내가 나를 타이르고 싶습니다

죄도 없이 십자나무에 못 박힌

그리스도의 모습을 기억하며

가슴 한켠에 슬픔의 가시가 박히는 계절

너무 죄가 많아 부끄러운 나를

매운 바람 속에 맡기고

모든 것을 향해 화해와 용서를

청하고 싶은 은총의 사순절입니다

호두껍질처럼 단단한 집 속에

자신을 숨겼던 죄인이지만

회심하기엔 너무 늦었다고

슬퍼하지 않으렵니다

다시 시작하기엔

너무 늦었다고 말하지 않으렵니다

우리 모두 나무처럼 고요히 서서

많은 말을 줄이고

주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해주십시오

나무처럼 깊숙이

믿음의 땅에 뿌리를 박고 세상을 끌어안되

속된 것을 멀리하는 맑은 지혜를

지니게 하십시오

매일의 삶 속에 일어나는

자신의 근심과 아픔은 잊어버리고

숨은 그림 찾듯이

이웃의 근심과 아픔을 찾아내어

도움의 손길을 펴는

넓은 사랑을 지니게 해주십시오

현란한 불꽃과 같은 죄의 유혹에서

도망치지 못하고 그럭저럭 살아온 날들,

기도를 게을리 하고도 정당화하며

보고, 듣고, 말하는 것에서

절제가 부족했던 시간들,

이웃에게 쉽게 화를 내며

참을성 없이 행동했던 지난날의 잘못에서

마음을 돌이키지도 않고

주님을 만나려고 했습니다

진정한 뉘우침도 없이

적당히 새 날을 맞으려고 했던

나쁜 버릇을 용서하십시오

이젠 다시 사랑으로 회심할 때입니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교만에서 겸손으로

불목에서 화해로

증오에서 용서로

새로운 길을 가야 하지만

주님의 도우심 없이는

항상 멀기만 한 길입니다

이젠 다시 사랑으로 마음을 넓히며

사랑의 길을 걷게 해 주십시오

오직 사랑 때문에 피 흘리신 예수와 함께

오늘을 마지막인 듯이 깨어 사는

봉헌의 기쁨으로

부활을 향한 사랑의 길을

끝까지 피 흘리며 가게 해 주십시오

아직은 꽃이 피지 않은

3월의 나무들을 보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기도하며

보랏빛 참회의 편지를 쓰고 싶습니다.

 

 

 

                 - 이해인 수녀 -

 

 

 

 

 

 

 

사순에 떠올리는 영적 먹거리  둘

 

 

 끈기 1:        나를 짓이겨요

 

“네 위를 수례가 짓이기고 굴러도

네 위를 여왕님이 밟고 걸어도

네 위에 소가 입김을 뿜어대도

너는 모두 참아냈다

그리고 그 힘으로 나라 안에 번지는

모든 독과 질병과 싸워 이겼다.”

 

이는 질경이를 묘사한 11세기 한 의학 서적의 묘사입니다.

봄에 어린 싹이 나물이 되는 질경이는 잎과 뿌리,

그리고 잎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분이

우리 몸에 독을 없애는 약으로 쓰입니다.

질경이가 약이 되는 이유는

바로 모든 것을 참아내는 질경이의 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사순의 봄, 우리 모두 마음속에 질경이 밭을 가꿔봄이 어떨까요.


 

 

❍ 끈기 2:  고다드 처럼

 

“어떤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어제의 꿈이 오늘의 희망이요 내일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로켓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미국의 발명가 로버트 H. 고다드 박사는

1919년 정말 꿈같은 ‘공상’을 피력했습니다. 그것은 달에 로켓을

보내겠다는 포부였습니다. 그러자 1920년 1월 23일 <뉴욕 타임즈>는

이에 대해 “어리석은 꿈을 꾸고 있는 황당한 연구가의 공상”이라고

그를 조소했습니다. 그리고 1944년 그는 사망했습니다.

 

 그리고 1969년 <뉴욕 타임즈>는 49년 전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고다드의 꿈을 조소했던 사설 내용을 취하하는 기사를 냈습니다.

바로 그해 인류는 고다드의 연구로 만들어진 로켓을 타고 달을 정복했던 것입니다.

 

 이 사순에 로버트 H. 고다드의 끈기와 같은 신앙,

그리고 그런 신념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워봄이 어떨지요.


 

“어떤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어제의 꿈이 오늘의 희망이요 내일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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