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벌과 함께 주시는 은총"__[하계동 메아리 제 7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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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고창록 [peterkauh] 2006-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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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4주일]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요한 3,14-21 / 2역대 36,14-16.19-23 / 에페 2,4-10
참다운 부모는 자식이 대 죄를 지어 세상이 온통 그를 짓밟아도 그에 대한 사랑을 버릴 수는 없습니다. 진정 부모는 자식이 배신과 해악을 거듭한다 해도 그를 증오하거나 저주하지 않고 오히려 그의 미래를 걱정하고 더 많은 애정과 희생을 쏟게 됩니다.
하느님의 이스라엘에 대한 사랑, 바로 우리 모두에 대한 사랑이 그런 부모님의 사랑입니다. 아니 부모는 자식을 버릴 수 있을지 몰라도 하느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아무리 그분의 충고와 질책이 혹독하다 할지라도 그것은 헤아릴 수 없이 깊은 사랑의 매인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1독서에서 이스라엘은 죄를 지어 벌로써 바빌로니아에 귀양 갔다가 하느님의 자비로 풀려나오지만 소귀에 경 읽기입니다. 예언자들이 나와서 회개를 촉구했지만 오히려 이스라엘은 예언자들을 박해하여 못된 짓만 일삼았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하느님의 책벌을 받아 성전이 무너지고 나라가 망해 백성들 은 포로로 끌려가 혹독한 고생을 합니다. 그런데도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은 무한히 계속됩니다. 페르시아 왕 키루스의 마음을 움직여 백성들이 고국을 찾아 돌아오게 합니다.
이처럼 벌을 허락하면서도 죄인에 대한 사랑만은 끝이 없으십니다. 오히려 더 큰 애정으로 당신의 백성을 바라보셨고 그리고 구원의 새 길을 훌륭하게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죄 중에 있어도, 아무리 혹독한 벌을 받는 상황에서도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를 조금도 떠나지 않으심을 아는 한 우리는 행복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께서 옛날 ‘구리 뱀’ 사건을 상기시키면서 예수님 당신께서 바로 그와 같은 희생 제물로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은 아버지 하느님의 극진한 애정의 발로였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구리 뱀 사건은 이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와 함께 시나이 반도에서 떠돌이 생활을 할 때에 굶주림과 피로에 지쳐서 하느님을 원망하여 불평들을 하게 됩니다. 하느님의 말씀만 믿으면 고생 뒤에 낙이 올 텐데도 바로 눈앞의 현실적인 고달픔 만을 들어 하느님을 의심하고 반항했습니다.
이때 하느님께서 불 뱀을 보내시어 백성들을 벌주셨는데 나중에 백성들이 뉘우치자 모세로 하여금 구리 뱀을 만들게 하여 그 구리 뱀을 보는 사람은 불 뱀에 물려도 죽지 않고 치유되게 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하느님은 이처럼 벌을 주시면서 항상 바로 곁에 자비의 은총도 함께 마련해 두십니다. 다만 회개를 원하실 뿐입니다.
죄 많은 곳에는 실로 은총도 풍성하게 내려집니다(로마5,21 참조). 죄가 세상을 뒤덮어 죽음을 가져왔지만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서 인간의 죽음이 새로운 생명의 삶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고통은 그리스도의 고통으로 치유되었으며 인간의 죽음은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영원한 생명으로 바뀌었습니다. 이것이 하느님 사랑의 표현입니다.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 주셨다”(요한 3,16).
어떤 인간이 죽을 것이 확실한 상황 속으로 하나 있는 아들을 내보내겠습니까.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렇게 하셨습니다. 울부짖는 당신의 아들을 못 본 체하시고(마태 27,46 참조). 죽음의 길을 걷도록 안배하셨습니다. 하느님은 분명히 당신의 아들을 뺏기는 댓 가로 우리 모두를 아들로 받아들이신 것입니다.
기쁨을 묵상하는 사순 제4주일입니다. 지금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하고 있지만 곧 그분의 부활에 동참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죄와 실수에 따른 아픈 매도 있지만 그보다 훨씬 더 큰 하느님의 사랑이 기다리고 있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사순은 기쁨과 희망입니다. 아멘.
[전례와 교리 ]
성체 조배
성체조배란?
“지속적인 성체조배시간을 내어 지극히 거룩하신 성체성사 안에 계신 예수님을 찾아 열렬히 애정과 존경심을 가지고 사사로이 대화하는 것입니다.” (교리 전례 용어해설 P.48)
성체조배는 성체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의 온 존재가 만나는 순간입니다. 창조주이신 주님과 피조물인 우리가 만나는 때입니다. 제자가 스승 곁에 있는 때이고 병자가 의사를 만나는 때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모든 것인 분께 모든 것을 거저 얻는 때입니다. 목마른 자가 메마르지 않는 샘에서 목을 축이는 때입니다. 장님이 빛이신 분을 만나는 순간입니다. 친구가 참된 벗이신 분을 찾아가는 때입니다. 길 잃은 양이 착한 목자를 만나는 순간입니다. 어리석은 자가 지혜를 찾아 얻는 때입니다. 고통 당하는 자가 위로자를 만나는 순간입니다. 신부가 영혼의 신랑을 찾는 때입니다. 젊은이가 삶의 방향을 찾는 순간입니다.
성체조배의 필요성:
“교회와 세상은 성체조배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매우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랑의 성사 안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낌없이 시간을 내어 그분을 만나러 갑시다. 충만한 믿음으로, 또 세상의 엄청난 오류와 범죄들을 보속하려는 마음으로, 그분을 관상하며 조배합니다. 이와 같은 성체조배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1980년 4월 성목요일에 모든 주교들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
성체조배하기 전의 마음가짐 :
이 성체조배가 인생의 마지막 기도인 것처럼, 내가 아니라 내 안에서 예수님이 기도하는 것처럼, 성령님, 성모님이 기도하는 것처럼, 내 안에 예수님, 성령님, 성모님을 모신 몸 자세와 마음가짐으로 가지십시오.
◇ 흠숭의 예 : 성체조배실에 들어가면 먼저 성호를 긋고, 성체 안에 계시는 예수님께 온 마음, 온 정성으로 큰절을 올리면서 흠숭의 예를 드립니다. 어떤 주제를 가지고 성체조배를 할 경우, 이때 얻고자하는 은총을 구할수 있습니다.
◇ 의탁과 봉헌의 기도 : 먼저 오관을 통하여 몸과 마음을 고요하게 하여 흩어진 마음을 하나가 되게 합니다. 이렇게 모아진 마음을 온전히 주님께로 집중하고, 성체 안에 계신 그분께 자신을 소개하면서, 성모님께, 하느님 아버지께, 예수님께, 그리고 성령님께 봉헌하는 기도를 드립니다. 특히 성령님께 우리 마음을 비추어 주시도록 도움을 청하십시오.
◇ 겸손의 기도 : 주님의 말씀을 듣고 묵상하기 전에, 먼저 주님께 잘못한 것에 대해 용서를 청하고, 주님의 자비를 비는 기도입니다.
◇ 묵상기도(30분~40분) : 주님과 대화를 나누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 내면의 기본 자세로 : “주님은 사랑이시다”라는 의식을 가지고 성서 말씀(탄생, 수난, 부활, 설교, 기적 사화 등 자유로이 선택)을 읽고 묵상합니다.
∘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자신을 내어 드리고, 마음으로 주님을 바라보면서, 고요히 사랑을 고백하며, 그 사랑의 품 안에 자신을 내어 맡기는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 하루 중에 자신의 삶 안에서 일어난 일을 가지고 주님과 대화하면서 기도합니다.
∘ 성경 말씀 중에 어느 한 구절이나 한 단어, 혹은 시편의 한 구절을 계속 반복하면서 기도합니다.
◇ 분심이 많을 경우 : 분심의 내용을 메모지에 적어, 정리하고, 그 내용을 의식하면서 주님께 봉헌하며 정화시켜 주시길 청합니다. 혹은 성서를 읽거나 묵주기도, 염경기도 등을 마음으로 천천히 바칩니다.
◇ 사랑의 기도(15분~20분) : 몸과 마음과 영혼이 침작되면, 몸의 움직임 없이 생각을 멈추고, 수동적인 자세로 고요히 성부와 성자와 성령님께 자신을 내어 드리면서, 깊은 침묵으로 사랑의 대화를 합니다.
◇ 청원기도와 결심 : 주님께서 내려주신 은총에 감사드리는 기도, 함께 기억해 주고 싶은 형제들을 위한 청원기도를 드리고, 주님과 이웃에게 행할 수 있는 구체적인 사랑의 실천을 결심합니다.
◇ 마침기도 : 주님의 기도나 아니면 자유롭게 마침기도를 바치고 성체 안에 예수님께 큰절을 올린 다음 조배실을 나옵니다.
◈ 기도 중에 이해하기 어려운 체험이나 깨달음이 있으면 개인 묵상 노트에 적고, 영적 지도자의 지도를 받습니다.
[영적 먹거리 ]
❍ 오늘의 묵상 ❍
“운명을 바꾼 4개의 사과”
성서에 나오는 ‘아담의 사과’, 고대 도시국가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의 사과’, 스위스의 ‘빌헬름 텔의 사과’, 그리고 과학자 ‘뉴턴의 사과’가 그것입니다.
아담의 사과.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하느님의 금기를 어기면서 인간은 몸을 가리게 되고 낙원에서 쫓겨나고 ‘생각이 많은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됩니다.
파리스의 사과는 그리스·로마신화에 나오는 사과입니다. 신들의 파티에 초대받지 못한 불화의 신이 파티 장에 황금사과 한 개를 던져놓고 가자, 다른 신들은 황금의 사과를 차지하기 위해 다툼을 벌입니다. 제우스로부터 선택권을 얻은 파리스는 권력이나 지혜를 주겠다는 신들 대신 미인계를 쓴 아프로디테에게 사과를 넘겨주고 스파르타의 왕비 헬렌을 차지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파리스는 그리스의 젊은 영웅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던 헬렌을 취함으로써 그리스 연합군의 공격을 받아 ‘트로이 멸망’이라는 값비싼 대가를 치릅니다. 한 개의 사과 때문에 한나라의 흥망성쇠가 결정된 것입니다.
세 번째 사과는 14세기 스위스의 사냥꾼 빌헬름 텔의 사과입니다. 스위스를 지배하고 있던 오스트리아의 총독은 자신의 모자를 길가에 걸어놓고 스위스인들에게 인사를 하게 만들었지만 명사수였던 텔은 일부러 인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잡혀간 텔이 명령에 따라 아들 머리 위에 얹어놓은 사과를 화살로 명중시켰지만 유배형에 처해집니다. 유배지에서 탈출한 텔은 결국 총독을 화살로 쏘아 죽이고 스위스의 독립운동에 불을 지핍니다. 빌헬름 텔의 사과는 약소국의 독립운동에 불을 붙인 도화선이 된 것입니다.
뉴턴의 사과. 중력의 법칙을 발견하기까지 주저앉아 한숨만 내쉬던 뉴턴에게 나무에 매달려있던 사과가 떨어지면서 만유인력의 결정적인 단초를 제공하고 이는 근대과학을 발전시키는 획기적인 사건이 됩니다.
사실 이런 사과는 순간순간 우리 앞에 놓여 져 선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사순 시기 우리 앞에는 지금 어떤 사과가 놓여있습니까? 회개와 희망의 빛, 아니면 자만과 허세의 어둠, 어느 것을 택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