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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24년 11월 23일 (토)연중 제33주간 토요일하느님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하계동 메아리
"크리스챤, 당신은 누구입니까?" -- [하계동 메아리 707호]

33 고창록 [peterkauh] 2006-04-25

 

[부활 제2주일/2006, 4.23]

크리스챤, 당신은 누구입니까?

 

제1독서  사도  4,32∼35  “신자들의 공동체는 한마음 한 뜻이 되어, … 주 예수님의 부활

                          을 증언하였고, 모두 큰 은총을 누렸다.”

제2독서 1요한  5,1∼6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

                          님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

복   음  요한 20,19∼31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

                          다.”


 안식일 다음날 저녁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무서워 어떤 집에 모여 문을 모두 닫아 걸고 있을 때 부활하신 예수께서 들어오셔서 그들 한 가운데 서시며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하고 인사하시고 나서 당신의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셨다. 그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던 토마에게 다른 제자들이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 하자 토마는 “나는 내 눈으로 그분의 손에 있는 못자국을 보고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어 보고 또 그분의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동양 문화의 바탕이 초감각적으로 대상을 직접 받아들이는 직관(直觀/intuition)이라면 서구 문화의 바탕은 경험적, 감각에 의존하여 손으로 만져보고 눈으로 확인시키며, 추리와 판단 에 의존하여 입증한 것만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논리(論理/logic)에 입각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인류의 물질문명은 실재로 서구인들에 의해 주도 되어왔습니다.

 

 오늘 우리의 주인공 토마스는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한 다른 제자들의 증언에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라고 답합니다. 서구적 논리에 의하면 그는 당연한 자신의 생각을 솔직히 피력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을 뵈었다는 다른 제자들의 증언은 상식을 벗어나며 허구요 기만으로 여겨진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도 토마스를 나무랄 수 없을 것입니다. 토마스는 사실 가장 충직한 제자였습니다. 수난 전 제자들 중에서 유일하게 “주님과 함께 잡혀가서 죽자”고  했던 토마스였습니다. 또 예수님의 억울한 죽음을 가장 통절하게 확인하고 받아들였던 토마스였습니다. 그의 생각으론 도저히 되살아나신 예수님을 인정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사실은 원래 우리 모두가 토마스이었으며 지금도 그 토마스가 아닌지? 눈으로 직접 보고 손으로 만져 봐야만 믿음을 갖는 존재! 뜻하지 않은 횡재나 명예라도 손으로 눈으로 확인해야 은총을 받았다고 믿는 사람들은 아닌지? 또는 자신이 꼭 무슨 역할을 해야 은총이 온다고 믿는 껍데기 신앙인! 

그러나 사랑 지극하신 주님은 이 토마스와 오늘 우리를 위해 다시 발현하십니다.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안에 모여 있는데 문이 잠겨 있는데도 예수께서 들어오셔서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하고 인사하신 다음 토마스에게 “네 손가락으로 내 손을 만져 보아라. 또 네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하고 말씀하시니 토마스가 예수님께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하고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너는 나를 보고야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고 말씀하셨다.


 주님의 자상하고 각별하신 배려 때문에 토마스의 ‘논리’ 수준의 신앙은 비 온 뒤의 땅이 더 굳어지듯 “보지 않고도 믿는” 확고한 신앙 고백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주님은 그 이후 인도(India) 지방에서 복음을 전파하도록 토마스를 파견하실 때도 유사한 섭리로서 인도하신 것으로 알려집니다.

 

 주님은 지극하신 사랑으로 천박하기 그지없는 우리의 의심과 회의에 끊임없이 믿음이 부활되도록 배려하십니다. 허약하기 그지없는 우리에게 매년, 아니 매주 부활하신 주님을 체험하도록 배려하신 것입니다. 교회는 이런 섭리를 수행하시는 하느님의 도구입니다. 당신은 얼마나 자주 진심으로 고백하십니까?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당신은 나의 사랑이십니다”라고!

 

 하느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이 이 믿음입니다. 그래서 ‘믿음에 불가능은 없다’는 말은 늘 입증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쳐 주실 때에도 믿음은 언제나 최고의 축복 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은 자를 살려내시고 병든 자를 고쳐 일으켜 새우시는 기적을 행하실 때마다 말씀하셨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라고. 믿음이 바로 최고의 약이며 그 자체로서 능력이고 기적임을 당신 가슴에 새기십시오. 그러나 믿지 못하고 의심했을 때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며 오히려 엄한 심판만이 기다리고 있음도 마음에 새겨 두십시오.

 

  그러면 믿음은 무엇에 대한 믿음입니까?

막달라 여자 마리아도(요한 20,11∼18 참조), 엠마오로 가던 길의 두 제자도(루카 24,13∼35 참조), 티베리아 호수에서의 일곱 제자들도(요한 21,1∼14 참조) 전혀 몰랐던 부활, 우리는 확고하게 믿어야 합니다.

 

 크리스챤, 당신은 누구입니까? 무엇 하는 사람입니까?

- 나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우리 자신의 마지막 부활을 믿고, 또 증거하는 사람입니다.


 

 


                     ❍ 오늘 새겨 보는 명언 ❍


   “상황은 비관적으로 볼 때만 비관적이 된다.”                    

                                                                                                                   -빌리 브란트

 

   “속이려고 하지 말고 차라리 속임 당할 준비를 하라. 속이면 모든 것을 잃는다.”

   “꽃을 보러 꽃이 만발한 곳을 찾아 헤매지 마라. 그대 가슴에 꽃이 만발한 정원이

     있다.”

                                                                                                                    - 까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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