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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홍) 2024년 11월 22일 (금)성녀 체칠리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너희는 하느님의 집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성 안드레아 김대건과 성 바오로 정하상과 동료 순교자 대축일

159 전창문 [cmjun] 2003-09-21

성 안드레아 김대건과 성 바오로 정하상과 동료 순교자 대축일(나해-03)

                                                                              2003, 09, 21

 

   9월은 순교자 성월이며 오늘은 성 안드레아 김대건과 성 바오로 정하상과 동료 순교자 대축일로 이 땅에 신앙의 씨앗을 심기 위해 순교하신 순교자들의 굳은 믿음과 대담 무쌍한 용기를 찬양하고 본받으며 순교자 정신을 묵상해 보는 날입니다.

 

   사극(史劇)이나 수사극 항일, 반공, 전쟁 등에 관련되는 T. V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죄인을 심문하는 과정에서 고문하는 광경을 종 종 볼 수 있습니다. 고문이란 죄인에게 육체적 또는 정신적 고통을 줌으로서 자백을 강요하는 심문방법입니다. 따라서 죄인의 인권이 완전히 무시되는 비인간적 심문방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사회일수록 고문에 의한 심문방법은 점점 사라지지만 그렇지 못한 후진국일수록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요즘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중 장희빈이란 사극이 있습니다. 이 드라마의 내용 중에 장희빈에 홀딱 빠진 숙종 임금은 왕비인 인현왕후를 폐비시킵니다. 왕의 이런 부당한 처사에 대부분의 신하들은 아무 소리를 못하지만 두 신하가 옳지 못함을 간합니다. 그렇지만 이미 마음이 굳을 대로 굳어진 왕은 충언하는 신하를 엄한 벌로 다스립니다. 그래서 이 신하는 왕의 미움을 받게 되고 심한 고문 끝에 유배를 가서 결국 그곳에서 죽게 됩니다. 드라마지만 그 신하가 혹독한 고문을 당하는 장면을 보게 되면 나도 모르게 몸에 소름이 끼치는 전율을 느끼게 됩니다. 왜 이 신하는 미련스럽게 왕의 미움을 사고 혹독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뜻을 굽히지 않았는가? 다른 신하들처럼 왕의 비유를 맞혔다면 부귀 영화가 보장됐음에도 모든 것을 마다하고 생명까지도 포기면서 직언을 하였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 땅에 신앙을 지키기 위해 순교하신 순교자들을 기억해 봅니다. 순교자들은 무엇 때문에 세상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생명까지 내놓으면서 그런 혹독한 고문과 형벌을 기꺼이 받아야 했는가? 나에게 그런 혹독한 고문이 주어진다면 잘 참고 이겨내면서 순교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자신이 없습니다. 순교는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이고 만약 그런 상황이 닥친다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현재로는 도저히 순교할 용기가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이 솔직한 고백입니다.

  

   우리 한국 교회는 1784년 이승훈이 북경에서 베드로라는 세례명으로 영세를 받고 신앙이 전파된 이래 근 100년간에 걸쳐 끊임없이 크고 작은 박해를 받았습니다. 이 기간동안 일어난 수많은 박해 중에서도 순조 때인 1801년 신유박해, 헌종 때인 1839년 기해박해와 1846년 병오박해, 고종 때인 1866년 병인박해가 가장 혹독한 박해로 교회의 4대 박해라고 하고 이 기간 동안 우리 교회는 일만 여명이 넘는 순교자를 냈습니다.

 

   순교자들은 당시에 신앙을 갖는 것이 곧 자신의 생명을 바치는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면서도 몰래 교리를 배우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배교한다는 말 한마디만 하면 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는 믿음을 보였습니다. 이들은 심한 고문에 의한 육체적 고통과 아픔 속에서도 끝가지 굴복하지 않고 신앙을 지켰습니다. 이분들이 당한 박해와 고문은 너무나 혹독한 것이었는데 고문이 얼마나 처참했는가를 조금이나마 이해하려면 양화진 성당 순교자 기념관에 진열되어 있는 고문 도구를 보면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순교 성인들은 이처럼 끔직한 육체적, 정신적 아픔과 고통 속에서도 끝까지 신앙을 지키고 하느님을 위해 세상의 부귀 영화뿐 아니라 생명까지 바치신 분들입니다. 많은 순교자들 중 한 분으로 우리가 10월 25일 도보 성지 순례 계획을 갖고 있는 제천 베론에서 백서를 쓰신 황사영 순교자의 이야기는 이분께서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믿음이 얼마나 굳건하였나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1774년에 태어난 황사영(알렉시오)은 그의 선조 10여 대가 판서 벼슬을 지낸 명문가로서 어려서부터 신동으로 불릴 만큼 영리해 16세에 과거를 보아 진사에 장원 급제합니다. 정조는 그를 친히 궁으로 불러 손목을 어루만지며 "네가 20세가 되거든 내게로 오라. 내가 네게 높은 벼슬을 주고 네게 나라의 큰 소임을 맡기겠노라"고 치하합니다. 그래서 그는 국왕이 만진 손목에 풍속에 따라 붉은 비단을 감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황사영은 앞날의 부귀영화가 보장된 분이셨습니다. 그렇지만 황사영은 당대의 석학들을 만나 학문을 넓히던 중 다산 정약용 일가를 만나게 되고 다산의 큰형 정약현의 사위가 됩니다. 처가인 마재 정(丁)씨 집안으로부터 천주교의 교리에 대해 전해듣고 그 오묘한 진리에 깊이 매료되어 중국인 주문모 신부로부터 알렉시오라는 본명으로 영세를 받습니다. 그 후로 활짝 열려 있던 출세 길을 버리고 주 신부를 도와 복음을 전하는데 전심 전력하게 됩니다.  

 

   10년이 지난 1801년, 전국에는 천주교를 믿는 이들을 잡아죽이는 신유박해가 일어나고 이 박해로 인해 주문모 신부를 비롯하여 이승훈, 정약종 등 조선 교회의 핵심 지도자들이 순교하게 됩니다. 그런 가운데 황사영에게도 체포령이 내려지게 되자 박해의 손길을 피해 서울을 빠져 나와 충청도 제천 배론으로 숨어들게 됩니다. 배론의 옹기 가마골에서 숨어 지내며 자신이 겪은 박해 상황과 김한빈(베드로), 황심(토마스) 등으로부터 수시로 전해지는 바깥의 박해 상황에 대해 기록하던 중, 그 해 8월 주문모 신부의 치명 소식을 듣게 됩니다. 낙심과 의분을 이기지 못한 그는 북경 주교에게 보내는 탄원서를 가는 모필로 명주천에 적었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황사영 백서입니다. 불행스럽게도 옷 속에 이 비밀 문서를 품고 가던 황심이 붙잡힘으로써 백서는 북경 주교에서 전해지지 못한 채 사전에 발각되고 황사영은 9월 29일 체포됩니다.

 

   이 백서 사건으로 그는 즉시 의금부에 끌려가고 그가 쓴 백서를 받아 읽은 조정 대신과 임금은 크게 놀라 그를 극악 무도한 대역 죄인이라 하여 참수시키고 그것도 모자라 시신을 여섯으로 토막 내는 처참한 육사형을 내립니다. 이렇게 그는 나라를 팔아 넘기려는 대역 죄인의 오명을 쓰고 11월 서소문 밖에서 처형되는데 이 때 그의 나이 27세 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모친은 거제도로, 부인인 정 마리아는 제주도로, 그의 두 살 짜리 아들 황경헌은 추자도로 각각 유배되고 십수 명이 공범으로 처단되게 됩니다. 미래가 보장되어 있던 황사영이었지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모든 부귀영화를 헌 신짝처럼 버리고 생명까지 바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찬양하고 존경하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순교자들은 "하느님께서 우리편이 되셨으니 누가 감히 우리와 맞서겠습니까? 누가 감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혹 위험이나 칼입니까?"라고 하신 제2독서의 사도 바오로의 말씀처럼 세상의 그 무엇도 이분들을 하느님께 대한 사랑에서 떼어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오늘 이분들을 공경하고 이분들의 순교 정신을 본받기 위한 대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신앙의 자유가 주어지고 있는 현대에서 옛날과 같이 목숨을 바치는 순교는 없지만 우리에게 또 다른 순교정신을 필요로 하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순교 정신은 부모 형제를 버리는 것도 죽음을 택하는 길도 아닙니다. 또 매를 맞고 고문을 당하고 옥고를 치르는 일도 아닙니다. 단지 오늘 복음 말씀처럼 "사람이 온 세상을 얻는다해도 제 목숨을 잃거나 망해 버리면 무슨 이익이 있겠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을 잘 알아듣고 실천하며 사는 사람이 순교정신으로 사는 사람일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느님의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고 이 사회의 어둠과 부패를 막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 할 때 그것이 바로 우리신앙 선조들의 순교 정신을 이어 받는 신앙일 것입니다. 이 미사 중에 우리는 얼마나 순교 정신을 이어가며 이 사회에서 빛과 소금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 반성하면서 순교자 정신을 본 받을 수 있는 은총을 구해야 하겠습니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매일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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