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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령의 날(나해-03)

161 전창문 [cmjun] 2003-11-08

위령의 날(나해-03)

                       2003. 11. 02.

 

   해마다 이때가 되면 산과 들을 아름답게 물들게 했던 단풍들이 낙엽이 되어 바람에 날리면서 사람들의 발에 밟히기도 합니다. 한 여름에 푸름으로 젊음과 힘을 과시했던 나뭇잎들이 누렇게 변색되어 힘없이 떨어져 날리는 모습을 볼 때 인생의 무상함과 장차 우리가 맞이할 죽음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때문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네 계절 가운데 이 가을의 계절만이 인간을 깊은 사색에 잠기게 해 줍니다.

 

   교회는 이런 계절을 맞이하여 11월을 위령의 달로 정하고 우리 보다 먼저 이 세상을 사시다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 기도하고 우리의 죽음에 대해서도 묵상하게 합니다. 특별히 오늘 위령의 날은 이 세상을 살다 돌아가신 연령들을 위해 살아 있는 우리들이 기도하고 희생할 것을 권고하는 날입니다. 그 이유는 연령을 위한 기도와 희생은 이미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 유익하고 필요할 뿐 아니라, 기도와 희생을 바치는 우리에게도 기도가 되고 축복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돌아가신 부모님이나 조상들을 위해 합동 위령미사를 봉헌하고 기도함으로 혹시라도 아직 연옥에서 단련을 받고 있는 영혼이 있다면, 하루 빨리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릴 수 있도록 기원해야 하겠습니다.

 

   죽은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일은 우리 가톨릭 교회가 보존해 온 오랜 전통이요, 아름다운 일입니다. 죽은이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성서적으로나 신학적으로 연옥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하느님 앞에 나아가 심판을 받게 되는데 하느님의 심판 기준은 오늘 제1미사 복음에서처럼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우리를 심판하신다고 하십니다. 주님의 가르침과 법에 따라 올바르게 산 사람에게는 축복이 주어지지만 반대로 하느님의 법을 거슬리고 악하게 산 사람은 영원한 멸망이 따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저주를 받을 만큼 악하게 살지는 않았지만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엔 부족한 사람들이 보속과 단련을 통해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곳이 연옥입니다. 그렇지만 연옥 영혼들은 자체적으로 공을 세울 수 없기 때문에 살아 있는 우리들이 기도나 희생과 미사를 통해 대신 보속해 주어야 합니다. 산 이와 죽은 이는 기도로서 서로 통하게 됨을 우리는 사도신경을 통해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연옥이 있고 죽은 자를 위해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이유를 마카베오 후서 12장 38-45절에 분명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죽은 자들을 위한 속죄 제사-"유다와 그의 부하들은 전사자의 시체를 묻어야 할 날이 촉박하였으므로 시체들을 거두러 가야만 했다. 그 시체들을 그 다음날 조상들의 묘소에 운반하여 친족들의 옆에 함께 묻어 주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시체 하나 하나의 옷을 들쳐 보니 그들은 얌니아의 우상을 부적으로 지니고 있었다. 유다인이 이와 같은 물건을 몸에 지니고 있는 것은 율법이 금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죽은 것이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는 것이 분명하게 되었다. 그들은 숨은 일을 모두 드러내시는 정의의 재판관이신 주님을 모두 찬양하였다. 그리고 죽은자들이 범한 죄를 모두 용서해 달라고 애원하면서 기도를 드렸다. 고결한 유다는 군중들에게 죄지은 자들이 받은 벌이 죽음이라는 것을 눈으로 보았으니 이제는 그들도 죄를 짓지 말라고 권고하였다. 그리고 유다는 각 사람에게서 모금을 하여 은 이천 드라크마를 모아 그것을 속죄의 제사를 위한 비용으로 써 달라고 예루살렘으로 보냈다. 그가 이와 같이 숭고한 일을 한 것은 부활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일 그가 전사자들이 부활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죽은자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허사이고 무의미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가 죽은 자들을 위해서 속죄의 제물을 바친 것은 그 죽은 자들이 죄에서 벗어 날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사람들이 죽은 자들의 잘못을 위해 희생과 기도로 보속할 때, 하느님의 자비를 얻어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들어갈 수 있음을 마카베오서에서는 분명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런 가르침에 따라 우리 모두는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특별히 자주 미사를 봉헌해 주어야 하겠습니다.

 

   개신교에서는 죽은 이들을 위해서는 기도가 필요 없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마카베오서를 성서로 인정하지 않기에 연옥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따라서 천국에 간 사람이나 지옥에 간 사람에게는 기도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죽은 이를 위한 기도는 부질없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대신학교 1학년 때 국어를 가르치던 서창제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이 분은 평양 분으로 평양에서 목사 생활을 하시다가 6.25 사변 때 이남으로 내려와 천주교로 개종하신 후 신학생들을 가르치신 분입니다. 이 분이 강의 시간에 자신이 개종한 동기에 대해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천주교가 참 종교이고 전례나 교리가 성서적이기 때문에 개종을 했지만, 특별히 연옥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어 개종을 하게 됐다고 하셨습니다. 선생님은 어느 날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합니다. 죽음은 불시에 찾아오기 때문에 내가 지금 죽는다, 그럼 나는 천국에 갈까? 하고 곰곰히 생각해 보았더니 "글세" 라는 대답이 나오더라는 것입니다. 내가 정말 천국에 갈 수 있을 만큼 하느님의 법을 준수하면서 올바르게 살았는가? 하고 묵상해 보니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더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죽으면 지옥에 갈까? 하고 생각해 보니 역시 "글쎄" 라는 대답이 나오더란 것입니다. 그러면서 내가 하느님의 구원에서 제외될 만큼 잘못 살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들더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 나라에 가기 전에 무언가 속죄로 정화되는 곳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어 가톨릭 서적을 연구하게 되었고, 그 후 천주교로 개종하게 됐다고 하셨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예외 없이 영원히 살기를 바라고 원하지만, 그러나 그 누구도 예외 없이 확정된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인간의 조건"이란 명작을 쓴 프랑스의 말로는 "인간이란 자기가 죽게 마련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유일한 동물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한 인간의 출생은 하느님의 부르심인데 이 부르심은 출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연속되고 죽음이 그 부르심의 클라이막스(절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생명을 다할 때까지 매일 매일을 부르심에 응답하는 생활을 하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삶은 분명 죽음으로 연결되어 있는데도 사람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죽음은 삶을 정리하는 마지막 순간일 뿐 아니라 새로운 삶을 꿈꾸며 받아들이는 순간이고,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우리는 위령미사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부활의 희망을 주셨으니 죽음의 운명이 분명히 다가올 것을 슬퍼하면서도 장차 불멸의 생명을 얻으리라는 주의 약속이 있기에 위로를 받나이다. 과연 주를 믿는 이들에게는 죽음이 죽음이 아니요, 새로운 삶으로 옮아감이오니...."라는 말씀의 감사송을 하느님께 바칩니다. 이런 믿음이 바로 교회의 믿음이고 우리의 믿음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거나 죽음이 슬픈 일이 아니라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으로 극복해 나가도록 노력하고 불멸의 생명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았고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으나, 우리의 부족함으로 구원의 길에서 자꾸만 벗어나려고 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보잘것없는 우리이기에 모든 성인의 통공 속에서 기도를 필요로 하는 존재입니다. 다시한번 우리에게 닥쳐오는 죽음을 깨어 있는 마음으로 준비하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과 이 달 위령 성월을 지내면서 돌아가신 우리의 부모 형제 친척들의 영혼과 아무도 기억하여 주지 않는 불쌍한 영혼들을 위해 자주 미사를 봉헌하고 기도와 희생을 드림으로 하느님 안에서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하겠습니다.

 

  "죽은 모든 교우들의 영혼이 하느님의 자비하심으로 평화의 안식을 얻게 하소서"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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