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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4주일(다해-04)

166 전창문 [cmjun] 2004-02-01

연중 제04주일(다해-04)

                                                2004. 02. 01

 

   오늘은 연중 제4주일입니다. 지난 주 복음에서 예수님은 "주님의 성령이 나에게 내리셨다.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시어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알려 주고 눈먼 사람들은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며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라는 이사야 예언서의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당신의 사명은 극진한 사랑으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함인데 오늘 복음은 "이 성서의 말씀이 오늘 너희가 들은 이 자리에서 이루어졌다"라고 단언하는 말씀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하면 떠올리는 단어가 사랑이고 사랑하면 가장 먼저 예수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어 인류에게 전한 기쁜 소식 즉 복음의 핵심이 사랑이고 복음에서 사랑을 배제하면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시종일관 사랑을 가르치셨을 뿐만 아니라 당신 생명까지 인간을 위해 십자가의 희생 제물이 되시는 사랑의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인간의 감정 중에 가장 흔하고 소중한 감정이 사랑인데, 그렇다면 예수님이 가르치시고 몸소 실천하신 사랑은 어떤 사랑이겠습니까? 철학적인 용어로 사랑에는 3가지 종류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가 에피투미아(Epitumia)적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사랑으로 육체적인 욕망이나 쾌감만을 추구하려는 본능적인 사랑을 말합니다. 인간이 본능적인 사랑에만 흐른다면 이 세상은 동물의 세계와 다를 바 없게 될 것입니다.

   둘째는 에로스(Eros)적 사랑입니다. 에로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사랑의 신의 이름으로 일반적인 사랑, 즉 남녀간의 사랑의 의미로 쓰여지고 있습니다. 본래는 정신적 사랑을 의미하였으나 후에 육체적 사랑의 뜻으로 변한 사랑입니다.

   셋째는 아가페(Agape)적 사랑입니다. 조건 없는 사랑이란 뜻으로 인격적, 정신적 사랑을 뜻합니다. 자신보다는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여 자기를 희생하는 타자 본위의 생활을 아가페 생활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벗을 위해 자기 생명..."

 

   또 어떤 이는 사랑의 종류를 다음과 같이 분류하기도 합니다.

   첫 번째 사랑은 "만약에(If)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만약' 이라는 어떤 요구 조건을 충족시키면 얻어지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의 동기는 이기적이기에 그 목적은 사랑의 대가로 무엇인가를 얻고자 함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많은 부부가 파경에 이르고 이혼율이 증가하는 이유는 바로 만약에 사랑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

   두 번째 사랑은 "때문에(Because) 사랑"입니다. 어떤 사람의 됨됨이, 소유, 혹은 그의 행위 자체 때문에 받거나 준다면 그것은 '때문에'식의 사랑이라고 하겠습니다. "당신이 아름답기 때문에 사랑하고, 나에게 잘하기 때문에 사랑한다"와 같은 이유가 담긴 사랑이라면 모두 때문에 사랑의 표현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랑은 머지않아 만약에의 사랑과 같은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세 번째 사랑은 "불구하고(In spite of)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상대방이 어떠함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모든 것을 주거나 받는 사랑을 말합니다. 한마디로 조건을 따지지 않는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특히 화목하고 평화롭고 행복한 성가정이 되기 위해 부부나 가족이 가져야 할 사랑이라고 하겠습니다.

 

   주님의 사랑은 아가페적 사랑 또는 불구하고의 사랑, 그 이상이며 이런 사랑의 모범을 보여주신 분이 주님이십니다.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조금이나마 본받고 실천하려고 노력한다면 이 사회는 폭력과 분쟁과 다툼이 없는 평화로운 사회, 즉 하느님의 나라가 완성될 것입니다. 과연 나는 진정으로 가족들이나 이웃들에게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다시 말해 만약에의 사랑이나 때문에 사랑이 아닌 아가페적 사랑, 불구하고의 사랑으로 가족과 이웃을 대하고 있는지 자신에게 진지하게 묻고 반성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께서는 그 유명한 사랑의 송가를 통해 참 사랑을 하기 위해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십니다. 나는 정말로 이 말씀과 같이 배우자나 가족이나 친구 더 나아가 나와 만나는 모든 이웃, 모든 사람에게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묵상하고 반성해 보겠습니다.

   오늘 주보 7면을 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지 반성해 보기 위해 사랑의 송가를 사랑이란 말을 빼고 대신 (   )을 넣어 적어보았습니다. 이 (   )안에 사랑이란 단어를 넣고 제가 읽을 테니 큰소리로 따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사욕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성을 내지 않습니다. 사랑은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를 보고 기뻐하지 아니하고 진리를 보고 기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잠시 묵상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따라 읽으시면서 무슨 느낌을 가지셨습니까? 저는 읽으면서 사랑의 위대함이나 사랑의 의미 등과 같은 사랑의 본질이라는 생각 외에는 별 느낌이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이런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생각되지 않았고 다만 좋은 말씀이란 생각만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성서 말씀은 나와 아무 상관이 없는 하느님의 말씀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말씀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 말씀이 되겠습니까?

   이번에는 똑같은 사랑의 송가를 주보에 적은 그대로 괄호라는 말로 큰소리로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   )은 오래 참습니다. (   )은 친절합니다. (    )은 시기하지 않습니다. (    )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    )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    )은 무례하지 않습니다. (    )은 사욕을 품지 않습니다. (    )은 성을 내지 않습니다. (    )은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    )은 불의를 보고 기뻐하지 아니하고 진리를 보고 기뻐합니다. (    )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이번에도 잠시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번에는 무엇을 느낄 수 있었습니까? 저는 이렇게 읽으면서 먼저 번보다 더 의미 없는 글이었고 어떤 느낌도 없었는데 여러분은 어떠하셨는지요? 아마도 여러분도 같은 생각을 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이제 한번 더 사랑의 송가를 (    ) 안에 '나'라는 단어를 넣고 따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따라 읽기 전에 먼저 나의 배우자와 가족, 친구, 자주 만나는 이웃들, 더 넓게 모든 사람들에게 어떤 마음으로 대하고 있는지 생각하면서 따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오래 참습니다. 나는 친절합니다. 나는 시기하지 않습니다. 나는 자랑하지 않습니다. 나는 교만하지 않습니다. 나는 무례하지 않습니다. 나는 사욕을 품지 않습니다. 나는 성을 내지 않습니다. 나는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나는 불의를 보고 기뻐하지 아니하고 진리를 보고 기뻐합니다. 나는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따라 읽으면서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들었습니까? 정말로 배우자나 자녀 가족에게 또 이웃이나 나와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참고 친절하고 성을 내지 않는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쉽게 한 문장을 따라 읽을 수 있으셨는지요? 아마도 한 문장 한 문장을 읽으면서 쉽게 따라 읽을 수가 없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정말 참고 친절하고 성을 내지 않고 앙심을 품지 않는지 반성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거침없이 자신 있게 따라 읽을 수 있는 분이라면 흠 잡을 곳 없는 성인이거나 아니면 사랑이 메말라 있는 사람이거나 둘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의 사랑의 송가 말씀을 이렇게 자신을 반성해 보는 말씀으로 묵상하면서 자신의 생활을 개선한다면 이 말씀은 살아 있는 하느님의 말씀이 될 것입니다. 내 삶에 영향을 주는 하느님 말씀이 될 때 우리의 삶은 하느님의 사랑인 조건 없는 불구하고의 사랑 또는 아가페적 사랑을 지향하는 삶이 될 것입니다.

 

       금년 본당 사목방침의 세부 실천사항 중에 하나로 하느님의 사랑을 조금이나마 실천하기 위해 '1일 1사랑 실천 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사랑 실천은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기에 우리가 이웃들에게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많습니다. 주님 때문에 즉 주님을 생각하면서 가족이나 이웃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고 선행을 베푸는 모든 행위는 다 사랑 실천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가족이나 이웃에게 몹시 기분상하는 일이 있어 화를 내고 싶지만 주님을 생각하고 참는다면 그것도 한가지 사랑 실천방법인 것입니다. 이렇게 1일 1사랑 실천이란 주님을 생각하면서 하루 한가지 이상 의도적으로 좋은 일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 이문동 교우 여러분이 주님을 생각하며 1일 1사랑 이상을 실천한다면 그 사랑의 향기는 이웃들에게 모락모락 널리 펴져 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이 사회를 보다 아름다운 사회, 사랑이 있는 사회로 만들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선교로도 연결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오늘 사도 바오로의 사랑의 송가를 가족과 이웃과 하느님을 생각하면서 틈틈이 읽고 묵상하므로 내 삶을 반성하는 기회로 삼으시고 그래서 내 안에 사랑이 충만한 신앙이 되도록 노력하고 기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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