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위일체 대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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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류달현 [dalbong6] 2002-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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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우 여러분, 한 주일동안 안녕하셨습니까? 봄이 왔다 했더니 소리도 없이 가 버리고 벌써 여름이 온 듯 날씨가 많이 덥습니다. 춘공증에 시달릴 틈도 없이 여름 더위를 걱정하고 있는 요즘입니다. 날씨가 덥다고 너무 짜증만 내지 마시고 기쁘고 즐겁게 한 주간을 또 살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아버지께서 여러분들에게 평화와 은총을 가득히 내리실 것입니다.
지난 번에는 여자분들이 싫어하는 이야기 3위인 군대이야기로 강론을 시작하여 많은 분들로부터 항의를 받았는 데, 오늘은 두 번째로 싫어하는 이야기인 축구이야기로 강론을 시작해야 겠습니다. 그럼 다음에는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로 강론을 시작하게 되겠네요. 어쨋든 월드컵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저는 지난 잉글랜드와의 대표평가전을 보면서 한국 축구가 정말 많이 성장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16강이 말로만 끝나지 않겠구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코리아 팀 파이팅입니다. 히딩크 사단의 황태자라고 불리는 송종국이라는 선수가 있습니다. 이 선수를 히딩크 감독이 좋아하는 이유는 송종국 선수가 멀티 플레이어 다시 말하면 모든 포지션을 다 소화해내는 선수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수비면 수비, 미드필더면 미드필더, 공격수면 공격수 모든 위치에서 탁월한 기량을 발휘하기 때문이랍니다. 제가 보아도 잘 하기는 잘 하더라고요. 그 송종국 선수를 예를 들면 송종국 선수가 수비수일 때, 그리고 미드필더 일 때, 그리고 공격수 일 때, 하는 역할이 다 다르죠, 같을 수가 없습니다. 같으면 안 되죠. 미드필더가 공수를 연결해주지 않고 수비만 본다거나 너무 깊이 공격에 가담하면 게임의 운영이 되지를 않습니다. 그리고 공격수가 공격에 가담하지 않고 수비 위치에서 헤매고 있어도 문제입니다. 그런데 미드필더 송종국, 수비수 송종국, 공격수 송종국이 다른 사람입니까? 아니죠. 똑같은 송종국이가 한 명의 송종국이가 수비수의 역할도 하고, 미드필더의 역할도 하고, 공격수의 역할도 하는 것이지 다른 송종국이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제가 예를 들었지만 이처럼 우리가 믿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도 마찬가지 이십니다. 성부의 하느님, 성자의 하느님, 성령의 하느님이 같은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 분들의 역할이 각각이십니다. 성부의 하느님은 세상의 창조주이시고 성자의 하느님은 세상을 구원하신 구세주이시고 성령의 하느님은 성부와 성자의 하느님의 사업을 이어받아 계속되게 하시는 협조자이십니다. 이처럼 역할들은 다르지만 모두 한 분이신 하느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분의 하느님께서 이루시는 관계를 삼위일체라하는 것입니다.
태양에 비유해 본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햇님과 그 찬란한 햇살, 그리고 그 따사로움은 가히 태양의 삼위일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비록 서로 하는 역할은 다르고, 구별은 서로 될 수 있겠지만, 서로 다르다 할 수 없는, 하나인 태양이요, 누가 먼저 생겨났고 나중에 생겨났다고도 말할 수 없는, 동시에 태어났고, 더구나 높고 낮음이란 있을 수 없는 똑같은 태양이 아닙니까?
이처럼 햇님과 햇살, 그 따사로움이 서로 그 역할은 다르지만 동시에 서로 공동으로 역할하는, 똑같은 태양인 것처럼, 성부와 성자와 성신께서는 온전히 다르시지만 동시에 서로 역할을 공동으로 하는, 똑같은 한 분이신 하느님이라는 사실이 바로 삼위일체 교리의 핵심입니다. 그래서 저희가 매월 셋째주에 바치고 있는 니체아 신경(사실 교회는 니체아 신경과 사도 신경을 똑같이 바칠 것을 당부하고 있으나 길다는 이유로 잘 하질 않고 있습니다. 또한 니체아 신경은 사도 신경보다 우리의 신앙의 내용을 잘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 니체아 신경에서는 성부에 대해서는 "한 분이신 하느님을 저는 믿나이다, 전능하신 아버지, 하늘과 땅의 유형무형한 만물의 창조주를 믿나이다"라고 고백하고 있으며 성자에 대해서는 "성자께서는 저희 인간을 위하여, 저의 구원을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오셨음을 믿나이다"라고 고백하고 있으며 성령에 대해서는 "주님이시며 생명을 주시는 성령을 믿나이다.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하시고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영광과 흠숭을 받으시며"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한번쯤 배를 타보신 경험이 있을텐데요. 날씨 좋은 날 바다 한가운데 떠있는 배 위에 서 있노라면, 어떻습니까? 잠시동안이라도 갑판 위에 있으면 태양이 바다 속 저 깊은 곳까지 비추고 있음을 금새 알게 됩니다. 또 바다가 아니더라도, 산들로 둘러싸인 호수 위에 떠있는 조그만한 배에 앉아 있어도, 우리는 물결따라 퍼지는 햇살을 보게 되지요. 산골의 조그만한 옹달샘에도 태양의 햇살은 찾아듭니다. 그뿐 아니라 이른 아침의 그 작은 이슬방울에서도 태양의 햇살은 여지없이 반짝이며 빛나질 않습니까? 이처럼 태양이 모든 것을 비춰주고 따뜻하게 모든 것을 감싸주고 있듯이,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도 모든 것을 비춰주고 따뜻하게 우리 모두를 늘 감싸주고 계시질 않으십니까? 오늘 미사를 시작하면서 저는 여러분께 이렇게 인사를 드렸습니다. '사랑을 베푸시는 성부와, 은총을 내리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를 이루시는 성령께서 여러분과 함께' '또한 사제와 함께'라고 서로 인사를 주고받지 않았습니까? 그렇습니다. 사랑의 천주 성부와 은총의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의 성신이신, 삼위일체 하느님께서는 항상 우리를 비춰주시고 감싸주시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형제 자매 여러분! 모든 것이 태양의 햇살을 반사하듯이, 그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과 친교를 이제 우리도 이웃에게 반사해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처럼 넓은 바다라 하더라도 태양의 햇살을 모두 안아 들이기에는 충분히 넓지 못하듯이, 아침의 이슬방울이라도 태양의 햇살을 반사하기에 부족한 법이 없는 것처럼, 우리가 비록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하느님을 반사하기에는 충분하지 못하며, 비록 가진 것이 부족하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하느님을 반사하기에는 전혀 부족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저 자신의 처지에서, 우리 자신의 삶의 터전에서 있는 그대로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과 친교를 반사하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자 성호긋기를 왜 주저합니까? 우리끼리 있을 때는 잘도 하면서도 왜 남들 앞에서는 성호긋기를 머뭇거립니까? 삼위일체에 대한 신앙고백은 바로 성호경에서 시작되고 성호경에서 마치게 됩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의 모든 생활이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시작하고 끝맺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우리 생활이 모두가 '그대로 이루어지소서'라는, 아멘의 신앙으로 생활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