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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24년 11월 23일 (토)연중 제33주간 토요일하느님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연중 제 10 주일

114 류달현 [dalbong6] 2002-06-11

 교우 여러분, 한 주일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지난 주는 그 어느 때보다도 흥분되고 즐거운 주간이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우리 나라가 그렇게도 원하던 월드컵에서의 일승을 달성했기 때문입니다. 정말 행복한 한 주간이었습니다. 이번 주에도 얄미운 미국을 꼭 이겨서 행복한 한 주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복음은 어쩌면 죄인이라서 행복한 우리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활동하셨을 당시의 이스라엘 사회에는 이른바 '정통주의자들'이라고 불리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율법의 사소한 규칙이나 법규까지도 엄격히 지키는 바리사이들이나 율법주의자들이 바로 이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사람들을 죄인시하여 그들과 같이 여행을 한다든지 무엇을 거래한다든지 하는 것을 불결하다 해서 금지하고 있었으며, 그들을 손님으로 대접한다든가 또는 그들의 집에 손님으로 들어가는 것도 금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그토록 경건한 정통주의자들과는 달리 세리인 마태오를 제자로 부르셨을 뿐 아니라, 마태오의 집에 들어가서 그들과 함께 음식까지 잡수십니다. 그런 예수님의 태도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던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의사는 건장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앓는 사람들에게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태도는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과 용서를 믿지 못하고 늘 하느님께로부터 멀어지려고 하는 우리들 자신을 되돌아보게 해줍니다.

   악마들이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사람들을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할 수 있나"하고 의견을 나누었을 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선택한 것이 '너는 어쩌다가 그런 일을 저질렀니? 하느님이 너를 용서하실 것 같니? 물론 하느님은 사랑의 하느님이시지.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곤 하지. 그런데 지금 너의 죄는 그 무한한 용서의 대상에는 해당되지 않아. 넌 어떻게 그런 죄를 짓고도 하느님께 용서받기를 원하니? 하느님이 다른 사람은 다 용서해도 너만은 용서 못해! 그러니 포기해'라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곧 용서받지 못 할 것이라는 유혹이지요.

너무나 유치한 악마들의 방법이지만, 우린 이렇게 유치한 방법에 너무나 유치하게 넘어가 버리곤 합니다. 그래서 가끔씩 우리는 너무나 쉽게 하느님을 포기하곤 합니다. 하느님을 온전히 하느님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나의 생각과 나의 기준과 나의 계명을 통해 하느님을 바라보려 합니다. 그래서 하느님이 내겐 너무나 부담스럽고, 두렵기만 합니다. 나의 죄 때문에 하느님께로부터 멀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는 나의 삶 안에서 하느님의 다스림이 충만히 펼쳐지는 것을 거부하고, 내 방식대로 나를 평가하고, 내 기준으로 나의 삶을 꾸려 나가려는 무서움이 담겨 있습니다.

   이런 고집과 집착에 사로잡혀 나의 생각을 하느님의 생각으로 바꾸고, 나의 기준을 하느님의 기준이라고 생각하며, 나의 계명을 하느님의 계명이라고 믿어버립니다. 죄인들을 제자로 삼고, 죄인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는 예수님을 못마땅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수군거리는 바리사이와 율사들처럼 나의 머리 속에는 하느님의 기준이 아닌 나의 기준이 자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결국 하느님은 하느님으로 계실 뿐이며, 나는 그저 나대로 있을 뿐입니다. 이렇게 튼튼하게 쌓아올린 울타리로 인해, 하느님은 더 이상 나에게 들어오시지 못합니다. 내 안에서 주인으로 자리잡고 있는 나는, 진짜 주인공으로 들어오셔야 할 하느님의 자리를 의식하지도 못합니다.

   신앙인으로 살아간다고 말하지만, 하느님을 모시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 하느님의 일을 하겠다고 고백하고 있지만, 실상 그 안에는 참 하느님의 모습이 아니라, 나에 의해 꾸며지고 변질된 그런, 나만의 하느님의 모습이 있을 뿐입니다. 그리하여 나의 삶은 변화되지 못합니다. 세례를 받기 전의 모습이나 지금의 내 모습에 변화가 없으며, 10년 전의 내 생활이나 지금의 내 생활에 변화가 없습니다. 이렇게 내 안에 갇혀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오늘 복음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는 우리가 이제 어떻게 변화된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던, 죄인으로 살아가던 마태오의 모습을 보십시오. 나를 비우고, 온전히 하느님으로 나를 채우려는, 죄인이었던 마태오의 모습을 보십시오. 더 이상의 망설임이나 주저함없이,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며, 그 길을 따라가려는 마태오의 모습을 보십시오. 나의 죄와 잘못들을 덮어버리고도 남는 그 무한한 하느님의 사랑을 보십시오. 마태오가 걸어가려했던 그 길이 바로 우리들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이기도 합니다. 내 안에서 나를 옭죄는 죄책감에 짓눌려 더더욱 고통스럽게 느껴질 그 길이지만, 나의 부족함에 사로잡혀 더욱 부끄럽게 느껴질 그 길이지만, 나를 부르시는 예수님의 그 사랑만 간직하고 있다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길임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바리사이나 율사들의 사랑처럼 제한되고 막혀있는 사랑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나를 향해, 우리를 향해 늘 열려있는, 흘러 넘치는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믿고, 그 사랑을 살아갈 때, 우리는 참으로, 하느님의 사랑받는 제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선한 사람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은 부르러 왔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죄인일 수 밖에 없는 우리들을 행복하게 하는 말씀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교우 여러분, 행복한 한 주간, 죄인이기에 행복할 수 있는 한 주간이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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