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월 성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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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 이석균 [hansimi] 2004-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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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성시간 - 하느님의 보상
--------- 시작 기도
나의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
나의 진실한 마음, 나의 거짓된 위선,
나의 착한 모습, 나의 악한 행실,
나의 아름다운 내면, 나의 추한 몰골,
조용한 밤 깃 달아 바다 끝으로 숨는다 해도
나는 당신의 눈에서 벗어날 길 없습니다.
나의 모든 행실이 당신을 피할 수 없습니다.
나의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
저를 받아 주소서.
저를 채워 주소서. 아멘.
복음 - (Mt 14,13-21) ;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거기를 떠나 배를 타고 따로 한적한 곳으로 가셨다. 그러나 여러 동네에서 사람들이 이 소문을 듣고 육로로 따라 왔다.
예수께서 배에서 내려 거기 모여든 많은 군중을 보시자 측은한 마음이 들어 그들이 데리고 온 병자들을 고쳐 주셨다.
저녁 때가 되자 제자들이 예수께 와서 "여기는 외딴 곳이고 시간도 이미 늦었습니다. 그러니 군중들을 헤쳐 제각기 음식을 사먹도록 마을로 보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을 보낼 것 없이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하고 이르셨다.
제자들이 "우리에게 지금 있는 것이라고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입니다" 하고 말하자
예수께서는 "그것을 이리 가져오너라" 하시고는 군중을 풀 위에 앉게 하셨다.
그리고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셨다.
제자들은 그것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주워 모으니 열 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
먹은 사람은 여자와 어린이들 외에 남자만도 오천 명 가량 되었다.
오늘 제가 선택한 복음은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이야기입니다.
예수를 따르는 이들은 육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목이 마른 이들이었습니다.
사흘을 굶어 허기진 군중.
사랑에 주려 불안한 군중.
세월에 짓눌려 메마른 얼굴을 한 채 무슨 말씀이든 생명처럼 받아먹는 사람들.
예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깊이 느끼십니다.
사흘 동안이나 변변한 식사조차 못한 상태였습니다.
예수께서는 굶주린 이들을 채우고자 걱정하시지만 그런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예수님께 솔직한 상황을 털어놓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먹일만한 빵이 우리에겐 없다고.
아주 현실적인 판단입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그런 대답에 아랑곳하지 않고 물으십니다.
“빵이 몇 개나 있느냐?”
“빵이 몇 개나 있느냐?”
예수님의 물음이 내게 깊이 와 닿습니다.
내가 현재 가진 것이 얼마나 될까?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주일 학교에 돈이 더 많으면 아이들 간식도 좋을 텐데...
내가 본당 사목구 주임이라면 이런 일을 해볼텐데...
내가 청년들과 동등한 관계라면 좀더 다가갈 수 있을 텐데...
내가 융통성이 있다면 용기 있게 물질적으로 도와 달라 말할 수 있을 텐데...
내가 가진 것은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제자는 예수께 대답합니다.
“빵 다섯 개와 작은 물고기 두 마리뿐입니다.”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라고 배웠지만 모든 이에게 모든 이가 되어주지 못하는 현실을 체험합니다.
함부로 교회에 대한 가르침을 주려는 사람을 보면 짜증이 나고,
장황하게 세상의 가치를 설명하려는 사람을 만나면 맥이 빠집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힘이 든 것은 그 모든 일을 하기에 부족한 내 인격을 대면할 때입니다.
조금만 일로 화를 내는 내 모습, 불안하고 걱정하고 신뢰심을 깨뜨린 내 모습.
기억하기 싫은 부끄러운 죄를 지은 죄를 지은 내 자신.
나를 넘어뜨리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임을 깨닫게 됩니다.
나는 과연 한 사람의 인격으로서, 그리고 한 사람의 사제로서 합당한 사람인가?
대답은 이렇습니다.
아니다.
풀리지 않는 공허한 마음으로 우두커니 방안에 있을 때,
누군가가 미워서 잠자리를 뒤척이며 어떻게 되돌려 줄까 상상하고 있을 때,
너무나도 슬픈 마음이 북받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말씀드립니다.
“주님, 제가 이거밖에 안됩니다.”
“주님, 주 예수 그리스도님.
저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예수께서는 다시 묻습니다.
“빵이 몇 개나 있느냐?”
제자는 대답합니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입니다.”
하느님의 부름에 합당한 인격을 갖춘 사람이 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요?
하느님 앞에 봉사를 하기에 합당한 조건을 자랑하는 사람이 과연 있겠습니까?
만약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오만입니다.
그 누구도 하느님 앞에 충분한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께서 묻습니다.
“빵이 몇 개나 있느냐?”
예수께서 원하시는 빵은 군중을 다 먹일만한 막대한 양적 빵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먹으면 배가 부르고 내일이 되면 허기질 육신의 빵이 아니었습니다.
예수께서 원하시는 빵은 있는 그대로의 ‘나’입니다.
그분은 나를 원하십니다.
몇 개 되지도 않는 부족한 나의 빵을 원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을 원하시는 사람은 동화 속 위인이 아닙니다.
내가 이상적으로 여기는 ‘그’ 사람, 성공한 ‘그’ 사람,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는 완벽한 ‘그’ 사람이 아닙니다.
때론 부끄럽고, 때론 부족하기만 한 한심한 그대로의 ‘나’, 지금 가지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아낌없이 내어놓길 바라십니다.
과거의 기억에 의존해서 현재의 신앙을 입증할 필요가 없습니다.
미래에 대한 자못 단단한 생각으로 현재의 자신을 드러낼 필요도 없습니다.
믿음은 말하지 않아도 삶으로 드러날 것입니다.
얼마만큼 나누는 삶을 사느냐로 드러날 것입니다.
나눔의 삶을 사는 이에게는 반드시 축복과 보상이 있습니다.
없는 데서 자기 것을 내어놓을 줄 아는 자녀에게 애틋한 마음을 품지 않을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아브라함은 살아있는 동안 하느님의 축복을 받아 그가 가는 곳마다 양과 가축이 넘쳤고, 죽은 이후로는 수많은 백성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들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을 때 그 자리에는 장정들만 오 천 명이 있었지만 모두 다 배불리 먹고 남았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예수 그리스도 미사의 예형이 되는 사건입니다.
단순히 현세적 보상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주는 나눔의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영원히 살게 하며 없어지지 않을 양식을 얻도록 힘써라.”(Jn 6,27)
- 주님, 당신을 바라볼 줄 알게 해 주십시오.
십자가에 매달린 당신의 아픔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당신의 아픔을 감히 영광이라 말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
당신과 무관한 나의 넉넉한 삶을 자랑치 않게 해 주십시오.
영원한 생명을 위해 나눌 줄 아는 겸손함을 주십시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