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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성인/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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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가누토 4세 (Canute IV)
    같은이름 가누또 , 가누뚜스 , 가누투스 , 카누또 , 카누뚜스 , 카누토 , 카누투스 , 카누트 , 크누트
    축일 7월 10일
    신분 , 순교자
    활동지역 덴마크(Denmark)
    활동연도 +1086년

       성 카누투스(Canutus, 또는 가누토)는 1040년경 덴마크의 국왕 스벤 2세 에스트리드손(Sweyn II Estridsson)의 여러 아들 중 하나로 태어났고, 그의 어머니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당시 덴마크와 영국을 다스렸던 크누트 대왕(Knud den Store, 1016~1035년 재위)의 증손자이고, 슐레스비히(Schleswig) 공국의 성 가누토 라바르(Canutus Lavard, 1월 7일) 공작은 그의 조카이다. 그는 1080년 하랄드 3세(Harald III)가 사망한 후 그를 계승하여 가누토 4세로서 덴마크의 국왕이 되었다. 그 후 그는 플랑드르(Flandre) 로베르(Robert) 백작의 동생인 아델라(Adela)와 결혼하여 ‘착한 사람’으로 불리는 복자 가롤로(Carlus the Good, 3월 2일)와 쌍둥이 딸을 두었다. 그는 자신감과 열정이 넘치는 강력한 왕이었고, 매우 열심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성직자와 선교사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많은 성당을 지었다. 또한 교회의 재정적 독립을 보장하기 위해 일종의 세금으로 십일조를 도입하려다가 귀족들의 반발로 실패하기도 했다.

       한편 성 가누토 4세는 영국을 재정복하여 과거 크누트 대왕의 제국을 회복하려는 야심 찬 계획을 품고 있었다. 1085년에 정복왕 윌리엄(William the Conqueror)에게 대항하기 위해 영국 침공을 계획하고 준비했으나 귀족들에 대한 무거운 세금이 그의 이복동생 올라프(Olaf)의 반란을 유발해 결국 전쟁을 포기하고 퓐 섬(Fyn Is.)으로 도망가야만 했다. 그는 부하들과 함께 오덴세(Odense)로 가서 그가 건립하고 영국에서 유물을 가져와 안치한 성 알바노(Albanus) 성당으로 피신하였다. 1086년 7월 10일 성 가누토 4세 왕은 마지막으로 고해와 성체를 모신 후 죽음을 준비했고, 성당 창문과 벽을 부수고 들어온 반란자들에 의해 제단 앞에서 무참히 살해되었다. 그의 지지자들은 그를 순교자로 보았다. 그리고 그의 무덤에서 수많은 기적이 일어나고, 올라프가 왕위에 오른 후 8년간 끔찍한 흉년이 들면서 사람들은 경건한 왕을 살해한 데 대한 하느님의 벌로 생각했다. 성 가누토 4세가 죽은 직후 성 알바노 목조성당 근처에 새로운 석조성당 건축이 시작되었다. 1095년 오덴세 대성당의 성직자들은 올라프를 계승한 에리크 1세(Erik I/Erik Ejegod) 왕의 명령에 따라 성 가누토 4세의 유해 발굴에 착수했고, 1100년에 새로 지은 오덴세 대성당에 안치하였다.

       성 가누토 4세는 덴마크 최초의 순교자로서 공경받으며 평소 경건한 신앙생활에 대해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1101년 4월 19일 그의 이복형제인 에리크 1세의 요청으로 교황 파스칼 2세(Pascalis II)는 성 가누토 4세에 대한 공경을 승인하여 시성하였다. 이로써 성 가누토 4세는 덴마크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성인품에 오르게 되었다. 옛 “로마 순교록”은 1월 7일 목록에서 덴마크에 왕이며 순교자인 성 카누토가 있었고, 1월 19일에 그의 축일을 기념한다고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7월 10일 목록에서 덴마크 오덴세에서 순교한 성 카누토가 신심 깊은 왕으로서 왕국 내에 하느님에 대한 신앙 행위를 널리 전파하고 성직자들의 처우를 개선했으며, 룬드(Lund)와 오덴세에 성당을 세운 후 결국 반군에 의해 살해당했다고 기록하였다. 성 가누토 4세는 덴마크에서 크누트 4세(Knud IV)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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