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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성인/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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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가누토 라바르 (Canute Lavard)
    같은이름 가누또 , 가누뚜스 , 가누투스 , 카누또 , 카누뚜스 , 카누토 , 카누투스 , 카누트 , 크누트 , 라바르드
    축일 1월 7일
    신분 , 순교자
    활동연도 +1131년

       성 카누투스 라바르(Canutus Lavard, 또는 가누토 라바르)는 1096년경 덴마크의 로스킬데(Roskilde)에서 선왕(善王)인 에리크 1세(Erik I/Erik Ejegod)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덴마크의 순교자이자 왕으로 공경받는 성 가누토 4세(Canutus IV, 7월 10일)의 조카이다. 성 가누토의 부모는 그가 여섯 살 때 성지순례 중에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를 계승한 삼촌의 보살핌을 받다가 16살 때 훗날 신성로마제국의 로타르 3세 황제(Lothair III, 1125~1137년 재위)가 된 작센 공작의 궁정으로 보내져 교육을 받았다. 그는 궁정에서 정치와 군사 교육뿐 아니라 발전된 유럽 문화와 생활 방식을 접했다. 1114년경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비참한 상태에 빠진 고국의 모습을 보았다. 슬라브족 이교도인 벤드족(Wends)과 그들의 왕인 하인리히의 끊임없는 약탈과 침략으로 나라 전체가 혼란에 빠져 있었다.

       1115년에 그의 삼촌인 덴마크의 왕 닐스(Niels)는 슬라브족의 공격을 막기 위해 성 가누토를 슐레스비히(Schleswig) 공국의 공작으로 임명하였다. 그는 외부의 침략을 격퇴하고 자기 영토 내에 법과 질서를 정착시켜 국가의 구한 인물로 존경받았다. 그래서 앵글로색슨족의 명예 칭호인 ‘라바르’(Lavard)를 부여받았는데, 이는 고대 영국에서 영주를 뜻하며 농부나 생계를 책임지는 사람을 의미했다. 성 가누토 라바르는 요새화된 슐레스비히를 통치하며 1127년 벤드족의 왕이 죽은 후 독일의 로타르 3세 황제로부터 그곳의 지배권을 샀고, 로타르 3세 황제는 1129년에 그를 서(西) 벤드족의 왕으로 인정하였다. 그러자 닐스 왕은 그를 점점 경쟁자로 보게 되었다. 그는 강력하고 정의로운 통치자였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교 군주이자 교회의 사람이었다. 그는 슬라브족을 복음화하고 유럽 공동체와 통합하려고 노력했던 ‘벤드족의 사도’이자 ‘홀슈타인(Holstein)의 사도’로 불리는 성 비첼린(Vicelin, 12월 12일)의 선교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여 높은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그의 명성과 왕권을 시기하며 경쟁자로 느낀 닐스 왕과 그의 아들인 마그누스 닐센(Magnus Nielsen)에 의해 1131년 1월 7일, 성탄절 축제가 끝난 후 하랄스테드(Haraldsted) 숲에서 주님의 기도를 바치던 중 살해되었다. 성 가누토 라바르는 노르웨이의 성 올라프(Olav, 7월 29일)와 덴마크의 성 가누토 4세(Canutus IV, 7월 10일)의 전통에 따라서, 교회의 옹호자이자 수호자로서, 이교도인 벤드족의 사도인 성 비첼린의 선교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한 활동으로 인해 순교자이자 성인으로 공경을 받았다. 그리고 1169년 교황 알렉산데르 3세(Alexander I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고, 이듬해 6월 25일 그의 유해가 링스테드(Ringsted)로 이장되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1월 7일 목록에서 슐레스비히 공국의 공작으로 ‘라바르’라고 불리는 성 가누토가 정의와 신중함으로 자신의 공국을 다스리고 하느님 공경을 지지했지만, 그의 권위를 시기한 적들에 의해 덴마크 링스테드 근처 숲에서 살해당했다고 기록하였다. 성 가누토 라바르는 덴마크에서 크누트 라바르(Knud Lavard)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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