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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자) 2024년 12월 12일 (목)대림 제2주간 목요일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가톨릭 성인/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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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가예타노 (Cajetan)
    같은이름 가에타노 , 가에타누스 , 가예따노 , 가예따누스 , 가예타누스 , 카예따노 , 카예따누스 , 카예타노 , 카예타누스 , 카제타노 , 카제타누스 , 카제탄
    축일 8월 7일
    신분 신부 , 설립자
    활동지역 티에네(Thiene)
    활동연도 1480-1547년

       성 카예타누스(Cajetanus, 또는 가예타노)는 1480년 이탈리아의 비첸차(Vicenza)에서 가스파르 티에네(Gaspar Thiene) 백작과 마리아 다 포르토(Maria da Porto)의 아들로 태어나 세례를 받았다. 그는 가에타(Gaeta) 출신으로 파도바(Padova) 대학의 유명한 교수였던 삼촌을 기리기 위해 가에타노(Gaetano)라는 이름을 받았다. 그는 두 살 때 아버지가 전사하는 슬픔을 겪고 어머니 슬하에서 성장하였다. 그는 파도바 대학에 들어가 법학을 공부하고 1504년 민법과 교회법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곧 비첸차의 시의원이 되었고, 1506년에는 로마(Roma)로 가서 교황 율리오 2세(Julius II)로부터 최초의 공증인으로 임명받았다. 1513년 율리오 2세 교황이 선종하자 자신의 직책을 사임하고, 1516년 9월 30일 36세의 나이에 사제품을 받았다.

       1519년 비첸차로 돌아온 그는 성 예로니모(Hieronymus)의 오라토리오회에 입회하여 병원에서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위해 열심히 봉사하다가 베로나(Verona)로 이주해 활동하다가 베네치아(Venezia)에 불치병 환자들을 위한 병원을 세웠다. 1523년 그는 로마로 가서 조반니 피에트로 카라파(Giovanni Pietro Carafa)와 바오로 콘시글리에리(Paolo Consiglieri) 그리고 보니파치오 데콜리(Bonifacio de’Colli) 등과 함께 교회를 개혁하고, 백성들에게 설교하며, 병자를 돕고, 최악의 상황에서 허덕이던 성직자의 신분을 개선하려는 목적으로 성직 수도회를 설립하여 1524년에 교황 클레멘스 7세(Clemens VII)의 승인을 받았다. ‘테아티노회’(Theatines)라는 명칭은 나중에 바오로 4세(Paulus IV) 교황이 된 초대 총장 조반니 피에트로 카라파 주교의 출생지 이름에서 가져왔다. 테아티노회의 정식 명칭은 ‘신의 성직 율수 성직자회’로 재속 사제들로 구성된 성직 수도회로 공동생활을 하며 청빈, 정결, 순명의 삼대 서원을 했다. 특히 이들은 재속 사제로 사목활동을 하며 개인적으로나 단체적으로 모든 재산을 포기함으로써 사제직의 위상을 높이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처음에는 회원 수도 적고 크게 성장하지는 못했지만, 자선사업에 헌신하고 영성과 전례 연구에 집중하면서 서서히 자리를 잡아갔다.

       1527년 로마가 약탈당할 때 성 가예타노와 동료들은 감옥에 갇혔다가 탈출하여 베네치아로 피난을 갔다. 그곳에서 그는 에스파냐 군인들에게 체포되어 많은 고문을 받기도 했다. 1530년 테아티노회의 총장으로 선출된 그는 개혁에 반대하는 이단적 가르침을 과감히 물리쳤고, 기도와 설교, 자선사업과 금욕 생활을 통해 교회를 개혁하고 신자들의 영적 쇄신을 위한 밑거름을 마련하였다. 일반 시민들을 위한 성 가예타노의 주요 업적 중 하나는 전당포(은행)의 설립이었다. 후일 그는 복자 요한 마리노니(Joannes Marinoni, 12월 13일) 신부와 함께 ‘몬테 디 피에타’(Monte di Pieta)를 설립하여 고리대금업자에게 고통받던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일로써 시민들의 복리를 위해 일하였다.

       1547년 8월 7일 나폴리(Napoli)에서 선종한 그는 1629년 10월 8일 교황 우르바노 8세(Urbanus VIII)에 의해 시복되었고, 1671년 4월 12일 교황 클레멘스 10세(Clemens X)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그는 트렌토(Trento) 공의회 이전에 있었던 가톨릭 개혁가 중에서 가장 뛰어난 성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교회 미술에서 그는 아기 예수를 안고 있거나 성모 마리아의 손에서 아기 예수를 받는 모습으로 주로 표현되는데, 이는 아우구스티노회 수녀인 라우라 미냐니(Laura Mignani)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가 언급한 신비한 체험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옛 “로마 순교록”과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 모두 8월 7일 목록에서 나폴리에서 자선사업과 난치병 환자에 대한 봉사에 헌신하며 테아티노회를 설립한 성 가예타노에 대해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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