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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4년 11월 24일 (일)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성서 주간)내가 임금이라고 네가 말하고 있다.
가톨릭 성인/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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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가롤로(성 안드레아의) (Charles of St. Andrew)
    같은이름 가롤루스 , 까롤로 , 까롤루스 , 샤를 , 샤를르 , 찰스 , 카롤로 , 카롤루스 , , 호벤 , 호우벤 , 후번 , 가를로 , 카를로 , 카를로스
    축일 1월 5일
    신분 신부
    활동연도 1821-1893년

       세속의 생활에서 요한 안드레아 호우벤(Joannes Andreas Houben)으로 알려진 성 안드레아의 카롤루스(Carolus a Sancto Andreas, 또는 성 안드레아의 가롤로)는 1821년 12월 11일 네덜란드 루레몬트(Ruremond) 교구의 뮌스터겔린(Munstergeleen)에서 태어났다. 11명의 형제 중 넷째로 태어난 그는 태어난 날 바로 요한 안드레아라는 이름으로 세례성사를 받았다. 그리고 1835년 4월 26일 첫영성체를 하고, 같은 해 6월 28일 견진성사를 받았다. 그는 시타르트(Sittard)에서 정식 교육을 받기 시작한 다음 브로크시타르트(Broeksittard)에서 계속 수학하였다. 그는 1840년에 군 복무를 위해 학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으나 그 기간에 예수 고난회라는 수도회에 대해 처음 듣게 되었다.

       군 복무와 학업을 모두 마친 성 가롤로는 예수 고난회에 입회를 요청하였다. 그는 복자 도미니코 바르베리(Dominicus Barberi, 8월 27일)에 의해 받아들여져 1845년 11월 5일 투르네(Tournai) 인근의 벨기에 도시인 에르(Ere)의 수련소에서 수도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같은 해 12월 예수 고난회의 수도복을 입으며 성 안드레아의 가롤로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법정 수련기를 완료한 그는 1850년 12월 10일 첫 서원을 발하고, 투르네에서 라비스(Labis) 주교에 의해 사제품을 받았다. 수품 직후 그는 예수 고난회가 세 개의 수도원을 설립한 영국으로 파견되어 그곳에서 한동안 브로드웨이(Broadway) 수도원의 수련자들을 위한 부수련장의 소임을 맡았다. 또한 그는 1856년 아일랜드 더블린(Dublin) 변두리에 있는 아거스 산(Mount Argus)에 새로 설립된 수도원으로 이동될 때까지 성 윌프레드(Wilfred) 본당과 인근 지역에서 주임신부로서 사목활동을 수행하였다.

       그 후 성 가롤로는 남은 생애 대부분을 아거스 산의 은둔소에서 지냈다. 그는 아일랜드 사람들로부터 ‘네덜란드 출신의 아거스 산의 가롤로 신부’로 불리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는 특별히 신심 깊은 사제였다. 그는 순명의 수련, 가난의 실천, 겸손과 단순함, 더 나아가 주님의 수난에 대한 신심에 있어서 탁월했다. 미숙한 영어 실력으로 인해 공식적인 설교자나 강론의 직무를 맡을 수는 없었지만 매우 성공적으로, 특별히 고해성사를 통해 영적 지도에 헌신하였다. 그의 덕행에 대한 명성은 많은 이들이 그로부터 축복을 받기 위해 수도원으로 모여들게 했다. 또한 확실한 기적적 치유에 대한 수많은 증언이 회자되면서 그는 살아 있는 동안 이미 ‘기적을 행하는 자’로 널리 알려졌다.

       그의 명성이 영국 전역뿐 아니라 미국과 호주까지 전해지자 수도회에서는 그에게 잠시나마 휴식을 주고자 1866년에 그를 영국의 서튼(Sutton)과 런던(London)으로 이동시켰다. 그는 그곳에서 일상적인 소임을 맡았음에도 불구하고 수도원 내부와 외부에서 그리고 신자와 비신자 사이에서 곧 그의 존재가 드러났다. 그는 1874년에 다시 더블린으로 돌아와 아거스 산의 수도원에서 1893년 1월 5일 새벽에 선종할 때까지 머물렀다. 장엄하게 거행된 그의 장례 예식 중에 아일랜드 전역에서 수많은 사람이 참석함으로써 일생 그의 삶을 통해 대중에게 헌신한 결과가 분명히 드러났다. 당시 신문 기사 역시 성 가롤로 신부의 유해를 보기 위해 그토록 많은 이들의 종교적 감성과 존경을 불러일으킨 일은 그 이전 누구의 장례식에서도 볼 수 없었다고 그 분위기를 전했다. 수도원장은 그의 가족에게 보낸 서신에서 사람들이 이미 그를 성인으로 선포했다고 적었다. 그의 유해는 아거스 산의 수도원에 모셔졌다.

       성 가롤로 신부의 시복시성을 위한 절차는 1935년 11월 13일에 시작되었다. 오랫동안 면밀한 조사를 거쳐 1988년 10월 16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는 모든 이들이 ‘아거스 산의 성인’으로 부르는 그의 시복식을 집전하였다. 그 후 시성을 위한 기적 심사가 시작되었고, 다방면의 조사 끝에 그 정당성이 인정되어 2007년 6월 3일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베네딕토 16세(Benedictus XVI)에 의해 다른 세 명의 복자와 함께 시성식을 갖고 성인으로 선포되었다. 그는 ‘아거스 산의 성 가롤로’(Saint Charles of Mount Argus)로도 불린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1월 5일 목록에 그의 이름을 추가하며 성 안드레아의 가롤로(당시에는 복자)가 예수 고난회의 사제로서 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 열정적으로 참회의 성사(고해성사)를 주었다고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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