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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온 프란조26-28: 로마(Roma), 사랑(Amor), 그리고 시뇨라 데레사(Signora Tere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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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12-04 ㅣ No.702

[고영심의 부온 프란조!] 26. 로마(Roma), 사랑(Amor), 그리고 시뇨라 데레사(Signora Teresa) ①


12월 8일, 가정마다 구유와 성탄 나무 꾸미며 주님 기다려

 

 

시뇨라 데레사(사진 왼쪽)와 함께한 필자.

 

 

“시뇨라 데레사(Signora Teresa), 안녕하세요? 모니카예요. 2년 전, 유럽이 코로나로 심한 몸살을 앓기 시작할 때, 로마에 있는 제 둘째 아이의 안위도 걱정이었지만, 이탈리아의 고령 노인들이 하루에 1000명 이상 유명을 달리한다는 그 참담한 소식에 얼마나 가슴을 졸였는지 모릅니다. 시뇨라 데레사의 안위를 걱정하던 중, 전화벨이 울리고 익숙한 로마의 전화번호에 저는 시뇨라 데레사인 줄 금방 알았죠. 이심전심이랄까요? 그래도 제가 먼저 전화를 드렸어야 했는데 말입니다.고령의 당신이 딸 같은 저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걱정되신 나머지 먼저 전화하신 것이었겠지요.청력도 약해지셔서 ‘모니카니? 모니카?’라고 크게 부르시는 낯익은 목소리에 얼마나 반갑고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저도 너무나 반가운 나머지 큰소리로 ‘네, 모니카예요! 시뇨라 데레사, 안녕하세요? 어떻게 지내시나요?’라고 인사를 드렸어야 했던 건 아닙니까? 혹 그날의 제 안부의 첫 마디에 섭섭함은 안 남으셨는지, 내심 죄송스럽습니다. 당시 이탈리아 뉴스에서 보도되는 노인 사망자 숫자의 여파였어도 그렇지, 어찌 제가 그런 실수를!안 들리실까 봐, 그것도 큰소리로 외치다시피 했던 첫 인사는 ‘시뇨라 데레사, 아직 살아계시는군요!’ 였으니요. 잠시 침묵이 흘렀죠. 그러다 위트와 유머의 달인이신 당신은 ‘오, 아직 하느님께서 원하시지 않아 살아남았다. 원하시면 언제라도! 호호호’라고 답변을 주셨던 게 기억납니다.

 

 

시뇨라 데레사와 추억 깃든 로마의 겨울날

 

저의 주방 창과 마주 보이는 당신 거실 창에서 우리의 하루가 시작되고 하루가 저물었습니다. 그때가 그립습니다. 거실 창에서 ‘모니카, 뭐하니?’라는 당신 목소리가 들리면 저는, 척 하면 삼천리였지요. ‘까페요? 갑니다!’ 하며 미리 열어두신 대문을 통해 쏜살같이 뛰어들어갔지요. 시뇨르 피르미노(시뇨라 데레사의 남편)께서 돌아가신 후, 저는 당신의 적적함을 달래 드리려 어떤 때는 잠옷 차림으로도 달려가 까페 에스프레소를 같이 마시며 담소를 나누었지요. 뵙고 싶은 시뇨라 데레사, 2022년 마지막 달인 12월입니다. 당신 주방의 난로에서 노란 속살을 드러내며 맛나게 구워지던 군밤이 생각납니다. 저의 환호성에 은근 행복해하시며, ‘까페? 아니면 비노(Vino, 포도주)?’ 하고 물으셨지요. 아들 알베르토가 매년 가을에 받아다 주는 카스텔리 로마니(Castelli Romani)의 벨레트리(Veletri) 와인을 어찌 제가 마다하겠습니까? 포도원에서 직접 받아 온 포도주 한 잔의 진한 맛과 향기에 취하고, 남편 시뇨르 피르미노 생전에 티격태격하셨던 그 추억도 그리움으로 남아 취하던 로마의 겨울날이 생각납니다.

 

- 12세기부터 16세기 사이에 중세식으로 건축된 로마 동쪽의 룬게차 성(Castello di Lunghezza). 시뇨라 데레사는 이 성 근처 동네에 산다.

 

 

성탄 장식 시작으로 성탄 과자도 만들어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인 12월 8일이면, 이탈리아에서는 가정마다 구유를 꾸미고 성탄 나무(Albero di Natale)를 세우지요.그 전통이 있다는 것을 저는 그때 알았어요. 웬만한 본당 수준의 크기로 거실 한쪽에 몇 날 며칠 구유를 꾸미시던 시뇨르 피르미노가 생각납니다. 수십 년 동안 보관하고 사용하던 두 분의 소품들이다 보니, 지난 시대의 역사가 보이는 듯하여 신기했습니다. 우리는 ‘구유’ 문화가 없으니까요. 12월 대림 시기의 첫 여정을 휴일(이탈리아는 12월 8일이 국가 공휴일)로 정한 상징적인 의미가 있더군요. 원죄 없이 태어나신 성모님의 출생의 깨끗함은 나무의 희망과 탄생, 다시 태어남이란 의미와 같아서일까요? 시뇨라 데레사의 집뿐 아니라 온 동네 이웃들의 집 안팎은 화려한 성탄 장식을 시작으로 성탄 시기 내내 먹고 선물할 과자들을 만들기 시작하지요. 이러한 이탈리아 전통을 답습한 저도 로마를 떠나온 지 10여 년이 지났지만, 해마다 제 고향에서 친구들과 성탄을 함께 보냅니다. 시뇨라 데레사, 지금쯤 당신 정원 구석에 있는 오래된 화덕을 청소하고 계시지는 않으신지요?머릿수건 쓰시고 앞치마 입으신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르는군요. 여러 종류의 성탄 비스코티(Biscotti, ‘두 번 굽다’는 뜻의 이탈리아어) 중에 제겐 단연코 시뇨라 데레사의 ‘레드와인 비스코티(Biscotti al vino rosso)’가 최고입니다. 살짝 나무 향내가 나는 당신의 비스코티가 먹고 싶군요. 그 향수를 달래려고, 오늘은 저도 구워봤습니다. 화덕에 굽지는 못하지만, 오븐에 구운 맛도 그리 나쁘지는 않습니다.

 

 

“시뇨라 데레사, 페투치네 먹고 싶어요”

 

제게 전화 주셨던 그 날, ‘모니카, 언제 오니?’ 하고 물으셨는데 아직 로마를 못 가고 있습니다. 마음이야 당장 달려가고 싶습니다. 3년 전에 뵙고 온 날이 생각납니다. 갑작스러운 저의 출현에 놀라시기도 했지만, 뭐라도 빨리 먹여야겠다고 생각하시곤 종종걸음으로 점심을 준비하셨지요. 저는 내심 시뇨라 데레사의 토마토 살사(Salsa)로 버무린 페투치네(fettuccine) 파스타를 먹고 싶었습니다. 제가 원하는 파스타는 물론 비스테카(Bistecca)와 치커리아 파싸토(Cicoria passato) 등 접시를 싹 비웠더니 어찌나 행복해하시던지요.요리 경연대회나 생면 페투치네 썰기 대회에서 거머쥔 거실의 트로피 수만 봐도 당신 음식 솜씨가 얼마나 좋고 대단한지 온 동네 사람들은 다 알 정도이니까요. 바로 당신 옆에서 근 6년을 살았던 저에게 ‘하나를 알려주면 열을 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던 것도 기억하고요. 점심 후, 거실에서 까페를 마시며 벽에 걸린 당신의 베네치아 신혼여행 사진을 보며 젊은 시뇨르 피르미노와 미니스커트의 시뇨라 데레사의 모습에 우리는 웃음을 터뜨렸지요. 작은 체구로 성실하게 가족을 지켜 온 당신 체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거실 샹들리에의 크리스털이나 은그릇들이 항상 반짝반짝 빛이 났었는데 뿌옇게 변한 것을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지요. 시뇨라 데레사, 은그릇이 뿌옇게 변해도 좋고 걸음걸이가 종종걸음이어도 괜찮습니다. 잘 안 들리셔서 화난 듯 소리치셔도 좋습니다. 부디 제가 뵈러 갈 때까지 건강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저는 넉살 좋게 ‘시뇨라 데레사, 페투치네 먹고 싶어요’ 하며 당신 대문의 그 요란한 벨을 꾹 눌으러 달려가겠습니다.참, 하느님이 부르셔도 대답하지 마세요. 그럼 돌아오는 봄날에 뵙기를 약속하며 인사드립니다. 안녕히 계세요.”

 

 

레시피 : 레드와인 비스코티(Biscotti al vino rosso)

 

▲ 준비물 : 박력분 250g, 해바라기 유 65㎖, 설탕 75g, 적포도주(Red wine) 70㎖, 소다 4g, 소금 한 꼬집, 아니체(아니스 허브) 2분의 1 찻숟가락, 황설탕.

 

→ 밀가루, 설탕, 소다, 그리고 소금을 체로 친다.

→ 곱게 체를 친 가루에 해바라기 유를 넣고 살살 버무린 다음에 적포도주(레드 와인)도 함께 넣어 반죽을 시작한다.

→ 마지막으로 아니체를 넣어 반죽하고 랩에 씌워 30분간 실온에 둔다.

→ 지름 2㎝ 정도로 길게 밀어, 10㎝ 길이로 자른 다음 둥글게 잇는다.

→ 한쪽 면만 황설탕을 묻힌 다음, 종이 호일 위에 일정한 간격으로 놓는다. 180도에서 35~40분간 굽는다. 설탕을 묻힌 면이 옅은 갈색으로 구워지면 꺼내 식힌다.

 

▲ 모니카의 팁

 

구워진 비스코티는 밀봉 통에 보관하면 근 한 달은 먹을 수 있다. 아니체를 구하기 어려우면 ‘미스트라(Mistr, 아니체를 넣은 LIQUORI)’를 적당량(10㎖) 넣으면, 특유의 향으로 비스코티의 풍미를 더해 준다. 대형 마트에서 살 수 있다. 비스코티에 빨간 리본으로 장식하여 성탄 선물을 대신할 수 있고, 성탄 나무에 걸어 놓아도 예쁘다. [가톨릭평화신문, 2022년 12월 4일, 고영심(모니카, 디 모니카 대표)]

 

 

[고영심의 부온 프란조!] 27. 로마(Roma), 사랑(Amor), 그리고 시뇨라 데레사(Signora Teresa) ②


성탄 전야 ‘기름지지 않은 음식’ 생선 요리 즐기며 주님 탄생 준비

 

 

- 로마 우르바노대학 재학시절에 친구 안토넬라(왼쪽)와 성탄나무와 구유 아래에서 함께한 필자.

 


로마에서 보낸 18번의 12월에 관한 추억

 

“제가 보냈던 로마에서의 18번의 12월이 어떠했는 줄 아시나요? 시뇨라 데레사? 맞아요, 너무도 즐거웠고 행복했습니다. 대학 기숙사에 있었을 때의 12월과 로마인 이웃들과의 12월은 확연히 달랐어요. 정말입니다. 우선 학생 시절의 12월은, 너무 오래된 추억이지만, 다시 떠올리니 웃음이 나옵니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대학생들이다 보니, 이미 크리스천 문화가 그들 삶 속에 녹아 있는 친구들의 성탄 문화는 솔직히 멋져 보였어요. 성탄 방학이 시작되면, 친구들은 한껏 멋을 내고 삼삼오오 시내로 나가더라고요. 값비싼 선물은 아니더라도 친구들에게 줄 선물, 카드를 사느라 온종일 거기에 정신이 팔려 저녁 식사 시간에 헐레벌떡 뛰어 돌아온 친구들이 생각납니다. 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성탄의 종교적 의미와 이탈리아의 전통문화에 이르기까지 피부로 직접 느껴보니 풍요로운 마음이 저절로 생겼습니다. 그리하여 저도 친구들처럼 시내에 나가 이것저것 성탄 선물과 카드를 사들여 정성스럽게 포장하고 아름다운 언어를 총동원하여 카드를 썼어요. 제 축하와 정성을 받고 기뻐할 친구들의 얼굴을 떠올리면서요. 캄캄한 어둠 속의 산타클로스처럼 친구들의 사물함에 살짝 넣고 왔지요. 아, 잽싼 다른 산타의 선물은 이미 친구들의 사물함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가나에서 온 피터의 성탄 무기 ‘빨간 양말’

 

시뇨라 데레사, 며칠 전 카타르 월드컵에서 우리나라와 가나전이 있었어요. 가나에 승리를 열망하는 국민의 함성도 함성이었는데, 글쎄 저는 그 순간 잊고 있던 한 친구가 떠오르는 거예요. 같은 학년의 ‘피터’라는, 가나에서 장학생으로 온 친구였답니다. 저는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던 이유가 있었어요. 개강하자마자 저를 쳐다보더니 저에게 푹 빠진 것이란 걸요. 당시 동양인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고, 심지어 쌍꺼풀 없는 제 눈을 보고 누구나 ‘판타스틱(Fantastico)!’하다고 제 미모에 감탄을 연발했으니까요. 제가 한 미모했었거든요. 하하하. 농담 아녜요. 시뇨라 데레사! 강의 중에도 하도 저를 쳐다보니 얼마나 불편하던지, 피터에게 계속 이런 식으로 나오면 너희 주교님께 편지를 쓸 거라고 엄포를 놨는데도 요지부동이었어요. 아예 교수님들도 친구들도 피터의 이러한 일방적인 2m 애정 공세(항상 멀찍이서 바라봄)를 즐기는 듯하였습니다.

 

결정적으로 제가 웃음을 빵 터뜨렸던 그해 성탄, 피터는 바짝 붙은 머리에 가르마까지 하곤 까만 양복에 빨간 셔츠를 차려입고 나타난 것이었어요. 얼마나 향수를 뿌렸는지, 학생 식당 전체가 그의 향수 냄새로 진동하였어요. 성찬이 차려진 식당에 둘러앉은 학생들과 교수들 사이에서 피터는 역시 저를 주시하며 뭔가를 보여주고 싶은 여유만만한 미소(피터는 미소만 띠었다. 그의 앞니 하나가 빠진 핸디캡을 결코 드러내지 않았다.)를 띠더군요. 저에게만 보여주고 싶었던 그의 비장의 성탄 무기가 이미 다른 친구들에게 들켜 버린 것이었어요. 모든 친구가 박장대소한 이유는 그의 양말이었답니다. 피터는 분명 저를 향해 환하게 웃고 있었어요. 순간 저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결코, 남들에게 주지 않는 환한 웃음과 저 빨간 양말의 의미를요. 시뇨라 데레사, 그날은 피터에게 화를 내지 않았어요. 친구들과 돌아가며 성탄 인사(이탈리아식으로 왼쪽 오른쪽으로 얼굴을 가져다 대는 인사)를 하다 피터 차례가 되자 ‘모니카 영심 코! 나 어때 근사해? 오늘 이 양말 신경 썼는데 괜찮아?’라며 앞니 없는 함박웃음으로 ‘성탄 축하해, 부온 나탈레!(Buon Natale) 모니카 영심 코!(Monica Young Shim Ko, 피터는 항상 나를 이렇게 불렀다)’ 그냥 미소만 띠는 게 훨씬 나아 보였지만, ‘응~ 멋있어. 부온 나탈레, 피터!’라며 성탄 인사를 건넸죠.

 

시뇨라 데레사, 그때 피터에게 물어보지 못한 말이 있었어요. 지금도 궁금하답니다. 그 양말이 글쎄 추기경의 양말색깔과 똑같다고 쑤군거리는 친구들도 있었거든요. 학업을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간 피터는 고향의 가나 규수와 혼인하여 교회를 위해 열심히 일하며 산다는 이야기를 그의 후배인 마르타를 통해서 들었습니다. 어쩌면 이역만리에서 같은 날, 피터도 한국-가나전을 보며 ‘모니카 영심 코’를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생전 처음으로 만나 같이 공부했던 아프리카의 피터, 모잠비크의 안젤라, 콩고의 아순타 등 친구들이 생각나는 12월입니다. ‘피터, 그때 그 양말 어디서 구한 거야?’ 라고 물어볼 날이 올까요?

 

 

왜 육류는 제외하고 생선으로만 준비할까

 

시뇨라 데레사, 이탈리아인들은 성탄 당일보다 12월 24일 성탄 전야의 음식을 준비하는 데 온 신경을 쓴다는 것을 시뇨라 데레사의 옆집으로 이사하고 알았습니다. 그 하루의 저녁 식사를 위해 소비하는 비용이 천문학적 금액이라고 좀 과장하여 말하는 이들도 있더군요. 왜냐하면, 평소에 비싸서 사지 못했던 생선이나 해물을, 그것도 생물로 사려고 지갑을 기꺼이 여니까요. ‘왜 성탄 전야 저녁 식사를 육류를 일체 제외하고 생선으로만 준비하느냐?’는 저의 질문에, 시뇨라 데레사를 비롯하여 동네 사람들은 ‘응, 우린 옛날부터 그렇게 해왔어. 우리 전통이지’라고 답해 주셨잖아요. 제 의문을 풀어 준 분은 알렉스 본당 신부님이셨어요. 기억하세요? 그냥 ‘조상들이 그렇게 해왔으니 그런 거야’라는 상투적인 생각에 답답하셨는지, 대림 시기인 어느 주일 미사에 설명을 해주셨던 거요.

 

디 모니카에 차린 성탄 식탁. 성탄이면, 이탈리아에 있을 때처럼 필자는 친구들을 초대해 함께 음식을 나누며 성탄의 기쁨과 희망을 나눈다.

 

 

예수님 기다리며 함께하는 성탄 전야 만찬

 

금요일, 성령 강림, 모든 성인, 성탄의 전야는 금식 또는 가난한 음식으로 경건하게 맞는 가톨릭교회가 지켜오던 신심이었고, 특히 성탄 전야의 ‘기름지지 않은 음식을 먹는 날(Giorni di magro)로서 구세주 예수의 탄생을 기다리는 우리의 마음을 더 깨끗이 표현하고자 시작했다고 그러시더군요. 성경적 의미도 설명해주셨는데 생각이 나지 않는군요. 어쩌면 이 의미는 예수님을 기다리며 함께하는 식탁에 육류(피)보다는 좀더 영적으로 깨끗한 생선이나 해물을 식탁에 올리는 게 낫지 않겠냐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싶네요. 그렇게 생선이 가난한 식탁의 주인공이 되면서 오늘날에는 외려 빈부격차까지 느끼게 되었으니, 안타깝습니다. 돈 없는 사람들은 그 생선을 비싼 생물로 살 수 없으니 냉동 생선으로 만족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고 그게 현실이고 보니, 성 바오로 6세 교황께서는 종교적 계율로 금식과 단식의 실천을 완화하고 제한한 것이 감사하게 생각됩니다. 그러나 이미 이탈리아의 국민적 전통으로 자리 잡은 성탄 전야 식탁은 시뇨라 데레사만 봐도 압니다. 성탄 2주 전에 이미 사다 놓으신 ‘바칼라(Bacal, 소금에 절인 대구)’를 물에 담가 소금기를 없애기 위해 밤낮으로 물을 갈던 것도 기억납니다. 하얀 속살로 변하는 바칼라는 몇 가지 맛있는 요리로 변신하니, 저는 군침을 흘리며 성탄 전야 성찬만 기다렸지요.

 

시뇨라 데레사, 제 위층에 사는 세 아이의 엄마인 당신 막내딸 마우라의 성탄 전야 만찬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저녁 8시에 시작한 만찬이 새벽 3시에 끝났던 그 날의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죠. 아, 제가 다음 이야기에 돌아가신 시뇨르 피르미노(Signor Firmino)를 언급해도 되겠습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두 분이 늘 제 앞에서 티격태격 싸우신 스토리는 되도록 언급 안 할게요. 시뇨라 데레사, 춥지 않은 것 같은데, 으슬으슬 추운 로마 날씨조차 그립습니다. 건강 유의하시고 안녕히 계세요. ‘뜻깊은 대림(Buon Avvento)!’”

 

 

레시피 : 성탄절 생선 주파(Zuppa di pesce di Natale)

 

▲ 준비물 : 씨를 뺀 생토마토 2개, 홍합 적당량, 봉골레(Vongole, 바지락), 문어, 오징어, 새우, 가재, 마늘 2쪽, 셀러리(Celery), 양파, 당근, 페페론치노(Peperoncino, 매운 고추 일반), 이탈리안 파슬리 프레체몰로(Prezzemolo), 화이트 와인(드라이, Secco), 올리브유(엑스트라 버진), 소금, 후추.

 

→ 채수 : 깊은 냄비에 물 3ℓ, 화이트 와인 300㎖, 당근 1개, 셀러리 1줄기, 양파 1개, 파슬리 줄기 1개, 페페론치노 1개, 소금을 넣고 끓인다.

→ 모든 해물은 흐르는 물에 잘 씻고, 적당한 크기로 잘라 놓는다. 문어를 데친 물은 버리지 않는다.

→ 홍합과 바지락은 삶아서 살은 발라내고, 홍합과 바지락을 삶은 국물은 체에 밭친 다음 따로 둔다.

→ 냄비에 마늘과 당근, 양파, 셀러리를 잘게 다진 후 올리브유를 두르고 나무 주걱으로 볶는다.

→ 씨를 뺀 토마토를 잘게 썰어 같이 볶은 뒤, 가재와 화이트 와인을 넣고 바짝 볶는다.

→ 홍합과 바지락, 새우만 제외하고 준비된 해물(오징어, 문어)을 넣고 만들어 놓은 채수와 해물 국물을 넉넉히 부은 뒤 40분간 중불에서 끓인 뒤 마지막으로 홍합, 바지락, 새우를 넣고 10분간 끓인다. 소금과 후추로 간을 맞춘 뒤 올리브유를 살짝 올린 뒤 접시에 오븐에 구운 통곡물빵과 곁들여 낸다.

 

▲ 모니카의 팁

 

오징어와 문어를 충분히 끓여야 주파(Zuppa)의 맛이 좋다. 가재가 없으면, 꽃게를 이용해도 좋다. 바지락과 홍합의 육수가 짜니 마지막에 간을 맞출 때, 소금은 적당량만 넣으면 된다. 매콤한 맛을 즐기려면, 주파 위에 페페론치노를 1개 정도 부수어 넣으면 된다. 바삭한 빵과 함께 즐기는 주파의 맛은 우리 입맛에 맞는 최고의 겨울 음식이다. [가톨릭평화신문, 2022년 12월 11일, 고영심(모니카, 디 모니카 대표)]

 

 

[고영심의 부온 프란조!] 28. 로마(Roma), 사랑(Amor), 그리고 시뇨라 데레사(Signora Teresa) ③


모니카가 생선 대가리를 좋아한다고요? 오, 맘마 미아!

 

 

2022 성탄을 앞두고 성 베드로 광장에 불을 밝힌 구유와 성탄나무. 구유는 러시아와의 전쟁으로 고통받는 우크라이나에서 제작해 가져왔고, 성탄 나무는 182명이 살아가는 이탈리아 중부 아브루초 주(Regione Abruzzo)의 작은 산골마을 로셀로의 주민이 기증한 것을 공수해 설치했다.

 

 

“시뇨라 데레사, 그 일 기억하시나요? ‘모니카가 생선 대가리를 좋아한다’는 소문이 동네에 쫘아악 퍼진 사실을요. ‘내 살다 살다 생선 대가리를 좋아하는 사람은 처음 보는군’ 하며 저를 참 이상한 사람처럼 바라보던 시뇨르 피르미노! 바람처럼 퍼져나간 그 소문 때문에 잠시 잠깐이었지만 황당했었어요. 결코, 제가 생선 대가리나 발라먹는 여인으로 소문이 난다는 건 좀 아니잖습니까? 빛의 속도로 퍼진 그 소문을 들은 당신 큰딸 피오렐라도, 아래층의 빅토리아도 저의 집 초인종을 눌러대며, ‘오, 모니카! 생선 대가리 셋이나 가져왔어!’ 하며 마치 대단한 음식이라도 가져다주는 양 제게 안겨주던 사실을요. 이럴 때, 이탈리아어로 ‘맘마 미아(Mamma mia)!’★라고 하지요. 저는 연신 ‘맘마 미아’를 외치는데 그들은 좋아서 외치는 줄 알더군요.

 

 

성탄 전야 저녁 만찬에서 생긴 일

 

전말은 이러했지요. 성탄 전야(Viglia di Natale) 저녁 만찬에 저의 집 위층에 사는 당신 막내딸 마우라(Maura)가 초대했잖아요. 당신을 닮아 요리 솜씨가 좋은 그녀의 해물 요리, 특히 봉골레 파스타는 웬만한 셰프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맛이 뛰어나니, 한 요리한다는 저도, 성탄 전야 저녁(Cenone)을 은근 기다렸지요. 마우라의 이탈리아 풀코스(Tavola italiana) 여정은 전식(Antipasto)부터가 예사롭지 않았지요. 본식(Piatto principale)은 시작도 되지 않았는데 끊임없이 나오는 그녀의 갖가지 전식 요리에 배를 채우는 그런 어리석은 일은 결코 없었답니다. 이탈리아 식탁 문화를 몰랐을 땐, 전식부터 먹다보니 본식엔 한 입도 대지 못했던 쓰라린 경험이 있었던 터라 말입니다. 이미 마우라 주방에서 본 백색 소금에 쌓인 ‘커다란 돔’이 제 눈에 들어왔으니까요. 오늘의 주인공, 메인의 두 번째 요리(Piatto secondo)를 먹으려면 전식은 물론 메인의 첫 번째 요리(Piatto primo, 주로 파스타)도 현명하게 대처해야 할 터! ‘맘마 미아!’, 그때, 노오란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가 좔좔 흐르는 봉골레 파스타를 들고 마치 할리우드의 빨간 카펫에 선 여배우처럼 가슴이 드러난 드레스의 마우라가 자신의 세 아들의 환호성에 답하며 거실 식탁으로 등장하는 것이었습니다. 아, 이쯤 되면 오븐에서 익어가는 저 돔요리는 잠시 잊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의 굳은 의지는 금세 무너졌지요. 입 주변은 모든 맛의 ‘끝판왕’ 격인 봉골레의 향과 올리브유로 범벅이 되어 버렸지요. 시뇨라 데레사, 저의 의지는 그렇게 무너지더군요. 명절 만찬 파스타도 보통 두어 가지가 나오지만, 그 이후 파스타는 입에도 안 댔습니다. 막 오븐에서 나온 파스타의 주인공격인 라자녜(Lasagne)가 나와도요. 얘기가 길어졌습니다.

 

빈 접시의 생선 대가리를 로마에 사는 둘째 키아라(김지휘)가 그려주었다.

 

 

어두육미, 생선 맛의 진미를 저버리다니

 

그 소문에 대한 진실은 제가 그렇게 기다리던 ‘돔 오븐 구이’의 등장에서 시작됩니다. 잘 구워진 돔이 그 자태를 뽐내며 식탁 가운데에 놓이기를 바랬는데, 기억하시지요? 마우라가 식탁 한가운데 가져다준 메인 접시 위의 돔은 중간 부분만 살짝 떠서 가져온, 얼마 되지 않는 흰살뿐이었다는 걸요. 그녀가 워낙 생선 가시를 무서워한다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이건 아닌데 싶어서, ‘마우라, 나머지 생선 부분은 어딨어?’ 하고 물으니 ‘응, 생선 가시가 많아서 안 먹을 거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비싸기도 하지만, 요리 전 그 오랜 시간을 들여 밑작업을 했던 돔에게 미안하지도 않은지 싶어, 마우라를 흘겨보며 돔의 3분의 2는 버리고 나머지만 먹는 그 비현실성에 대해 저도 한마디 했지요. ‘어두육미(魚頭肉尾)!’ 생선 맛의 진미를 저버리면 되겠느냐, 우리나라에선 생선 머리도 여러 용도로 먹고 쓴다, 육류는 꼬리 부분이 맛있다는 말과 함께 머리는 물론 몸통과 꼬리 부분에 남아 있는 살만 발라 먹어도 며칠은 먹겠다고 쓴소리를 했던 거예요. 기억하시지요? 네, 거기서부터 나온 소문이었지요. 시뇨라 데레사, 항상 딴지를 거는 데 챔피언인 시뇨르 피르미노가 의심이 갈 수밖에 없습니다. ‘살다 살다 생선 대가리가 맛있다는 사람 처음 봤다’며 저를 보시며 큰소리로 말씀하시던 것 기억하세요? 늘 아내 시뇨라 데레사 편만 든다고 제게 불만을 가지셨던 걸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만, 제집 주변의 이웃 서넛이 생선 대가리를 들고 초인종을 눌렀던 것만 보더라도 저는 소문의 진원지가 ‘시뇨르 피르미노’일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로마에 가서 따지고 싶어도, 돌아가셨으니 이젠 그럴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뵙고 싶은 시뇨라 데레사, 제가 로마를 떠나기 전, 전 해에 성탄을 같이 보내고 12월 31일 마지막 날 하느님 곁으로 가신 남편 시뇨르 피르미노의 생각으로 착잡한 마음이 드시지 않을까 염려가 됩니다. 매주 금요일에 그분이 누워있는 묘지에 지금도 가시나요? 묘비 대리석의 ‘피르미노 베르티’(Firmino Berti)의 이름이 당신 거실의 크리스털처럼 늘 반질반질 빛나게 닦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명절을 앞두고 뵈러 가신다면, 모니카의 안부 전해 주세요. 안녕히 계세요. 참, 마우라에게도요. 부온 나탈레(Buon Natale, 성탄을 축하합니다)!”

 

 

이들은 왜 ‘맘마 미아’를 입에 달고 살까

 

★왜 이탈리아인들은 맘마 미아(Mamma mia)를 입에 달고 사는가? 다양한 손짓의 제스처와 미사여구의 관용구를 많이 쓰는 그들의 표현 중 하나가 단연 ‘맘마 미아’이다. 알다시피 엄마는 진정한 기준점, 특히 가정이라는 영역에서 어머니가 주는 위로와 보호, 애정을 대신해 줄 존재이다. 맘마 미아라는 표현의 기원은 아마도 마돈나(Madonna)이자 예수님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로 귀결되는데, 아들의 죽음을 바라보는 마돈나의 표정과 통고는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의 개념을 잘 나타내 주기 때문인 듯하다.

 

우리는 또한 어머니가 아이를 배는 기간, 또 출산 직후에 가장 먼저 만나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그 존재는 안전함과 편안함으로 경험되는 중요성을 감안할 때, ‘나의 아버지’ 또는 ‘나의 할머니’라는 표현보다 자연스레 “맘마 미아’라는 표현을 자연스럽게 썼을 것이다. 이탈리아인들은 다양한 상태의 감정을 묘사하며 놀람과 감탄, 실망과 분노 등을 나타내기 위해 이 말을 쓰는데, 이 단순한 문장이 다른 성조로 발음되면 그 의미가 달라진다. 이 한 문장 ‘맘마 미아’는 놀라는 순간에 행복과 놀라움으로 이해되지만, 무서워할 때는 두려움으로 표현된다. ‘아니, 왜 안돼?’라는 뜻으로 ‘맘마 미아’를 외치면, 실망의 의미로 이해된다.

 

아무튼 엄마(Mamma)라는 강력한 문구가 떠올려지는 이탈리아인들의 이 ‘맘마 미아’는 호기심의 문구일 수밖에 없다.

 

 

레시피 : 봉골레 스파게티(Spaghetti al vongole)

 

▲ 준비물 : 봉골레(바지락) 200g, 스파게티 120g, 올리브 유(엑스트라 버진) 3큰술, 마늘 한 쪽, 후추, 생 이탈리안 파슬리(Prezzemolo) 2줄기.

 

→ 바지락은 잘 해감하여 흐르는 물에 씻는다. 팬에 씻어 건진 바지락을 넣고 센 불로 살짝 익힌다. 입이 벌어지면 체에 밭쳐 두고, 바지락에서 나온 육수는 면보에 걸러 담아 놓는다. 살은 반만 발라내고 반은 껍질째 흐르는 물에 씻는다. 해감을 아무리 잘해도 살 속에 갯벌 흙이 조금은 남아 있기 때문이다.

 

→ 끓는 물에 소금을 넣고 스파게티(또는 Linguine)를 넣는다. 중약불에 올리브유를 팬에 넣고 으깬 마늘 하나를 넣고 황금색이 나도록 익힌 다음 꺼낸다.

 

→ 알덴테(al dente. 면 가운데에 아직 덜 익은 부분이 보였을 때)일 때 팬의 올리브유와 함께 동그랗게 저어가며 볶는다. 바지락 육수를 조금씩 넣어가며 크림화한다. 이때 면을 먹어봐야 하는 이유는 바지락 육수(간이 세기 때문)를 적당히 넣어야 하기 때문이다. 거의 익어가면 정리된 바지락 살을 넣고, 올리브유를 조금 두르고, 센불에 볶은 다음, 다진 생 이탈리안 파슬리를 넣고 후추를 살짝 뿌린 뒤 접시에 담는다.

 

▲ 모니카 팁

 

봉골레 파스타는 누구나 맛있게 만들 수 있는 파스타이다. 롱 파스타(스피게티, 링귀네, 페투치네)가 어울린다. 같은 방법으로 홍합(Cozze)으로 대신해도 맛있다. 페페론치노(Peperoncino, 이탈리아 요리에 사용되는 매운 고추 일반) 두어 개를 마늘과 같이 넣으면, 칼칼한 맛을 즐길 수 있는 대표적 오일 파스타이다. [가톨릭평화신문, 2022년 12월 18일, 고영심(모니카, 디 모니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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