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4일 (일)
(백)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성서 주간) 내가 임금이라고 네가 말하고 있다.

교회문헌ㅣ메시지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 총회 제2회기(2024년 10월) 의안집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4-09-04 ㅣ No.1259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 총회


‘어떻게’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며

사명을 수행하는 교회가 될 수 있는가?


제2회기(2024년 10월)


의안집

(Instrumentum Laboris)



서론

 

“만군의 주님께서는 이 산 위에서 모든 민족들을 위하여

살진 음식과 잘 익은 술로 잔치를,

살지고 기름진 음식과 잘 익고 잘 거른 술로 잔치를 베푸시리라.

그분께서는 이 산 위에서 모든 겨레들에게 씌워진 너울과

모든 민족들에게 덮인 덮개를 없애시리라.

그분께서는 죽음을 영원히 없애 버리시리라.

주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 내시고

당신 백성의 수치를 온 세상에서 치워 주시리라.

정녕 주님께서 말씀하셨다”(이사 25,6-8).

 

이사야 예언자는 모든 민족을 위한 향연과 친교의 상징인, 주님께서 산 정상에서 준비하신 풍성하고 호화로운 잔치의 모습을 보여 준다. 성부께 돌아가시는 순간에 주 예수님께서는, 모든 민족에게 나아가 그들을 생명과 기쁨으로 충만하게 하는 음식으로 잔치를 베푸는 임무를 당신 제자들에게 맡기신다.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당신 교회를 통하여, 주님께서는 인류의 마음에 희망의 불을 다시 지피시고 기쁨을 되살리시며 모든 이를, 특히 얼굴이 눈물로 얼룩진 이들과 고통 속에서 주님께 부르짖는 이들을 구원하고자 하신다. 그들의 부르짖음이 그리스도의 모든 제자, 인간사에 깊이 참여하여 걸어가고 있는 이들의 귀에 가닿는다. 시노드 여정 중에, 계속해서 세상을 피로 물들이고 있는 너무나 많은 분쟁에 더하여 새로운 전쟁들이 발발하면서 그들의 부르짖음은 더욱 거세진다.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를 위하여: 친교, 참여, 사명”을 주제로 하는 2021-2024년 시노드의 중심에는, 주님을 따르고 주님의 사명에 봉사하기 위하여 헌신하는 가운데 느끼는 기쁨과 새로움으로 하느님 백성을 초대하는 부르심이 있다. 선교 제자들이 되라는 부르심은 세례로 받은 공통된 정체성을 바탕으로 하고, 한 분이신 아버지와 한 분이신 주님과 한 분이신 성령 안에서 존재하고 일치를 찾는 교회1)가 속한 맥락의 다양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는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세례 받은 모든 이에 대한 부르심이다. 하느님의 백성 전체는 복음 선포의 주체이다. 하느님의 백성 안에서, 세례 받은 모든 이는 선교의 주역이 되도록 부름을 받는다. 우리 모두는 선교하는 제자들이기 때문이다”(「교회의 삶과 사명 안에서 시노달리타스」[Synodality in the Life and Mission of the Church], 53항). 이러한 쇄신은, 말씀과 성사를 통하여 성령께서 모으신 교회 안에서(제2차 바티칸 공의회, 주교들의 사목 임무에 관한 교령 「주님이신 그리스도」[Christus Dominus], 11항 참조), 의미에 굶주리고 친교와 연대에 목말라하는 이 세상에 자신이 계속 경험하는 그 구원을 선포하는 교회 안에서 드러난다. 이 세상을 위하여 주님께서는 당신의 산 위에서 잔치를 베푸신다.

 

오늘날 우리는 교회의 본질을 표현하는 시노달리타스를 실천하면서 이 사명에 대한 우리의 헌신을 새롭게 한다. 선교 제자로 성장한다는 것은, 당신을 따르라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우리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을 때 받은 선물에 부응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공동의 목적지인 천상 도성을 향하여 역사 속에서 걸어가는 순례하는 백성으로서 서로를 동반하는 법을 배우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 길을 걸어가면서 하느님의 말씀과 성체성사로 양육되어 우리가 받아 모신 것으로 변모된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구원받고 성화된 백성으로서 우리의 정체성이 지니는 피할 수 없는 공동체적 측면을 이해하고, 이것이 우리 이전 세대와 다음 세대의 모든 믿는 이를 포용하는 공동체로 우리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 아무도 혼자서 구원받을 수 없기에, 우리가 받아야 하고 증언해야 하는 구원은 관계적이다. 또는 아시아의 한 주교회의의 표현을 빌리자면, “시노달리타스는 단순히 목적이 아니고, 손에 손을 잡고 함께 성취하여야 하는 모든 믿는 이의 여정이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그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는 데에 시간이 걸린다는”(방글라데시 주교회의)2) 인식을 점진적으로 길러나간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연대 안의 순례, 곧 “하느님을 향하여 발걸음이 아니라 애정으로”(성 아우구스티노, 「설교집」[Sermones], 306 B, 1) 기도와 복음 선포와 이웃 사랑의 삶을 나누며 함께 걷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모든 사람이 세상의 빛이신 그리스도와 이렇게 일치되도록 불리었으며, 우리는 그리스도에게서 나와 그리스도를 통하여 살며 그리스도께 나아가고 있다.”(교회 헌장 3항)고 가르친다. 시노드 여정의 중심에는, 교회의 살아 있는 전통 안에 보존된 주님의 약속과 초대를 모든 이에게 전달하고, 우리 가운데에 계신 부활하신 주님의 현존을 인식하며, 성령의 활동의 많은 열매를 환영하고자 하는 오래되고도 늘 새로운 갈망이 자리 잡고 있다. 교회가 사명을 위하여 시노달리타스 회심을 추구하며 세계 모든 지역에서 순례하는 하느님 백성이라는 이러한 전망이, 기쁨과 희망으로 이 시노드 여정을 나아가는 우리를 이끌어 준다. 이는 위기 상황에 놓여 있고 상처와 부끄러운 불평등이 그리스도의 모든 제자의 마음을 깊이 울리는 세상의 현실과는 완전히 대조되는 전망이다. 이러한 전망은 우리가 폭력과 불의의 모든 희생자를 위하여 기도하고, 세계 모든 지역에서 정의와 평화의 장인인 모든 이와 함께 일하려는 우리의 헌신을 새롭게 하도록 재촉한다.

 

3년 여정

 

2021년 10월 9-10일에 시노드 과정이 개막된 뒤, 전 세계 지역 교회들은 다양한 속도와 방법으로 초기 경청 단계를 시작하였다. 교회에 속한다는 것은 구체적인 시공간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과 공동체로 구성된 하나의 하느님 백성의 일부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시노달리타스 경청은 이러한 공동체들에서 시작되었고 주교대의원회의 사무처가 종합 보고서와 작업 문서를 발표하여 활성화하는 데에 도움을 준 지속적인 대화의 일부로서 교구 단계, 전국 단계와 대륙 단계를 거쳤다. 시노드 과정의 순환성은, 교회가 다양한 맥락에 뿌리내리고 있음을 인식하고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교회의 이러한 뿌리내림은 다양한 맥락들을 하나 되게 하는 유대에 이바지한다.

 

첫 번째 단계의 새로움은 대륙별 회의들의 소집이다. 이는 같은 지역에 속한 개별 교회들을 하나로 결합시켰고, 이들이 서로에게 귀를 기울이는 법과 이 여정에서 서로를 동반하는 법, 그리고 이들의 맥락에서 사명을 성취하는 데에 제기되는 주요 도전과제들을 함께 식별하는 법을 배우도록 초대하였다.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 총회 제1회기(2023년 10월)로 두 번째 단계가 개막되었는데, 이 단계는 기도 안에서 식별하고 성령께서 우리에게 따르도록 요구하시는 순서들에 대하여 대화를 나누기 위하여 이러한 경청의 결실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 단계는, 제2회기(2024년 10월)의 폐막 때까지 이어지고, 이 제2회기 작업의 결실은 지역 교회들의 이행을 준비하며 교황 성하께 드리게 될 것이다.

 

제2회기 준비는 반드시 「종합 보고서」(Synthesis Report)에 제시된 제1회기의 결과에 기반하여 이루어진다. 시노드 과정 전체를 특징짓는 순환성에 따라 제2회기의 작업에 명확한 초점을 제공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안내 질문과 함께 개별 교회들의 자문이 시작되었다. 어떻게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며 사명을 수행하는 교회가 될 수 있는가?” 「2024년 10월을 향하여」3)에서 설명하듯 이 자문의 목적은, “여러 다른 맥락과 상황 안에서 우리가 따를 수 있는 길들과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도구들을 식별하여, 부활하신 주님과 그분의 복음을 오늘날 세상에 선포하는 바로 그 사명 안에서 세례 받은 이들의 고유한 의견과 교회 저마다의 고유한 의견을 강화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는 교회의 구조들을 더욱 효율적으로 만들기 위한 기술적 또는 절차적 개선을 위한 계획에 여러분들을 한정시키려는 요청이 아니라, 우리가 부름받은 선교적 헌신의 구체적 형태에 대한 성찰을 위한 초대이며, 이 선교적 헌신은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에 알맞은 일치와 다양성 사이의 역동성을 표현하는 것이다.”

 

제2회기를 위한 이 「의안집」 초안 작성은 대부분의 주교회의들과 대륙별 주교회의 연합들, 동방 가톨릭 교회들, 주교회의에 속하지 않은 교구들, 교황청 부서들, 축성 생활자들을 대표하는 세계 남녀 수도회 장상 연합회가 제출한 안내 질문에 대한 답변, 그리고 세계 전역의 경험과 모범 사례에 대한 증언들과 전 세계 고등교육기관, 신자 단체들, 공동체와 개인들이 제출한 약 200여개에 달하는 의견들에 비추어 이루어졌다. 이러한 방식으로 의안집은 전 세계에 있는 하느님 백성의 삶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이러한 목소리들은 지나온 여정에 감사를 표현하였고 때로 이것이 요구하는 어려움을 증언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목소리들은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열망을 이야기하였다. 북미의 한 주교회의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이 시노드 여정에 대하여 깊은 감사를 드린다. 미국 교회 안에서 동반자로서 이 길을 따라 걸으며 많은 일이 이루어졌다.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께서 언급하신 만남의 문화라는 개념을 유념할 때, 계속적인 성찰과 대화가 필요한 긴장들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러한 긴장들이 교회 안의 사랑의 친교를 해친다고 단언할 수 없다”(미국 주교회의). 이들은 또한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아 있음을 일깨워 준다.

 

이전 단계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성령 안에서의 대화 방법의 적용으로 얻는 이점이 재확인되었다. 한 주교회의 연합회의 발언을 예로 들 수 있다. 아시아 전역에서 제출된 많은 종합 의견서는 시노달리타스 여정의 시작점으로 성령 안에서의 대화를 적용하는 시노드 방법론에 대하여 매우 큰 열정을 드러내고 있다. 많은 교구와 주교회의는 이 방법을 기존 구조에 아주 성공적으로 적용하였다.” 이 열정은 더욱 시노드적인 진행 방법을 실험하기 위한 행보로 이미 옮겨졌다. 유럽의 한 주교회의는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이를 고려하여] 5년의 시노드 시범 단계를 이행하기로 결정하였다. 시노드 자문, 대화, 식별의 형태들 그리고 결정에 도달하고 결정을 내리는 과정의 형태들이 전국 차원에서 개발되고 평가되며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교구의 경험과 보편 교회에서의 시노드 과정의 전개를 고려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는 어렵지만 중요한 배움의 여정의 시작에 있다.” 종합 의견서들에는 지역 교회들의 가치와 그들의 여정, 그들이 지닌 풍요로움,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할 필요성에 대한 깊은 인식이 드러난다. 아프리카의 한 주교회의에서 받은 종합 의견서에 따르면, “지역 교회들은 더 이상 그저 복음을 듣는 대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의견이 없거나 매우 적다고 간주하고 그렇게 대우하여서는 안 된다.”

 

이러한 의견들에 ‘시노드를 위한 본당 사제 국제 모임’(사크로파노 [로마], 2024년 4월 28일 - 5월 2일)의 결실들이 더해졌다. 이 모임을 통하여, 본당 사목에 참여하고 있는 사제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작업 그룹들의 종합 의견서는 무엇보다도 ‘서로를 참으로 경청할 수 있는 기회에 대한 기쁨’을 표현하였다. 이 모임은 ‘서로의 고유한 배경에 대한 깊은 이해와 감사를 촉진하는 풍성한 경험이었다.’ 그들은 또한 ‘교회의 다양한 전통을 인정하는 시노달리타스 맥락 안에서 본당 사제의 역할을 이해할 필요성’과 주변부와 그곳에 사는 이들에게 닿을 수 없는 상태에 대한 염려 역시 표현하였다. ‘교회가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기를 원한다면, 교회는 반드시 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하여야 한다.’

 

또한 이 「의안집」(Instrumentum Laboris)은 주교대의원회의 사무처가 조직한 다섯 개의 작업 그룹들이 작성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이 작업 그룹들은 여성과 남성 그리고 교회 안의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는 세계 각지의 전문가들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시노달리타스 방법을 적용하여 시노달리타스의 의미와 교회의 삶에 있어서 그 함의점에 대한 신학적 교회법적 성찰을 심화하였다.4)

 

모든 대륙에서 교회 안의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는 주교, 신부, 축성 생활자와 남녀 평신도, 신학자, 교회법학자, 성서학자들로 이루어진 전문가 그룹은 제출된 의견서와 자료들을 읽고 해석하며 안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한데 모으는 임무를 맡았다. 이들의 작업은 이 「의안집」 초안 작성에 기여하였다. 이들의 성찰과 앞서 언급한 다섯 작업 그룹의 성찰은, 이 「의안집」의 내용을 위한 신학적 토대를 제공하면서 의안집과 함께 발표될 후속 자료의 작성에 기여할 것이다.

 

제2회기를 위한 준비 작업과 함께, 열 개 연구 그룹5)의 작업도 시작되었다. 이 그룹들에게 「종합 보고서」에서 부각되고 국제적 자문을 마무리하며 교황 성하의 확인을 거친 열 가지 주제6)를 심화하는 임무가 맡겨졌다. 전 세계 사목자들과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이 연구 그룹들은 시노달리타스 작업 방식을 이용한다. 이들은 2024년 2월 16일에 교황 성하께서 서명하신 친서와 교황령 「복음을 선포하여라」(Praedicate Evangelium, 제33조)에 따라 ‘다양한 주제들에 대한 관할 교황청 부서들과 이 작업의 조정을 맡은 주교대의원회의 사무처 사이에 맺은 공동 합의를 통하여 조직되었다.’ 이 연구 그룹들은 가능한 한 2025년 6월까지 심화 연구를 마치고, 2024년 10월 시노드 총회에 경과를 보고할 것이다. 제2회기의 결론에 이르기 전에 이미, 교황 성하께서는 제1회기에서 요청된 일부 사항들을 수용하시어 교황령 「주교들의 친교」(Episcopalis Communio)에서 다음과 같이 규정한 대로 이행 작업을 시작하셨다. 관할 교황청 부서와, 주제와 상황에 따라서 여러 방면에서 관련된 다른 부서들과 함께, 주교대의원회의 사무처는 교황이 승인한 시노드 권고들의 이행을 촉진한다”(제20조 1항). 교황청 교회법부와 합의하여 세계주교시노드를 위한 교회법위원회가 설립되었다. 마침내 제1회기의 요청에 따라(종합 보고서, 제16장 17항), 2024년 4월 25일에 아프리카-마다가스카르 주교회의 연합회(SECAM)는 아프리카 교회의 중혼제에 대한 신학적 사목적 함의를 식별하기 위한 특별 위원회 설립을 선포하였다.

 

제2회기를 위한 작업 도구

 

우리의 여정은 침묵, 기도, 하느님 말씀의 경청, 대화와 기쁜 만남으로 특징지어져 왔다.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를 통하여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우리는 말과 삶을 통하여 온 세상에 하느님 나라의 아름다움을 선포하는 구원받은 이들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공동 책임감을 가지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서로 형제자매라는 사실을 더욱 깊이 인식하게 되었다. 이 정체성은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이름과 얼굴이 새겨진 살아있는 경험이다. 제2회기를 준비하며 그리고 회기 중에 우리는 계속 다음과 같은 문제를 다룬다. 어떻게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며 사명을 수행하는 하느님 백성의 정체성이 교회가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관계와 길과 장소 안에서 구체적인 형태를 띨 수 있는가?

 

이 「의안집」의 목적은 제1회기 「의안집」에서도 언급된 다음과 같은 목적과 일치한다. 이 문서는 교회 교도권의 문헌도 아니고 사회학적 조사 결과 보고서도 아니다. 이 문서는 활동 지침 그리고 목표와 목적들의 형식을 제공하려는 것도 아니며, …… 어떤 신학적 전망을 제시하는 작업 문서인 것은 아니다”(10항; 참조: 「대륙별 단계 작업 문서」, 8항). 이 문서를 이해하려면 이를 전체 시노달리타스 과정 안에 두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주교대의원회의 사무처의 작업으로 지원을 받아 교회들 사이에 이루어진 대화의 순환 과정으로 이 문서의 틀이 형성되었다. 시노드 총회 제1회기(2023년)는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의 특징적인 표징들과 그 교회에 있는 친교, 사명, 참여의 역동성에 대한”(종합 보고서, 서문) 지역별 대륙별 자문들의 결실을 모았다. 기도와 대화와 식별을 통하여, 정기 총회 제1회기는 수렴과 다루어야 할 질문과 제안을 도출하고 「종합 보고서」에 이를 표현했다. 제시된 내용들은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가 스스로를 어떻게 묘사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첫 응답으로 이해될 수 있다. 제2회기는 이러한 단계를 되풀이하지는 않지만, 안내 질문 ‘어떻게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며 사명을 수행하는 교회가 될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어 앞으로 나아가도록 부름받았다. 여정 안에서 제기된 다른 질문들은 지역 교회 차원과 열 개의 연구 그룹 차원에서 다른 방식으로 계속되는 작업의 주제이다. 제1회기와 제2회기는 분리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서로 대립될 수 없다. 이 회기들은 연속선상에 있고 무엇보다도 교황령 「주교들의 친교」에서 명시된 대로 2024년 10월 말로 끝나지 않을 더 광범위한 과정의 일부이다.

 

실천적인 측면에서, 이 「의안집」은 여정을 따라 무르익고 제1회기에서 받아들인 시노달리타스에 대한 인식을 제시하며 시노달리타스의 이해에 대한 근본 원칙들에 할애한 부분으로 시작한다.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며 사명을 수행하는 교회의 삶을 다양한 관점에서 조명하며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는 세 부분이 그 뒤를 따른다. 제1부 교회 조직들보다 오히려 더 근본적으로 교회의 생명력을 유지하는 관계들(주님과의 관계, 형제자매 사이의 관계, 교회들 사이의 관계)의 관점, 제2부 우리의 교회 관계들의 역동성을 지원하는 길들의 관점, 제3부 추상적 보편주의에 대한 인간적 유혹에 저항하며 다양성과 다원성과 상호 연결성으로 특징지어지고 신앙 고백의 기초에 뿌리내린 구체적인 관계의 맥락인 장소들의 관점. 각 부분들은 제2회기의 작업을 구성할 각 토론 단위(모듈)별로 기도와 교류와 식별의 대상이 될 것이다. 각 참가자들은 총회 구성원들이 함께 걷도록 부름받은 그 길 위에서 “자신의 발언을 절대적 확신이 아닌 타인을 위한 선물로 제공하도록”(종합 보고서, 서문) 초대받을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전 과정과 관련된 최종 문서의 초안이 작성될 것이고 교황 성하께 앞으로의 단계를 제안드릴 것이다.

 

우리는 시노달리타스에 대한 공동의 이해를 심화하고,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의 실천에 더 명확한 초점을 맞추며, 교회법 일부의 변경을 제안하는 것을 기대할 수 있다(기초 제안이 더욱 동화되고 실천되면서 더욱 중요하고 심오한 발전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질문에 대한 답변을 기대할 수는 없다. 제2회기는 온 교회가 회심과 개혁의 길에 나서도록 초대할 것이며 이 길을 따라가면서 다른 제안들이 제시될 것이다. 지금까지의 과정에서 얻은 결실 가운데 하나는 대화와 식별 안에서 질문을 함께 다루는 방법을 경험하고 배운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며 사명을 수행하는 교회가 되는 법을 배우고 있지만, 이러한 배움은 우리가 기쁨 안에서 맡을 수 있는 과업임을 우리는 이미 깨달았다.

 

 

근본 원칙들

 

「의안집」의 이 부분에서는 교회의 신비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심화하도록 초대하면서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며 사명을 수행하는 교회의 전망에 대한 근본 원칙들을 개괄적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이것은 교회론에 관한 완성된 논문을 제시하려는 것이 아니라 2024년 10월 시노드 총회에서 수행될 구체적인 식별 작업에 도움이 되기 위한 것이다. ‘어떻게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며 사명을 수행하는 교회가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하려면 우리가 회심과 개혁의 길을 향하도록 도움을 주는, 사목적 신학적 성찰과 제안을 포괄하는 어떤 지평이 필요하다. 이어서, 교회의 구체적 시행 방안들은 교회 역사 전체를 특징짓는 순환성 안에서 그 지평이 더욱 선명한 초점을 갖추게 하고 또 근본 원칙에 대한 이해가 더욱 깊어지게 할 것이다.

 

만민의 빛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과 그리고 온 인류와 이루는 일치의 표징이자 도구로 부름받은 하느님의 한 백성이다. 우리는 역사 안에서 함께 걷고 삼위일체의 생명에 참여하는 친교를 살아가며 우리 공동의 사명에 대한 참여를 증진함으로써 한 하느님 백성이 된다. 이 전망은 교회의 살아 있는 전통에 깊고 강력하게 뿌리내리고 있다. 시노드 과정은 이 전망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무르익을 수 있게 해 주었다. 이러한 쇄신은 2021년부터 걸어 온 여정에서 부각된 수렴들에서 표현된다. 시노드 총회 제1회기(2023년 10월) 종합 보고서에서는 이를 인식하고 취합하였으며 제2회기를 완성할 식별을 위하여 온 교회에 이를 다시 전해 주었다.

 

교회, 하느님의 백성, 일치의 성사

 

1.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거행하는 세례성사에서 하느님 백성의 신비롭고 역동적이며 공동체적인 정체성이 유래한다. 그 정체성은 우리를 앞서가신 주 예수님께서 이르신 충만한 생명으로 그리고 구원의 선물을 자유로이 받아들이도록 모든 이를 초대하는 사명으로(마태 28,18-19 참조) 우리를 이끈다. 세례성사 안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을 입히시고 당신의 정체성과 사명을 우리와 나누신다(갈라 3,27 참조).

 

2. 하느님께서는 삼위일체의 친교를 우리와 나누시며 “사람들을 서로 아무런 연결도 없이 개별적으로 거룩하게 하시거나 구원하시려 하지 않으시고, 오직 사람들이 백성을 이루어 진리 안에서 당신을 알고 당신을 거룩히 섬기도록 하셨고”(교회 헌장 9항) 이에 기뻐하셨다. 당신 백성 안에서 그리고 당신 백성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을 실현하시고 드러내신다. 시노달리타스는, 거룩함과 선교의 보편적 소명을 지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며 성령께 생기를 얻어 성부께로 향한 순례길을 걸어가는 하느님 백성의 이러한 역동적 전망에 뿌리내리고 있다.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며 사명을 수행하는 이 하느님 백성은 자신이 살아가고 걸어가는 다양한 맥락 안에서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고 증언한다. 저마다의 문화와 종교로 형성된, 지상의 모든 민족들과 함께 걸어가며 하느님 백성은 그들과 대화하고 그들을 동반한다

 

3. 시노드 과정은 서로 다른 맥락과 문화 안에서 하느님 나라를 향한 여정을 살아가는 “모든 종족과 언어와 백성과 민족”(종합 보고서, 제5장)으로 모인 하느님 백성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심화시켰다. 하느님 백성은 완성을 향하여 나아가는 구원 역사의 단계를 거쳐 가는 공동체적 주체이다. 하느님 백성은 세례 받은 모든 이의 단순한 총합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하느님 백성은, 교회의 ‘우리’이고, 시노달리타스와 사명의 공동체적 역사적 주체이며, 그러하기에 모든 이가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구원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신앙과 세례성사로 이 백성에 합체된 우리를, “주님의 날이 올 때까지(2베드 3,10 참조) 순례하는 하느님 백성에게 확실한 희망과 위로의 표지”(교회 헌장 68항)이신 동정 마리아와 사도들,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신앙을 증언한 이들과 우리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성인들과 ‘옆집의’ 성인들이 동반한다.

 

4. 인류의 빛은 그리스도이시다”(교회 헌장 1항). 이 빛은 교회의 얼굴에서 빛난다.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사와 같다. 교회는 곧 하느님과 이루는 깊은 결합과 온 인류가 이루는 일치의 표징이며 도구이다”(교회 헌장 1항). 교회는 달과 마찬가지로 반사되는 빛으로 빛난다. 그러하기에 교회는 자신의 사명을 자기 중심적으로 이해할 수 없고, 오히려 온 인류의 일치에 봉사하는 유대와 관계와 친교의 성사가 되어야 할 책임을 받는 것이다. 우리는 참여의 위기, 우리가 공동 운명을 지닌 존재라는 인식의 부재, 그리고 너무나도 개인주의적인 행복과 구원에 대한 인식이 지배하는 이 시대에 이러한 책임을 지고 있다. 이러한 사명을 살아가면서 교회는 구원으로 모든 인류를 당신과 하나가 되게 하시려는 하느님의 계획을 전달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교회는 자신을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2코린 4,5) 선포하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사로서의’(교회 헌장 1항 참조) 자신의 존재를 잃어버릴 것이고 그리하여 자신의 정체성과 존재 이유를 잃어버릴 것이다. 충만함으로 나아가는 길에서 교회는 세상 안에서 하느님 나라의 성사이다.

 

시노달리타스의 의미 공유

 

5. 시노드7) 안에서 모이는 고대부터 이어온 지속적인 교회 관행에서 비롯된 ‘시노달리타스’(synodality)와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synodal)이라는 용어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지고 무엇보다도 최근 몇 년의 경험 덕분에 이 용어들이 실천되어 왔다. 이러한 용어들은 ‘하느님의 집이며 가족인 교회에 대한 우리의 염원, 사람들에게 더 가깝고 덜 관료적이며 더 관계적인 교회에 대한 바로 이러한 염원’(종합 보고서, 제1장 2항 참조)과 점점 더 깊이 연관되어 왔다. 총회 첫 회기 동안에는 이 「의안집」의 근간이 되는 ‘시노달리타스’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으로 수렴되었다. 현재 작업 중인 심층 연구 그룹들은, 다른 그리스도교 전통들과 서로의 차이와 고유한 특성을 존중하며 나누는 대화에서, 가톨릭 시각의 초점을 더욱더 교회의 이러한 구성적 차원에 맞추는 것을 목표로 한다. 가장 넓은 의미에서 “시노달리타스는, 그리스도인들이 온 인류와 더불어 하느님 나라를 향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걸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사명을 지향하기 때문에 교회적 삶의 다양한 차원에서 함께 모이는 것, 상호 경청, 대화, 공동체적 식별, 성령 안에 살아 계신 그리스도의 현존을 표현하는 동의 형성, 그리고 분화된 공동 책임성 안에서 결정을 내리는 것 등을 포함한다”(종합 보고서, 제1장 8항).

 

6. 그러하기에 “시노달리타스는 교회의 삶과 사명을 특징짓는 고유한 방식”(「교회의 삶과 사명 안에서 시노달리타스」, 70항 가.)이고, 이는 교회의 첫 행위인 경청에서 시작하는 방식이다. 믿음은 기쁜 소식의 선포를 들음에서 생겨나고(로마 10,17 참조), 들음으로 살게 된다. 이 들음은 곧, 하느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것, 성령께 귀 기울이는 것, 서로에게 귀 기울이는 것, 교회의 살아 있는 전통과 교도권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시노드 과정의 여러 단계들을 통하여, 교회는 오직 들은 것만을 선포할 수 있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다시 한번 체험하였다.

 

7. 시노달리타스는 “교회의 일상적인 생활 방식과 작용 방식 안에서 표현되어야 한다. 그러한 생활 방식과 활동 방식은 공동체적으로 말씀을 경청하고 성찬을 거행하는 것, 친교의 형제애를 이루는 것, 그리고 하느님 백성 전체가 다양한 차원에서 다양한 직무와 역할을 구별하며 교회의 삶과 사명에 참여하고 공동 책임을 지는 것을 통하여 실현된다”(「교회의 삶과 사명 안에서 시노달리타스」, 70항). 또한 시노달리타스는 교회의 시노드적 본질이 제도적 측면에서 표현되는 교회 구조와 절차들을 가리키며, 마지막으로 관할 권위로 교회가 소집되는 이러한 개별 행사들을 지칭한다(「교회의 삶과 사명 안에서 시노달리타스」, 70항 참조). 교회를 설명할 때에 시노달리타스의 개념은 친교의 개념을 대체하지 않는다. 실제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설명하는 하느님 백성의 교회론의 맥락에서 볼 때, 친교의 개념은 교회의 신비와 사명의 심오한 실체를 표현해 준다. 그 심오한 실체의 원천과 정점은 성찬례 거행에, 곧, 삼위일체 하느님과의 친교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인간들 사이의 일치에 있다. 이러한 교회론적 맥락 안에서 시노달리타스는 ‘하느님 백성’인 교회의 생활 방식과 활동 방식의 고유한 특성을 가리킨다. 교회는 함께 걸어가는 데에서, 회중의 모임을 통해서, 그리고 모든 구성원이 복음화 사명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데에서 자신이 친교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실현한다”(「교회의 삶과 사명 안에서 시노달리타스」, 6항).

 

8. 시노달리타스는 그리스도께서 목자들에게, 곧 자기 협조자들인 탁덕들과 함께하는 주교들 그리고 “주교들의 일치는 물론 신자 대중이 이루는 일치의 영구적이고 가시적인 근원이며 토대”(교회 헌장 23항)인 로마 주교에게 부여하신 개별 권위와 특정 임무를 결코 평가절하하지 않는다. 오히려 시노달리타스는 권위를 행사하는 이들을 비롯하여 온 교회를 참된 회심과 개혁으로 초대하며 “교계 직무 자체를 이해하는 가장 적합한 해석의 틀을 제시해 준다”(프란치스코, 주교대의원회의 제정 50주년 기념 연설, 2015.10.17.).

 

9. 시노달리타스는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다. 이는 교회의 본질을 표현할 수 있게 하고, 교회의 모든 은사와 소명과 직무를 소중히 여길 수 있게 한다. 따라서 시노달리타스는 “예수님을 믿고 바라보는”(교회 헌장 9항) 이들의 공동체가 모든 시대 모든 장소의 사람들에게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복음을 선포하고,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구원으로 이끄는 일치의 “볼 수 있는 성사”(교회 헌장 9항)가 될 수 있게 한다. 그러하기에 시노달리타스와 사명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만일 제2회기가 시노달리타스 삶의 특정한 측면에 초점을 맞춘다면 이는 사명 안에서 효율성을 더욱 높이기 위함이다. 동시에 시노달리타스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가시적 일치를 향한 교회 일치 여정을 계속하기 위한 조건이다. 교회 실천들에 교회 일치 여정의 결실을 수용하는 것은 ‘연구 그룹 10’이 다루는 제목이자 주제이다.

 

다양성 안에서의 조화인 일치

 

10. 교회적 친교의 역동성과 교회의 시노달리타스 삶의 역동성은 성찬 전례에서 그 고유한 모범과 충만함을 발견한다. 성찬 전례 안에서 신자들의 친교(communio Fidelium)는 주교들의 친교(communio Episcoporum) 안에서 드러나는 교회들의 친교(communio Ecclesiarum)이기도 하다. 이는 바로 “교회는 주교 안에 있고, 주교는 교회 안에 있다.”(성 치프리아노, 「서간집」[Epistulae], 66,8)는 아주 오래된 원칙에 근거한다. 친교에 봉사하도록, 주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와(마태 16,18 참조) 그 후계자들을 세우셨다. 베드로 직무에 힘입어 로마 주교는 모든 신자의 친교와 모든 교회의 친교와 모든 주교의 친교 안에서 표현된 교회의 일치의 “영구적이고 가시적인 근원이며 토대”(교회 헌장 23항)가 된다. 이로써 당신 자신이 화합이신 성령께서 교회 안에 이루어 주시는 화합이 드러난다(성 바실리오, 「시편 주해」[In Psalmos] 29,1 참조).

 

11. 시노드 과정 내내 일치를 향한 교회의 염원은 교회 자신의 다양성에 대한 인식과 나란히 자라났다. 바로 교회들 사이의 나눔을 통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달았다. 아무런 맥락이 없다면, 곧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 살고 있지만 그들 자신 안에 갇혀 있지 않고 인정과 존중과 더 넓은 지평에 열려 있어야 하는 이야기들의 전달자가 되는 사람들과 공동체들에 복음의 선물이 주어졌다는 분명한 인식이 없다면, 그 어떤 사명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 길에서 받은 가장 위대한 선물들 가운데 하나는 “다양한 모습을 한 교회”(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새 천년기」[Novo Millennio Ineunte], 40항)의 아름다움과 만나고 이를 경축할 기회를 얻은 것이다. 시노달리타스 쇄신은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로움과 평화와 기쁨”(로마 14,17)인 하느님 나라의 당신 백성이 되라는 하느님의 보편적 부르심이 현재화되고 실현되는 자리로서의 맥락을 소중히 여기도록 장려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다양한 문화들이 활기찬 그 다수성의 기초가 되고 이를 완성하는 일치를 굳건히 누리게 된다. 맥락과 문화와 다양성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며 사명을 수행하는 교회로서 성장하기 위한 핵심이 된다.

 

12. 이와 비슷하게, 성령께서 하느님 백성 안에 지속적으로 일깨우시는 다양한 은사와 소명에 대한 인식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어떤 열망을 불러일으킨다. 은사와 소명을 식별하는 능력을 키우고, 각 교회와 교회 전체의 구체적인 삶 안에서 이들이 이루는 관계를 이해하며, 사명을 위하여 그 은사와 소명을 분명히 드러내고자 하는 열망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이는 또한 친교와 사명과 연관 지어 참여에 관한 질문에 대한 성찰을 더욱 심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과정의 모든 단계에서, 참여의 가능성을 확대하고 다양한 은사와 소명과 직무 안에서 세례 받은 모든 남녀의 공동 책임의 행사를 확대하려는 열망이 생겼다. 이 열망은 세 가지 방향을 가리킨다. 첫 번째는, 신앙의 선포와 전달을 현재의 맥락에 적합한 방식과 수단으로 새롭게 할 필요성이다. 두 번째는, 아름답고 품위 있으며 신자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고 온전히 참여하며 토착화가 잘 이루어지고 사명(선교)에 대한 열정을 자라게 할 수 있는 전례 거행을 비롯하여 전례 생활과 성사 생활을 새롭게 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교회 쇄신의 이 여정에 하느님 백성의 많은 구성원이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생기는 슬픔을 인식하고 변화시키는 것이다. 또한, 교회가 남녀 간 관계, 세대 간 관계, 다양한 문화적 정체성과 사회 조건의 사람들과 집단들 간 관계, 특히 가난한 이들과 소외된 이들과 관계를 잘 살아가고자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이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선교의 의미에서, 이러한 상호 관계성과 참여와 친교의 미약함은 여전히 교회의 온전한 쇄신에 걸림돌이 된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형제자매들: 새로워진 상호 관계성

 

13. 인간으로서 우리가 접하게 되는 첫 번째 차이는 남녀의 차이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소명은 하느님께서 주신 이 차이를 존중하는 것, 곧 세상을 위한 표지로서의 역동적인 관계적 상호성을 교회 안에서 살아냄으로써 이 차이를 존중하는 것이다. 모든 단계에서 제출된 의견들은 이러한 전망을 시노달리타스 관점에서 성찰하면서, 교회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이러한 관계의 상호성을 더욱 존중하려면 여성의 은사와 소명과 역할이 더욱 충분히 인정받아야 한다는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시노달리타스 관점은 식별의 지침으로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신학적 기준을 강조한다. 가) 참여는 세례성사의 교회론적 의미에 뿌리를 두고 있다. 나) 우리는 재능을 묻어두기보다는 성령께서 공동체와 세상의 선익을 위하여 각자에게 부어 주시는 선물들을 식별하고 개발하도록 부름받은, 세례 받은 이들의 공동체이다. 다) 저마다 받은 다양한 소명과 선물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가운데, 성령께서 믿는 이들에게 부어 주시는 선물들은 보완적 방식으로 서로에게 향하도록 질서 지워져 있고 세례 받은 모든 이의 협력은 공동 책임의 행위로 실천되어야 한다. 우리의 성찰을 이끄는 것은 성경의 증언 곧, 하느님께서 여성을 부활의 첫 증인이자 전령으로 선택하셨다는 성경의 증언이다. 세례성사에 힘입어 여성들은 완전한 동등함을 누리고, 성령께서 동일하게 쏟아부어 주시는 선물을 받으며, 그리스도의 사명에 봉사하도록 부름받는다.

 

14. 이러한 의미에서 가장 처음으로 일어나야 하는 변화는 사고방식의 전환이다. 곧,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이고 공동의 사명을 향하는 남성과 여성의 관계성, 상호 의존성, 그리고 호혜성의 전망으로 돌아서야 하는 것이다. 관계와 구조를 변화시키는 데에 실패한 결과는 교회의 친교와 참여와 사명에 해를 끼친다. 라틴 아메리카의 한 주교회의는 “모든 구성원이 공동 책임을 인식하는 교회는 매력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곳”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15. 주교회의들의 의견서들은 여성이 교회 생활의 많은 분야에 참여할 수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참여에 관한 가능성들이 종종 사장되고 있다는 점도 언급하고 있다. 그러하기에 이들은 시노드 총회 제2회기가 본당과 교구와 기타 교회 현실 안에서 책임 있는 직책을 포함하여 이러한 가능성들을 온전히 활용하고 더 나아가 개발하도록 장려하고 이에 대한 인식을 증진하도록 제안한다. 이들은 또한 성령께서 우리 시대의 사목적 필요에 대한 응답으로 여성들에게 부어 주시는 은사와 선물을 더욱 잘 드러내는 직무와 사목의 방법들을 깊이 탐구하도록 촉구한다. 라틴 아메리카의 한 주교회의에서 언급하듯이, “우리 문화에서 남성우월주의는 여전히 강하게 존재하고 있지만, 교회의 모든 영역에서 여성의 더욱 활발한 참여가 필요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처럼, 의사 결정에 도달하는 과정과 다양한 형태의 사목과 사명을 수행하는 역할에서 여성들의 시각이 결코 없어서는 안 된다.”

 

16. 제2회기를 위한 주교회의들의 의견서들에서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요청이 있었다. 가) 교회 내 대화의 영역을 증진하여 여성들이 교회 전체의 유익을 위해서 그들의 경험, 은사, 기술과 영적 신학적 사목적 통찰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나) 교회의 식별과 모든 의사 결정 과정 단계(결정에 도달하고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 여성의 더욱 폭넓은 참여, 다) 기존 규정을 준수하면서 교구와 교회 기관 안에서 책임 있는 직책에 대한 접근성 확대, 라) 여자 축성 생활자들의 삶과 은사들뿐만 아니라 그들이 책임 있는 직책을 맡는 것에 대한 인정과 지지, 마) 신학교와 연구소와 신학 교육 기관의 책임 있는 직책에 대한 여성들의 접근성 확대, 바) 모든 교회법 절차에서 여성 재판관의 수를 증가시키는 것. 취합된 의견서들은, 더욱 성평등적 언어를 사용할 것과, 성경과 성전의 다양한 표상을 강론, 강의, 교리 교육에서 그리고 공식 교회 문헌의 작성에서 사용하도록 더욱 큰 관심을 가질 것을 요청한다.

 

17. 일부 지역 교회들은 여성에게 부제직이 허용되어야 한다고 촉구하는 반면, 다른 교회들은 이에 대한 반대 의견을 고수하고 있다. 이 문제는 제2회기 작업의 주제로 다루어지지 않을 것이지만,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방법으로 이에 대한 신학적 성찰이 계속되는 것은 바람직하다. ‘연구 그룹 5’의 작업 결실은 과거에 이 문제를 다루었던 두 위원회의 결과들을 고려하고 그 결과들을 발전시키는 데에 기여할 것이다.

 

18. 앞서 언급된 많은 요청은, 안타깝게도 교회의 생활에 대한 참여가 부족한 평신도들에게도 적용된다. 일반적으로 여성의 역할에 대한 성찰에서 (남녀) 평신도가 수행하는 모든 직무를 강화하려는 열망이 분명히 드러나곤 한다. 적절한 양성을 받은 남녀 평신도들이 성찬례 거행 때를 비롯하여 하느님 말씀을 선포하는 데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요청도 있다.

 

회심과 개혁으로의 부르심

 

19. 예수님께서는 회개로의 부르심으로 공생활을 시작하셨다(마르 1,15 참조). 이러한 부르심은 개인과 공동체의 삶의 방식에 대하여 재고하고 성령을 통하여 스스로를 변화시키라는 초대이다. 그 어떤 개혁도 구조에만 국한될 수 없고, 반드시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필리 2,5)에 따른 내적 변화에 근거하여야 한다.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의 첫 회심은 경청이어야 한다. 경청에 대한 재발견이야말로 오늘까지의 여정의 가장 큰 결실 중의 하나이다. 무엇보다 이는 먼저 시노드의 참된 주역이신 성령께 귀 기울이는 것이고, 그런 다음에는 사명을 위한 기본 마음가짐으로서 서로에게 귀 기울이는 것이다.

 

20. 교회가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방식은 인류에게 중요한 통찰을 많이 제공한다. 불평등의 증대, 전통적인 통치 모델에 대한 환멸의 심화, 민주주의의 몰락, 인간의 상호작용에 대한 시장 모델의 지배, 대화보다는 힘으로 갈등을 해결하려는 유혹이 그 특징인 시대에, 시노달리타스는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한 영감을 제공할 수 있다. 시노달리타스의 매력은 시노달리타스가 운영 전략이 아니라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념하여야 할 실천이라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시노달리타스 방식으로 관계를 살아가는 것은 구체적인 공동체 안에서 환영받고 인정받고자 하는 인간의 깊은 욕구에 응답하는 사회적 증언이다. 시노달리타스 실천은, 교회에조차 가끔씩 침투했던 개인주의 문화 그리고 사람들의 고립 심화에 도전을 제기하고, 공동선을 위한 상호 돌봄과 상호 의존성과 공동 책임으로 우리를 부른다. 마찬가지로 시노달리타스는, 사람들을 숨 막히게 만들고 자신의 고유한 발전을 위한 자유로운 주체가 되지 못하게 하는 과도한 사회 공동체주의에 대한 도전도 제기한다. 모든 이, 특히 가난한 이들에게 귀를 기울이고자 하는 자발적인 마음, 곧 시노달리타스 삶의 방식이 장려하는 그러한 마음은, 집중된 권력이 가장 가난한 이와 소외된 이와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차단하는 이 세상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구체적인 시노드 과정은 이러한 측면에서 교회 스스로가 얼마나 성장해야 하는지 보여 주었다. ‘연구 그룹 2’는 이 문제에 관해서도 작업하고 있다.

 

21. 교회와 사회 안의 치유와 화해와 신뢰 회복의 필요성이 시노드 과정의 모든 단계에서 강하게 울려 퍼졌다. 이러한 치유와 회복의 길을 걷는 것은 이 세상에서 하느님 백성의 선교 임무이며 우리가 청해야 할 위로부터 오는 선물이다. 이 길을 계속 걸어 나가고자 하는 열망이 시노달리타스 쇄신의 결실이다.

 

 

제1부 관계들

 

시노드 과정을 진행하면서 세계 각지에서는, 관료적이 아니라 관계들을 북돋울 수 있는 교회를 바라는 요청이 있었다. 곧, 주님과 이루는 관계, 남성과 여성 사이의 관계, 가정과 공동체 안에서의 관계, 사회 집단들 사이의 관계를 증진하는 교회를 요청하였다. 다양한 소속의 사람들을 한데 어우러지게 하는 관계망만이 개인과 공동체에 준거점과 방향성을 제시하고 복음에 따른 삶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면서 그들을 뒷받침해 줄 수 있다. 신앙의 전수는 바로 관계 안에서, 곧 그리스도와 그리고 다른 이들과 이루는 관계, 공동체 속의 관계 안에서 이루어진다.

 

시노달리타스는 사명에 봉사하며 존재하기에 조직 운용의 방편으로 여겨져서는 안 되며,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끊임없이 와 닿아 구체적인 삶의 현실 안에서 증언하도록 부르시는 하느님 사랑에 부응하는 연대의 관계를 엮어 나가는 방식으로 그들이 살아가고 길러가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어떻게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며 사명을 수행하는 교회가 되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관계의 완전한 전환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그러한 관계의 전환은 모든 이를 자유롭고 풍요롭게 하는 구체적인 은사의 교환 안에서, 특히 일치에 봉사하는 관계를 활성화할 임무를 지닌 이들을 비롯하여 한 사람 한 사람의 우선순위와 행동을 재정립한다.

 

그리스도와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교 입문

 

22. 순례하는 교회는 그 본성상 선교하는 교회다. 교회는 성부의 계획에 따라 성자의 파견과 성령의 파견에 그 기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선교 교령 2항). 예수님과의 만남, 그분을 향한 충실한 믿음, 그리스도교 입문 성사들의 거행은 우리를 삼위일체의 삶 그 자체로 인도한다. 성령의 선물을 통하여 주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아버지와 이루시는 관계에 세례 받은 이들을 참여하게 해 주신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충만하셨고, 성령께서는 예수님을 이끄시고(루카 4,1 참조) 기름 부어 주시며 복음을 선포하도록 파견하셨고(루카 4,18 참조) 죽은 이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다(로마 8,11 참조). 바로 그 성령께서 이제 하느님 백성의 지체들에게 기름을 부어 주신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하느님의 자녀요 상속자가 되게 하시며 우리는 바로 그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께 “아빠! 아버지!”(갈라 4,6; 로마 8,15) 하고 외치는 것이다.

 

23.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며 사명을 수행하는 교회의 본질을 이해하려면 이와 같은 삼위일체적 토대에 대한 이해가 빠져서는 안 된다. 특히 인간의 역사와 교회사에서 그리스도의 활동과 성령의 활동이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는 것이 필수적이다. 믿는 이들 안에 살아 계시는 성령께서는 온 교회를 가득 채우시고 다스리시어 신자들의 저 놀라운 친교를 이루시고 모든 이를 그리스도 안에서 깊이 결합시키시어, 교회 일치의 원리가 되신다”(일치 교령 2항). 그러하기에 어른 입교 과정은 교회의 시노달리타스 삶을 이해하기 위한 탁월한 맥락이 된다. 이 과정을 통하여 그 기원과 토대가 되는, 하느님의 세 위격을 하나 되게 하고 구별 짓는 관계들이 조명되는 것이다. 성령께서는 세례의 은총으로 우리가 왕이요 사제요 예언자이신 그리스도를 닮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지체가 되게 하시며 한 아버지의 자녀가 되게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 교회 안에서 우리를 하나 되게 하는 사명과 공동 책임으로 부름받는다. 이러한 은총은 개인적, 공동체적, 선교 사명적이라는 나눌 수 없는 삼중의 지향을 가진다. 또한, 세례 받은 모든 이에게 힘을 북돋워 주어 그들이 교회 공동체 안에서 형제자매로서 애정 어린 관계를 이루고, 같은 세례를 받은 다른 모든 이와 더욱더 가시적이고 깊은 친교를 추구하게 하며, 복음을 선포하고 증언하는 데에 헌신하게 한다.

 

24. 한편으로 선교적 시노달리타스가 그리스도교 입문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면, 다른 한편으로 이는 하느님 백성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입문의 여정을 살아가고 그 참된 의미를 체화하면서 받아들이게 되는지 밝혀 주어야 한다. 여기에는, 그리스도를 따르고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삶으로 충분히 이어지지 못하는, 그리스도교 입문을 바라보는 정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시각을 극복하여 역동적이고 변화의 힘을 지닌 그 가치를 회복시키는 것이 포함된다. 초 세기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께서 엿샛날에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창세 1,26)라고 하신 창세기 말씀을 읽으면서 관계의 역동성이 어떻게 창조의 인간학 안에 새겨지게 되었는지 깨달았다. 그들은 그 모습에서 강생하신 성자의 모습을 보았고 그 비슷함에서 그분을 점진적으로 닮아갈 가능성 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처럼 되기를 선택하는 복된 자유의 모험이 드러나는 것을 보았다. 이 복된 모험은 하느님 말씀에 귀 기울이는 것에서 출발한다. 이를 통하여 예비신자들은 점진적으로 그리스도 예수님을 따르는 길로 들어선다. 세례는 닮아감의 역동에 이바지하며 바로 그러한 까닭에 세례를 거행하는 그 순간만의 한시적 행위가 아니라 견진으로 굳건해지고 자양분을 얻으며 회개의 노력, 선교 봉사, 공동체 생활 참여를 통하여 활용되어야 하는 선물이다. 실제로, 그리스도교 입문은 매주 거행되는 주일 성찬례 안에서 정점에 이른다. 주일 성찬례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게 하여 그분 몸의 지체가 되게 하는 마르지 않는 은총의 선물의 표지이며, 우리가 나아가는 회심의 길과 사명에서 우리를 기르는 양식이다.

 

25. 이러한 의미에서, 성찬례의 회중은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고 사명을 수행하는 교회의 삶을 드러내고 북돋운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참여와 서로 다른 직무들의 존재, 그리고 주교나 신부의 주례로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가시적으로 드러나며, 그 안에서 사명을 향한 모든 이의 분화된 공동 책임 의식이 실현된다. 교회의 활동이 지향하는 정점이며, 동시에 거기에서 교회의 모든 힘이 흘러 나오는 원천”(전례 헌장 10항)인 전례는 또한 교회의 시노달리타스 삶의 원천이며 모든 시노드 사건의 원형으로, 삼위일체의 신비가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1코린 13,12; 참조: 계시 헌장 7항) 드러나게 한다.

 

26. 사목 제안들과 전례적 실천들은 그리스도교 입문 여정과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고 사명을 수행하는 교회의 삶을 이어주는 유대를 지키고 더욱더 분명하게 드러내야 한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그리스도교 입문 여정이 그저 교육 수단이나 사회적 소속을 가리키는 지표로만 축소되지 않게 하고, 오히려 사명과 공동체 건설을 향하는 이러한 개개인의 봉헌을 받아들이도록 증진하는 것이다. 지역 교회가 깊이 몸담고 있는 다양한 역사적 상황과 문화 안에서 적절한 사목적 전례적 방안들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리스도교 입문에 주로 젊은이와 어른이 참여하는 지역 교회들 그리고 어린이만은 아니지만 주로 어린이가 참여하는 지역 교회들 간의 차이점도 유념하여야 한다.

 

하느님 백성을 위하여: 은사와 직무

 

27. 은사는 여러 가지지만 성령은 같은 성령이십니다. 직분은 여러 가지지만 주님은 같은 주님이십니다. 활동은 여러 가지지만 모든 사람 안에서 모든 활동을 일으키시는 분은 같은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공동선을 위하여 성령을 드러내 보여 주십니다”(1코린 12,4-7). 성령의 자유는 은사(은총의 선물들)와 직무(교회 사명을 위한 교회 직분의 형태들)의 다양성의 원천이다. 성령께서는 그러한 은사와 직무를 베풀어 주시어 이를 통하여 다양한 사람과 문화와 장소 안에서 신앙의 일치가 드러나고 단일하고 유일한 보편 교회에 속한다는 사실이 드러나도록 끊임없이 활동하신다. 가장 단순한 것이든 가장 널리 퍼진 것이든, 은사들은 교회의 필요와 사명에 응답하도록 주어진 것이다(교회 헌장 12항 참조). 또한 은사들은 사회생활의 다양한 측면에 효과적으로 기여한다. 흔히 은사들을 함께 나누며 다양한 형태의 축성 생활과 다양한 교회 연합, 단체, 운동이 생겨나게 된다.

 

28. 세례 받은 이가 저마다 지닌 은사가 드러나도록 부름받은 주요 분야는 교회 활동 단체나 조직이 아니라 일상의 삶과 가정과 사회 관계이다. 매우 다양한 상황에서 그리스도인들은 개인으로든 공동체로든 그들이 받은 은총의 선물을 모든 이의 선익을 위하여 꽃피우도록 부름받았다. 은사의 풍성함은 직무의 풍성함과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일, 하느님께서 저마다에게 주시는 소명, 세례 받은 이들의 너그럽고 슬기로운 받아들임, 권위의 인정과 동반에 달려 있다. 따라서 어느 모로도, 은사들은 이를 받고 수행하는 이들의 소유물로 해석될 수도 없고 그들의 배타적인 이익을 위한 것이 될 수도 없다.

 

29. 선물들을 베풀어 주시는 성령의 자유를 드러내는 표현으로서 또 개별 공동체의 필요에 대한 응답으로서 교회 안에는 세례 받은 남녀들이 수행할 수 있는 다양한 직무들이 있다. 이는 공동체와 공동체를 이끄는 이들의 인정을 받는 정규적인 직분이다. 이 직무들은 그 공통의 뿌리(세례성사)를 가리키기 위하여 또 성품성사에 근거한 성품 직무와 구별 짓기 위하여 세례로 받은 직무라고 부를 수 있다. 예를 들면, 소규모 교회 공동체를 조정하는 직무, (장례 예식이나 다른 경우에) 기도를 이끄는 직무, 비정규 성체 분배 직무, 또는 반드시 전례적인 것은 아닌 그 밖의 직분들을 수행하는 사람들이 있다. 라틴 교회법이나 동방 교회법 규범은 이미, 어떤 경우에는 평신도 남녀 신자들도 비정규 세례 집전자가 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라틴 교회법 규범에 따르면, 주교는 평신도 남녀 신자들에게 혼인을 주례하도록 위임할 수 있다. 이러한 직무들을 평신도에게 좀 더 고정적으로 위임하는 방법을 계속하여 성찰하는 것이 유용할 것이다. 나아가, 더욱 많은 형태의 평신도 직무를 전례 영역 밖에서도 어떻게 증진할 수 있는지 그에 대한 숙고도 따라야 한다.

 

30. 최근에 독서직과 시종직을 비롯하여(자의 교서 「주님의 성령」[Spiritus Domini], 2021.1.10.), 교회 생활에서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던 몇몇 직분의 형태에 새로운 모습의 제정 직무가 도입되었다. 교리 교사 직무의 제정도 이루어졌다(자의 교서 「오래된 직무」[Antiquum Ministerium], 2021.5.10.). 주교는 제정된 직무들을 적절한 식별과 양성을 거친 이들에게 평생 단 한 번의 고유한 예식을 통하여 수여한다. 제정된 직무들을 수행하는 시기와 방법은 합법적 권위의 위임에 따라 정해져야 한다. 특정 교회 직무 형태에 관한 몇 가지 신학적 교회법적 문제들, 특히 교회 생활과 리더십에 여성의 참여 필요성에 관한 문제는 주교대의원회의 사무처와 대화하는 가운데 신앙교리부에 맡겨져 왔다(연구 그룹 5).

 

31. 모든 은사가 고유한 직무적 형태를 가지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직무는 하느님의 백성 가운데 특정 구성원들에게 주어진 은사들에 토대를 두고 있다. 이들은, 공동체 안의 모든 이가 저마다 그리스도의 몸을 구성하는 데에 참여할 수 있도록, 상호 봉사하는 가운데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일하도록 부름받았다(에페 4,12 참조). 은사와 마찬가지로 직무 또한 인정하고 증진하며 소중히 여겨야 한다. 공동체와 사회의 필요에 응답하고자 그 필요를 확인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떻게 은사들과 직무들의 식별과 증진이 적절한 기준과 도구와 절차를 마련하면서 지역 교회들이 육성해야 할 측면이 되는지를, 시노드 과정은 거듭 강조하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가르친 대로, 목자들의 임무는 “모든 이가 나름대로 공동 활동에 한마음으로 협력하도록 …… 그들의[신자들의] 봉사 직무와 은사를 인정하는 것”(교회 헌장 30항)이다. 은사와 직무의 식별은 교회의 고유한 활동이다. 이를 인정하고 증진하기 위하여 주교는 관련된 모든 이, 곧 개별 신자, 공동체, 참여 기구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이를 위하여, 식별의 기준과 결과에 대하여 진정한 동의를 얻을 수 있도록 유념하면서 다양한 상황에 적합한 절차들을 확인하여야 한다. ‘시노드를 위한 본당 사제’ 모임의 결과는 이러한 필요를 크게 강조하였다.

 

성령의 활동을 더욱 깊이 신뢰하고, 어떻게 그 선물들을 저마다 다른 지역 상황에 적합한 방식으로 교회의 사명을 위하여 받아들이고 환영할 수 있는지 식별하는 데에 더욱 큰 용기와 창의성을 지니라는 요청 또한 강조되었다. 다양한 맥락과 그에 따른 공동체의 다양한 요청은, 지역 교회들이 자기 목자의 인도 아래 그리고 “모든 광범위한 사회-문화적 영역에서”(선교 교령 22항) 지역 교회 연합의 지도 아래 사목적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하여 인정하거나 위임하거나 제정하여야 하는 직무들이 무엇인지 겸손과 확신으로 창의적인 식별을 수행할 필요성을 드러낸다. 따라서, 이러한 식별을 수행할 기준과 방법이 규정되어야 한다. 사람들의 지역 간 이동이 점점 쉬워지는 이때에, (제정 직무든 비제정 직무든) 세례로 받은 직무를 수행하는 시기와 영역을 명확히 하여 위임하는 방법에 대한 성찰도 이루어져야 한다. 

 

33. 지금까지 걸어 온 여정은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가 경청하는 교회, 환대하고 동반할 수 있는 교회, 집이자 가정으로 생각되는 교회라는 인식으로 이어졌다. 모든 대륙에서, 다양한 이유로 교회 공동체에서 배제되거나 소외되는 사람들 또는 그렇게 느끼는 사람들, 교회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존엄과 선물을 온전히 인정받기 위하여 고군분투하는 사람들과 관련한 요청들이 부각되었다. 이와 같은 환대의 부족은 그들에게 거부당한다는 느낌을 가지게 하고, 그들의 신앙 여정 그리고 주님과의 만남에 걸림돌이 되며, 그들이 교회의 사명에 기여하지 못하게 한다.

 

34. 공인되고 고유하게 제정된 경청과 동반의 직무를 신설하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이 직무가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의 이러한 특징적 모습을 항구하고 가시적인 실재로 만들어 줄 것이다. 사람들이 위협받거나 판단받는다는 느낌 없이 들어올 수 있게 하는 공동체의 ‘활짝 열린 문’이 필요하다. 이 경청과 동반의 직무는 다양한 체험, 조직, 사회적 맥락, 가용 자원에 따라 지역 상황에 맞추어 수행하는 형태가 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지역 차원에서 국가별 또는 대륙별 주교회의들도 관여하여 식별하는 자리가 열린다. 그러나 특정 직무의 존재는 경청의 책임을 이러한 특정 직무자에게만 유보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이 직무는 예언적 성격을 띤다. 한편으로 경청과 동반은 세례 받은 모든 이가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하고 모든 공동체가 성장하도록 초대받는 곳인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의 삶의 통상적 차원임이 강조된다. 다른 한편으로 경청과 동반은 개인적 계획이 아니기에 그 가치를 공인받아야 하는 교회적 봉사라는 사실도 상기된다. 이러한 인식은 시노드 과정에서 무르익는 열매이다.

 

수품 직무자들과 함께 화합에 봉사하기

 

35. 시노드 과정에서는, 하느님 백성 안에서 성품 직무를 수행하는 데에 관한 서로 대조적인 자료들이 나왔다. 한편으로, 자기 직책을 수행하는 주교와 신부와 부제의 기쁨, 책임, 헌신이 강조되었고, 다른 한편으로, 무엇보다 고립감, 외로움,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관계의 박탈감, 모든 필요에 응답해야 한다는 요구가 주는 위압감과 관련된 피로를 이야기하였다. 이것이 성직주의의 유해한 결과의 하나일 수 있다. 특히 주교는 한 사람이 마땅히 해내야 하는 성취에 대한 비현실적으로 높은 기대치로 과중한 짐을 종종 짊어지기도 한다.

 

36. 시노드를 위한 본당 사제’ 모임은 이러한 피로를, 주교와 신부가 공동의 직무 안에서 참으로 함께 걸어가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점과 연관지었다. 그러므로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며 사명을 수행하는 교회라는 지평에서 성품 직무를 이해하는 일은 일관성의 요구면서 동시에 이러한 피로를 떨쳐버릴 기회이기도 하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관행들의 효과적인 전환이 수반되어, 관행의 변화와 그로써 얻는 유익을 수품 직무자도 신자들도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게 하여야 한다. 수품 직무자의 회심의 여정에 더하여, 이러한 전환의 길은 사목 활동에서 새로운 사고와 운영 방식을 수반할 것이다. 이는 특히 세례의 다양한 은사와 직무를 드러내고 인정하며 북돋우려는 것을 목표로 하여, 교회의 사명에 세례 받은 모든 이가 참여하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어떻게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며 사명을 수행하는 교회가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성품 직무에 관하여, 피라미드식 권위 행사 방식에서 시노달리타스 방식으로 옮겨가는 새로운 전망을 증진할 수 있는 관계, 구조, 과정을 구체적으로 성찰하도록 촉구한다. 세례의 은사와 직무를 증진하는 틀 안에서, 이를 수행하는 데에 성품성사가 요구되지 않는 임무들의 재안배를 시작할 수 있다. 책임을 더욱 뚜렷이 구분하는 것은 분명, 결정 과정들에서 시노달리타스 방식이 더욱 뚜렷이 드러나도록 북돋는 일이 될 것이다. 

 

37. 공의회 문헌들은 성품 직무를 주로 교회 안에서 교회의 존재 자체를 위한 봉사라고 여겼다. 공의회는 그 권위로써, 초기 교회의 통상적 수품 직무의 형태를 복원하였다. 바로 그 직무를 “이미 옛날부터 주교, 신부, 부제라고 불리는 이들이 여러 품계로 수행하고 있다”(교회 헌장 28항). 이러한 구분 안에서, 주교직과 사제직은 교회 공동체의 목자요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특별히 참여하는 데에 부합하는 한편, 부제직은 “사제직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봉사 직무를 위한”(교회 헌장 29항) 것이다. 다양한 품계들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상호 의존적이며 저마다 특수성을 지닌다. 그 어떤 직무자도 자신이 권력을 부여받은 고립된 개인이라고 여겨서는 안 된다. 그는 오히려 자신이 하느님 백성과 이루는 유기적인 유대 안에서, 성품성사로 받은 그리스도의 선물들(munera: 직무)에 다른 수품 직무자들과 함께 참여하는 사람이라고 여겨야 한다. 하느님 백성의 한 지체로서 세례에 토대를 둔 보편 사제직 안에서 다양한 방식이지만 바로 그 그리스도의 선물들에 참여하는 것이다.

 

38. 주교는 한 교회를 다스릴 임무를 지니며, 그 교회 안에서 일치의 가시적인 근원이 되고 다른 모든 교회와 이루는 친교의 연대의 가시적인 근원이 된다. 주교 직무의 독자성에는 고유하고 통상적이며 직접적인 권력이 수반된다. 곧, 모든 주교가 말씀을 선포하는 데에서, 성찬례와 그 밖의 성사들의 거행을 주례하는 데에서, 사목적 지도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직접 행사하는 권력이 수반된다(교회 헌장 27항 참조). 이는 주교가 자신에게 맡겨진 하느님의 백성의 일부와 따로 존재한다는 의미를 내포하는 것이 아니며(주교 교령 11항 참조), 착한 목자이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봉사하도록 부름받았다는 의미이다. 주교 축성으로 충만한 성품성사가 수여된다.”(교회 헌장 21항)는 사실은, 다른 모든 은사와 직무가 비롯되는 특은들의 집합으로 여겨지는 ‘군주적’ 주교 직무에 대한 정당화가 아니다. 오히려 이는 성령께서 세례 받은 이들과 다양한 공동체에 부어 주시는 모든 선물을 일치 안에서 모으고 결합할 능력과 의무를 확인한다. 주교직 후보자 선정을 위한 기준을 포함하여 주교 직무의 몇몇 측면들을 ‘연구 그룹 7’에서 다루고 있다.

 

39. 사제의 직무 또한 시노달리타스 의미로 이해되고 실천되어야 한다. 특히, 신부들은 “자기 주교와 더불어 한 사제단을 구성”(교회 헌장 28항)하여 하느님 백성의 한 부분인 지역 교회(주교 교령 11항 참조)에 봉사한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주교가 사제단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무엇보다도 그 사제단을 다스리면서 한 지역 교회를 다스리는 사람이라고 여겨야 한다. 특별한 독자성을 지니고 신부들을 각별히 돌보도록 부름받은 주교 자신도 그 사제단의 일원이다.

 

40. 주교들과 신부들은 사도 직무의 수행에서 두 가지 형태의 직무들이 이루는 상호 의존의 유대 안에서 부제들의 조력을 받는다. 주교와 신부들은 부제 없이 혼자 존재할 수 없으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전통과 전례 기도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의 관례가 보여 주듯이 부제의 역할은 여러 가지기에, 그 역할들은 각 지역 교회의 개별성과 특수성과 연결되어야 한다. 어떤 경우라도 부제 각자의 봉사는, 부제 직무의 본질에 따라 또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의 사명이라는 틀 안에서, 다른 모든 부제의 봉사와 이루는 조화와 친교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41. 교구장 주교는 신부들과 부제들의 도움을 받아 지역 교회 안의 일치를 증진할 뿐만 아니라 은총의 상호교환 안에서 다른 지역 교회들과 또 로마 주교를 중심으로 하는 온 교회와 관계를 이룰 책임도 있다. ‘주교들의 친교’(communio episcoporum)와 ‘교회들의 친교’(communio Ecclesiarum)가 이루는 상호성을 회복하여, 주교직과 지역 교회의 통치 사이의 전통적인 유대를 재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교회들 간에 그리고 세상 안에서: 구체적인 친교

 

42. 시노달리타스는 교회들 사이에 효과적인 은총의 교환이 가능하도록 세상과 복음적 대화를 나누게 해 주는 사람들, 공동체들, 기관들, 과정들의 관계망을 통하여 실행된다. 세례 받은 이들로서 우리가 교회들 사이의 은총의 교환에서만이 아니라 다양한 은사와 성소와 직무의 다양성 안에서 함께 걷는다는 것은, 오늘날 세상에 보여 주는 중요한 성사적 표징이 된다. 세상은 상호 연결성을 점점 더 크게 체험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무상성의 개념을 멀리하고 이익을 중시하는 상업 문화에 젖어들고 있다.

 

43. 공의회에 따르면, 바로 교회의 보편성에 힘입어 “각 부분이 그 고유한 은혜를 다른 부분들과 온 교회에 가져다주는”(교회 헌장 13항) 것이다. 교회의 여러 부분들 사이에는 영적 부요와 사도직 인력과 현세적 자원에 관한 긴밀한 친교의 유대가 존재한다. 사실 하느님 백성의 구성원들은 서로 선익을 나누도록 불렸으므로, ‘저마다 받은 은사에 따라, 하느님의 다양한 은총의 훌륭한 관리자로서 서로를 위하여 봉사하십시오.’(1베드 4,10) 한 사도의 말씀은 각 개별 교회들에도 해당하는 것이다”(교회 헌장 13항).

 

44. 주교회의들은, 하나이고 유일한 가톨릭 교회를 구성하는 교회들이 지배욕을 가지거나 우월성을 다투지 않고 연대의 정신으로 선익을 나누기를 희망한다. 부유한 교회들과 크나큰 시련 속에 살아가는 교회들이 나란히 존재한다는 것은 일종의 부끄러운 추문이다. 따라서 교회 연합체의 차원에서도 상호 유대의 증진과 원조 네트워크 구성을 위한 협약을 맺자는 제안이 있다.

 

모든 지역 교회는 하나인 교회의 친교 안에서 도움을 주고받는다. 재정적 물질적 원조를 필요로 하는 교회들이 있다. 가장 가난한 이들을 향한 생생한 신앙 증언과 사랑의 봉사로 풍요로워지는 교회들도 있다. 그 무엇보다도, 다른 민족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에 자신의 삶을 바치는 복음 선포자들의 도움이 필요한 교회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특히, 만민 선교에 헌신하는 사제, 부제, 남녀 축성 생활자, 남녀 평신도들의 너그러운 마음을 고맙게 여기고 격려한다. 

 

46. 지역 교회들은 영적, 전례적, 신학적 은총들의 교환을 향한 바람과, 공동의 집에 대한 돌봄과 이주의 물결 등과 같은 전 세계적 중요성을 지닌 사회적 문제들에 관한 증언을 더 널리 공유하고자 하는 바람을 표명한다. 이와 관련하여,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는 공통된 문제들에 대하여, 특히 전 세계 주요 과정들에서 일반적으로 소외되는 단체, 공동체, 국가를 비롯하여 모든 이의 목소리를 경청함으로써 도출되는 해결책의 중요성을 증언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아마존이나 콩고 분지, 지중해 지역 또는 그와 비슷한 지역 등 초국가적인 광역대들은 특히 은총의 교환과 조화로운 노력의 여러 형태들을 실현하기에 아주 좋은 지역이다.

 

47. 특히,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는 인간의 이동이라는 현실 또한 은총의 교환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라는 요청을 받는다. 이는 도시와 이웃, 본당과 교구의 구체적인 일상생활 안에서 교회들 사이에 만남의 기회가 될 수 있고, 이로써 공동체의 삶 안에 시노드 여정이 뿌리내리도록 이바지할 수 있다. 라틴 전통 교회와 디아스포라 동방 가톨릭 교회 사이의 만남과 은총의 교환의 가능성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 주제를 ‘연구 그룹 1’이 다루고 있다.

 

48. 폭력과 박해, 종교 자유의 결여 등이 두드러지는 맥락에서 교회들 사이에 은총의 교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어떤 교회들은, 생존 자체를 위하여 고군분투하며 다른 교회들에 연대를 청하는 가운데에서도, 주님의 제자들이 역사 안에서 복음에 대한 거부와 박해에 지속적으로 맞서 싸우며 일구어 낸 결실인 그들 교회의 풍성함을 끊임없이 나누고 있다. 나아가 은총의 교환은 끝날 줄 모르는 식민주의와 신식민지주의의 영향이 여전히 남아 있는 맥락에서 이루어진다. 시노달리타스 실천을 증진하는 교회는 이러한 사회적 역동성이 은총의 교환에 끼치는 영향을 이해하고 변화를 모색하라는 요청을 받는다. 많은 교회가 상처 입은 기억을 여전히 품고 있기에 화해의 길을 증진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도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49. ‘은총의 교환’이라는 개념은 다른 교회들 그리고 교회적 공동체들과 이루는 관계에서 특별한 중요성을 지닌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는 이러한 생각을 교회 일치 운동에도 적용하였다. 대화는 단순히 사고의 교환만은 아닙니다. 어느 면에서, 대화는 언제나 ‘은총의 교환’입니다”(「하나 되게 하소서」[Ut Unum Sint], 28항). 은총의 교환은 신학적 대화 외에도 함께하는 기도 안에서 이루어진다. 우리는 함께하는 기도를 통하여 다름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의 영적 전통의 은총들을 받아들이는 열린 자세를 갖추게 된다. 다른 교회들과 교회적 공동체들의 성인성녀들 특히 순교자들의 삶과 영적 통찰의 모범 또한 우리가 받아들이고 전례력에 기념일로 삽입하여 기릴 수 있는 은총이다. 이러한 마음 자세로 우리는, 가톨릭 교회가 관할하는 성지와 거룩한 장소들을 순례하고 그곳에서 기도할 수 있는 기회를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 제공하면서 아량을 보여야 한다.

 

50. 종교 간 대화와 문화 간 대화는 시노드 여정 밖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어느 시대, 어느 민족이든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경외하며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받아들이신다.”(교회 헌장 9항; 참조: 사도 10,35)라는 바로 그 이유로, 이는 더욱 긴밀한 관계를 살아가도록 요청하는 시노드 여정의 일부가 된다. 따라서 은총의 교환은 그리스도교 교회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참된 보편성은 지평을 넓혀 다른 문화와 종교 전통 안에 존재하는 생명, 평화, 정의, 온전한 인간 발전을 증진하는 모든 요소를 기꺼이 받아들이려는 의지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제2부 길들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는, 점점 더 복잡해지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 선교 공동체의 삶의 틀을 구성하는 대인관계의 역동성 안에 있는 관계적 교회이다. 이러한 전망은 체험들을 제각기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체험들 사이의 연결고리를 포착하여 우리가 성전에서, 예언자적 증언에서, 하느님 말씀의 빛으로 다시 읽은 현실에서, 그리고 과거의 잘못들에서 배울 수 있게 해 준다.

 

제2부는 관계들의 돌봄과 발전, 특히 사명의 관점에서 그리스도와 이루는 일치, 그리고 갈등과 고난에 함께 맞서는 역량을 통한 공동체 생활의 조화를 분명하게 이루어 나가는 과정들을 강조한다. 또한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며 사명을 수행하는 교회의 삶 안에서 서로 구별되지만 깊이 얽혀 있는 네 가지 영역에, 특히 (하느님 말씀, 형제자매, 성령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위한 양성과 식별을 위한 양성에 초점을 맞춘다. 식별은 다양한 관련 역할을 존중하는 참여적인 결정 방식의 발전으로 이끈다. 이는 투명성, 받은 책임의 설명, 사명을 위한 식별을 가능하게 하는 평가를 목표로 하는 순환성을 띤다.

 

성체성사는 이러한 역동성의 원천이며 정점으로서, 성부께서 성자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베푸시는 사랑의 무상성을 관계들의 중심에 둔다.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며 사명을 수행하는 교회를 기르는 이 일용할 양식은 교회가 세상에 선포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통합적이고 함께하는 양성

 

51. 자신의 양성을 돌본다는 것은, 세례 받은 모든 이 각자가 자신이 받은 탈렌트로 열매를 맺고 모든 이를 위한 봉사에 그 탈렌트를 사용하기 위하여 주님의 선물에 대하여 마땅히 드려야 하는 응답이다”(종합 보고서, 제14장 1항). 제1회기 종합 보고서의 이 말은 양성의 필요성이 시노드 과정의 모든 단계에서 매우 강력하고 보편적으로 부각된 하나의 주제가 된 이유를 설명한다. 따라서 “어떻게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며 사명을 수행하는 교회가 될 것인가?”라는 질문에 응답하려면 모든 이의 지속적인 양성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면서 일관성 있는 양성 과정을 우선순위로 삼아야 한다.

 

많은 이들에게 시노드 모임 참여는, 세례로 받은 품위 또는 성령께서 하느님 백성에게 선물로 베풀어 주신 “초자연적인 신앙 감각”(교회 헌장 12항)의 의미를 더욱 잘 이해하려는 강한 바람을 이끌어 낸 시노달리타스에 대한 이해와 실천을 기르는 기회가 되었다. 따라서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성령께서 어떻게 교회 안에서 활동하시고 역사 안에서 교회를 이끌어 가시는지에 대하여 더욱 깊이 알아가는 것이다. 

 

53. 맥락이 없는 사명이 없듯이, 문화적 특수성과 역사적 맥락을 지니고 특정 장소에 뿌리를 내리지 않은 교회도 없다. 이러한 까닭에 양성 계획은 추상적으로 마련할 수 없다. 양성 계획을 규정하는 것은 지역 교회와 지역 교회 연합체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다양한 장소의 맥락, 문화, 전통을 고려하여 구현되어야 할 시노달리타스 전망에서 양성의 본질적 특징과 몇 가지 지침만을 제시하고자 한다.

 

54.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며 사명을 수행하는 교회는 경청의 능력에 기반한다. 이는 교회의 사명에서 아무도 자기 힘에만 의존할 수 없으며 모든 이가 기여하는 몫이 있고 다른 이들에게서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하기에 경청을 위한 양성은 중요한 첫 번째 필수요건이다. 성령 안에서의 대화를 실천함으로써 하느님 말씀에 귀 기울이는 것과 형제자매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이 어떻게 서로 엮이는지, 이러한 역동성이 어떻게 점차 성령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도록 마음을 열어 주는지 경험하게 되었다. 취합된 많은 의견이 이러한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양성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교회 안에는 문화와 영적 전통의 다양성에 따른 경청과 대화와 식별의 여러 방법들이 있다. 이러한 방법들에 따른 양성과 지역 상황 안에서 문화들과 영적 전통들 사이의 대화를 증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와 관련한 핵심 사항은 여러 형태의 가난과 소외를 경험하는 사람들에게 귀 기울이는 것이다. 많은 지역 교회는 이러한 임무를 맡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느끼며 구체적인 양성이 필요하다고 표명하였다. 이것이 ‘연구 그룹 2’의 작업에 맡겨진 사안들 가운데 하나이다.

 

55. 사명을 수행하는 시노달리타스의 관점에서 양성은 증인들의 양성을 목적으로 한다. 공동 책임을 지니고 성령의 권능에 협력하면서(사도 1,8 참조) 교회의 사명을 맡을 수 있는 남녀들을 양성하는 것이다. 따라서 양성은 주님과 만나는 개인 체험을 증진하려는 목표로 그리스도교 입문의 역동성에 기초할 것이다. 주님과의 만남에는 태도, 관계, 사고방식, 구조를 전환하는 지속적인 과정이 수반된다. 사명의 주체는 언제나 교회며, 교회의 구성원 각자가 세례의 힘으로 구원의 증인이며 전령이 된다. 그리스도교 생활 전체의 원천이며 정점인”(교회 헌장 11항) 성찬례는 시노달리타스로 이루어지는 양성을 위한 근본적인 자리이다. 가정은 생명과 사랑의 공동체이기에 신앙 교육과 그리스도교 실천을 위한 특권적 자리가 된다. 세대들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가운데 가정은 시노달리타스의 학교가 되어, 모든 이가 다른 이들을 돌보며 모든 이가 -건장한 이도 허약한 이도, 어린이, 젊은이, 노인도- 많은 것을 서로 주고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 보이도록 초대한다.

 

56.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 안에서 양성은 통합적이어야 한다. 실제로 양성은 개념이나 숙련성을 습득하는 것뿐만 아니라 만남과 나눔, 협력과 공동체적 식별의 역량을 증진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그러하기에 양성은 지성적, 정서적, 영성적 측면 등 전인적 측면을 다루어야 한다. 이론 교육으로만 머물러서는 안 되고 구체적인 체험과 의미 있는 동반을 포함해야만 한다. 오늘날, 특히 청년층에서 널리 퍼져 있는 디지털 문화를 포함하여 지역 교회가 살아가고 활동하는 문화에 대한 이해를 증진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연구 그룹 3’의 작업은 디지털 문화와 이 분야에 대한 적절한 교육의 증진에 전념한다.

 

57. 남녀 평신도와 축성 생활자, 수품 직무자와 수품 직무 후보자가 참여하여 상호 이해와 존중, 상호 협력의 능력을 기르게 해 주는, 함께하는 공통된 양성의 필요성에 대한 주장이 크게 부각되었다. 또한 신학생, 사제, 수도자, 평신도의 양성 프로그램에 여성의 참여를 증진하도록 각별한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요청이 있었다. 여성들이 신학 교육 기관과 연구소, 신학교에서 교수와 양성자 역할을 맡을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교회 안에서 여성들이 어떤 임무들을 맡을 수 있는지에 관하여 주교, 신부, 평신도를 교육하고, 또 본당, 교구, 평신도 연합, 교회 운동, 새로운 공동체, 축성 생활, 교회 기관과 교황청 부서 등 교회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그러한 기회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는지 평가하도록 장려하는 방안도 제안되었다. ‘연구 그룹 4’의 작업은 사명을 수행하는 시노달리타스 관점에서 수품 직무 후보자 양성 프로그램(「사제 양성 기본 지침」[Ratio Fundamentalis Institionis Sacerdotalis])의 개정에 전념한다. 강론 교육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요청이 모든 대륙에서 나왔다. 끝으로, 다양한 지역 맥락 안에서 그에 적합한 공동체적 식별을 위한 이론적 실천적 공동 양성의 필요성이 부각되었다.

 

사명을 위한 교회적 식별

 

58. 은사에 커다란 다양성을 주시는 유일하신 성령께서 교회를 충만한 생명과 거룩한 진리로 이끌어 주신다(요한 10,10; 16,13 참조). 항구한 성령의 현존과 활동을 통하여 “사도들에게서 이어 오는 성전(聖傳)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교회 안에서 발전한다”(계시 헌장 8항). 성령의 이끄심 덕분에, 그리스도의 예언자직에 참여하는 하느님 백성은(교회 헌장 12항 참조), “현대의 다른 사람들과 함께 참여하는 사건과 요구와 염원 안에서 하느님의 현존과 그 계획의 진정한 징표가 무엇인지 알아내려고 노력한다”(사목 헌장 11항). 교회의 이러한 식별 임무는, 성령께서 북돋아 주시는 ‘신앙 감각’에, 곧 목자들의 인도를 받는(교회 헌장 12항 참조) 하느님 백성의 고유한 직감 또는 ‘직관’이라고 일컬을 수 있는 “주님께서 교회에 계시하시는 새로운 길을 식별하는 고유한 직감”(주교대의원회의 제정 50주년 기념 연설)에 뿌리내리고 있다.

 

59. 식별은, 개인적 차원에서 참여하는 이들도 공동체 차원에서 참여하는 모든 이도 새로움에 마음을 열고 하느님의 뜻에 자신을 내어 맡기며, “성령께서 여러 교회에 하시는 말씀”(묵시 2,7)에 귀 기울이고자 서로 귀 기울이는 내적 자유를 기르게 해 준다. 위층 방에 있던 사도 공동체의 중심에서 기도하시며 현존하신 마리아께서는(사도 1,14 참조) 모든 이를 위한 살아 있는 모범이시며 참된 시노드 영성을 불러일으키시는 인도자이시다. 마리아께서는, 인내와 책임감으로 말씀에 귀 기울이고 여러 사건을 곰곰이 묵상하며 식별하고(루카 1,26-38; 2,19.51 참조), 성령께서 하시는 활동에 아낌없이 마음을 열며(루카 1,35 참조), 주님께서 하시는 일에 함께 감사드리고(루카 1,38-56 참조), 예수님께서 그 모성적 돌봄에 맡겨 주신(요한 19,25-27 참조) 모든 이 저마다에게 구체적이고도 시의적절하게 봉사하신(요한 2,1-12 참조) 분이시다.

 

60. 식별의 과정은 저마다에게 우리의 공동 사명의 전망 안에서 자기 자신의 전망을 나눌 것을 요구하기에, 친교, 사명, 참여를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해 준다. 다시 말해, 이것은 함께 걷기 위한 하나의 방식이다. 그러한 까닭에, 공동체와 사회의 주변부에 있는 이들이 참여하도록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면서, 식별 과정에 더욱 폭넓게 참여하도록 증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61. 모든 교회적 식별의 출발점이자 준거점은 하느님 말씀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성경은 하느님께서 인류와 나누시는 소통에 대한 탁월한 증거이다. 성경은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하신 말씀을 증언하였고 계속해서 증언하고 있으며, 하느님께서 인간과 소통하시는 다양한 통로를 제시한다. 하느님께서는 개인의 성경 묵상을 통하여 말씀하신다. 그 안에서, 기도하며 읽는 성경 구절이 말하는 ‘내용’이 울려 퍼진다.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당신 교회에 말씀하시는 것을 해석하는 탁월한 자리인 전례 안에서 공동체에게 말씀하신다. 하느님께서는 어머니요 스승인 교회를 통하여, 교회의 살아 있는 성전과 대중 신심을 비롯한 교회의 실천을 통하여 말씀하신다. 우리가 그 의미를 식별할 수만 있다면, 하느님께서는 시공간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통하여 끊임없이 말씀하신다. 하느님께서는 우주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통해서도 당신 백성과 소통하신다. 우주의 존재 자체는 창조주의 활동을 가리키며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현존이 우주를 가득 채운다. 하느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양심에 말씀하신다. 양심은 “인간의 가장 은밀한 핵심이며 지성소이다. 거기에서 인간은 홀로 하느님과 함께 있고 그 깊은 곳에서 하느님의 소리를 듣는다”(사목 헌장 16항). 진정한 식별은 하느님 소통의 이러한 통로들 가운데 어느 것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다.

 

62. 공동체적 식별은 조직을 운영하는 기술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성령 안에서 살아 온 교회의 삶과 사명을 특징짓는 어려운 실천이다. 그러한 까닭에, 언제나 공동체적 식별은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다는 인식과 그러한 원의로(마태 18,20 참조) 성령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이루어져야 한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오직 성령께서만 교회를 충만한 생명과 진리 안으로(요한 16,13 참조) 이끄시어, 의미에 목말라하는 세상에 생명과 진리를 나누어주실 수 있다. 하느님 백성이 복음 선포와 증언의 여정을 살아가는 방법은 이러한 공동체적 식별에 뿌리내리고 있다. 따라서 예루살렘 사도 공동체가 교회 역사상 첫 시노드 사건의 결과를 다음과 같이 마무리 짓게 해 준 복음의 기술을 모든 차원에서 실천하는 법을 깨닫는 것이 우선이다. 성령과 우리는 …… 결정하였습니다”(사도 15,28). 구체적인 장소, 조직, 사건 안에서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며 사명을 수행하는 교회의 삶의 실천은 바로 이러한 정신으로 이해되고 지향되어야 한다.

 

63. 구체적인 절차의 선택들은 다양하면서도 근본적으로는 신학적 방법론의 요건에 부합하여야 한다. 또한 어떤 절차를 계획하기 위하여 필요한 핵심 요소들을 시노드 과정의 체험에 기초하여 다음과 같이 확인할 수 있다. 가) 성찬례 참여를 비롯하여 개인적 공동체적 기도 생활. 나) 하느님 말씀과 현실에 대한 경청에 바탕을 둔 적절한 개인적 공동체적 준비. 다) 모든 이의 말을 존중하며 깊이 경청하기. 라) 최소 공통 분모를 찾음으로써가 아니라, 가장 ‘마음을 타오르게 하는’(루카 24,32 참조) 것을 확인하면서 충만함을 지향하며 최대한 폭넓은 합의를 추구하는 것. 마) 과정을 이끌어가는 이들은 합의를 공표하고, 이를 확인하거나 적어도 알아야 할 소임이 있는 모든 참여자에게 다시 전달하는 것.

 

64. 식별은 언제나 ‘땅에 발을 딛고’ 이루어진다. 이는 구체적인 맥락 안에서 그 개별성과 복합성을 인식하는 가운데 식별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식별은 당면 문제와 관련된 인문, 사회, 행정 등 다양한 학문적 분석의 기여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하여 기술 과학적 전문성으로 최종 결론이 내려진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한 접근은 기술 지배적 시류에 휩쓸리게 할 수 있다. 오히려 식별에서 그 목적은 “이에 따른 윤리적 영적 여정을 위한 구체적 기초를 마련하는”(「찬미받으소서」, 15항)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유형의 전문성이 다른 관점들을 지배하지 않으면서도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65. 교회 안에는 식별에 대한 매우 다양한 접근법과 잘 정립된 방법론이 있다. 이러한 다양성은 풍요로운 자산이다. 이 다양한 접근법을 여러 다른 맥락에 맞게 적절히 활용하면 유익한 결실을 거둘 수 있다. 공동선을 위하여, 이러한 접근법들이 각기 고유한 특성이나 정립된 체계를 잃지 않으면서도 유익한 대화에 포함되는 것이 중요하다. 시노드 과정의 모든 단계에서 분명히 드러나는 ‘성령 안에서의 대화’의 풍성한 결실은, 우리가 이 특별한 형태의 교회적 식별을 시노달리타스 실천에 특히 적합한 것으로 여기도록 초대한다.

 

66. 지역 교회들에서는 식별의 문화를 전파하고 증진하는 양성 기회를 특히 책임자 역할을 맡은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식별 과정을 수행하는 데에 자주 결정적인 기여를 하는 동반자 또는 활성가의 양성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논쟁의 여지가 있는 교리적, 사목적, 윤리적 문제들을 함께 식별하기 위한 신학적 기준과 시노달리타스 방법론을 마련하는 데에 전념하는 ‘연구 그룹 9’의 작업은 이와 연속선상에서 전개된다.

 

결정에 도달하는 과정들

 

67.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에서는, 구성원들이 가지는 자유롭고 풍요로운 다양성 안에서, 공동체 전체가 하느님의 뜻에 더 부합하는 사목적 결정들을 내리고자 기도하고 경청하고 분석하고 대화하고 식별하며 조언하도록 소집된다”(「교회의 삶과 사명 안에서 시노달리타스」, 68항). 이 내용은 분명히 실행되어야 한다.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를 증진하는 방법으로, 결정에 도달하고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 모든 사람이 참여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을 떠올리기란 어렵다. 이러한 참여는 공동 결정이라는 관점에서 공동체 구성원 각자를 존중하고 그들 각자의 능력과 은사를 소중히 여기는 분화된 책임감에 기반하여 이루어진다.

 

이러한 관점의 이행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결정에 도달하는 이러한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성찰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결정에 도달하는 과정은 일반적으로 “식별과 자문과 협력의 공동 작업을 통한”(「교회의 삶과 사명 안에서 시노달리타스」, 69항) 참여와 정교한 노력(다른 언어들에서도 사용하는 영어 표현에 따르면, decision-making이라고 표기)을 포함한다. 이어서 결정을 내리는 데에 이는 정보를 주고 그 결정을 뒷받침한다. 결정을 내리는 것은 궁극적으로 관할 권위(예를 들어, 교구에서는 교구장 주교)의 책임이다. 두 단계 사이에 경쟁이나 갈등은 없다. 오히려 이 두 과정은 그 결합을 통하여, 내려진 결정들이 최대한 하느님의 뜻에 일치하도록 보장하는 데에 이바지한다. 결정에 도달하려는 작업은 시노달리타스의 과제이고, 결정을 내리는 것 자체는 직무적 책임인 것이다”(「교회의 삶과 사명 안에서 시노달리타스」, 69항). 

 

69. 많은 경우에 기존 법률에는 이미, 관할 권위가 결정을 내리기 전에 자문 과정을 거칠 의무가 있다고 규정되어 있다. 이러한 교회적 자문은 생략될 수 없고 경청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관할 권위가 자문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처럼 진행할 수 없도록 관할 권위에게 의무를 지우고 있기 때문이다. 자문 의견은 구속력이 없기에, 관할 권위는 법적인 관점에서는 자유롭지만, 전체 합의가 도출된다면 설득력 있는 이유 없이(교회법 제127조 제2항 제2호 “우월한 이유가 없는 한”[sine praevalenti ratione]) 그 의견을 물리치지 말 것이다. 만일 관할 권위가 그렇게 한다면, 자문에 참여해 온 사람들에게서 스스로를 고립시켜 그들을 하나로 이어 주는 유대를 해칠 것이다. 교회 안에서 권위의 행사는 독단적인 뜻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 백성의 일치에 봉사하는 직무이기에 성령께서 요구하시는 것을 공동으로 추구하도록 조정하는 힘이다.

 

70.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 안에서 주교와 주교단과 로마 교황의 의사 결정 책임은,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의 교계 구조에 근거하기에 양도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무조건적인 것은 아니다. 자문 과정에서 올바른 식별의 결과로 드러난 방향성은, 특히 지역 교회의 참여 기관들이 수행한 식별일 경우에, 무시될 수 없다. 시노드 정신에 따른 교회 식별의 목적은, 주교들을 백성에게 종속시켜 주교들이 백성의 목소리에 복종하게 만들려는 것이 아니고, 이미 내린 결정들을 더욱 수용할 만한 것처럼 만드는 편법을 주교들에게 제공하려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목적은 성령께 순종하는 가운데 함께하는 결정으로 나아가려는 것이다. 따라서 자문과 논의 사이에 어떠한 대립도 부적절하다. 교회 안에서 논의는, 모든 사람의 도움으로 이루어지지만, 자기 직책에 따라 결정을 내리는 사목적 권위가 결코 빠져서는 안 된다. 따라서 교회법에 되풀이하여 나오는 ‘건의 투표권만’(tantum consultivum)이라는 표현은 자문의 가치를 떨어뜨리므로 바로잡아야 한다.

 

71. 상황의 특수성에 맞게 진정한 시노달리타스 의사 결정 과정에 생명을 불어넣는 모든 가능성을 점점 더 실행에 옮기는 것은 지역 교회의 몫이다. 이는 시노드의 성공적인 실행을 크게 좌우하는 매우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이다. 구체적인 변화가 없으면,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의 전망은 신뢰를 얻지 못할 것이다. 또한 시노드 여정에서 힘과 희망을 길어 올린 하느님 백성의 구성원들을 소외시켜 버릴 것이다. 이는 특히, 주교회의들이 제출한 많은 의견서에서 요청한 대로, 기획하고, 결정에 도달하고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 여성이 효과적으로 참여하는 문제에 적용된다.

 

마지막으로, 자문 과정, 공동체 식별 과정, 시노드 정신에 따라 결정에 도달하는과정에서 참여자들이 저마다 자신의 합리적인 의견을 표명할 수 있도록 모든 관련 정보에 효과적으로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과정을 개시하는 권위는 이 일이 가능하도록 보장할 책임이 있다. 건전한 시노달리타스 의사 결정 과정에는 적절한 투명성이 필요하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 일에 섬세함이 요구됨을 인식하고, 자문으로 자기 의견을 표명하는 사람들의 특별한 책임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투명성, 책임감 있는 설명, 평가

 

73.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는 투명성과 책임감 있는 설명의 문화와 그 실천을 요구한다. 이는 공동 사명을 위하여 함께 걸어가고 공동 책임을 행사하는 데에 필요한 상호 신뢰를 증진하는 데에 필수적이다. 교회 안에서 책임감 있게 설명한다는 것은 우선적으로 사회적 조직적 필요에 부응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토대는 친교의 신비인 교회의 본질 자체에서 찾을 수 있다.

 

74. 신약 성경에서 우리는 초대 교회의 삶에서 교회의 친교를 보호하는 것과 밀접하게 연관되는 책임감 있는 설명의 실천을 발견할 수 있다. 사도행전 11장에 이에 관한 본보기가 나온다. 베드로가 다른 민족 사람인 코르넬리우스에게 세례를 베풀고 나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자 “할례 받은 신자들이 그에게 따지며, ‘당신이 할례 받지 않은 사람들의 집에 들어가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다니요?’ 하고 말하였다”(사도 11,2-3). 그러자 베드로는 그들에게 자신이 한 행동의 이유를 설명하였다. 공동체 앞에서 자신의 직무에 대하여 책임감 있게 설명하는 것은 사도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가장 오래된 교회 전통에 속한다. 봉사(stewardship: 청지기직)에 대한 그리스도교 신학은 권한의 행사에 관하여 이해하고 투명성과 책임감 있는 설명에 관하여 성찰하는 기틀을 제공해 준다.

 

75. 우리 시대에는 교회 안에 그리고 교회에 의한 투명성과 책임감 있는 설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는 재정 비리와 심지어 미성년자와 취약한 사람들에 대한 성적 학대와 그 밖의 남용으로 말미암아 신뢰를 상실한 결과이다. 투명성과 책임감 있는 설명의 결여는 수품 직무자들이 자신에게 부여된 권한 행사에 대해서 그 누구에게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가정을 바탕으로 하는 성직주의를 부추긴다.

 

76.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가 환영받는 교회가 되려면, 책임감 있는 설명과 투명성이 권위 차원뿐만 아니라 모든 차원에서 교회 활동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권위를 지닌 사람들에게는 이와 관련하여 더 큰 책임이 있다. 투명성과 책임감 있는 설명은 성적 학대와 재정 남용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사목 계획과 복음화 방법과도 연관되어야 한다. 또한 예를 들어 교회 기관 내 노동 여건처럼, 교회가 인간 존엄성을 존중하는 방식과도 연관되어야 한다.

 

77. 장상에게 책임감 있게 설명하는 관행은 수 세기에 걸쳐 유지되어 온 반면에, 공동체 앞에서 권위자가 책임감 있게 설명하는 차원은 회복될 필요가 있다. 투명성은 교회 내 권위 행사의 특징이 되어야 한다. 오늘날 모든 종류의 직무적 책임이 어떻게 수행되고 있는지 정기적으로 평가하는 구조와 형태가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도덕과 무관한 의미로 이해되는 평가를 통하여, 직무자들은 빠르게 적응할 수 있게 되고, 더욱 성장하고 능력을 길러 더 나은 봉사를 수행할 수 있게 된다.

 

78. 규제의 기준과 방법에 관하여 교회법 규범으로 이미 규정한 것을 준수하는 것 외에도, 투명성과 책임감 있는 설명의 효과적인 형태와 절차를 구축하는 것은 지역 교회들과 특히 교회 연합체들(예를 들어, 교회 관구들, 주교회의들과 동방 교계 조직들)의 소관이다. 이러한 형태와 절차는 국가 규제 체계와 사회적 기대와 해당 분야에 관한 전문적 지식의 가용성에 바탕을 두고 다양한 상황에 맞게 구축되어야 한다. 자원이 부족한 곳에서도 교회는 그 활동과 정신과 사고방식을 투명성과 책임감 있는 설명의 문화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발전시키기 위하여 노력할 것이다.

 

79. 특히 다양한 맥락에 적합한 형태로 최소한 다음의 사항들을 보장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가) 재무 평의회의 효과적인 역할, 나) 사목 기획과 재무 기획에 하느님 백성, 특히 가장 유능한 구성원들의 실질적인 참여, 다) 교회와 교회 기관들의 자산과 재정 자원의 관리를 투명하게 해 주는, 가능하다면 외부 감사의 인증을 받은, 연간 재무제표의 준비와 (실제 접근 가능한) 공표, 라) 보호(미성년자와 취약한 사람들의 보호)와 관련하여 그리고 여성이 권위 있는 자리에 접근할 수 있고 결정에 도달하고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의 증진과 관련하여 이루어진 활동들에 대한 설명을 포함하는 사명 수행에 관한 연례 보고서, 마) 교회 안에서 직무를 수행하고 직책을 맡고 있는 모든 사람의 활동 수행에 대한 정기적인 평가 절차. 이러한 사항들은 시노드 과정과 그 이행의 신뢰성을 위하여 매우 중요하고 시급한 것들이다.

 

 

제3부 장소들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며 사명을 수행하는 교회의 삶, 교회를 구성하는 중요한 관계들, 그리고 교회의 발전을 보장하는 여정들은 ‘장소’의 구체성과 특수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곧, 교회가 자리하는 곳에 주어진 맥락과 문화의 구체성과 특수성을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제3부는 피라미드 모델에 따른 일련의 단계나 등급(예를 들어, 본당, 지구, 교구, 교회 관구, 주교회의 또는 동방 교계 조직, 그리고 보편 교회)에 따라 정렬된 장소들에 대한 정적인 전망을 극복하도록 초대한다. 이는 결코 우리의 전망이 아니다. 교회들 사이의 관계망과 은총의 교환은 언제나 선형(線形)이 아니라 그물망의 형태로 이루어져 왔다. 교회들은 교황이 그 영원하고 가시적인 근원이자 토대가 되는 일치의 유대로 모인다. 이러한 의미에서, 교회의 보편성은 추상적인 보편주의와 결코 같지 않다. 나아가, 공간에 대한 개념이 급변하는 맥락에서, 교회의 활동을 순전히 공간적 경계 안에 국한시켜 버리는 것은, 치명적인 답보 상태에 사로잡히게 만들고, 특히 젊은이들을 비롯하여 가장 역동적인 사람들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사목적으로 되풀이되는 우려스러운 상황을 초래할 것이다. 이와 반대로, 장소는, 교회들 사이의 관계들 안에서 그리고 교회들이 의미상 통일성을 부여받아 이루는 교회 연합체들 사이의 관계들 안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상호 의존성이라는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로마 주교가 그리고 그와 친교를 이루는 주교단이 수행하는 일치의 봉사는 이러한 관점을 고려하고 그 실천에 필요한 적절한 제도적 형태를 개발해야 한다.

 

공동 여정의 분야들

 

80. 코린토에 있는 하느님의 교회에 ……”(1코린 1,2). 복음 선포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믿음을 일깨워 한 장소에 교회가 세워지게 한다. 교회가 한 장소와 한 문화에 뿌리내려 있고 여러 장소와 여러 문화 사이에 맺어진 관계의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교회를 잘 이해할 수 없다. 장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개별주의나 상대주의에 굴복한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구원하시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현현에 대한 믿음을 함께 나누는 경험이 공간과 시간 안에서 모습을 갖추는 장소의 구체성을 높이 평가한다는 의미이다. 장소의 차원은, 본래 다원적이고 특정 문화적 역사적 맥락에 뿌리를 두는 이러한 경험의 형태들을 보존한다. 전례, 신학, 영성, 규율에 관한 다양한 전통은 이러한 다원성이 교회를 얼마나 풍요롭고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지 보여 준다. 저마다 자기 지역의 구체성을 지닌 교회들의 친교는, 하나이고 유일한 교회 안에서 이루는 신자들의 친교를 드러내고, 이 신자들의 친교가 추상적이고 획일화된 보편주의 안에서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지 않게 해 준다.

 

81. 문화의 다원성과 문화 간 만남과 대화의 결실은, 교회 생활의 한 조건이고 교회의 보편성을 드러내는 하나의 표현이며 이 보편성을 위태롭게 하지 않는다. 구원 메시지는 언제나 하나이고 동일하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실 때에 하나의 희망을 주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고 성령도 한 분이십니다.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이고, 만물의 아버지이신 하느님도 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만물 위에, 만물을 통하여, 만물 안에 계십니다”(에페 4,4-6). 이 메시지는 다원적 형태를 띠고 다양한 민족, 문화, 전통, 언어로 표현된다. 이처럼 실제로 다원적인 형태를 취함으로써, 패권주의적 경향들을 피하고, 구원의 메시지를 교회 생활과 교회의 전례적 사목적 윤리적 표현에 대한 단일한 이해로 축소해 버릴 위험을 피할 수 있다.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 안에서의 관계망은, 교회들 사이에 은총의 교환을 통하여 가시화되고, 로마 주교를 단장으로 하는 주교단의 일치를 통하여 보장받는다. 이 관계망이야말로 결코 획일화될 수 없는 일치의 역동적인 파수꾼이다.

 

82. 오늘날 구체적인 맥락에 뿌리를 둔 교회에 대한 이러한 전망은, 특정 지역에 뿌리내린 우리의 경험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온, 우리 시대의 사회 문화적 여건을 마주한다. 장소는 더 이상 순전히 지리적 공간적 용어로 이해될 수 없다. 오히려, 장소는 우리가 과거보다 더 역동적이고 유동적인 관계망과 문화에 속해 있음을 가리킨다. 이러한 현실은 서로 다른 장소 개념을 바탕으로 구성된 교회의 조직 형태에 도전을 제기한다. 또한 하나의 진리를 사람들의 삶 속에 구현하려면, 다양한 맥락에 맞게 서로 모순되지 않는 차별화된 기준을 채택하여야 한다.

 

83. 도시화는 이러한 변화의 한 요인이다. 오늘날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대다수의 인구가 농촌이 아닌 도시에서 살고 있다. 지역을 구성하는 경계의 형성 방식이 다른 도심에서, 장소에 대한 소속감은 서로 다른 형태를 띤다. 대도시에서는 본당뿐만 아니라 교구의 경계를 넘어가려면 지하철로 몇 정거장만 가면 된다. 많은 사람이 하루에도 여러 번 이동하는 여정이다. 수많은 일상의 삶이 여러 교회 지역을 오가며 이루어지는 것이다.

 

84. 두 번째 요인은 세계화된 세상에서 여러 이유로 이루어지는 인간의 이동성의 증가이다. 난민과 이주민은 종종 활기찬 공동체를 형성하고 신앙 실천의 폭을 넓혀 그들이 정착하는 장소가 더 큰 다양성을 띠게 해 준다. 또한 난민과 이주민은 흔히 디지털 매체 덕분에 출신 국가와의 연결과 관계를 계속 이어간다. 그들은 자주 다양한 지역, 문화, 언어 집단에 동시에 소속되어 있는 경험을 한다. 한편으로, 그들의 출신지 공동체들은 때로는 공동체의 존립을 위하여 고군분투할 정도로 구성원 수가 줄어드는 경험을 한다. 또 다른 한편으로, 그들의 관계적 문화적 바탕이 전 세계적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제1회기에서 언급했듯이, 이와 관련하여 대표적인 사례가 일부 동방 가톨릭 교회들의 상황이다. 현재의 이주율로 말미암아, 교회법적 관할 지역에서보다 디아스포라에 있는 동방 가톨릭 교회들의 구성원이 더 많아질 수도 있다(종합 보고서, 제6장 3항 참조). 아무튼 장소를 순전히 지리적 용어로 정의하는 것은 점점 더 시대착오적인 일이 될 것이다. ‘연구 그룹 1’은 이것이 동방 가톨릭 교회들과 라틴 교회의 관계에 제기하는 도전에 대하여 성찰하도록 요청받는다.

 

85. 마지막으로,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 디지털 문화의 확산을 간과할 수 없다. 이는 공간과 시간에 대한 경험과 개념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치고, 커뮤니케이션, 관계, 신앙을 아우르는 모든 종류의 인간 활동의 모습을 바꾸고 있다. 제1회기에서 “그러므로 디지털 문화는 사명과 별개의 영역이라기보다는, 우리 시대 문화 안에서 교회의 증언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차원”(종합 보고서, 제17장 2항)이라고 언급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연구 그룹 3’은 이 도전 과제를 연구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

 

86. 사회와 문화의 이러한 역학 관계는, 교회가 사명을 위하여 자신의 지역적 차원에 대한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볼 것을 요구한다. 삶은 언제나 물리적 맥락과 구체적인 문화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면서도, 장소에 대한 순전히 공간적 해석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장소들, 특히 교회의 장소들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관계들이 발전될 수 있는 환경이자 네트워크이다. 이는 사람들에게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삶의 모든 곳에서 그들이 수행하게 되는 사명의 토대를 제공해 준다. 정신과 마음의 시노달리타스 회개는, 함께 여행하는 길이 되도록 부름받은 교회 실재들의 시노달리타스 개혁이 수반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는 사목 활동을 선발된 이들에게 맡겨 둔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 목표는 모든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87. 이러한 개혁은 교회들의 친교(communio Ecclesiarum) 안에서 명확하게 표현되는,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교회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경험으로 알 수 있듯이, 지역 교회들 안에서 시노드 과정을 시작하는 것은 교회 전체의 일치를 해치지 않고 오히려 하느님 백성의 다양성과 보편성을 표현한다(교회 헌장 22항 참조). 이는 로마 주교의 일치의 직무 수행을 저해하지 않고 오히려 강화한다. 우리는 교회를 생각할 때 교회 제도들을 먼저 떠올리지는 않는다. 그런데 사실, 최고 단계의 제도들을 포함하여 이러한 교회 제도들을 사명에 봉사하는 논리로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88. 로마 주교의 직무가 온 교회가 이루는 일치의 가시적 근원이고, 개별 주교의 직무가 그의 지역 교회 안에서 이루는 일치의 가시적 근원임을 고려하여, 공의회는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가 또한 교회들의 몸이고, 이 안에 그리고 이로부터 하나의 유일한 가톨릭 교회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었다(교회 헌장 23항 참조). 이 몸은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가) 하느님 백성의 일부로서 각각 주교에게 맡겨진 개별 교회, 나) 특히 교계 조직들을 통한 친교의 사례들을 대표적으로 나타내는 교회 연합체, 다) 주교적(cum Petro, 베드로와 함께) 교계적(sub Petro, 베드로 아래) 친교의 유대로 로마 주교를 중심으로 모인 주교단을 통하여 표명되는 교회들의 친교로서의 교회 전체(Ecclesia tota). 교회 제도의 개혁은 교회의 이러한 질서정연한 구분을 따르지 않을 수 없다.

 

하나이고 유일한 가톨릭 교회의 지역 교회들

 

89. 지역 교회는 바로 그 본성상 우리가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며 사명을 수행하는 교회 전체의 삶을 가장 직접적으로 체험하는 곳이다. 주교회의들이 제출한 의견서들은 (선교) 사명 안에서의 친교와 참여의 맥락인 본당, 기초 공동체, 소공동체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사크로파노에 모인 본당 사제들이 언급한 대로, “본당 구성원들은 기쁨과 슬픔, 희망과 투쟁의 시기에 기도와 예배, 봉사와 증언을 위하여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 예수님의 선교 제자들이고 또 그렇게 된다.” 하느님께서는 이러한 교회 실재들 안에서 일하고 계신다. 이와 동시에, 선교적 창의성에 봉사하는 공동체들 가운데 한 공동체로 이해되는 본당의 탁월한 유연성을 활용하려면 우리도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90. 오늘날 지역 교회들은 그리스도교 생활의 오랜 표현과 새로운 표현인 여러 단체와 공동체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축성 생활회와 사도 생활단은 지역 교회들의 삶과 선교 활동의 활력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평신도 단체들, 교회 운동들, 새로운 공동체들도 마찬가지이다. 오늘날 교회에 대한 소속은, 지리적으로 정해진 기반에 따른 형식적인 형태가 아니라 점점 더 단체의 유대와 관련된 다양한 형태로 표현되고 있다. 이러한 교회 소속 형태들의 다양성은 선교 지향에 비추어 그리고 각각의 맥락에서 주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교회적 식별에 비추어 증진되어야 한다. 이러한 여러 가지 다양성을 활성화하고 일치의 유대를 돌보는 것은 교구장 주교의 고유한 관할권이다. ‘연구 그룹 6’은 이러한 측면에 대하여 성찰하는 임무를 맡았다.

 

91. 시노드 과정의 이전 단계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의안집」 초안 작성에 앞서 진행된 자문 단계에서 받은 의견들 가운데 다수가, 본당 평의회, 지구 평의회, 교구 평의회와 같은 다양한 유형의 평의회를 사목 활동의 계획, 조직, 실행, 평가를 위한 필수 도구로 여기고 이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였다. 이러한 조직들은 현행 교회법에서 이미 규정되어 있는 것이다. 적절하게 적용한다면, 이는 시노드 정신에 따른 접근 방식에 구체적인 형태를 부여하는 데에 더욱 적합한 것으로 드러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평의회들은 교회적 식별과 시노달리타스 의사 결정의 주체가 될 수 있고, 책임감 있는 설명의 실천과 권위 있는 위치에 있는 이들의 평가가 이루어지는 자리도 될 수 있다. 이 평의회들 또한 자신의 임무 수행 방식에 대하여 설명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평의회들은 시노드 제안과 지침을 곧바로 이행하여 효과적이고 신속한 영향을 미치는 변화들을 이끌어낼 수 있는 가장 기대되는 분야 가운데 하나이다.

 

92. 이 방향으로 나아가려면 이러한 기구의 외형과 운영 방식을 재구성하여야 한다고 지적한 의견이 많았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위원 선임 방식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는 위원 구성이 그들이 봉사하는 공동체(본당 또는 교구)의 구성을 반영하여 신뢰할 만한 방식으로 투명성과 책임감 있는 설명의 문화를 증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따라서 구성원의 과반수를 권위(본당 사제 또는 주교)가 선발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공동체나 지역 교회의 현실을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다른 방식으로 지명할 필요가 있다.

 

93. 비슷한 맥락에서, 여성, 젊은이, 가난하고 소외된 상황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더 폭넓은 참여를 장려하며 이러한 기구들의 구성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더욱이 제1회기에서도 강조한 대로, 이러한 기구들에는 그 공동체의 삶과 봉사를 조직하는 데에 관여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탁월한 사도적 선교적 자질을 지니고(종합 보고서, 제18장 4항 참조) 삶의 일상 현실과 자신의 사회적 맥락에서 신앙을 증거하는 데에 헌신하는 남녀들이 포함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러한 방식으로, 이 기구들이 수행하는 교회적 식별은, 더욱 열린 자세로 현실을 분석하는 역량과 다양한 시각들의 도움을 받게 된다. 마지막으로, 그러한 평의회들의 설립이 현행법상 재량 사항이지만 의무 사항이 되기를 바란다는 의견도 많이 제시되었다.

 

94. 일부 주교회의는 개혁의 경험을 공유하고 이미 시행 중인 모범 실천 사례를 확인시켜 주었다. 여기에는 교구 사목 평의회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인 소공동체와 기초 공동체, 본당과 지구의 차원에서 사목 평의회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 포함된다. 자문과 경청의 본보기로서, 자문의 폭을 넓혀 그리스도인 공동체와 함께 걷고 있는, 지역 안에 존재하는 다른 교회들과 교회적 공동체들과 타종교들의 의견, 그리고 사회의 의견을 포함하고자 노력하면서 모든 차원에서 교회 회합들을 개최하여야 한다는 제안이 있었다.

 

교회의 일치를 형성하는 유대

 

95. 제1부에서 설명한 은총 교환의 공동체적 지평은 교회들 사이에 이루는 관계에 영감을 준다. 은총 교환의 공동체적 지평은 교회의 일치를 형성하는 유대를 강조하며, 이를 각 지역 교회가 그 역사와 전통과 더불어 살아가는 맥락과 관련된 개별성의 가치와 결부시킨다. 시노달리타스 방식을 채택함으로써 우리는, 모든 교회가 반드시 모든 문제에 같은 속도로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을 극복할 수 있다. 오히려 속도의 차이는 정당한 다양성의 표현으로 그리고 은총을 교환하고 서로 더욱 풍요로워지는 기회로 소중히 여겨질 수 있다. 이러한 지평이 실현되려면 구체적인 조직과 실천으로 구현될 필요가 있다. ‘어떻게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며 사명을 수행하는 교회가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응답하려면 그러한 조직과 실천을 확인하고 장려하여야 한다.

 

동방 교계 조직들과 주교회의들은, 교회들 사이에 유대 형성과 경험 공유를 위한 그리고 통치와 사목 기획의 분권화를 위한 핵심 기구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렇게 말하였다. 옛 총대주교좌 교회들처럼, 주교회의들은 ‘합의체적 정신을 구체적으로 적용시키는 여러 가지 풍요로운 활동을 함께할 수 있다’(교회 헌장 23항). 그러나 이러한 바람은 충분히 실현되지 못하였다. 진정한 교리적 권위를 포함하여 구체적인 권한을 지닌 주체로 여겨지는 주교회의의 법률적 지위가 아직까지는 충분히 규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복음의 기쁨」, 32항).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며 사명을 수행하는 교회가 되는 방법을 모색하려면 이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

 

97. 이번 시노드 과정에서 지금까지 취합된 모든 내용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제안들이 도출되었다. 가) 주교회의를 교리적 권위를 지닌 교회적 주체로 인정하여야 한다. 곧, 주교회의는, 다면적인 교회의 틀 안에서 사회 문화적 다양성을 수용하고, 서로 다른 사회 문화적 맥락에 적합한 전례적 규율적 신학적 영적 표현을 소중히 여기도록 장려하면서, 교리적 권위를 지닌 교회적 주체로 인정받아야 한다. 나) 시행되어야 할 구체적인 개혁들을 파악하기 위하여, 주교회의들과 동방 교계 조직들의 역할 그리고 주교단과 성좌 사이의 관계에 대한 실제 경험을 평가하여야 한다. ‘연구 그룹 7’이 다룰 주제인 사도좌 정기 방문은 이러한 평가에 적합한 맥락이 될 수 있다. 다) 모든 교구가 교회 관구와 주교회의 또는 동방 교계 조직에 귀속되도록 보장하여야 한다(주교 교령 40항 참조).

 

98. 모든 지역에서 대륙회의를 소집한 것은, 현재 시노드 과정에서 혁신적인 것이었다. 또한 이는 “그리스도인 생활의 모든 영역에 걸쳐 더 근본적인 적응”을 추구하면서 “모든 광범위한 사회 문화적 영역”(선교 교령 22항)의 개별성을 존중하라는 공의회의 가르침을 더욱 일관되게 이행하는 길이었다. 이러한 경험과 일부 지역 교회들의 여정은 어떻게 하면 우리가 시노달리타스와 단체성의 역동성을, 예를 들어 교회 회의들과 주교회의들을 통하여, 제도적으로 더욱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을지에 관한 문제를 제기한다. 이러한 기구들에 대륙 또는 지역 차원의 자문과 의사 결정을 조정하는 일을 맡길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문서들의 초안 작성과 결정에 도달하고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 다양한 교회 일꾼들을 포함시키는 식별 방법을 실천할 수도 있다. 나아가, 다양한 상황에 적합한 형태로 시민 기관, 타 종교 대표, 비가톨릭 단체, 그리고 사회 전반의 의견을 듣고 대화할 수 있는 자리도 식별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제안이 있었다.

 

99. 지역 시노드 대화가 종결되지 않고 지속되어야 한다는 열망과, 특정 지역들 안에 효과적인 신앙의 토착화에 대한 필요성이 개별 공의회 제도를 새롭게 인식하도록 우리를 이끈다. 교회 역사의 상당 부분 동안 관구 공의회나 전체 공의회와 같은 개별 공의회들의 정기적인 개회는 의무가 되어 왔다. 시노드 여정을 걷는 경험을 바탕으로, 주교들의 회합 그리고 관련 교구들의 사목 평의회들을 대표하거나 그 지역 교회의 다양성을 반영하여 여러 다른 방식으로 지명받은 신자들(사제, 부제, 축성 생활자, 남녀 평신도)로 구성된 교회적 회합, 이 두 회합이 결합된 형태들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개별 공의회들이 내린 결론들의 시의적절한 발표를 위하여 이를 추인하는 절차가 개선되어야 한다.

 

일치에 봉사하는 로마 주교

 

100. ‘어떻게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며 사명을 수행하는 교회가 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응답하려면, 시노달리타스, 단체성, 수위권을 통합하는 역동성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할 때에, 이를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제도들 사이의 관계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101. 현 시노드 과정은 다음과 같은 공의회의 확언이 참되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교회의 친교 안에는 고유한 전통을 지니는 개별 교회들이 당연히 존재한다. 그러나 베드로 교좌의 수위권은 온전히 보존된다. 사랑의 모든 공동체를 다스리는 베드로 교좌는 정당한 다양성을 보호하고 또 동시에 개별 요소들이 일치에 해를 끼치지 않고 오히려 일치에 이바지하도록 감독한다”(교회 헌장 13항). 이러한 역할에 힘입어, 로마 주교는 온 교회의 일치의 가시적인 근원으로서(교회 헌장 23항) 시노달리타스의 보증이 된다. 로마 주교는 주교 시노드를 소집하고 주재하며 그 결과를 승인함으로써 온 교회를 시노드 활동으로 부른다. 그는 교회가 분명히 시노달리타스 방식과 형태로 성장하도록 돌보아야 한다.

 

102. 베드로 직무의 수행 형태에 관한 성찰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촉구하고 많은 주교회의들이 요청한 대로, “건실한 분권화”(「복음의 기쁨」, 16항)의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교황령 「복음을 선포하여라」의 표현에 따르면, 이는 주교들이 “‘스승’과 목자로서 ‘자기 고유 직무’를 수행하는 때에 그들이 잘 알고 있고 또한 교회의 일치된 교리와 규율과 친교를 건드리지 않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권한을 그들의 관할권에 맡기면서 늘 공동 책임으로 행동”하는 것을 수반한다. 공동 책임은 교회라는 구체적인 ‘친교의 신비’(mysterium communionis)의 열매이자 표현이다”(「복음을 선포하여라」, II. 교황청의 봉사를 위한 원칙과 기준, 2. ‘친교’ 안에서의 공동 책임).

 

103.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하여, 우리는 최근 발표된 자의 교서 「일부 권한의 부여」(Competentias Quasdam Decernere, 2022.2.11.)의 노선을 따를 수 있을 것이다. 이 자의 교서를 통하여, “보편 교회 규율의 일치를 보호하려는 목적의 법전 규정들과 관련된 일부 권한을 지역 교회와 지역 교회 제도의 집행권에”(서문) 부여한 것이다.

 

104. 더욱이, 교회법 규범의 입안도 시노달리타스 방식을 실행하는 자리가 될 수 있다. 규칙들을 제정하는 것은 단지 권위가 부여받은 권력을 행사한다는 의미만이 아니라 진정한 교회적 식별로 간주되어야 한다. 권위만이 입법할 모든 특은을 누린다 하더라도, 권위는 성령 안에서 정의의 요구에 귀 기울이는 경청의 결실인 규범의 공표를 위하여 시노달리타스 방법으로 행동할 수 있고 행동하여야 한다.

 

105. 이미 언급한 교황령 「복음을 선포하여라」는 로마 주교와 주교단에 대한 로마 교황청의 봉사를 시노드적이고 선교적인 방식으로 정립하였다. 투명성과 책임감 있는 설명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주기적으로 그 활동에 대한 평가를 수행하고 (예를 들어 추기경 평의회 그리고/또는 시노드에서 선출된 주교들의 평의회와 같은) 독립 기구에 맡겨야 한다. ‘연구 그룹 8’은 시노달리타스 선교 관점에서 교황 사절의 역할을 검토하고 그 활동을 평가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데 전념한다.

 

2023년 10월 시노드 총회에서는 제1회기의 성과를 평가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종합 보고서, 제20장 10항 참조). 이러한 평가는, 시노드를 비정기적 행사에서 공간과 시간에 걸쳐 확장되는 교회 과정으로 변화시킨 교황령 「주교들의 친교」를 통하여 이루어진 발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교회 전체의 차원에서 시노달리타스와 단체성을 실천하는 자리들 가운데 세계주교시노드가 단연 돋보인다. 교회 전체를 향한 교황의 염려에 공의회적 방식으로 참여하도록 소집된 주교들의 회합으로서 바오로 6세가 제정한 주교대의원회의는 이제 단계별 과정의 형태를 통하여 시노달리타스와 단체성과 수위권 사이의 역동적 관계가 실현되고 증진될 수 있는 자리가 되었다. 거룩한 하느님 백성 전체, 하느님 백성의 일부를 맡은 주교들, 그리고 교회 일치의 근원인 로마 주교는 저마다 고유의 역할에 따라 시노드 과정에 온전히 참여한다. 이러한 참여는 로마 주교를 중심으로 모이는 시노드 총회에서 드러난다. 시노드 총회는 그 구성에서 “일치의 성사인 교회, 곧 주교 아래 질서 있게 모인 거룩한 백성인”(전례 헌장 26항) 교회의 다양성과 보편성을 보여 준다.

 

107. 2021-2024년 시노드의 가장 중요한 결실 중 하나는, 그 특징이 되는 교회 일치적 노력과 약속이 강렬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비추어 “새로운 상황에”(「하나 되게 하소서」, 95항) 개방적인 베드로 직무 수행의 문제를 다루는 것도 유용할 것이다. 교황청 그리스도인일치촉진부가 최근에 발표한 문서 「로마 주교: 교회 일치 대화 안에서 그리고 회칙 「하나 되게 하소서」에 대한 응답으로서 수위권과 시노달리타스」(The Bishop of Rome: Primacy and Synodality in Ecumenical Dialogues and Responses to the Encyclical Ut Unum Sint)는 더 심화된 연구를 위한 통찰력을 제시한다. 이 주제는 교회 일치 여정의 결실을 교회 관행들 안에 수용하는 데에 전념하는 ‘연구 그룹 10’의 작업의 일부이다.

 

108. 다른 교회들과 교회적 공동체들에서 온 형제 대표들의 제1회기 참여가 나타내는 풍요로움은 동서방 교회 일치 당사자들의 시노달리타스 실천 방식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인식의 깊이를 더해 준다. 교회 일치 대화는 시노달리타스에 대한 이해와 교회의 일치를 증진하는 데에 필수적이다. 무엇보다도 교회 일치 대화는, 우리가 공동의 시급한 관심사들에 대한 자문과 식별의 형태를 포함하여 참으로 교회 일치적인 시노달리타스 관행을 그려보게끔 이끈다. 이러한 가능성의 뿌리에는 우리가 하나인 세례로 일치되어 있다는 사실이 있다. 하나인 세례에서 하느님 백성의 정체성 그리고 친교와 참여와 사명의 역동성이 흘러나오는 것이다.

 

 

결론


세상 안에서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

 

109.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서로를 향한 끊임없는 갈망을 특징으로 한다. 모든 것이 관계에 대한 부르심이고, 궁극적으로 그 누구도 그 무엇도 홀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증거이다. 그리스도교 계시에 비추어 바라볼 때, 온 누리는 이 세상을 초월하고 이 세상에 생기를 불어넣어 하느님과의 만남으로 이끄는 어떤 현존의 성사적 표징이다. 하느님과의 이 만남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거룩한 산 위에서 베풀어 주실 그 종말론적 잔치에서 완전히 실현될 서로 다름의 향연 속에서 결정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부활의 선포로 변모한 교회는 이사야의 환시가 살아 숨 쉬는 자리, 곧 “힘없는 이들에게 피신처가, 곤경에 빠진 가난한 이들에게 피신처가 되어 주고 폭우에는 피난처, 폭염에는 그늘이”(이사 25,4) 되고자 노력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교회는 하느님 나라에 마음을 연다. 교회의 지체들은 주님의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자신을 내어 맡겨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지평으로 나아갈 때 헤아릴 수 없는 기쁨을 경험한다. 그 아름다움과 겸손함과 단순함 안에서 교회의 존재 방식의 이 지속적인 회심이야말로 시노드 과정을 통하여 우리가 걸어가도록 초대받는 길이다. 

 

111. 회칙 「모든 형제들」(Fratelli Tutti, 2020.10.3.)은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자신을 형제자매로 인식하라는 소명을 제시하며, 이를 신분이 아니라 삶의 방식으로 제안한다. 이 회칙은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 그리고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향연에 대한 전망, 이 둘의 대비를 강조한다. 이사야가 언급한 애도의 너울과 덮개와 눈물은 우리 시대에도 존재한다. 이는 흔히 우리가 서로 점점 더 고립되고 세상의 폭력과 양극화가 심화되며 우리가 생명의 원천으로부터 뿌리 뽑힌 결과이다. 「의안집」은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제기한다. ‘어떻게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며 사명을 수행하는 교회가 될 수 있는가?’ ‘어떻게 깊은 경청과 대화에 참여할 수 있는가?’ ‘어떻게 우리가 개인으로 또 공동체로 받은 세례 소명의 역동성에 비추어 공동 책임을 질 수 있는가?’ ‘어떻게 모든 이가 참여하고 공동선을 위하여 성령께서 우리 저마다에게 부어주신 은사들을 공유할 수 있도록 구조와 절차를 바꿀 수 있는가?’ ‘어떻게 권력과 권위를 봉사로 수행할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 하나하나가 교회에 도움이 되고, 교회의 활동을 통하여 우리 시대의 가장 깊은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가능성에 이바지한다.

 

112. 이사야 예언자는 그의 신탁을 다음과 같이 합창으로 부르는 찬미의 노래로 마무리한다. 이분은 우리 하느님이시다. 우리는 이분께 희망을 걸었고 이분께서는 구원해 주셨다. 이분이야말로 우리가 희망을 걸었던 주님이시다. 이분의 구원으로 우리 기뻐하고 즐거워하자”(이사 25,9). 우리도 하느님 백성으로서 이 찬미 노래에 동참하고, 아직 구원의 기쁜 소식의 선포에 희망을 거는 이들을 향하여 희망의 순례자로서 시노드 여정을 따라 계속 나아가자!

 

…………………………………………………………………………………

 

1) 달리 명시되지 않거나 문맥 안에서 그렇지 않음이 명확한 경우를 제외하고, 「의안집」 본문에서 ‘교회’라는 용어는 “유일하고 단일한 가톨릭 교회”(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인류의 빛」[Lumen Gentium], 23항)를 가리키며, 복수 형태의 용어 ‘교회들’은 지역 교회들을 가리킨다. 지역 교회들 안에 그리고 지역 교회들로부터 유일하고 단일한 가톨릭 교회가 존재하는 것이다.

 

2) 이하 주교회의들과 대륙별 주교회의 연합들에서 인용한 내용들은 2023년 말부터 2024년 중반까지 이루어진 개별 교회 자문 단계를 마치고 주교대의원회의 사무처로 전달된 종합 의견서들에서 발췌하였다.

 

3) 이 문서는 2023년 12월 11일에 주교대의원회의 사무처가 배포하였고, 시노드 누리집(www.synod.va)에서 찾아볼 수 있다.

 

4) 이와 관련하여 주교대의원회의 사무처가 2024년 3월 14일에 발표한 「어떻게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선교하는 교회가 될 수 있는가?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 총회 제2회기 신학적 탐구를 위한 다섯 가지 전망」 문서를 시노드 누리집(www.synod.va)에서 찾아볼 수 있다.

 

5) 이와 관련하여 2024년 3월 14일에 발표한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 총회 제1회기에서 제기된 문제들을 교황청 부서들과 협력하여 심화할 연구 그룹들」 문서를 시노드 누리집(www.synod.va)에서 찾아볼 수 있다.

 

6) 제1회기 종합 보고서에서 제시되었고 열 개의 연구 그룹들에게 할당된 주제는 다음과 같다.

① 동방 가톨릭 교회들과 라틴 교회의 관계의 몇 가지 측면(종합 보고서, 제6장)

② 가난한 이들의 부르짖음에 귀 기울이기(종합 보고서, 제4.16장)

③ 디지털 환경에서의 선교(종합 보고서, 제17장)

④ 사명을 수행하는 시노달리타스 관점에서 「사제 양성 기본 지침」(Ratio Fundamentalis Institutionis Sacerdotalis)의 개정(종합 보고서, 제11장)

⑤ 특정 직무 형태에 관한 몇 가지 신학적 교회법적 문제들(종합 보고서, 제8.9장)

⑥ 시노달리타스 선교 전망에서, 주교들, 축성 생활자들, 교회 단체들 사이의 관계에 관한 문서들의 개정(종합 보고서, 제10장)

⑦ 사명을 수행하는 시노달리타스 관점에서, 주교의 모습과 직무의 일부 측면들(주교 후보자 선정 기준, 주교의 사법 임무, 사도좌 정기 방문의 본질과 과정)(종합 보고서, 제12.13)

⑧ 사명을 수행하는 시노달리타스 관점에서 교황 사절의 역할(종합 보고서, 제13장)

⑨ 교리적, 사목적, 윤리적으로 논쟁이 되는 문제들에 대한 공동 식별의 기초가 되는 신학적 기준과 시노달리타스 방법론(종합 보고서, 제15장)

⑩ 교회 실천들에서 이루어진 교회 일치 여정의 결실에 대한 수용(종합 보고서, 제7장)

 

7) 동방과 서방 교회의 전통 안에서 ‘시노드’라는 용어는 다양한 주제를 포함하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띄어 온 기구들과 사건들을 지칭한다. 그 다양성 가운데 이 모든 형태의 공통점은 대화와 식별과 결정을 위하여 함께 모인다는 사실이다.

 

<원문: 주교대의원회의 사무처, Instrumentum laboris for the Second Session of the 16th Ordinary General Assembly of the Synod of Bishops (October 2024) “How to be a missionary synodal Church,” 2024.7.9., 이탈리아어도 참조>

 

영어: https://press.vatican.va/content/salastampa/en/bollettino/pubblico/2024/07/09/240709d.html

 

이탈리아어: https://press.vatican.va/content/salastampa/it/bollettino/pubblico/2024/07/09/0560/01156.html



36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