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3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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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신약으로 배우는 분석심리학: 예수님의 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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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4-11-19 ㅣ No.1177

[신약으로 배우는 분석심리학] 예수님의 유언

 

 

신약의 예수님 말씀 중에는 일종의 유언처럼 읽히는 대목들이 많습니다. 그중 한 대목이 마태오복음 16장 24-27절입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 사람의 아들이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천사들과 함께 올 터인데, 그때에 각자에게 그 행실대로 갚을 것이다.” 이 대목은 마르코복음 8장 34-38절, 루카복음 9장 23-6절, 요한복음 I2장 25-26절인 사복음서에 공통적으로 등장합니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대목은 꽤 많은 사람들이 자기 편한 대로 혹은 자기의 가치관에 맞추어 이해하는 것 같습니다. 저도 어쩌면 그중 하나일 것 같습니다.

 

먼저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는 유명한 구절입니다. 그래서 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의무, 혹은 자신을 힘들게 하는 상황이나 대상들을 십자가로 표현합니다. 그런데 가끔은 그런 상황까지 십자가로 이야기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깊은 성찰 없이 남용하니까요. 심지어는 타인을 무조건 비난할 때 ‘너는 내 십자가다.’라고 들이댑니다. 무조건 ‘나는 희생자고 너는 가해자다.’라는 이분법도 있습니다. 들여다보면 자신의 영달, 부귀영화를 위해 애쓰다 보니 생기는 일인데도 마치 대단한 희생을 하는 것처럼 포장하는 것이지요. 어찌 보면 저를 포함한 모두가 자기의 이기심 때문에, 혹은 자기의 대수롭지 않은 재주 때문에 또는 다른 사람에 대한 집착 때문에 스스로의 무덤을 파거나 스스로 올라간 나무에서 떨어지면서 십자가 운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라는 대목은 마치 이순신 장군의 ‘사즉생 생즉사(死則生 生則死)’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은 오기가 쓴 「오자병법」 ‘필사즉생 행생즉사(必死則生 幸生則死)’에 나오는 말을 이순신 장군이 인용한 것이라 합니다. 「오자병법」의 원전 의도는 그저 전쟁터는 사람들이 죽어가는 곳이라 죽기를 각오해야 살지 행운을 기대하면 죽는다라며 군인들을 독려하는 문맥 중 하나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과 죽음을 보는 태도와 군인의 삶과 죽음을 보는 태도는 매우 다른 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이 말씀을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세속적인 주문으로 곡해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즉 ‘목숨 걸고 일해야 출세한다, 목숨 걸고 싸워야 정권을 잡는다.’ 하는 식으로 편하게 해석하고 스스로의 충동적이고 본능적인 이기심을 마치 예수님의 가르침인양 호도하고 포장하는 것이지요.

 

실제로 그리스어 원문에서는 목숨이 프시케(Psyche), 즉 영혼, 혹은 마음으로 기록됩니다. 따라서 이 부분에서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 하는 대목은 육체의 손해가 아니라 영혼의 손해라고 이해해야 합니다. 그러니 목숨걸고 세속의 일에 투쟁하라는 주문으로 읽는다면 완전한 오독이 아닐까요. 또 어떤 사람들은 이 부분을 자신의 육체적인 건강이라고 해석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소유에 목매달지 마라, 나의 행복이 중요한 것이다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물론 자신의 건강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나쁜 일은 아니지만 예수님께서 주문하신 것은 작은 자아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큰 자기가 추구하는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헌신이기 때문에 본래의 의미를 자꾸 축소하고 왜곡하려는 우리 자신에 대해 좀 더 엄정하고 조심스러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리 스스로를 다독여도 살면서 원래 갖고 있던 순수한 꿈, 열정, 기개, 맑은 정신 같은 것들은 점점 사라지면서 그저 작은 일이나 사람에 매달리고 쓸데없는 욕심을 부리게 되는 것이 우리의 본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나이가 들면서 그런 본능은 사라질 것 같지만 오히려 체력과 용모가 변해가는 만큼 자신감도, 능력도 떨어져 추한 면이 더 도드라지기도 합니다. 두려움, 공포, 피해 의식 같은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만 점점 더 쌓이는 것이지요.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의연하게 아픈 나보다 주변을 먼저 살피고 따뜻하게 배려할 수 있는 이들을 만나기가 어려운 이유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을 앞두고도 제자들에게 목숨을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봅니다. 길을 잃고 주저앉아 있을 때 인생의 의무와 책임과 고통이 마치 예수님의 십자가처럼 무겁게만 느껴질 때 “너도 나처럼 십자가를 지고 있구나.”라는 위로의 말씀이 아닌지. 그래서 어쩌면 손을 잡고 등도 밀어 주시는 격려의 처방전은 아닐까도 싶습니다.

 

[월간 빛, 2024년 11월호, 이나미 리드비나(서울대학교병원 공공진료센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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