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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순례16: 퍼셀의 환호하라! 눈부신 체칠리아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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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형의 클래식 순례] (16) 퍼셀의 <환호하라! 눈부신 체칠리아를> 성녀라는 상징 통해 '음악의 힘' 찬미
- 시몽 부에 <성녀 체칠리아>. 출처 위키미디어
11월 22일은 성녀 체칠리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입니다.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체칠리아 성인은 특히 가깝게 느껴지는 분입니다. 바로 음악과 음악인들의 주보 성인이기 때문이지요. 성인은 로마의 귀족 가문 출신으로, 3세기 중반쯤에 순교했다고 알려졌습니다.
음악의 성인이기 때문에 예부터 오르간이나 하프, 혹은 바이올린 같은 악기를 들고 있거나 연주하는 모습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아서 쉽게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음악과 관련이 있는 기관이나 장소, 축제 등에 성인의 이름을 붙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령 로마에 있는 저명한 음악원 이름도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이지요.
성인의 축일은 르네상스 시대부터 ‘음악가의 날’이나 음악 축제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성인을 기리는 음악 작품을 연주하는 곳도 있었고, 음악가들이 모이기도 했습니다. 바로크 시대에는 영국 작곡가 헨리 퍼셀과 조지 프리데릭 헨델의 송가, 프랑스 작곡가 마르크-앙투안 샤르팡티에의 오라토리오가 있고, 요제프 하이든과 샤를 구노도 성인에게 봉헌하는 미사곡을 썼습니다. 20세기에는 체칠리아 축일에 태어난 벤자민 브리튼이나 제임스 맥밀런이 멋진 작품을 남겼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작품은 헨리 퍼셀이 1692년 발표한 <환호하라! 눈부신 체칠리아를>(Hail! Bright Cecilia)입니다. 17세기부터 영국에서는 큰 도시를 중심으로 체칠리아 축일에 음악회를 여는 전통이 생겼습니다. 런던에서도 1683년에 런던 음악 협회(Musical Society of London)가 창립됐는데, 당대 최고의 작곡가였던 퍼셀에게 성인에게 바치는 작품을 의뢰해 축일에 연주했습니다. 그 후 퍼셀은 세 번이나 더 의뢰를 받아 작품을 썼는데, <환호하라! 눈부신 체칠리아를>은 그중 마지막 작품입니다.
퍼셀은 당시 영국 궁정에서 군주의 생일이나 결혼, 신년을 축하하는 음악이었던 ‘송가’(Ode) 형식을 빌려 성인을 찬미하는 음악을 썼는데, 가사는 니콜라스 브래디가 쓴 송시를 활용했습니다. 가사는 다양한 표현으로 체칠리아 성인에게 찬사를 보내는데, 어떤 의미에서는 성인이라는 상징을 통해서 음악의 힘을 찬미하는 뜻을 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기록을 보면 ‘도시 제일의 가수와 연주자들’(Best voices and hands in town)이 연주했다고 하는데, 이 작품은 퍼셀이 쓴 다른 송가보다 작품과 악단 규모가 큽니다. 합창 사이에는 사라방드와 미뉴에트, 파사칼리아 등 춤곡 리듬을 품은 아름다운 독창이 있고, 오보에와 리코더, 트럼펫 등 여러 악기가 가사를 멋지게 표현했습니다. 특히 웅장한 합창을 대위법적으로 펼쳐내는 마지막 악장에서는 바로크 음악의 정연한 형식과 자유로운 감정 표현이 조화를 이룬다는 느낌입니다.
퍼셀의 <환호하라! 눈부신 체칠리아를> https://youtu.be/DErV_tHTRvw?si=9stXJbu3D-7IjLv0
[가톨릭신문, 2024년 11월 17일, 이준형 프란치스코(음악평론가)] 0 36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