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11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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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극ㅣ영화ㅣ예술

도서 칼럼: 시류를 거스를 줄 아는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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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5-02-26 ㅣ No.156

[도서 칼럼] 시류를 거스를 줄 아는 용기

 

 

체 게바라의 스물세 살 의대생 시절 모습을 담은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2004)는 세기의 혁명가 체 게바라가 혁명에 몸담기 이전 시기를 조명한 작품으로, 그가 대학생 시절에 겪은 여행을 통해서 세상을 마주하는 시선이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 인간적으로 그려냅니다.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체 게바라가, 못 본 척 지나칠 수 없었던 거대한 시류를 마주한 뒤에 군복을 입고 수염을 기른 혁명가의 모습으로 거듭나게 된 이유를 영화는 보여줍니다.

 

김훈 작가의 소설 《하얼빈》은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가 청년 체 게바라를 마주하는 시선과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청년 안중근’을 그리며, 그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기 위해 하얼빈으로 나아가는 여정을 차근차근 뒤따릅니다. 이러한 뒤따름은 김훈 작가가 역사 속 실존 인물이며 동시에 자신의 이전 소설들 속 주인공이었던 ‘청년 이순신’과 ‘청년 황사영’ 등에게 이미 보인 시선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소설 《하얼빈》은 감당하기 어려운 시대의 거대한 흐름을, 두렵지만 결의에 찬 심경으로 마주하는 청년의 모습으로 안중근을 그립니다. 무엇보다 시대를 벗어나면 평범한 모습이었을 청년 안중근에게 있어서 시대와 실존 간 가장 큰 충돌이 벌어진 강렬했을 며칠간의 일들을 선명하게 재구성합니다.

 

특별히 소설 안에서 작가의 또 다른 소설 《흑산》의 주인공이자 역사 속 실존 인물인 황사영을 소설 속 안중근과 비교한 대목이 인상적입니다.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할 당시 조선대목구장이었던 뮈텔 주교는 안중근의 거사를 이해하지 못하는 대표적인 인물로 등장합니다. 천주교가 박해를 받던 시기에 종교의 자유를 얻기 위해서 서구 열강에 도움을 요청하려다가 발각되어 처형당한 황사영이 남긴 보자기 글을 훗날 번역한 뮈텔 주교의 모습은, 교회의 만류에 ‘국가 앞에서 종교도 없다.’라는 신념하에 교회 밖에서 이토를 죽인 안중근의 모습과 대비되어 등장합니다. 여기서 소설은 “황사영은 국가를 제거하려다가 죽임을 당했고, 안중근은 국가를 회복하려고 남을 죽이고 저도 죽게 되었는데, 뮈텔은 이 젊은이들의 운명을 가로막고 있는 ‘국가’를 가엾이 여겼다. 황사영에서 안중근에 이르는 백 년 동안 두 젊은이의 국가는 돌이킬 수 없이 무너져갔다.”라고 말하며, 청년 안중근을 시대에 종속된 젊은이로서 자신이 시대에 종속되어 있음을 스스로 깨닫고 그 종속된 처지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발버둥 치는 모습으로 그립니다.

 

이처럼 소설 속 청년 안중근의 모습은 각자가 속한 시대의 흐름에 정면으로 맞서는 모든 청년들을 대변하며, 시대의 아픔을 바라볼 여유를 갖추기 힘든 사회적 분위기 속에 놓인 청년 세대의 심경을 헤아립니다. 보이지 않는 길을 찾아내기 위해 악전고투하고, 때로는 시류와 타협하여 가치관과 신념을 버릴 것을 요구받기도 하는 우리 시대의 청년들에게 작가는 소설 속 안중근을 통해서 용기를 불어넣어주며 동시에 기성세대로서 느끼는 안쓰러움과 부끄러움을 고백합니다.

 

[2025년 2월 23일(다해) 연중 제7주일 서울주보 5면, 구본석 사도요한 신부(국내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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