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 (금)
(백) 부활 제7주간 금요일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 내 양들을 돌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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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유익한 심리학: 용서에 대한 심리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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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4-05-02 ㅣ No.1166

[유익한 심리학] 용서에 대한 심리 산책 (1)

 

 

용서는 어떤 것일까? 누군가를 용서해야 하는 상황에서 우리의 내면은 어떤 부정적인 느낌이나 감정 그리고 생각에 빠진다.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우리 내면은 억울함이나 서러움 등의 부정적 느낌이나 감정 그리고 생각 등으로 상처를 받는다. 평화로웠던 내면은 혼란과 고통에 빠지게 된다. 겪은 일이 클수록 그에 대한 우리의 내면은 더 큰 혼란과 고통에 빠진다. 어떤 이는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무너지는가 하면 어떤 이는 잠을 못 이루고 분노에 짓눌려 가까운 가족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부당한 일을 당한 사람은 ‘나’인데 그 부정적인 영향으로 일상이 무너지는 것도 ‘나’인 셈이다.

 

용서할 일이 많은 사람의 내면은 어떨까?

 

늘 억울하고 속상하고 화가 나는 사람, 매일매일 누군가를 용서해야 할 일이 일어나는 사람, 이러한 사람은 하루하루의 삶이 고역이요, 무거운 짐처럼 여겨질 것이다. 그의 마음은 온갖 벌레가 기어 다니고 누더기 옷을 걸친 것처럼 산뜻하지 않을 것이다.

 

좋은 날도 기쁜 일이 있어도 순간순간 그를 괴롭히는 부정적인 느낌이나 감정 그리고 생각이 불쑥불쑥 일어나 그의 마음은 한순간도 평화롭지 못할 것이다. 억울함에 속상하고 부당함에 밉고 나만 이러한 일을 당하나 싶어 외롭고 고통스럽다. 그래서 더욱 용서하기 어려워지고 미움과 증오와 분노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커져 가면서 마음은 더욱 무너져 내린다.

 

“일곱 번”(마태 18,21) 용서하면 될까요?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8,22) 성경의 용서는 제한이 없다.

 

우리는 이러한 성경의 가르침에 놀라곤 한다. ‘도대체 우리에게 어쩌라는 거야?’ 하며 부당한 요구를 받은 양 불편하다. 그런데 용서와 관련된 우리의 내면을 살펴보니 성경의 가르침이 이해된다.

 

용서는 ‘나’를 위한 것이었다. ‘부당한 일로 너의 마음을 해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누군가의 잘못으로 너의 성심을 상하게 하지 마라!’, ‘용서함으로써 너의 평화와 성심을 회복하여라!’ 등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의 부당함으로 주님께서 주신 평화와 우리의 내면이 무너지는 것은 슬픈 일이기도 하지만 ‘악’을 방치하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용서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은 용서의 덕에 대한 가르침이라기보다는 원죄로 인한 세상의 부당함, 사람들의 불의함에 대한 태도를 가르치고 있는 셈이다. 이 세상은 더는 ‘에덴동산’이 아니다. 오래전에 인간은 에덴에서 쫓겨나 하느님의 부재라는 세상에서 살게 되었다. 이런 세상에서 겪는 온갖 부당함으로부터 우리의 마음을 보호하고 온갖 부정적인 느낌, 감정 그리고 생각들로부터 견디어 내고 이겨내야 할 이유가 우리에게는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님과 함께 새로운 에덴인 하늘나라를 회복해야 한다.

 

“또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마태 10,38)

 

용서는 덕(德)이라기보다 더 큰 은총에로의 초대인 신앙이다.

 

[2024년 4월 28일(나해) 부활 제5주일 전주주보 숲정이 3면, 김정민 라자로 신부(아중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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